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세상에서의 나와 부활후의 나는 같은 것인지…
서기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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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20. 질문 : 세상에서의 나와 부활후의 나는 같은 것인지?
1033(쉬)
요즘 질문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고 목사님이 많이 바쁘실 거라는 생각에 저가 질문하는 것이 목사님께 짐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염치불구하고 한 가지 꼭 여쭙고 싶어 질문드립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은 천국에서도 사용되어 지는지요? 예수님 재림시 우리의 영은 물론이고 심신도 모두 부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서 익힌 지식도 천국에 가지고 갈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의사였던 사람은 천국에서 의사로서, 목사였던 사람은 목사로서 살아가는가요?
세상에서 직업이 의사였던 사람은 의학지식이 자기를 주관하고 있을 것이고 목회 하신 분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보다 성경지식이 자기를 주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익힌 자기의 지식과 경험 성격 이런 것들은 다 세상 것이기 때문에 모두 썩어 없어질 것으로 본다면 세상에서의 나와 천국에서의 나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썩어질 것과 영원한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상학문은 썩어질 것들이고 성경지식은 영원한 것인가요?
답변 : 부활 전이나 후나 그 사람의 겉모양은 같을 것이나, .그 내부는 완전히 달라질 것
1. 지식의 종류는 지식의 주인을 따라 '인간지식'과 '하나님 지식' 2가지로 나눕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에게 인간지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만 알았으니 타락하기 전에 인간이 알던 지식은 전부가 하나님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도록 악령이 알려 준 다음부터 인간에게는 인간 자기 지식이 생겨졌습니다. 악령이 사주를 했고 겉으로는 인간 스스로 가지게 된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는 것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세상 마지막에 전부 지옥에 쓸어 넣고 영원히 불사르게 됩니다. 오늘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서 아는 지식은 전부가 하나님지식입니다. 의사의 의료지식 법률가의 법률지식 물리학자의 물리지식은 이 세상이 끝나거나 그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순간으로 완전히 필요 없는 지식이 됩니다. 그 지식에 해당되는 세상 자체가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2. 이러므로 오늘 살아생전 우리의 모습과 하늘나라의 우리 모습은 대단히 다를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심신 그 자체는 천국을 가게 됩니다. 누구든지 이 점에 대하여는 꼭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마다 그 속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실력은 천차만별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의사 변호사 교수 등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만일 믿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꼭 같이 천국으로 가기는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국에서 외과 수술한 환자를 찾으러 다닐 일은 없을 것이고, 대한민국 법률을 근거로 소송 대리할 일도 없을 것이고, 없어진 옛날 세상 일을 강의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에서 천국에 들어올 필요가 없는 지식과 기술은 하나님께서 전부 솎아내어 지옥에 던져버리고, 천국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만 가지고 들어오게 하십니다.
국어와 영어를 100점 맞는 학생, 국어와 독일어를 100점 맞는 학생, 국어와 일어를 100점 맞는 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들이 다 같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면 영어 100점 맞는 학생은 불편이 없을 것이나 나머지 두 학생은 이민 가는 즉시 갑자기 벙어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독일로 이민을 갔다면 독어를 100점 맞는 학생 외에는 갑자기 벙어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세상의 우리 형편과 영원한 나라의 우리 형편이 얼마나 바뀔런지는 이루 측량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마24:37의 의인들이나 44절의 죄인들이 다 같이 깜짝 깜짝 놀라고 기절할 만한 결과를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3. 그렇습니다. 부활한 나의 모습과 오늘 세상 나의 모습은 너무 다를 것입니다.
부활한 사람의 모습 자체는 오늘 세상에 있을 때와 같습니다. 겉모습은 그대로 가지고 부활을 하겠지만 그 겉모습을 가진 사람의 내부 모습은 오늘과 너무 다를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그렇게 날래고 활동적이고 말 잘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예를 들면 천국에서는 벙어리에 앉은뱅이가 되어 다른 사람이 날라다 주는 수고 때문에 연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벙어리였고 앉은뱅이였지만 부활하는 즉시 그 영원한 세계를 독무대로 삼고 활동하며 영원히 영광 가운데 드러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날의 달라질 세상, 그날의 뒤집어질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것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을 정말로 얼마만큼 실감 있게 오늘 느끼느냐는 것에 따라 오늘의 우리 살아가는 자세가 바뀔 것입니다.
