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총공회를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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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총공회를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던 시기

서기 0 24
시일: 1980.3.25.화새
본문: 빌3:9-12

( 이스라엘의 통치 체제 )

( ①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다스리신 신정 국가가 이스라엘이고, 하나님이 정치를 직접하신 시대를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라 합니다. 사사 시대와 그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망령을 부리고 패역을 부려서 하나님과 일층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멀어지게 된 그 이스라엘 때는 제사장과 왕으로 나뉘어 나라가 종교와 정치로 갈라졌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따로 세우시고 또 종교면에 교훈하는 사람들을 따로 세우셔서 교훈하는 계통을 제사장 계통이라, 또 정치하는 계통을 왕 계통이라 했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한 사람이 맡아서 하던 마지막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 ② 왕정 국가가 된 이후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는 멀어짐 )
사무엘은 사사였으니 정치와 종교를 혼자 맡았고, 사무엘 다음 정치가로 처음 나선 사람이 사울왕입니다. 종교와 정치가 그때 나뉘었는데 나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셨고 사사가 하나님으로 받아 가지고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왕을 세운 이후 부터는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다스리던 일을 하지 아니하셨고 정치가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종교가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교훈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간격이 멀어지게 됩니다.

( ③ 초기 깨끗한 개혁교회가 점점 커지게 되면 종교와 정치가 분리됩니다. )

지금 세상에 있는 교회들도 그러합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가 개혁이 되어 참교회 수는 적고 또 모든 것이 다 깨끗하고 솔직할 그때는 종교와 정치가 나누어지지 아니하고 은혜 받는 개혁의 사람들이 종교와 정치를 혼자 겸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차차 차차 교회가 많아지게 되면 문제도 생겨지고 또 복잡도 하고 수도 많고 이러니까 어기서는 한 사람이 종교와 정치를 맡기에 힘이 들어 이제는 종교와 정치를 나누어서 하게 됩니다.

마치 비유컨대 저 강물의 근원은 산골 생수입니다. 저 산골 바위 틈에서 나오는 그 생수는 강물보다 깨끗하고 또 방축을 쌓아 물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관수를 하지 아니해도 골짜기를 따라 제 마음대로 쫄쫄 흘려 내려옵니다. 별 피해도 없고 또 그것이 바로 잡아서 흘러 내리지마는, 차차 이 물이 모여서 많게 되면 그 다음에는 이 물이 흘러 나가는 길도 그렇게 자유롭지를 않고 또 물이 많기 때문에 이 물이 외통으로 졸졸 흘러 내려가지도 않습니다. 시내가 이리 저리 흘러 모든 농작물도 다 절단 내고 인가도 절단 내 버립니다. 이러니까 부득이 이것을 방축을 쌓아 가지고 원하는 대로 이리 저리 나가게 관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 ④ 신앙과 정치가 하나되어 시작했던 총공회의 좋았던 초기 )

공회가 처음에 나온 때는 다 깨끗하고 온전하고 또 그때는 모든 일이 다 솔직하고 이래서 간편하고 간단하지만 차차 수효가 많아지면서 복잡해져서 종교와 정치가 나뉘게 됩니다. 지금 모든 교회 교파들이 다 종교와 정치가 나뉘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이 개교회로 나가는 교회도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이제까지 되어 나왔습니다. 장로들이 있고 집사들이 있으나 별 할 일이 없어서 장로들이나 집사들이 할 일이 없었습니다. 왜? 성경대로 영감대로 이해가 되니까, 종교라는 것이 정치요, 정치가 또한 종교라, 그래서 성경대로 정치하고 또 정치 그것이 곧 성경이고 이렇게 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 ⑤ 총공회가 커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탈선하게 되어, 왕정 제도를 택한 과정 )

