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앙노선으로 본 총공회

주제별 정리      

                   2.신앙노선으로 본 총공회

서기 0 23
(신앙강론 971201 1997.12.12.)
한국교회사에서 살펴본
총공회 노선 분열

백영희목회연구소 연구부 이 영 인


Ⅰ. 한국교회 분열사의 대강

한국교회의 특징은 1. 교단으로는 '장로교' 2. 신앙적으로는 '보수' 3. 열심으로는 '분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지난 과거 많은 설교에서 장로교의 분열역사를 수도 없이 언급하셨고, 또 자연계시인 세상정치를 우리 교회의 신앙과 비교하며 신앙에 많은 징조들로 인용하신 것을 설교록 중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없는 10년 세월을 눈 앞에 두고 '총공회 노선'의 현재와 앞날에 많은 근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사와 세상이라는 자연계시를 잠깐 살펴본다면 짙은 안개가 많이 걷혀지고 우리 총공회의 앞길이 보이리라고 생각합니다.


1. 해방후 장로교의 분열

신사참배 6년 환란 속을 헤매던 한국교회가 8.15 해방을 맞이할 때 출옥성도들은 큰 오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신 세상까지도 '친일'을 지탄 하였으니 신앙의 근본을 팔아먹은 신사참배 찬성측은 교계의 죄인이 되고 신사참배 반대측은 교회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을 줄 알았습니다. 극소수 진리노선을 걷는 종들이 한국교회의 대세를 잡을 줄로 착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앙 떠난 교회는 육체의 숫자와 육체의 힘이 지배하는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표대결로 결정을 지웠고 '다수'라는 표의 힘으로 장로교 총회에서는 신사참배를 찬성했던 측이 오히려 거부했던 사람들로 중심이 되었던 총회 내의 '고신측'을 1950년에 제명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장로교가 둘로 나뉘어지는 첫 싸움이 되었고 동시에 고신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장로교 내부에서 소수였던 고신을 갈라낸 총회는 신앙노선 문제를 두고 이번에는 '기장측'을 1954년에 다시 분리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세계기독교통합운동 참가 문제를 두고 '통합측'과 1959년에 다시 분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신, 기장, 통합을 차례로 갈라낸 총회는 일차 분리 되었던 고신과는 총회 내에서 신학과 신앙이 동일했던 그룹들이었으나 신사참배라는 사건에 대한 처리문제로 나뉘었던 것이라는 인식에서 1960년 다시 합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을 채 못채워 1962년 다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2. 노선으로 살펴본 한국장로교

현재 장로교는 그 교단의 숫자가 1백개를 헤아리고 있으며 비공개, 미확인 교단까지를 포함 한다면 2백여개가 넘을 정도로 분열이 심하여 세계기독교사에 유례가 없는 정도입니다. 모든 교단들은 다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과 진리'를 세우려다가 나뉘었다고 하지만 교권, 감정의 더러운 利를 위해서 나뉜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노선 문제'가 본질적인 원인이 되어 서로가 분열치 않을 수 없고 함께 갈 수 없게 되어 결국 분열되어 버린 예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쌍의 부부가 이혼을 하는 사건에도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고 억울한 과거가 너무도 많아서 책으로 적는다면 한권이 넘게 됩니다. 하물며 수많은 교회와 교역자, 그리고 소속 교인들이 교단분열을 통과하게 될 때는 어느 한 가정의 부부 이혼에 비할 정도이겠는가? 그러나 사연 많은 이야기를 다 들어 줄 필요 없이 신앙의 본질적인 면으로 분석을 한다면 그 신앙의 성향이 진리 보수적, 인간 수정적, 그리고 진리와 인간적인 입장을 적절히 배합하는 중립적 신앙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1) 보수측

모든 신앙을 성경중심으로, 진리를 앞세워 나가는 것이 옳다는 교단들이 보수측이며, 이들은 신사참배를 했던 안했던 신사참배는 잘못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알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꼭 회개를 해야 한다는 입장까지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실제 어느 정도 회개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각자의 신앙 정도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고, 회개의 정도와 방법에 따라서 재건, 고신, 합동으로 3분 되었습니다.


