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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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15에스라04:02 |
담당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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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10:37
교회 통합 운동의 기준과 한계
스04:02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할 때 포로 되어 비워 둔 예루살렘에 살던 이방인들이 성전을 함께 짓자고 했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가기 전 왕하17:06에서 북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9년에 앗수르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백성을 포로로 잡아 가고 왕하17:24에서 빈 자리에 이방 잡족을 옮겨 놓았다. 그리고 왕하17:28에 원래 북조 이스라엘의 속화 탈선한 제사장이 여호와 섬기는 법을 가르치게 하자 결과적으로 왕하17:33에서 북조의 이탈한 신앙법과 외부의 잡신이 뒤섞여 엉망이 된 상태에서 에스라 4장의 성전 건축이 있을 때 이미 살던 이들이 와서 성전 건축을 함께 하자고 했다. 이들을 거절하자 방해를 하며 에스라 느헤미야에 그 어려운 분쟁 과정을 기록했다.
북조 이스라엘의 제사장도 제사장인가? 그들이 살만에셀에게 멸망 당하고 이방 잡족과 아주 섞여 버린 상태에서도 바벨론에서 돌아 온 유다의 정통 신앙과 성전을 함께 지으면 그 것이 화평이며 주의 몸된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인가? 성전 건축과 성전의 제사만은 원래 원칙에서 벗어 날 수 없고, 북조 이스라엘과 그 주변에 잡족이란 남조 유다가 성전을 짓고 성전에 정식 제사를 드린 후 전도하고 교화를 해서 회개를 하고 나면 이후에 하나 될 이들인가?
교회와 신앙에 분쟁이 있을 때, 하지 않을 분쟁을 하는 것은 첫 불을 지르는 것이고 덮어 놓고 하나 되라는 것은 마지막 불을 질러 태워 버리는 것이다. 또 한번 탈선한 이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전도나 선교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성전과 제사법은 사람들끼리 양보를 해주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성전과 제사는 무조건 하나님이 정해 놓은 대로 하고, 그 과정에 받은 은혜를 가지고 나와서 이런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런 신앙의 세계를 알리고 교화시키는 것은 돌아온 포로가 성전과 제사를 정상화 한 후에 해야 할 심방이며 전도며 선교다. 그런데 회개 없이 이미 섞인 잡신앙을 가지고 그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에 끼어 들면 이는 신앙의 생명, 그 생명의 재출발을 꺾고 죽이는 살해 행위다. 신앙과 교회의 분쟁, 그리고 화평을 노력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기준이며 우리가 노력할 때 미리 알아야 할 한계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전도하고 감화 시켜 심방을 하는 것은 별별 방법이 다 있지만, 그렇게 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두고는 하나님이 정한 대로 하나님 원하는 대로 철저해야 하고 이 관계는 어떤 양보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