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생명 - 육식,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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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생명 - 육식, 안식일

분류 성경
내용 우리에게 생명을 가르치기 위해 짐승이 받는 특별한 대우 3가지
서기 0 5
동물보호운동의 과도한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식물의 생명은 왜 아끼지 않느냐며 반론한다. 이 반론은 그들이 동물을 자연의 이치 차원에서 아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위치를 망치는 내면을 반대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그들과 상대할 것 없이 자체적으로 동물의 생명은 특별히 아끼는 것이 맞다. 식물 역시 아낀다.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모두 아끼는 차원이다.

크게 보면 만물은 사람과 나머지로 나눈다. 만물은 구원의 활용품일 뿐이다. 그러나 짐승은 만물일 뿐이지만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정을 하면서 짐승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가르치기 위해 몇 가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첫째, 범죄 없는 세상에는 짐승의 생명도 보호 된다.
범죄 전 에덴동산과 부활 후 천년왕국에서 동물의 생명은 해하지 못한다. 창1:29에서 식물만 음식으로 주셨고 천년왕국의 경우 사11:7에서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물을 먹게 했다. 식물은 먹어도 동물은 먹지 못하게 했다. 동물이 동물을 죽이는 것도 금지했다. 식물은 먹을 수 있으니 식물의 생명은 생명 대우를 하지 않는다. 그냥 만물 중에 하나이며 우리가 조심하고 아껴 쓸 일반 자연 은총 중에 하나다.

22.3.10.

둘째, 안식일에 짐승의 생명이 위험하면 구해 준다.
안식일에는 신앙의 일 외에 세상 일을 할 수 없다. 제사장은 제단의 일을 할 수 있다. 구약의 제사는 소나 양을 도살하는 것이 주 업무여서 노동의 강도가 컸다. 안식일에는 걷는 것도 제한을 시켰다. 그러나 마12:11에서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구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생명에 관련 된 것이어서 응급 조처가 된다.

세째, 니느웨 심판에서도 육축을 아꼈다.
요나 4:11에서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라고 했다. 홍수 후에 육식을 주셨기 때문에 음식으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생명을 공연히 죽이지 않는다. 일도 시키고 죽여서 가죽도 사용하고 음식으로도 먹는다. 그러나 그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가르치기 위해 짐승의 생명은 특별히 아꼈다. 신25:4에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게 했고 출23:19에서 어미의 젖으로 새끼를 삶지 못하는 자비를 주셨다. 신22:6에서 어미새와 새끼를 함께 가져 오지 못하도록 절제를 시켰다. 땅에 대한 레25:5의 안식년과 레25:11의 희년 또 나무에 대한 신20:19에서 나무의 작벌을 조심 시킨 것은 나무 하나하나에 대한 자비가 아니라 사용의 남용을 금했다. 짐승의 생명과는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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