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성경 | 45로마서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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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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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믿음은 순종이고, 순종은 하나님께 순종이며, 하나님께서 순종은 하나님께서 성경과 영감으로 명령하시니, 말씀과 영감 순종이 믿음이다. 막9:23 눅17:6 약5:15 등에서 믿음은 전능이고 만능이라고 한 이 '믿음'은 내가 목표를 정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이루어 준다고 '확신'을 가지면 그 확신이 전능이 되어 내 생각을 성취 시켜 준다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은, 소원부터 주님의 소원을 '순종'으로 내 소원을 삼아야 하고 목표 목적 계획부터 주님 원하시는 것을 찾아서 내 목표 내 목적 내 계획으로 삼아야 참 믿음의 시작이다. 소원 소망부터 주님 것을 내 것으로 삼고, 그 소원 소망을 이루는 방법도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는 순종으로 방법을 채울 때, 비로소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하신 대로 이루어 진다.
롬8:5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없는 세상 것을 좇아 나서고 우리의 생각이 육신의 일만 생각하는데 이 육신의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리라고 확신을 한다면 이 확신이 '믿음'이겠으며, 이 확신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는 기도겠으며, 이 확신이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믿음'이겠는가?
롬8:5에서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하셨으니 우리의 생각부터 성령 하나님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찾고 따져서 하나님 원하는 것을 나의 소원으로 삼으면 이 것이 소원 순종이고, 소원을 먼저 하나님의 소원을 내 소원으로 삼는 순종부터 해 놓고 그 다음에 실행도 주님 인도를 따라 순종하면, 이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이니 이루어 지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소원을 찾아 내기 어렵고 시간은 없고 세월은 자꾸 흘러 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 때는 하나님이 기쁘하시는 일을 찾아 하려고 생각하면 이 노력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이 노력이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해 준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나타 나셔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생각을 넣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을 우리에게 보여 주면 그 때는 롬8:6에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신 대로 그 생각대로 해 버리면 그리 된다.
본문에서 육신이라 한 것은 몸이라는 말인데 여기 '몸'이란 인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영'과 비교를 했으니 이 영이 없는 사람, 영 없이도 사는 사람, 영과 상관 없는 인간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몸도 물질 마음도 물질이니 사람이 영 없이 영을 생각하지 않고 살면, 그래도 인간은 동물보다 나으니 지성인으로는 살 수 있고 도덕가 절제가 종교가 양심가 양식가로 살 수가 있는가? 사람을 고등 동물이라 하는 것은 구성과 원리와 내용은 같고 다만 실력만 좀 낫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다.
원래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인이고 영은 순종하고, 영은 주인이고 마음이 따라 다니고, 마음이 주인이고 몸이 순종을 하도록 했으며 그런 관계가 태어 난 아이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것이 에덴동산이었다. 그런데 타락 후 인간은 성인이 자전거나 차를 배우는 것과 같다. 자꾸 하다 보면 익어 지고 나중에는 본능화가 된다. 마음이 몸을 제어하고 영에게는 다스림을 받고, 몸은 마음에 다스림을 받으면서 환경에게는 이기고 통제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되는 것이 차나 자전거 배우는 것처럼 어렵고 서투나 하다 보면 본능화가 된다.
그런데 몸은 환경에 휘둘리고, 마음은 몸에게 휘둘리고, 영은 마음에게 쫓겨 나 버리는 것이 믿는 우리의 불순종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중생이 되었으니 마음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할 짓과 안 할 짓을 알면서도 몸이 환경에 지배를 받고 마음을 휘두르니 마음이 당하고 있다. 바로 이 상태를 '육신'이라는 표현으로 여기 기록하셨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몸이 마음까지 사로 잡고 비이성적 비양심적 비합리적 비상식적으로 막 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이다.
불신자도 몸이 환경을 지배하면 절제가라 한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게 되며 마음이 최고 지도자가 되면 수양가 철학자가 된다. 그런데 마음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으면 그 때야 비로소 마음은 절대자가 아님을 알고 마음 속에 높은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안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그 자리를 알 수가 없으니 종교가 생긴다. 귀신이 괜찮은 사람 몇은 이 단계에서 귀신으로 타락 시키고, 일반인은 마음이 몸에게 몸은 환경에게 지배 받아 짐승처럼 살게 한다. 우리가 신앙 없이 살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이런 상태의 인간을 뭐이라고 표현해야 하겠는가? 몸이 왕이 되어 산다 하여 '육신'이라 한 것이다.
이 육신에는 마음이 포함 되어 있으니 '육신의 생각'이라는 말씀이다. 몸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몸 속에 마음이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데 몸이 중심에 서서 환경에 지배를 받고, 마음은 그 몸의 추구를 비서처럼 참모처럼 부하처럼 받들어 심부름이나 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찾고 발견하여 따라야 하고, 그 것이 어려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성경에 많이 기록했고 양심으로 알 수 있으니 하나님 원하시는 일을 자꾸 하게 되면 그런 우리를 보고 하나님은 매 순간 하나님이 원하는 생각을 우리에게 주시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사는 사람이 되면 이 사람은 그 뜻대로 죽든지 살든지 순종해 버리면, 소원도 그 소원을 수행하는 과정도 믿음이다. 이 믿음이 전능이다.
13.06.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