그러나 사람의 수효가 많아지니까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도 외국과 같이 왕을 세웠으면 좋겠다 해서 부르짖어 하나님께서 왕을 세워 준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왕을 세워 주시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 사무엘이 통치할 때에 이스라엘이 평안했고 이제 왕이 통치한 이후에는 사무엘이 통치한 때와 같은 평안을 평생 만나지 못할 것이지만 저들이 이렇게 너를 반대하고 정치하는 왕을 세워 정치하기를 원하는 것은 너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반대하기 전에 나를 반대하는 것이니까 그들이 행한 대로 그대로 해 줄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은 너를 반대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반대함이요 저희들이 복이 적어서 그런 것이니까 그들을 그들대로의 자유성을 주지 아니하면 도리어 더 심히 타락할 것이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여 내가 왕을 세우리라고 하여 사울을 택해서 왕을 세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층 타락하는 것인데도, 행정은 행정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이렇게 분리되어야 된다 하는 것을 자꾸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교회들을 보고 원하게 됩니다. 이러면 이제는 차차 차차 어찌 할 수 없이 장로 한 분 세우고 두 분 세우고 세 분 세우고 이제는 행정이라 정치라 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 진영에도 행정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했습니다.

이것이 다 새것이 아니고 옛것을 되풀이하는 것이니 역사를 변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타락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 ⑥ 그러나 하나님과 멀어지는 왕정 안에서도 사무엘과 다윗은 더욱 크게 복음 운동을 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런 왕정 제도는 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저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생수는 깨끗하기는 그것이 깨끗해서 아주 물맛이 좋고 위생적이고 좋지만 그 산골 물 그거 가지고는 배가 다닐 수도 없고 또 거기에는 큰 고기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제 물이 거기서 내려와서 물이 탑탑하고 좀 나쁘게 되었지만 그 양이 많으니까 많은 양을 인해서 배도 다니고 또 많은 양을 인해서 깨끗한 고기는 아니지만 많은 고기들이 생겨지고 또 이용이 되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와같이 교회 수가 많아지면 깨끗함은 처음 산골만 못하지만 그런 많은 숫자에서 하나님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하나님의 뜻이 또 많이 이루어져 나가는 그런 좋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 교회 분열의 두 세력, 세상 세력을 사용하는 세력과 신령한 권세만을 사용하는 세력의 충돌 )

( ① 교회를 개혁한 후 성장 과정에서 두 세력의 등장과 충돌 )

이래서, 교회의 역사는 개혁한 그 개혁의 복음 운동이 좀 지나면 차차 차차 타락하고 부패해집니다. 숫자가 많아지면 타락해지고 부패해지고, 부패해지면 또 그 가운데에서 또 종교 개혁이 생깁니다. 그러면 개혁을 한 그 교회들도 타락하고 부패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패해지는 그 속에서도 그들과 같이 부패해지지 아니하고 타락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과 타락한 교회와 결국 충돌이 생겨집니다. 충돌이 생겨지지만 언제든지 타락한 교회들이 세상 세력을 가집니다. 타락한 그 부분들이 세력을 가집니다. 이 타락한 교회들이 세상 세력을 많이 가지고 신령한 진리와 영감으로 타락하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신령한 실력을 더 가지기 때문에 이 둘이 충돌하여 갈라지게 됩니다.

타락한 교회의 세상 세력이, 하나님의 영감 진리의 세력과 싸워 이 둘이 싸울 때에 타락한 교회는 세상적 힘이 있고 진리와 영감 계통의 타락하지 아니한 편들은 영적 세력이 있기 때문에, 영적 세력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 세력이 있는 자들에게 영적 세력인 진리와 영감을 양보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영감으로 강하게 역사하고 또 그 반대로 이 타락한 교회들은 영감과 진리의 세력은 없고 이 세상적 세력으로 강하게 역사하게 됩니다.

( ② 두 세력의 싸움은 결국 예배당 싸움으로까지 나타나는 법 )

결국 영적 세력을 가진 자들은 이 외부의 육체로는 반대하는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감과 진리는 더 강하게 고수해서 이것을 세우게 됩니다. 결국 뒤에 가다가는 싸움이 일어나 가지고서 이제 예배당에도 싸움이 일어나고 이렇게 대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싸움이 일어나면, 하나 예를 든다면, 그 어떤 교회에서 두 줄기가 싸웁니다. 싸우면 때리기는 누가 때리고 맞기는 누가 맞겠는가? 누가 맞겠소, 영적 세력이 맞겠소 세상 세력이 맞겠소? 누가 맞겠소?

