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 성경 | 19시편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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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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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소제를'
알곡을 가루로 갈아서 드리는 제사가 소제다. 하나님 앞에 자기 멋대로 자기 식대로 자기 사상과 이해 관계를 따라 제각각이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가정 교회는 가족이 말씀으로 하나 되고 그 말씀에 반대 되는 자기를 갈아 자기를 나타 내지 못하게 부인하는 것이 소제다. 교회도 그렇다. 내 속에 내가 아는 말씀으로 나부터 부인할 때
'기억하시며'
그 내면의 투쟁이 정말 큰 투쟁인데 그 애쓰는 모습을 지켜 보고 계신다.
'번제를'
다 태워 버리는 것이 번제다. 말씀을 따라 가는 데 필요하면 자기 모든 것을 어떤 것도 아낌 없이 다 태워 드리는 그 과정 그 순간 그 노력이 예배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니
'받으시기를'
하나님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잘 알고 기뻐 받으신다. 하나님께 드렸는데 나를 부인하고 나를 바치고 드리고 나니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것으로 쥐고 계신다. 그렇게 되도록 나를 부인하겠나이다, 나를 바치겠나이다 라는 자기 독촉이며 결심이다.
'셀라'
시편은 찬송의 가사다. 찬송하는 도중에 또는 찬양하며 감사하는 도중에 들어 간 표현이다. 번역하지 않았으니 우리 말에는 없다. 이런 경우는 원어로 살피게 되나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어디에 사용이 되었는지 잠깐 음미해 보는 것이 좋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알기 위해 국어 사전에 찾아 보면 아이를 낳은 여성, 생물학에서는 개체의 자기 복제, 사회학에서는 가정과 사회에 희생 등으로 대충 가르친다. 그러나 품 안에 아이는 사방에서 들리는 엄마 소리를 언어나 생물이나 사회학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상황과 겹쳐 버린다. 이 품, 이 아늑함, 이 따뜻함, 이 만족의 출발이며 배경이며 전부가 엄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 가면서 엄마라는 단어는 범위와 내용이 많아 지며 세분화 되며 차원을 달리 한다.
시편을 읽다가 셀라가 나오는 부분은 원래 원어 발음 그대로니 그대로 소리 내어 읽든지 마음에 묵상을 해 보면 된다. 원어와 신학을 일단 제쳐 버리고 오류가 있음에도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 개역 한글 성경이며 그 성경의 시편에 셀라가 무슨 뜻인지 적지도 않고 그대로 보이니 그냥 그대로 읽으면 된다. 읽다 보면 시편의 본문이 셀라 라는 단어 때문에 잠깐 막히게 된다. 무슨 단어인지 잘 모르니 쉬게 된다. 안다 해도 이 단어가 들어 앞뒤의 내용을 끊어 놓는다. 그 것이 셀라다. 여기까지는 현재 우리가 아는 전부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에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정확하게 우리를 가르친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 생각하고 또 하나를 더 배워 더 나아가면 된다. 그렇지 않은데 이 글을 적고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원어 공부를 한다고 나서거나 원어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이나 각종 신학 서적을 뒤지면서 연구하려고 나서는 순간 읽는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