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교회-2

공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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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교회-2

비고 청량리교회 - 1971년 말


고향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4 년이나 농사를 짓고 한 편으로는 교회 직책과 충성에 앞 장을 서다가 경제가 어려워도 대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1965년에 부산의 동아대학교 법학과로 진학하여 과외나 경비나 우유 배달까지 하며 3학년을 마치던 27 세에 입대. 당시 군입대는 입영 대상자가 많아서 늦어 질 수 있었는데 1967년 27 세에 영장 받고 군 생활 중인 28 세에 위천의 위산교회 출신 신인식 사모님과 결혼하고 30 세 되던 1970년 10월에 제대.



■ 목회 출발


▷1971년 청량리교회

이미 학생 때부터 모든 집회나 교회 활동에 정신 없이 달려 왔고 백 목사님이나 공회 목회자들에게 앞으로 목회 나갈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던 청년으로 고향에 있던 중, 1971년 말에 청량리 신용인 조사님이 간 때문에 입원하여 청량리교회의 설교만 맡도록 부탁을 받아 두 달 정도 있었으나 설교만 맡았고 그 외 교회 일에는 일체 무관.





▷ 1972년 묘도교회

(부임 배경)

통합 교단에 속한 애양원이 개척하고 지원하는 신풍 성암교회가 시골 교회라도 규모나 경제가 든든했고 여수의 인근 도서 교회들을 지원해 오던 차, 성암교회 담임 오동원 목사님이 백 목사님 교훈에 붙들리고 주변 여수 시내에는 순복음교회 출신 박은석 목사님이 공회 교훈을 사모하여 여수 시내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개척하고 공회 교훈을 주변에 전파하려고 애를 쓰던 중. 성암교회가 묘도교회를 지원해 왔으므로 묘도교회의 상황을 오 목사님이 잘 알았고 묘도교회가 방치 된 정도여서 공회 목회자라도 보내게 되면 환영할 것 같고 공회 소속 가능성을 두고 오동원 박은석 두 목회자가 노력. 오동원 목사님은 처음 길만 텄고 박은석 목사님은 꾸준히 여러 면에서 현장을 지원.


(부임)

1972년 3월 초에 묘도 부임.


사무실 2024.07.21 08:40  
이 글의 제일 상단은 '김철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당사자가 표시 되어야 각 교회를 설명할 때 도움이 됩니다. 청량리교회가 제목이니 김철수가 본 청량리 묘사는 청량리 전체의 흐름에 맞게 포함 시키고, 그 부분은 각주에 김철수 면담으로 출처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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