자, 세상 세력이 맞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그러면 영적 세력이 맞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예, 그게 맞습니다. 맞아도 진리와 영감을 조금도 양보하지 아니하고 고수합니다. 그것이 자기들의 승리이고 반대로 이쪽은 또 두드리는 것이 자기들 승리입니다. 그러면 예배당 시비가 일어날 때 예배당 차지는 누가 하겠습니까? 영적 세력이 차지해야 될 건데, 영적 세력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타락한 세력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타락한 세력들이 차지합니다.

그러면 영적 세력의 사람들이 졌습니까, 이겼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이겼습니까? 이긴다고요? 맞았는데, 예배당을 빼앗겼는데, 뭐 이겨요? 못 이겨요? 세상적으로는 못 이겼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겼고 진리적으로는 이겼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때리고 예배당 빼앗아 갔으니까 그 사람들이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이겼소 졌소? 세상적으로는 이겼고 천국적으로는 졌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승리와 성도의 승리가 따로 있습니다.

( 교훈과 정치를 분리시켜 탈선을 제도화한 장로교의 정치 체 제의 경우 )

( ① 장로교 헌법상 교훈과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며 총공회 행정 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편지 )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편지를 하나 보냈습니다. 교회는 당회가 최고 기관이라 당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면 그 부하인 제직들이 일선에서 역사하고 목사는 설교만 하고 신앙면만 다스려야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목사는 설교나 하고 혹 타락이나 하는가 그런 거나 간섭하는 것이고, 교회 행정이라 하는 것은 손대는 것이 월권이다 하는 편지를 만리 장성으로 썼습니다. 그 사람 말이 제대로는 맞습니다. 그렇게 주장하지 않아도 그리 되어집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차차 차차 그 길을 향해서 타락해 갑니다.

( ② 교훈과 정치가 따로 놀면 바른 길은 갈 수 없는 법 )

그것이 이스라엘 사사 시대에 사사 제도를 버리고 교훈과 정치를 해서 이렇게 나가기를 원하는 내나 그때 원하던 그것이지 별스러운 새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 인간들에게 원해져 가지고서 자꾸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정치요 정치가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교훈이 정치요 정치가 교훈이 되어진 그것이 하나 되어 나가야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이지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 있고 교훈은 교훈대로 따로 있는 이것 가지고는 바른 길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 역사에서 그 교회들이 타락하는 제일 시발은 어디냐? 요것이 나누어지는 때이고 그 다음에 교회를 현저히 나타나게 완전히 절단을 낸 것은 누구냐? 교훈하지 아니하고 정치만 하는 그 정치가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훈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겸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교훈을 겸해서 이 둘이 둘을 겸하여 타락하지 않도록 하려는 그런 방편으로 노력을 해서 하기는 하지만 또 그것이 타락은 타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 ③ 박윤선목사님과 끝까지 대립했던 신앙노선은 교훈과 정치의 분리 여부 )

총공회에서 '행정위원회'를 만든 것은 일반 교회에서 하는 것과 다릅니다. 일반 교계에서는 정치는 장로가 하고 교훈은 목사가 한다 하는 그것이 그만 일반 상식화 되어 가지고 어느 교파든지 다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사람들이 헌법을 제정하기를 그렇게 헌법을 제정해 놨습니다. 성경보다 헌법을 위주해 가지고 교회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그때 고신에 있을 때 고신의 교리와 신조를 책임진 박윤선목사님과 세 시간을 논쟁했습니다. 그분이 그때 교리와 신조를 제일 잘 알고 있었고 많이 알고 있었고 또 그분이 고려신학교 교장으로서 모든 목사들을 가르쳐서 내 보내고 하기 때문에 그분이 책임자입니다. 그 뒤에 고려신학교에서 박윤선목사님이 쫓겨 나오게 되어 동래에 있던 이재만목사님 교회로 가서 잠깐 머물고 계실 때, 그때 또 가 가지고 두 시간 논쟁했습니다.