2) 수정측

성경과 신앙 문제를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지킬 도덕이나 윤리'정도로 보는 신앙입니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가 자기 양심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한 '실수'정도로 아는 이들입니다. 그것이 무슨 천국과 지옥을 좌우할 문제가 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영생의 문제로 보고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인간적으로 볼 때 더 큰 죄가 된다는 도덕적 기독교, 실은 기독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사회개량주의에 앞장서는 신앙들이며 바로 기독교장로교입니다.


3) 중립측

보수측의 '진리노선'과 수정측의 '도덕노선'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는 노선'입니다. 수정측과 같이 성경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며, 보수측과 같이 도덕과 사회개량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보수측에 가깝고, 도덕과 사회참여에 대하여는 수정측에 가까운 걸음을 걷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구호는 기독교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모든 교회는 하나되는 것이 최선이며 교리문제나 행정문제 무엇이든지 타협과 양보로써 절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분리나 분파라는 것이 제일 큰 죄가 되기 때문에 '통합교단'과 같이 중립 노선을 걷는 교단들은 제일 무난하고 분열없는 교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3. 신앙노선과 처신의 차이

신앙본질의 문제인 노선별로는 3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한국교단이 분리되는 과도기에서 실제로 결정적인 요인은 이런 신앙본질 문제가 아니라 이권이나 감정 등 지극히 지엽적인 요인들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 처리 문제라는 '진리'문제를 두고 싸워야 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실은 자기들의 교회 담임권과 교단 운영권 등의 이권문제를 배경에 깔고 싸우고 나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사참배 반대측에 설 보수적 신앙의 인물이 오히려 찬성측에 서서 활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보수측인 사람들이 상황판단을 잘못하거나 아니면 상황은 알지만 이권관계 등으로 인하여 수정측이나 중립측에 서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1945년에서 1960년까지 약 1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은 신앙의 본질에 따라 보수와 수정, 그리고 중립 등으로 그 교단은 정체를 들어내며 뚜렷히 표시가 나도록 되었습니다. 1950년 고신측을 갈라낼 때는 총회측이 수정측 입장이었고 고신이 보수측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총회 진영 안에는 장차 기장으로 정체가 드러날 수정측과 통합이라는 중립 노선을 표방할 세력들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고신측에 의하여 피해를 입고 있다고 느끼는 측은 중립과 수정측 뿐이 아니라 보수측에도 있었고 따라서 고신측의 공격에 대하여 방어를 필요로 하는 공동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고신에 반대되는 측은 전부 '총회'라는 한 간판 속에서 일단 고신측 인사들을 제쳐 내버리는 데까지는 힘을 합했습니다.

그리고 고신을 배제하는데 성공하자 곧 바로 총회측 안에서는 3가지 성질의 신앙에 따라서 자연 분화가 이루어졌으니 보수측인 합동, 중립인 통합, 수정인 기장의 분립이었다. 그러므로 원래 보수측이었던 합동교단은 초기 고신과 분리에 고신의 반대측에 섰던 것은 고신과 신앙이 달라서가 아니라 '강단권'이라는 교권 투쟁의 입장 때문에 일시 중립과 수정측에 연합 되었던 것이었고 본질은 같은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후 수정측과 중립측을 분리해 낸 뒤 보수측 신앙만 남게 되자 고신과의 재결합이 추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원래의 신앙 본질이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총회 내에서 고신제거라는 사건은 이미 1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순간적 감정이 사그러 들었고 신앙의 본질은 원래부터 같았으므로 자연히 두 교단은 통합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통합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노선 차이가 아니라 두 교단이 한 교단으로 합하면서 총회장 등 많은 권세직이 절반으로 줄어 들면서 발생되는 교권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다시 나뉘면서도 그들은 각각 진리 투쟁의 필연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객관에 있는 우리는 '동일 신앙에 밥그릇 싸움'이라고 이름을 붙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