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절대무오성에 대해 4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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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절대무오성에 대해 4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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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질문 : 절대무오성에 대해 4496

조직신학을 공부하다가 질문합니다.

역대하 4:2에 나오는 녹여서 부은 바다에 대한 묘사는 그것의 직경이 10규빗이고 주변의 둘레가 30규빗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원의 둘레는 직경의 파이(3.14159)배이다. 성경본문이 말하고 있듯이, 만약 녹여서 부은 바다가 원모양이라면, 여기에는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으며 설명되어야 한다.

성경의 절대무오성에 대해 다른 보수 신학 책을 찾아보다 밀라드J.에릭슨의 복음주의 조직신학책을 보다가 나온 부분입니다.

제가 보기에 직경이 10규빗이면 둘레가 정확히 직경 10규빗의 3.14159배가 되어야 하는데 왜 직경이 10규빗이고 둘레가 30규빗이냐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렇게 수치부분이 정확히 과학적으로 따졌을때 잘 맞지 않을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런 방식으로 따지면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지, 아무리 저렇게 수치의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제가 지금까지 배워온 바로는 성경은 신앙생활, 규범, 역사, 과학 절대 무오라 배워왔는데,

그리고 목사님 학교수업이 너무 마음에 안 듭니다. 저는 17세기 정통보수로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자유주의성도 많은 것 같습니다. 수업을 들으면 시험 들 때도 많고 어떻게 해야할지 목사님의 지도 부탁드립니다.

여기 홈페이지에 목사님이 3만여명 앞에서 백목사님께 예수그리스도께 목숨 건 사람이라며 칭찬받았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도 목숨 걸고 주님 믿고 싶습니다..


답변 : 원의 정의가 없던 시절인 줄 알면서 미친척 내뱉는 못된 표현,

그 책의 저자가 원의 둘레를 '3.14159'이라고 표현했다면 거짓말 을 한 것입니다.

원주율은 '3.14159265358979............................. '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최소한 거짓말은 되지 않습니다.

질문하신 그 책의 저자가 역대하를 기록하던 시절은
원의 정의가 없었던 때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저자가 원주율의 표현으로 성경이 '원'이라고 표현한 것을 틀렸다고 한다면 성경 표현으로 코메디를 한바탕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코메디에 10번 놀아나고 또 11번째 놀아난 분들도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소재로 그런 짓을 하면 나쁜 ㄴ입니다. ㄱ같은 놈이라고 한다면 아마 개들이 그 깐 놈을 우리와 비교했냐고 이 홈을 물어뜯으러 올 듯 합니다.

그런 ㄱ같은 주장을 읽고 헷갈린 분이 만일 이곳 홈에서 성경 관련 문답 자료를 오랫동안 참고하셨던 신학생이셨다고 한다면 이미 늘 말씀드린 대로 이곳 답변자가 지금 소용없는 설명을 드리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학교수업이 너무 마음에 안 듭니다. 저는 17세기 정통보수로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자유주의성도 많은 것 같습니다. 수업을 들으면 시험 들 때도 많고 어떻게 해야할지 목사님의 지도 부탁드립니다.)

질문자께서 적으신 위 글은 이미 이 곳 홈에서 질문자가 수없이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답변자는 이곳을 지켜보는 분들 때문에 한번만 말하고 말았어야 할 내용을 여러 수십 번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개인 메일이나 개인적으로 찾아오셔서 위 글로 질문했다면 답변자를 희롱하시냐고 섭섭하다는 표현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홈에 순수하게 들르는 분들 때문에 이 홈 공개 문답방에서는 수십번을 같은 말씀으로 반복하는 위글에 대하여 또 답변자는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목회를 염두에 두고 신학을 하시는 분께서 한정식 식당에 가셔서 마늘냄새 난다고 투덜거린다면 정말 보통일이 아닙니다.

(여기 홈페이지에 목사님이 3만여명 앞에서 백목사님께 예수그리스도께 목숨 건 사람이라며 칭찬받았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도 목숨 걸고 주님 믿고 싶습니다.)

백목사님이 설교 중에 칭찬한 사람이 있다면 곧 타락하거나 탈선의 마지막 길에 접어드는 사람일 확률이 대략 50% 넘습니다. 나머지 3-40% 정도는 어려서 사탕 한 개를 주며 달래고 있는 대상입니다. 혹 1-20%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조금 강조해서 예를 드는 경우입니다. 설교 중에 책망하는 사람의 50% 이상은 목사님께서 굉장히 속으로 신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공석에서 공연히 야단쳐서 그 부근에 있는 실제 야단맞을 사람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사람에게 형제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라며 부탁하는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응급하게 불을 끄듯 야단하는 경우도 2-30% 됩니다.

서부교회에는 그 기준을 조금 완화시켜 부드럽게 표현한다면 주를 위해 죽자 살자 뛰던 청년이 수백명이 넘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수천은 몰라도 1-2000명은 족히 넘었습니다. 집단 순교가 가능했던 교회입니다. 설교록의 표현은 '목회적' 표현이므로 그 안에는 수없는 많은 배려와 고려가 들어 있다는 점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