( ④ 장로교의 정치와 교훈을 분리한 체제는 잘못된 것 )

박목사님께, 왜 성경대로 하지 아니하고 인간이 만든 헌법대로 합니까? 이것을 왜 개혁하지 않습니까? 이 헌법이라는 것이 인간이 시대 타락으로 이렇게 정해 놨다 할지라도 박윤선목사님이 지금 교리와 신조에 고신에는 책임자이기 때문에 왜 이것을 개혁 안 합니까? 이 헌법을 고쳐야 됩니다. 성경에 어디 정치만 하는 장로라는 장로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장로라는 장로가 어디 있으며 교훈만 하는 장로라는 장로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장로라고 기록한 것은 목사도 장로요 설교자도 장로요 정치하는 것도 장로요 다 장로입니다.

사도 시대에는 감독으로 나왔는데 감독 정치인데 감독 정치가 월권을 해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안 됐다 해서 이제 장로를 세워 가지고 행정은 장로가 하도록 해 가지고 이 교훈과 정치가 서로 상호 견제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생겨진 것이 장로교입니다. 또 장로가 나와 가지고 폐단이 많으니까 안 된다 다시 감독 정치로 들어가야 되겠다 한 것이 감리교 감독 정치 감리교입니다. 이렇게 자주 갈지(之)자 걸음을 걷습니다. 이렇게 박목사님과 신강하면서 제가 성경을 가지고 대는 데에는 결국 변명을 못 했습니다. 이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십시오 할 때 성경에 대해서는 그분이 결국은 변증을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는 말을 옳다고 긍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 그렇다는 증거는 못 댔고 나는 성경에 있지 않느냐 하는 증거를 대서 성경적으로 제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긍정이 되었고 그분은 변명을 못 했습니다. 그분은 그래도 현 교회들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그렇게 바꿀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첫째 교훈을 잘하고 다스리기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장로로 선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장로로 선택을 입은 자들 중에서 다스리는 정치를 못하는 장로보다 정치 잘하는 장로를 귀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교훈을 잘하는 그 장로는 더욱 귀하게 여겨 교훈 잘하는 장로를 제일 위에 대우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행정 잘하는 장로를 제이위로 대우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대로 보면 교훈 잘하고 정치 잘하는 장로는 이제 탁월한 장로로 이렇게 대우해야 된다 하는 성경입니다.

( '인간지식'이나 '책'이라는 말만 나오면 다 꺼꾸러는 것이 교회 내에서도 탄식거리 )

( ① 총공회에도 헌법을 만들자는 의논, 헌법은 인간 주장과 타협 인데 )

오늘 오후 총공회 회의에서 헌법에 대한 의논이 있었습니다. 이제 많이 타락하게 되니까 성경을 근거해서 교회 헌법을 정한다고 하지만 타락한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니까 성경대로 못하고 시비해서 서로 서로 이렇게 양편이 다 자기 주장만을 세워 가지고 타협을 하기 때문에, 헌법이라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 ②ꡐ책ꡑ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만 믿어 버리는 것이 탄식, 헌법 이 권위를 가지는 이유 )

어째서 그렇게 될까? 사람들은 책에 기록했으면 권위있는 줄 알지만 책 중에 거짓말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국에서 온 사람인데 그가 말하기를 그것은 책을 못 읽어서 그렇지 이런 책을 읽어보면 이것이 이렇고 이렇다 하며 자기들끼리 시비하는 것을 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너희가 그렇게 유치해 놨으니.... 라고 말했습니다.

