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의 사생활과 공생활 구별의 의미는(눅2:23) 320
서기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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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1. 질문 : 예수님의 사생활과 공생활 구별의 의미는 (눅2:23) 320
인성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생애를 33년 4개월로 말하고, 다시 사생활 30년 공생활 3년 4개월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궁금합니다.
1. 33년 4개월이란 기간은 성경의 어디를 근거한 것인지?
2. 30년 사생활과 3년 4개월 공생활의 구분은 성경 어디를 근거한 것인지?
3. 사생활과 공생활 구분의 의미는 무엇인지?
4. 사생활 공생활의 구분과 대속 역사(우리 구원)의 관련은 무엇인지?
5. 일반 신학에서도 이렇게 구분하고 있는지?
답변 : 눅2:23 ‘예수께서 가르침을 시작할 때에 30세쯤 되시니라’는 성구가 있습니다.
(*1, 2번 질문을 하나로 묶고, 3, 4, 5번 질문을 하나로 묶어 답변합니다.)
1. 우선 예수님의 사생활과 공생활의 햇수 계산
① 사생활 30년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30세쯤 되시니라' 눅3:23,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13:55. 이 두 성구를 볼 때 30년간은 요셉과 마리아를 모시고 가정생활을 했다고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사생활이라고 합니다.
② 공생활 3년
복음전파를 시작하던 바로 그때부터 십자가에서 죽던 때까지 예수님은 4번 유월절을 보내게 됩니다. 요18:39에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던 때가 유월절이었고, 요2:13에서 첫 번째 표적을 행했던 가나 혼인잔치 후가 유월절이었습니다. 이렇게 공생활 시작과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유월절이었는데 이 두 유월절 사이에 38년된 병자를 낫게 했던 요5:1과, 보리떡 다섯으로 먹였던 요6:4이 유월절 때였습니다. 따라서 3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신 것은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육체의 가족관계를 단절하고 복음전파만 하셨기 때문에 공생활이라고 합니다.
③ 예수님의 생애는 33년까지는 확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는 교회의 역사가들이 이스라엘과 로마 등 모든 역사들을 종합하여 33년 4개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몇 년 몇 월 몇 일 까지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이 일에 대하여는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백목사님도 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목욕탕 밖으로 옷도 입지 않고 도망 나왔다는 것도 성경에는 없으나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록도 가끔 한번씩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생애가 33년 4개월이라는 것은 백목사님도 인용하는 기독교 상식정도라고 생각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요약한다면, 성경에서 확정할 수 있는 것은 '30년쯤'이라는 사생활과 '가나혼인 후 유월절'을 포함하여 4회를 지났으니 만3년 이상이라는 연대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만으로 틀림없이 확정할 수 있는 것은 '33년 정도'라 하겠습니다.
2. 사생활과 공생활로 나누는 의미는?
① 성경에 분명하게 구별되도록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공/사 생활로 나눈 것입니다.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 눅3:23, '30세쯤 되시니라' 라고 성경이 똑똑하게 예수님의 복음전파를 위해서만 사셨던 생애를 구별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공생활과 사생활 둘로 나누게 된 것입니다.
② 사생활이 30년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세상이라는 현실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출생에서 사망 때까지 전 생애가 실패한 우리를 대신하여 사신 대속의 생애입니다. 사생활이라고 덜 중요하거나 빠져도 될 생애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정과 세상생활에서 지은 죄를 대신 걸머지고 또 우리가 가정과 세상생활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야 할 모든 면을 대신 살아 주셔서 오늘 우리에게 가정과 세상이라는 현실에서 만들 천국을 마련해 주신 것이 사생활입니다. 사생활 30년은 흔히 공생활 3년을 준비한 것이고, 공생활 3년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신 생애라고 하지만, 사생활은 사생활대로 또한 우리를 대속하는 별개의 대속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정생활이나 일반 세상생활을 피할 수 없어서 살아야 하는 정도로 쉽게 생각하기 쉽고, 반대로 목회자로 나서거나 기도원으로 들어가는 등의 신앙생활만이 귀한 성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생활과 공생활은 우리 신앙생활의 범위나 종류를 나누어본 것이지 실은 전부가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구원역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10배에 해당하는 세월을 사생활에 투자하신 뜻을 잘 새겼으면 합니다.
사생활과 공생활의 구분은 일반 신학에서 그렇게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생활의 의미에 대하여는 일반 신학이 백목사님과 같이 깊이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