재질문 : 믿는 사람의 심신의 의의 기능과 죄의 기능의 분리 문제 1038(쉬)
'부활한 사람의 모습 자체는 오늘 세상에 있을 때와 같습니다. 겉모습은 그대로 가지고 부활을 하겠지만 그 겉모습을 가진 사람의 내부 모습은 오늘과 너무 다를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그렇게 날래고 활동적이고 말 잘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예를 들면 천국에서는 벙어리에 앉은뱅이가 되어 다른 사람이 날라다 주는 수고 때문에 연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벙어리였고 앉은뱅이였지만 부활하는 즉시 그 영원한 세계를 독무대로 삼고 활동하며 영원히 영광 가운데 드러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상이 목사님께서 답변하신 내용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탐독하면서 항상 궁금했던 것이 '기능'의 문제였는데 목사님의 답변을 통해 조금은 깨닫게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답변중 우리 믿는 신자가 이 땅에 숨쉬고 살면서 행하였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고 천국문을 통과하면서 천국에서 필요한 심신의 기능과 필요 없는 심신의 기능이 나뉘어지며 필요한 기능은 신자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고, 필요 없는 기능은 지옥으로 던져저 멸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이 땅에서 천국에서 필요한 심신의 기능,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쓴 심신의 기능은 천국에서 마음껏 영광을 받을 것이고,세상 지식과 세상풍파와 세상유혹에 쓰임 받은 심신의 기능은 지옥으로 멸해질 것이니 어떻게 하든가 죽도록 충성하여 하늘나라에서 영광 받을 것이요 이 땅에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들에 충성하여 천국 문을 통과할 때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 없어 부끄럽게 살아야 하는 것을 피해야 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오늘 세상에서 그렇게 날래고 활동적이고 말 잘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예를 들면 천국에서는 벙어리에 앉은뱅이가 되어 다른 사람이 날라다 주는 수고 때문에 연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벙어리였고 앉은뱅이였지만 부활하는 즉시 그 영원한 세계를 독무대로 삼고 활동하며 영원히 영광 가운데 드러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믿는 신자 또한 계속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유발시키고 실행하게 하는 모든 과정이 어느 한 지체만을 통해, 그리고 어느 특정한 기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연결되어 있고 모든 기능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그 죄가 만들어 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천국에 있는 사람들 중에 심신의 모든 온전한 기능을 가진 사람들은 몇 명이나 있을 것이며 천국에 가면 모두들 식물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답변 : 정확한 결론을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1. 눅18:8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탄식이 있습니다.
'인자가 올 때'란 말세를 말합니다. 말세는 넓게 말하면 신약시대 전부를 말하고 좁게 말하면 재림 직전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과연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금 냉정하게 계산해 본다면 모두들 완전히 세상에 파묻혀 산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교회가 교회적으로, 교단적으로 이미 주일을 없애버렸습니다. 성경 해석이 잘못되어 교리를 고쳐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 사는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형편상 그렇게 해 버린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총체적으로, 현재 이 시대에 과연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문제가 우리의 큰 고민이고 숙제입니다.
이곳에서 전력하는 것도 내놓을 만한 믿음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믿음을 만들어 보기 위한 몸부림일 뿐입니다.
2.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 때, 물로 구원받은 이들이 겨우 8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그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숫자적인 일치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히 적을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 현실에서 우리의 한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면이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X선 촬영만 해도 속에 폐병 든 부분이 훤히 보이는데, 만일 CT촬영이나 MRI와 같은 최첨단 의료기기로 단층촬영을 하게 되면 우리 속은 엉망진창일 것입니다. 의로 살았다는 것도 뒤를 뒤져보면 명예였을 것이고, 목회도 벤쳐기업하듯 했을 것이고, 성공한 목회치고 교만죄가 깔리지 않은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 하나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기 주관과 자기 중심으로 가득한 악의 기도가 많을 것입니다.
그 나라에 다 벗고 나타날까 탄식한 사도 바울의 고후5:3 근심으로 평생 떨면서 살아야 할 우리들입니다.
3. 질문하신 내용처럼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믿고자 하는 방향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조심조심 말씀으로 모든 면을 따져가며 살얼음 걷듯 믿어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현실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려 통과하는 그런 신앙차원이 가능하겠느냐고 되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다리 하나 부러지면 그 고통 때문에 당장에 전심전력하여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적절하게 알아서 인도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