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양교회-2
비고 | 약사 및 노선 (02년, 04년, 11년 3차 보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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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채우라》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던 것 같다. 주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실 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어디로 가오리까! 대답했으니 주님께서 얼마나 위로를 받으셨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교회에는 교인이 계속 오고 또 계속 간다. 이것이 교회의 속성은 아닐텐데도, 교회에는 신진대사가 필요없을텐데도 그러하다. 가는 자들은 다른 도시로, 다른 교회로, 심지어는 세상으로 가기도 한다. 모두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찾아가므로 생기는 이별이기에 행복한 이별이라고 좋은 이름으로 불러본다. 그러나 갈 때마다 보내는 버림받은 자는 시도, 노래도, 아리랑도 서글프게 부르며 스스로 위로하곤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나를 버리고 가실 때에는 십리도 못가서 빵구가 난다』 『아 가을인가‥‥‥ 너도 가고 ‥ 나도 가야지』 『오랫동안 사귀이던 정든 내‥‥ 이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등 나도 모르게 18번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황장엽씨가 망명해 올 때 김정일의 노래는 『갈테면 가라지』였다. 내가 따라 부르기엔 너무 짧고 쉬웠다. 그러나 어쩌면 너무 매정한 것 같기도 하고 대장부답기도 한 것 같았다. 아무튼 따라 부르기 쉬운 것은 틀림 없다. 이와 같은 서글픈 노래는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해야 하는 주안에 있는 성도의 노래는 아니다. 목사의 노래는 더욱 아니다. 비정상적인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의 삶이며 노래인 것이 틀림 없다. 질적 양적으로 부흥 성장해야할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교회가 된 외부적 원인은 많은 교인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가는데 있는 것 같다. 한 영혼이 우주보다 귀한데 왜 이토록 떠나야 하며 왜 보내야 하는가? 장년 뿐아니라 유년부, 중고등부도 열심히 다니던 학생이 언제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졸업 후엔 더욱 그러하여 거의 교인 자녀들만 남는다. 하나님께서 왜 붙여주지 않으시는지 가슴 아픈 고민이다. 내가 포양교회에 부임할 때의 교인 가정 수는 약 140 가정이며 출석하는 고졸 이상의 장년 교인이 약 210명 정도였다. 혼자 교회 나오는 가정이 너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통계는 부임하기 전 92년도에 발행한 교인전화부에서 실제 출석치 않는 가정과 교인을 제한 제적 수이다. 여기서 매주일 출석하는 교인은 70-80%이므로 장년 140-160명 정도이고 왼편 좌석의 중고등부 학생이 평균 30여명, 준2층의 유년부 어린이가 평균 40명 함께 예배를 드리므로 합계 약 210-230명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이런 보배로운 장년 교인 가정의 꼭 반수가 떠나간 것이다. 떠난 가정의 약 35%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고 또 약 35%는 세상으로 돌아갔고 약 20%는 타교회로 갔고 약 10%는 소천, 결혼 등 기타에 속한다. 그리고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등록한 가정은 약 400가정이고 등록 교인 수는 약 440명 정도였다. 그러나 등록하여 지금 남아 있는 교인은 겨우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해가 갈수록 등록자가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성장은 못해도 본전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등록자에 비해 떠난 자가 훨씬 많아 본전마저 채우기 어려워진다. 이런 현실의 교회의 비정상적인 목회자의 독백과 노래가 위와 같이 서글픈 것이었다. 포양교회의 나이는 이제 25세에 들어간다. 1977년 11월 설립하여 초기에 급성장을 계속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할만한 통계 자료가 없지만 서울로 혹은 광양으로의 대이동의 두 고개를 넘어면서도 성장은 멈추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87년 3월 통합측 노회의 이단 사이비 파동으로 된서리를 맞고 말았으며 교단 분열과 교회내의 갈등으로 주춤거리기도 했었다. 포양교회와 소속 교단은 어느 교단의 총회에서나 수많은 연합회에서나 어느 공인된 이단연구소에서도 이단 사이비 정죄를 받은 바 없는 장로교단이며 장로교회이다. 기독교문사에서 발행한 「기독교대사전(p284)」에서는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Presbyterian Church Korean General Synod 1966년 창립된 장로교회. 1966년 부산서부교회에서 백영희 목사를 중심으로 하나님, 성경 중심의 신앙 노선을 표방하고 교단을 설립했다』라고 정통장로교회임을 온 천하에 밝히고 있다. 70년대 합동측 경북노회의 파동을 일으킨 목사는 공증인 앞에서 사과 각서를 남기고 자신의 문제 저서인 「이단의 정체」를 전국 서점에서 회수함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오래전 여수 묘도의 소속 교단 묘창교회의 정체에 대한 이웃 통합측 교회의 질문에 대하여 통합측 장신대학보 제118호는 <사이비 이단 백영희파 교회>라고 경솔한 보도했다가 다음 호에 통합 측 신학자들의 유권 해석으로 다음과 같이 정정 보도하였다.『 '바로잡습니다' 지난 118호 3면 현장 탐방 기사 중 '국내 사이비 이단 백영희파 교회'는 사실과 다르므로 정정합니다. 백영희(부산 서부교회 시무) 목사 소속 교회는 극보수이며 배타적인 성격을 띄고는 있으나 이단은 아니며, 118호 3면 기사의 내용은 교단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따라서 본사는 위의 기사 내용을 '백영희목사 소속 교회'로 바로 잡습니다.』라고 밝혔다. 87년 3월 통합측 제34회 포항노회(당시 동해노회)에서 이단 사이비로 결의하여 촬요에 보도했다가 그 해 9월 제35회 노회(노회장: 김만석, 서기: 이종태)에서『정통적인 장로교회』로 정정 결의하고 촬요에 보도하는 경솔하기 짝이 없는 실수를 하였다. 