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교리 해법
분류 | 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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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진리는 하나이니 어떤 모순과 논란이라도 제기 되면 서로 상대방을 보면 해결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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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3.11.13 17:44
삼위일체의 경우
삼위일체 교리가 정확하며 이 교리에 이르도록 양태론과 삼신론의 위험과 잘못이 먼저 있었고 이를 극복한 다음에 요약 된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주후 325년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 교리가 확립 되었는데 이후에 이 교리가 확고부동하게 되자 반론은 무조건 척결 되었고 1,700여 년 동안 교회 내에서는 삼위일체 교리만큼은 반론이 없도록 적이 없는 교리가 되었습니다. 토씨 하나라도 다르면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만 하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무풍의 보호 때문에 오늘의 삼위일체 교리는 또 다시 2천년 전으로 돌아 가서 처음부터 다시 모든 문제가 제기 되는 느낌입니다. 오늘 교회가 주후 325년에 정리한 삼위일체 결론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번에는 그 교리가 무슨 교리인지를 정작 모르는 상황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뚜렷한 이단들조차 삼위일체 교리를 농락하고 있고 정통 교회들은 1,700여 년 전의 교리로 막는다고 막고 있으나 이단들이 그 때와 달리 지난 1,700여 년 교회가 가진 삼위일체 교리의 설명서를 먼저 읽고 왠 만큼 지적 능력이 있는 합리적인 이단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작정하고 공략하며 교회는 이를 막아 낼 수가 없다고 보입니다. 현재 삼위일체 교리를 제대로 설명하는 신학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당연히 삼위일체 교리의 첫 형성 과정의 투쟁을 그대로 밟으며 오늘의 대적들을 상대하면 외부로는 적을 막고 내부로는 삼위일체 교리를 실제 알면서 지키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공회 진리 연구 원칙에 따라 반대편을 보며 하나 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양태론과 삼신론의 중간에서 그 일치를 찾은 것입니다. 일단은 양태론이나 삼신론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는 데는 아주 쉽게 출발할 수 있는 인간적 인본적 이성적 설명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머물면 이단입니다. 그 자리에서 반대편을 보는 것입니다.
양태론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단순히 한 분인데 아버지처럼 아버지 노릇도 하시고 또 아들처럼 아들 되어 오셔서 아들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또 그 후에는 성령처럼 성령 노릇도 하셨다는 설명입니다. 너무 쉽게 '한 분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삼위'를 부정하는 이단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설명과 이해로 출발하려는 사람은 이 설명의 반대편이 되는 삼신론을 보며 촛점이 형성 되는 곳까지 가면 됩니다. 반대로 삼신론을 먼저 잡은 최삼경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삼위' 하나님은 확실히 모셨는데 '한 분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지방교회가 이단으로 정죄를 해 버리자 심지어 소속 총회에서도 관련 문제로 이단 정죄를 받게 되었다는 정도인데 그 사실을 두고 논란은 많으나 의혹 자체가 교단 내에서 전혀 일어 나지 않았다면 몰라도 그 반대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단 정죄라고 봐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마치 최삼경 목사님이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몰아 간 것도 정치였듯이 최 목사님을 이단으로 역공한 지방교회나 통합 교단 내의 대처도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노선은 최 목사님이 삼신론으로 정죄 된 문제를 두고 삼신론이니 양태론이니 삼위일체 교리니 하는 그런 어려운 문제에 자신만의 깨달음을 가지고 접근할 만한 분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이단 전문가라는 직책을 가진 분들은 문선명 박태선 같은 이들을 잡다 보면 교회의 깊은 면을 들여다 볼 시간과 자신의 심령을 정돈할 여유가 없는 분들입니다. 아마 신학교에서 배운 정도에 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지방교회가 마치 양태론처럼 보이니까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 돌진했고 양태론으로 몰아 가려면 그 반대를 강조해야 하니까 최 목사님 자신이 삼신론에까지 발을 뻗어 넘지 말아야 할 이단의 선을 잠깐 넘었던 것같습니다. 즉 양측은 이단이 아닌데 양태론처럼 보이는 측을 이단으로 정죄하려고 양태론의 반대쪽으로 사거리를 확보하려고 나갔다가 뒷발이 선을 넘게 되자 지방교회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사진으로 촬영한 다음 집요하게 최 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데 성공을 해 버렸습니다. 