6.찬송가문제는 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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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찬송가문제는 공회

서기 0 21
6) 찬송가 문제와 교인 관리 문제

⑴ 공회찬송가 문제는 교계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음

공회찬송가 문제는 한국 교계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교계가 통일찬송가를 만들 때 분위기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각교파별 감시팀을 만들어 통일찬송가를 사용치 않는 교파에 대하여는 기존 찬송가의 출판 저작권을 확보하고 있던 교계에서 법적 대응을 강력하게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서부교회 백목사님은 한국 교회 최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나 공회찬송가 출간으로 교계와는 분명히 다른 길을 걷겠다고 발표하게 됩니다. 교계는 공회찬송가 출간시 머릿말에서 행했던 여러 변명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나 결국 예외로 인정하고 덮어 버리고 말아 버립니다.

백목사님이 통일찬송가에 대하여 그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것에 맞서봐야 이길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보수측 교단들에게 영향을 미쳐 통일찬송가 시행이 깨질까 하였던 것입니다. 즉, 공회찬송가에 대하여는 모든 면으로 앞장 서서 시비를 하고 나설 외부 교단들이 오히려 일체 언급이 없었습니다. 교계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 왜 공회 안에서만 이렇게 문제가 되었는가 라는 점입니다.

⑵ 공회 내에 찬송가 사용 문제는 전도에 불편 하다는 주장 때 문

신학을 아는 사람들, 교계의 향방을 아는 사람들은 백목사님이 지적하는 통일찬송가의 구조적 잘못에 대하여 아무 할 말이 없었으나 타 교단 교회들 중에서 교인들을 모아 와야 하는 분들이 공회 교회들과 교인 문제가 발생되면 찬송가를 가지고 말도 안 되는 고성방가로 자극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이단이나 이상한 교회라는 표현이 해당될 때와 안 될 때를 모르는 무지한 이들이며 무식한 분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공회찬송가를 문제 삼는 것은 자기들 소속 신학교와 교단 지도부가 말릴 일이만 자기들 교회로 교인을 한 사람이라도 더 확보하겠다고 그냥 고함을 질러 댄 것입니다.

이렇게 타 교단 교회들의 고함 소리에 놀라 공회 소속 교회로 오던 교인들이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으니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것이 공회의 찬송가 문제 본질입니다. 공회찬송가 자체를 시비하는 것은 양심이 아닐 것입니다. 공회찬송가는 통일찬송가에 비하여 신앙노선 문제 차원에서 옳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옳기는 옳지만 교인 전도 문제가 발생될 때는 어떻게 해야겠는가 라는 대처 문제만이 논의되어져야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⑶ 전도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고
신앙노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못할 일도 없는것

사실 전도를 위해서는 하지 못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주일날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는 논리도 가르친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찬송가를 변경하는 것도 얼마든지 공회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되겠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때에 바꾸고 어떤 때에는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허용이 되고 또 신앙노선을 지키는 범위 안이라는 것이 먼저 확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변경이나 변화한 면만으로 말한다면 총공회 백목사님만큼 많이 바꾸고 변경한 분은 없습니다. 교계 어떤 잘나가는 교회라도 공회 정도로 광범위하고 전면적으로 마구 교계 일반 상식 관례를 다 휘저어 버린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회만큼 그렇게 미련스럽게 과거것을 고집하는 곳도 없습니다. 남녀 좌석을 분리시켜 앉는다는 것이 도대체 언제 없어진 고래 폐습이라고들 알고 있을 터인데 공회는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⑷ 변경할 것과 변경치 못할 것에 대한 근본 시각과 자세가 문 제

다른 진영이 주일에 차를 사용하게 된 것과 공회가 주일에 차를 사용하도록 한 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 동기가 다르고 과정이 다르며 그 결정의 내용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다른 진영은 교인들이 하나 둘 타기 시작하니까 교인들 형편 따라 시대의 분위기를 맞추어 허용한 것입니다. 허용할 수 있는 것인지 끝까지 막아야 하는 것인지, 허용한다면 어떤 시각에서 어떤 조건으로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현재 공회 외부 모든 교파들의 '변경' 성질입니다.

바꾸는 것이 교인 확보에 필요하고 교회의 외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불경도 읽을 수 있고 제사도 지낼 수 있으며 북한 정권하에 소속하여 통일의 기수가 될 수도 있고 강단을 없앨 수도 있으며 예배당 안에 건강 강좌를 열 수도 있습니다. 밤무대를 강단에 올려 놓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중고생이 엉겨붙는 콜라텍이라는 밤무대가 예배당 내에 들어가지 않은 곳이 별로 없고 대학의 써클 활동과 교회의 청년 활동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 하나 떼어 놓고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고 따진다면, 해도 된다고 할 것도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못 하게 막을 것도 거의 없다는 것이 뻔한 결과입니다. 술 담배 도박 마약도 하지 말라고 성경으로 단정할 분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성경으로 교리로 신앙노선으로 또한 교회의 은혜면으로 또한 그것을 사용하는 교회의 근본 자세 등으로 먼저 생각해보고 기도한 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이라 하여 그리했느냐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느냐, 해도 되는지를 성경 교리 신앙노선 은혜면으로 먼저 철저히 살핀 다음 하나님께서 하는 것이 옳다고 해서 했느냐는 문제가 문제입니다.

교회가 추도식을 하여 안 믿는 가족은 교회식 제사를 드렸다고 인사하고 교인들은 예배로 참석했다 하여 위안하고 있지만, 이 문제도 천주교가 제사를 '한국 고유 효법의 한 모양'이라고 하여 전도의 길을 터 준 것을 보고 기독교는 예배로 덮어 버렸던 것입니다. 1991년 통합측 교단 최고위급 회의에서도 공회의 추도식 금지 입장을 전해듣고 확인했던 교회사의 상식입니다.

⑸ 지금 찬송가 문제 하나로 논하지만, 실은 전반적 문제 전부 가 포함

철없는 타 교단 일부 교인들이 회원 모집을 위해 한번 고함 지르는 소리 때문에 찬송가를 변경하느냐는 문제가 공회에 제기되었으나 그 문제는 그 교회와 교역자의 전반적인 신앙 성향과 자세에 관련된 일부 표현일 뿐입니다. 찬송가를 통일로 변경하는 분들은 수백 수천이 넘는 사안에서 전부 일반 교회의 뿌리 없는 바람 몰이를 따라 갈 것이고 반대로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세상 풍조를 거부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세상 풍조 거부가 바로 성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단체 속화, 속화 일변도, 속화 매진에 휩쓸리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할 것입니다.

공회의 찬송가 문제는 공회의 모든 진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시대에 밀려서 할 수밖에 없느냐, 말단의 신앙 없는 교인들이 요구하면 그들을 끌어앉히기 위해 그냥 따라 갈 수밖에 없느냐? 만일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는 교회가 존립될 수 없고 차라리 신사참배를 하게 되면 신앙어린 사람들을 그들의 어린 차원에서라도 길러가고 또 앞날을 기약할 수 있겠느냐는 1939년도의 문제가 오늘 발생된다면, 한국 교계 전체를 따라 또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문제를 이웃 교회 교인들과 발생되는 문제로 인식을 하면서 동시에 모든 역사에 나타났던 교회의 타락사를 그대로 따라 가는 속화의 길을 함께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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