( ③ 박사들이 객관을 잘 아는 것 같아도, 자기 주관이 가감을 하 면서 받기 때문에 오판이 많은 것 )

그들 모두가 다 박사들입니다. 모두 박사들이요 시비하는 사람들이 다 박사 학위를 다 얻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옆에 앉았다가 이렇게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 심판이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 보다 자기 속에 있는 빛이 더욱 밝다, 양심을 써보면 이런 것을 알 수 있는데, 책에 기록했다고 그것을 신임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

한 가지 일을 동시에 한 자리에서 같이 봐도 깨닫는 것은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달리 깨닫기 때문입니다. 천 명이면 천 명이 은밀히 말하면 다 다르게 깨닫게 됩니다. 왜 같은 사건을 다 다르게 깨닫느냐? 그 이유는 자기가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게 깨닫는 것입니다. 보이는 그 객관의 것은 자기 아닌 것을 자기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발표가 나기 때문에 자기라는 그 본인들, 자기라는 그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보이는 것은 하나지만 서로 합하니까 달라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그 가수(加數) 될 것은 한 개지만, 여기 피(被)가수 될 것이 두 개라면, 둘하고 하나하고 보태면 어찌 됩니까? 빨리 대답해요. 예? 셋입니다. 열하고 하나하고 보태면 어찌 됩니까? 백하고 하나하고 보태면 어찌 됩니까? 백 하나입니다.

밖에 있는 것이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쪽에 내가 가진 그 피가수가 다르니까 그 답은 달라진다 말입니다. 인간 발표가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이다 하고 그 어리석음을 한번 깨우쳐 준 일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모두 다 샘 안에 개구리라서 너희가 좁은 학위를 받았고 정부 초청하여 왔으니까 대단한 줄 알지만 아직까지 샘 안에 개구리다, 너거가 무슨 위대하고 어떻고 뭐 그 무슨 학위 받았다고 야단이지만 다 어리석다. 너거 모두 샘안에 개구리라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너거 아는 것만 알고 너거 모르는 것은 지금 모르고 있다고 탄식했습니다.

( ④ 세상 지식을 대할 때 그것을 주관과 객관의 지식으로 나누어 장단점을 알 것 )

그러기 때문에 대개는 주관식이 객관식만 못하고, 그러나 탁월한 것은 주관식에 있고, 제일 간단해서 제일 냉냉한 것들이 새순에서 발달되어 나갈 때는 주관식이지만 그 뒤에 강물이 되었을 때는 객관식이 좋다. 주관식은 바위 틈에서 나는 생수요 객관식은 그것을 큰 강물 되어서 관수 되어 있는 것이니 주관식은 맞은 것은 굉장히 탁월함이 좋고 틀린 것은 다 절단 나 버린다. 왜? 바위 틈에서 나오는 생수 그거야 귀하지만 이제 생수가 많이 나온다고 여기 저기서 많이 나오는가요? 여러분들이 어쨌든 많이 알아야 됩니다. 아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그것으로 보조를 받아야 됩니다. 그게 보조학으로서 대단히 자기가 아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학입니다.

( ⑤ 세상 지식을 대할 때 주의할 점 )