이 노선 생각으로는 최 목사님이 비록 실수는 잦지만 삼위일체를 이단으로 깨달아야 할 만한 사유도 없고 또 그렇게까지 나갈 만큼 깊은 교리에 대해서는 문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삼신론의 입장에서 삼위일체를 깨닫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시작한 최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반드시 중간에 정확하게 위치한 삼위일체에 조준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너머 반대에 있는 양태론을 향해야 실제로는 삼위일체에 접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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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교리가 정확하며 이 교리에 이르도록 양태론과 삼신론의 위험과 잘못이 먼저 있었고 이를 극복한 다음에 요약 된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주후 325년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 교리가 확립 되었는데 이후에 이 교리가 확고부동하게 되자 반론은 무조건 척결 되었고 1,700여 년 동안 교회 내에서는 삼위일체 교리만큼은 반론이 없도록 적이 없는 교리가 되었습니다. 토씨 하나라도 다르면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만 하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무풍의 보호 때문에 오늘의 삼위일체 교리는 또 다시 2천년 전으로 돌아 가서 처음부터 다시 모든 문제가 제기 되는 느낌입니다. 오늘 교회가 주후 325년에 정리한 삼위일체 결론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번에는 그 교리가 무슨 교리인지를 정작 모르는 상황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뚜렷한 이단들조차 삼위일체 교리를 농락하고 있고 정통 교회들은 1,700여 년 전의 교리로 막는다고 막고 있으나 이단들이 그 때와 달리 지난 1,700여 년 교회가 가진 삼위일체 교리의 설명서를 먼저 읽고 왠 만큼 지적 능력이 있는 합리적인 이단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작정하고 공략하며 교회는 이를 막아 낼 수가 없다고 보입니다. 현재 삼위일체 교리를 제대로 설명하는 신학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당연히 삼위일체 교리의 첫 형성 과정의 투쟁을 그대로 밟으며 오늘의 대적들을 상대하면 외부로는 적을 막고 내부로는 삼위일체 교리를 실제 알면서 지키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공회 진리 연구 원칙에 따라 반대편을 보며 하나 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양태론과 삼신론의 중간에서 그 일치를 찾은 것입니다. 일단은 양태론이나 삼신론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는 데는 아주 쉽게 출발할 수 있는 인간적 인본적 이성적 설명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머물면 이단입니다. 그 자리에서 반대편을 보는 것입니다.
양태론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단순히 한 분인데 아버지처럼 아버지 노릇도 하시고 또 아들처럼 아들 되어 오셔서 아들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또 그 후에는 성령처럼 성령 노릇도 하셨다는 설명입니다. 너무 쉽게 '한 분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삼위'를 부정하는 이단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설명과 이해로 출발하려는 사람은 이 설명의 반대편이 되는 삼신론을 보며 촛점이 형성 되는 곳까지 가면 됩니다. 반대로 삼신론을 먼저 잡은 최삼경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삼위' 하나님은 확실히 모셨는데 '한 분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지방교회가 이단으로 정죄를 해 버리자 심지어 소속 총회에서도 관련 문제로 이단 정죄를 받게 되었다는 정도인데 그 사실을 두고 논란은 많으나 의혹 자체가 교단 내에서 전혀 일어 나지 않았다면 몰라도 그 반대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단 정죄라고 봐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마치 최삼경 목사님이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몰아 간 것도 정치였듯이 최 목사님을 이단으로 역공한 지방교회나 통합 교단 내의 대처도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노선은 최 목사님이 삼신론으로 정죄 된 문제를 두고 삼신론이니 양태론이니 삼위일체 교리니 하는 그런 어려운 문제에 자신만의 깨달음을 가지고 접근할 만한 분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이단 전문가라는 직책을 가진 분들은 문선명 박태선 같은 이들을 잡다 보면 교회의 깊은 면을 들여다 볼 시간과 자신의 심령을 정돈할 여유가 없는 분들입니다. 아마 신학교에서 배운 정도에 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지방교회가 마치 양태론처럼 보이니까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 돌진했고 양태론으로 몰아 가려면 그 반대를 강조해야 하니까 최 목사님 자신이 삼신론에까지 발을 뻗어 넘지 말아야 할 이단의 선을 잠깐 넘었던 것같습니다. 즉 양측은 이단이 아닌데 양태론처럼 보이는 측을 이단으로 정죄하려고 양태론의 반대쪽으로 사거리를 확보하려고 나갔다가 뒷발이 선을 넘게 되자 지방교회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사진으로 촬영한 다음 집요하게 최 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데 성공을 해 버렸습니다. 이 노선 생각으로는 최 목사님이 비록 실수는 잦지만 삼위일체를 이단으로 깨달아야 할 만한 사유도 없고 또 그렇게까지 나갈 만큼 깊은 교리에 대해서는 문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삼신론의 입장에서 삼위일체를 깨닫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시작한 최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반드시 중간에 정확하게 위치한 삼위일체에 조준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너머 반대에 있는 양태론을 향해야 실제로는 삼위일체에 접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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