이렇게 정통장로교회로 결의한 유권해석은 지금도 그 효력은 계속되건만 교계에서의 이단, 사이비, 이상한 교회라는 소문은 그치지 않고 있으며 포항기독교연합회에서는 대교단 노회의 유권 해석도 무시한 채 조사대상이란 묘한 이름을 붙여 연합회 가입을 오늘까지 허락지 않고 있으니 천부당 만부당한 모순,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가운데 우리는 된서리를 맞아 비정상의 서글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교회 성장을 기뻐하지 않는 사탄의 앞잡이들의 장난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위의 사과 각서 복사본과 포항노회 34-5회 촬요는 내가 보관하고 있으나 장신대학보는 분실하여 그 정확한 보도일자를 몰랐으나 한 동역자의 정보 제공으로 1987년 3월 23일(월)에 발행한『神學春秋(장신대학보) 제 119호 1면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이단교회, 이단목사, 이단교인은 되지 않아야 한다. 이단은 용(마귀)과 짐승(적그리스도)와 함께 지옥불에 들어갈 거짓선지자들이다. 만일 나와 본교회에 이단의 요소가 있다면 나는 철저히 고쳐갈 것이다. 이단은 멸망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부의 선택과 성자의 대속과 성령의 부르심으로 악마와 죄와 사망과 지옥불에서 해방 받아 중생 성화 영화의 구원 얻어 영생하는 천국에 갈 것을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가르치고 있다. 어느 특정 사람들이나 단체가 이단이라 판단한다고 이단이 된다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진짜 이단의 두목으로 지옥 밑창에나 가야할 것이다. 오로지 심판장 주님과 성경의 판단만이 권위가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내 교회』로 인정하시고 사랑하시는 몸이요 성전 된 교회를, 이단이 아닌 자를 이단이라 하면 오히려 그들이 이단인 것이 원칙이고 순리이고 보응이고 상식이다. 하나님 두려움부터 배워야 한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좋은 나무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반드시 나쁜 열매를 맺는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우상 교만 속화 분쟁 분열 등으로 말라죽고 만다면 나쁜 나무일 것이고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여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간다면 좋은 나무 곧 참된 교리와 신앙, 참된 교단과 교회가 되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람과 행위의 열매를 맺어 좋은 소문과 향기와 빛이 천지에 진동하고 아름답게 빛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으로 믿는다. 이 책임과 사명이 남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또 어느 교회나 목회자나 성도나 이구동성으로 한국 교회 성장의 시대가 지나고 서구처럼 쇠퇴의 길로 나아가는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부흥되는 교회 없이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부흥된다는 교회는 다른 교회의 교인들의 이동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양떼를 도적 맞지 않도록 울타리를 잘 단속해야 한다고도 한다. 가장 효과적인 울타리 단속이 자기 교인들이 이동해 가므로 성장하는 이웃교회를 이단으로 소문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기막힌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부흥 성장치 않는 원인을 위의 여러 문제들에 결코 돌리고 싶지 않다. 어떤 변명 핑계도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고 교회 앞에 합당치 않는 줄 잘 알고 있다. 교회의 부흥 성장의 열쇠는 100% 목회자에 달려 있다고 우리의 지도자들과 모든 교회 성장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인 나의 무지 무능과 불의 불충과 빈약한 설교와 희미한 목회 방법과 무관심한 사랑의 부족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 황송하고 교회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여기에 목회자의 심각한 고민이 있는 것이다. 어느 설교집에서 너무나 내 마음과 꼭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 내가 하나님 앞에 부족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렇게 교인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구나, 변화가 되지 않는구나. 내가 이 교회에 큰 손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이런 생각과 함께 나중에는 더 깊이 실망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오면 목회를 더 잘할 것이 아닌가 - - 그런 생각까지 나중에는 들게 됩니다 > 그래서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을 때마다 반복하던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기도를 또 해야 하고 “내 집을 채우라”하신 주님의 복음 전도의 대명을 생각하며 충성을 다짐해 보기도 한다. 천국의 수가 차기까지, 교회의 빈자리가 차기까지, 주님의 기대와 소원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기도도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고,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고 주의 신으로 됨을 믿는다.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와 협력도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여러 시련의 고개턱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넘어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영혼들을 붙여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 충만한 교회, 교인 충만한 교회, 행복한 만남 행복한 노래 행복 충만한 교회가 되리라 믿는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 『새 사람으로 참 신자로 바로 믿고 바로 살자』로 시작하여 자신의 성화에 힘쓴 한 해를 보내며 새 해엔 이웃 구원을 위해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특명을 명상해 본다. 할렐루야! 성탄과 새해를 바라보며, 당회실에서, 하나님의 부족한 종, 여러분의 고민하는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