그런데 도움이 되는 학이지만 세상에 있는 학은 우리가 두 가지로 이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좋게 바르게 이용되는 것 하나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데 이 뜻을 대적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가 대적하는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용되는 것도 있습니다. 직접 이용되는 것도 있고 간접 이용되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 지식을 배울 때에 그 지식은 자기가 구원을 이루고 인격을 이루는 데에는 직접으로 이용되지 아니하고 다만 간접으로 그 영리적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그 지식을 배움으로 이와 같은 것이 모든 사람에게 나왔구나 내게도 요런 것이 들어 있구나 요것을 들어내어 뽑아 내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상들을 공부할 때나 모든 이종교들을 공부할 때나 모든 주의들을 공부할 때나 철학들을 공부할 때나 도덕들을 공부할 때에 그것을 구원 이루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니까 좋은 것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방해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되니까 그런 것이 인간 속에 있어 고것이 인간 주장이 되고 사상이 되고 인간 도덕이 되고 인간 관념이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것을 뽑아야 진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뽑는 데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용되지요? 불교에 불도가 있습니다. 불도를 자기가 공부를 합니다. 그것을 압니다. 아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불도를 알아 가지고 불도대로 행하여 기독교 구원이 되겠다고 불도대로 행해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불도를 공부해야 됩니까, 아니면 불도 그것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으니 정신에서 나왔는데 불도와 같은 것이 내 속에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가 불도를 보니까 그와 같은 것이 내게도 있어 그것을 뽑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도를 공부하는 것은 그 중들이 말하는 그런 사상과 주의와 관념과 모든 인간의 부패성 타락성 망령성 허물성 편벽성이라는 그런 것이 자기에게 있으니 자기에게 뽑을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불교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비뚤어진 것을 뽑기 위해서 철학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비뚤어진 도덕성을 뽑기 위해서 세상 도덕을 연구합니까? 뭐 이것을 사용하면 구원이 된다고 연구를 합니까? 그것을 뽑아야 된다고 연구를 합니까? 공산주의의 사상을 민주주의에서 연구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사상을 뽑기 위해서 연구합니까, 그 사상을 받아 가지고 해하기 위해서 연구합니까? 무엇입니까? 뽑기 위함입니까 쓰기 위함입니까? 쓰기 위함 아니고 뽑기 위함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에서도 민주주의에서 쓸 것이 있습니다. 그 둘 다 같은 동무이기 때문에 이렇지만 기독교에는 이 세상 모든 도덕이나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주의나 그 아무것도 기독교에 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여러분이 판별해야 됩니다. 요것을 판별하고 있는 목사가 심히 드뭅니다. 심히 드뭅니다. 이것을 판별하고 있는 신학자가 심히 드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샘안에 개구리요 그분들이 말하는 것이 좁습니다. 작습니다. 그러기에 이쪽에서 말한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듣습니다. 모르고 듣습니다.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요것을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큰 것을 지금 하나 말씀해 드렸는데 양성원에서는 종종 이것을 말했습니다.

이종교나 비슷하지 않소? 고것을 가리켜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계시록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666, 이 수는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라. 짐승은 세상을 말했지요. 세상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사람의 수라, 인간들 모아 놓은 것이라 그말입니다. 666. 그러기에 계시록을 바로 해석한다는 것은 세상 지식을 다 초월해서 그 위에 쑥 올라가 가지고 전체를 포함한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넓혀야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가 말씀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함께 계셨다는 말은 계시는 때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영원 전이라는 그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요 그리스도가 육신 되어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는 예수를 그리스도 위에 놓았습니다. 이는 예수는 인성이 들었기 때문에 인성이 우리의 중보자지 인성이 아니면 중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어쨌든지 나와서 배워서 깨달아야, 알아야 예수를 믿지 모르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것만치 그만치밖에 못 믿습니다. 아는 것 만치밖에는 못 믿어요.

해설 : 총공회의 사사시대를 기억하십니까?

백목사님 앞에 서면 모든 교역자들이 시대의 선지자 앞에 서는 모습으로 얼어붙던 때입니다. 그 속에는 말씀과 영감이 넘쳤고 그 열기는 용광로 내부와 같았습니다. 밖에서 보면 사이비 교주 집단보다 더 심했고 안에서는 세상이 모르는 천국으로 살았던 때입니다.

기쁨으로 괌; 수 있는 때였으며 어느 순간 어떤 명령이 떨어져도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한 생명과 한 가족 다 바쳐 순종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이의가 없었고 반론이 없었으며 백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는 바로 하늘의 명령이었습니다. 성경 고대사나 초대교회사에서나 있었던 일로 책에서만 보고 듣던 일들이 우리에게는 오늘 현재 진행 중인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지나고 있었습니다.

