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 성경 | 19시편3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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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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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여호와여'
말씀의 하나님이여
'주께'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니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여호와가 나의 주가 되는 것이며
'피하오니'
말씀으로 사는 것이 여호와의 보호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되니
'부끄럽게'
말씀을 떠난 그 행위는 영원히 부끄러운 것이고, 내가 깨닫고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으로 살면 자랑스럽게 된다. 부끄럽다 자랑스럽다는 단어는 더 좋다 더 못하다는 비교의 표현이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말씀 떠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낫고, 말씀을 떠나 가진 것은 어떤 성공도 알고 보면 못한 것이다.
'주의 의로'
일반적으로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행위다. 우리의 순종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 '주의 의'라 하여 하나님의 것, 주님의 것이 되면 이 때는 내가 죄를 지어 죽었는데 이 것을 해결한 하나님의 대신, 하나님의 수고, '대속'을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내가 죄를 지으면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벧후2:19에서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고 했다. 죄를 짓는 것은 나의 마음 나의 선택이나 빠져 나오는 것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미끼를 무는 것은 물고기의 선택이나 물고 나면 이후는 죄의 배후 마귀 마음이다. 그런데 주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서 사활 대속으로 해결을 했으니 이 의, 하나님의 수고, 주님의 고생을 값으로 주고 다시 낚시 바늘에서 마귀의 소속에서 우리를 해결했다. 우선 영을 해결했고 이 영은 단일성의 존재여서 단번 해결로 영원 완전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복합 종합체여서 매 현실마다 하나씩 다시 따로 선택을 하도록 기회만 주어 졌다. 다시 죄를 지으면 그 마음 그 행위는 다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 영원히 지옥에 던져 진다. 그러나 말씀으로 한 현실을 바르게 살았으면 그 현실에 관련 된 그 마음 그 행위는 '주의 의'로 살 길을 찾는다.
'나를 건지소서'
기본구원적으로는 이미 해결을 했다. 구해 놓았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매 현실마다 늘 마음과 몸이 좌우 선택을 해야 한다. 죄로 다시 오늘을 내버릴 것인가, 어려워도 말씀으로 살아 오늘의 나를 구해 낼 것인가 라는 이 신앙의 건설 문제가 믿는 우리의 매일의 문제다. 기본구원으로 해결하신 주님 때문에 건설구원은 내게 맡겨 졌고 내 노력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면도 다시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야 한다. 그래서 나로서는 오늘을 말씀으로 살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으니 제가 최선을 다할 때 저를 봐 주시고 건져 주소서 라는 의지와 소망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