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주해사전 (6,262개)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성경 62요한1서02:18
담당 0 1

'아이들아'
출생이 어린 육체의 연령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유약한 성도를 향해 말한다. 내 속에 아직도 강하지 못하고 확정하지 못하며 여전히 여러 상황에 흔들리는 내면을 말한다.

'이것이 마지막 때라'
구약이 끝나고 주님 오신 신약은 구약과 비교할 때 마지막 때, 말세가 된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제 깨닫고 정말 바르게 믿어야 하는 순간 그 관련 자기의 기회와 심신의 요소는 단번의 기회만 주어진다. 역사 이후에 단범이 아닌 시기는 없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보면 말세는 그 이전 역사 전부와 비교할 때 더 이상이 없다. 또 인류 전체를 두고 볼 때 한 사람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소중하고 단번이며 모두가 말세적 인물이다. 그리고 내 속에 모든 기회도 요소도 해당 현실에 말씀으로 실행할지 아니면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야 할지는 단번이다.

'적그리스도가'
줄이면 적기독이라 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신약의 초기나 지금이나 알고 보면 같다. 그러나 전체를 하나의 교회로 보면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신약을 준비하는 기간이 구약이었다. 구약의 매 순간은 그 한 순간이 당시 그들에게 단번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 시기는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를 준비하는 구약이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구약은 주님을 준비한 때고, 그리고 주님이 오신 신약의 첫 출발은 이제 오신 주님으로 재림 때까지 이어 가는 순간인데 주님을 막지 못한 악령이 주님의 대속이 완성되고 신약이 출발을 하게 되자 이제는 주님을 왜곡 시켜 다른 인물을 만들어 주님을 덮으려 한다.

공자와 석가와 같은 부류에 놓고 세계 3대 성자화 시켜 버리면 예수라는 이름은 같아도 신인양성일위의 구원의 주님은 아니다. 또는 예수님 속에 하나님을 없애거나,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와 다르다고 가르쳐 예수님을 없애는 방법도 있다. 예수님의 출생을 미리 막는 방법, 출생 후 유아 때 죽이는 방법, 십자가 처형에 고통 때문에 죄를 지어 실패하게 하는 방법까지 다 실패했다. 이제는 예수님을 감추는 방법도 있다. 천주교 속에 감춰 버리는 방법,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었다 가르쳐 하나님 아닌 예수님만 따르게 하는 방법,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나 사람은 아니었다고 가르쳐 우리 속에 계신 주님을 우리와 최종 연결을 시키는 그 접점을 없애는 방법.. 이 것이 초대교회의 외형적 역사적 사건들이었다. 예수님의 신성 인성 양성 일위 문제로 논쟁한 사건들이다.

신학을 통해 이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한 이들은 성경의 요한일서 2장의 적기독을, 오신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의심케 하고 부인하게 만드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두고 21세기 오늘 교회도 이 요일2:18, 22 말씀을 초대교회사의 예수님의 기독록 논쟁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강조하다 보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매순간 우리를 인도하는 말씀에서는 떨어 질 수 있다.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다. 오늘 하루를 말씀으로 살며 인간적으로 한계가 올 때 우리는 포기하기 쉽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 지는 순간 체념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절망의 죄다. 그 순간에는 이제 인간으로 할 충성은 끝이 났으나 인적 요소를 다한 이 순간 하나님이 직접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면 된다. 주님께 맡기면 된다. 바로 이 순간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은 신인양성일위로 계신다. 하나님으로만 계시면 지켜만 보실 것이나 사람의 몸을 입었으므로 사람이 몸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이 순간에 주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시되 직접 손을 내밀어 사자들 속에서 우리를 살필 수 있다. 또한 주님이 나의 주인이요 구원자지만 이런 위기에 인간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할 때 그 주님은 신성 하나님의 완전이기 때문에 전능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면 적기독이라, 적 그리스도라, 이단이라 원수라고 하는데 초대교회사에 나타난 교리적 이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나를 흔드는 의심까지 포함하신 말씀이다.

'이르겠다'
주님 승천 직후부터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이 과연 사람이셨던가? 과연 하나님이셨던가?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 것은 어려서 물어 볼 문제였고, 이 것은 내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걸음을 흔드는 시험일 수도 있었고, 이 것은 교회를 통째로 이단으로 변질 시키는 시도일 수도 있었다. 또한 한 개인의 매 순간의 신앙 내면을 형성하는 성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이 시험은 물 속에서 물을 피할 수 없듯 죄악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 가는 마지막까지 늘 우리 안팎에 넘실 대는 시험이다.

'지금도'
사도 요한이 살아 생전 요한일서를 기록하는 순간에도 이런 시험과 이단은 당연히 있었다. 오늘도 마찬 가지다. 교회사적 이단은 2천여 년이 흐르며 대세가 잡혔다. 그러나 한 개인과 한 가정과 한 교회의 내면을 보면 항상 예수님 승천 직후 때와 같이 생생한 전쟁이 진행 중이다.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문선명 박태선과 같은 이단 교주들을 주로 지목하지만 이들보다 내 속에 내 욕심이 주님을 밀어 내고 주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마지막 때'
사도 요한의 그 때도 시급했다. 오늘도 시급하다.


22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를 구체적으로 말씀했다. 교회사적으로 당시를 살피면서 오늘을 함께 살펴야 한다.

번호성경성구 (1989년 이전-백영희, 1990년 이후-연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