참 감격의 때였으며 이런 순간이 알려지게 되는 훗날이 된다면, 당시 그 속에 내부인으로 소속했던 이들은 내부인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역사적 인물들이 될 것이며 그 사실 자체로 복이 있었다고 할 때였습니다. 다윗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그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복에 복이 넘쳤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다윗을 목도할 수 있었고, 다윗을 목도할 수 없는 시골 변방의 사람들이라면 그 다윗을 통해 넘치는 은혜를 멀리서 오는 향기를 맡아 느끼듯이 결국은 그 은혜의 넓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를 겪은 이들은, 노아 홍수 때를 자신의 경험으로 되돌아 볼 수 있으며 모세를 따라 광야를 통과하던 이스라엘의 걸음을 자신의 체험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지상에서 재현했던 다윗의 승리 속에 함께 있었으며 사자굴 앞에서 천하를 조롱하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던 다니엘의 신앙에까지 이르렀던 홍순철 전성수 서영준목사님과 같은 몇몇의 수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참 그립습니다. 그 시기에 '부산'과 '서부교회', 그리고 '백목사님'이라는 단어는 서울이나 전남 여수 어느 마을에서나 또는 거창 남해지방 골짝에 있는 어린 교인에게까지 온몸을 전율시키는 '긴급소식'이었습니다. 어느 반사 신앙에도 미치지 못하는 분들이 교역자로서 당시 전국 교회를 맡고 있었으나 그들은 부산, 서부교회, 백목사님께 배운 것을 전하는 이들이며 또 그 소식을 알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맡은 교회 교인들에게 천사와 같았고 그 더듬는 말 한마디 끝에 수많은 장래 공회의 인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성경사에나 교회사에나 이런 때는 수백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듯 했던 때가 그 후시대로 바로 이어진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까지 4대가 이어진 것이 특이한 경우였고, 그 외에는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 엘리야를 이은 엘리사, 다윗을 이은 솔로몬 초기시대 등입니다.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이런 전적 은혜의 시대들은 그 간격이 약 400여년씩이나 지나면서 한 번씩 나타나는 정도입니다.

광야를 통과하던 때를 잊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촉구했습니다. 총공회 소속의 사람들이라면 백목사님을 통해 역사했던 은혜의 시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를 그렇게 놀랍도록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정작 잊어버리라는 것에 대하여는 탁월하게 기억해 내고 또 재복구하는 것을 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끝까지 홍해바다 너머 애굽을 돌아보고 애굽 사람 고기 끓이는 가마솥에서 한 점 얻어먹던 때를 그리워하다가 다 망해 버렸습니다. 총공회로 출발하기 전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였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며 그때로 돌아가기를 원하던 공회와 교회들, 그리고 그 일을 앞장섰던 교역자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회의 뒷날보다 공회의 중간이, 그리고 공회의 초기가 더 은혜롭다는 논리를 가지고 공회 가장 중심에서 공회 범위의 제일 외부까지 나가던 때입니다. 거기까지 갔던 이들이 담 넘어 한 걸음에 바깥을 향해 줄달음치는 것은 그들의 첫 논리에서도 이미 보고 알았지만 그 논리 때문에 무고하게 따라간 수많은 어린 사람들이 아깝기 때문에 다시 한번 돌아보는 논리입니다.

이제 그분들을 향해 다시 돌아오라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각 교회들을 방문하고 또 각 가정들로 연락을 해야만 만날 수 있고 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먼저 연락이 오지 않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까운 수많은 분들을 그냥 가도록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제는 홈페이지를 통해 저절로 연락이 오고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혹 회복의 때를 주시는가 착각할 정도이지만 이것이 착각이 아니고 실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홈(www.pkist.net)을 시작하던 1999년, 통신으로 시작하던 1998년, 개인 메일을 통해 사지를 찢어 놓겠다고 협박하던 이들이 있었고 또 온갖 욕설로 이곳을 폐쇄하려 도배를 하였으나 사람들의 왕래가 빨라지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신 다니엘을 읽어보지도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막지 못하는 시대라고 느끼지는 다른 홈들을 만들어 적절히 희석시키며 어린양보다 더한 새끼양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지만, 본질이 문제고 본색이 문제이지 덮어씌운 페인트가 해결일 수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이 복음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이 신앙노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권, 교권에 대한 욕심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이 길을 보면서도 이 길을 걷지는 못합니다.
이 길이 좋은 길이라며 남들에게 홈을 통해 광고까지 하면서도
길목마다 안내 표시판은 엉뚱한 곳으로 길을 안내하게 됩니다.

깊이 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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