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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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11열왕기상19:19-21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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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열왕기상19:19-21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더라
주제 : 엘리야가 부를 때 엘리사가 뒤를 돌아 봄.
엘리야의 제자는 엘리사인데,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 나설 때 좀 특별한 점이 보입니까? 어 이러지 않아야 될 텐데.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를 때는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주를 따르오리다마는 나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 할 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느니라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산 자는 나를 따르라. 어디 들어 보셨습니까? 안 미송 선생님? 산 자들은 나를 따르라. 데모하는 것들. 맨날 그짓 하지요. 전부 뒤에 교회가 들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 일 말고.
예수님은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아 생명의 사람 영생의 사람 되었으니 산 자는 산 길로 가야지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아니하니라. 딱 잘라 버렸습니다. 여기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는 뒤를 돌아봤고 작별했고, 이별식. 잔치했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성경 전부를 면밀하게 읽어 보는 사람들은 성경에 너무 모순이 많아서 성경 밖의 걸로 성경 공격할 것 없이 자멸하고 자충되고 스스로 붕괴될 모든 모순이 들어 있다, 그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회 교인들은 늘 신앙의 계대 계통을 이어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노선을 지키자 할 때 엘리야와 엘리사의 신앙 수도 없이 공부하는 건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떤 일이지요 오 은아 선생님? 일단 읽어보면 잘한 걸로 기록했겠습니까 이러면 안 된다고 기록했겠습니까? 네. 이게 신앙의 걸음이다. 신앙의 길은 이런 길이다, 라고 적어 주신 길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까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목회자로 말하면 교회를 떠나면서 송별식 해도 되겠지요? 열왕기상 19장 19절 이하를 근거로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고 송별식을 거창하게 해도 이 성구를 인용한다면 반론하기 어렵겠지요? 오 은아 선생님? 해야 될 이별식 하지 말아야 될 이별식. 그리 생각하면 쉬울까요? 성경에는 없는 근거가 없습니다. 어느 것을 골라 잡느냐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본인이 심은대로 거두어야 됩니다.
여기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의 행위는? 부모 공경.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오리다마는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 할 때 하지 말라 한 것은? 죽으면 끝나고? 초상은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입니다. 성경에 시체를 휙 갔다 집어 던진 사례가 있던가요?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 초상을 어떻게 치던가요? 또 요셉이 죽고 야곱 죽었을 때 어떻게 하던가요? 요셉이 가나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가나안 주변까지 돌아온 유일한 경우가 바로 아버지 야곱 장례 치를 때는 돌아왔지요. 요셉 자기는 가나안에 오지 않았으나 아버지 장례 때는 왔습니다. 또 예수님 시신은? 송장 집어 던졌던가요? 까마귀 밥으로? 정중하게 염을 해서 최고급 묘소에 안장했지요. 아리맛대 요셉이 요즘 말로 말하면 국회의원 정도입니다. 최고위급 지도자입니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준비한 최상의 묘소에 주님 두고 간 그 몸을 잘 모셨습니다. 죽은 부모한테 절을 하기 때문에 안 된다 한 거지.
-- 그 엘리야가 구약의 예수님의 삼직, 제사장 선지자 왕 중에서 선지자 면을 말씀한 엘리야지요. 그래서 열왕기상의 엘리야는 주님입니다. 밖은 -- 열두 마리 소를 앞세워 밭을 갈고 있었는데, 20절에 저가 소를 버리고. 자기 사업 자기 산업 자기 인생을 책임 진 자기의 기업을 어떻게 했다고요? 버릴 수 있는 것은 다 버려두고. 내 부모와 작별하게 하소서. 만약에 부모가 제일 중요하고 엘리야를 따르는 일이 2등이고 소 -하는 것이 3등이었다면 -죄가 됩니다. 버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버리고, 버려도 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주님 따를 때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 버려야 되는데, 버리지 말 것까지 버린 사람은 죄가 됩니다. 예수님 따르던 사람은 장례 인정까지도 끊어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여기 엘리사는 부모 작별은 하고 가도 되기 때문에 허락한 겁니다. 누구 경우가 이런 경우 있었던가요? 다 버렸는데 일부 버리지 않고 주님 따른 사람? 아브라함. 본토 친척은 버리면서 롯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또 재산은 챙겨 갔습니다.
여기 엘리사는 재산 사업은 버립니다. 아브라함은 재산 들고 갑니다. 모은 재산. 그래서 주님 따를 때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가차 없이 다 버리고 버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버리면 안 되는데, 한쪽만 읽어서 어떤 사람은 다 버려서 탈, 어떤 사람은 다 챙겨서 탈. 무엇은 버리며 버리지 말아야 될 건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여기 엘리사의 경우는 부모와 인사하는 것은 버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작별한다 했고 또 데려갔습니다. -- 또 데려가서 소 한 겨리 취하여 잡고, 그 고기를 백성에게 주어 배불리 먹게 하고. 뭐지요? 엘리사가 잡아 주변 백성들에게 주고 갔습니다. 뭐지요? 연보. 구체적으로? 이 한 몸 - 바치고 살겠나이다. 대속의 희생이지요. 지난 날 처자식 위하여 살았던 이 땅 위 모든 생활은 오늘로 접고 여기 잡은 소 한 마리가 누구라고요? 엘리사 자기를 잡은 겁니다. 엘리사가 소 속에 들어갔다는 말인가요? 그러면 구원운동은 못하니까 제가 소 속에 들어가야 되는데 저 대신 소를 삶아 백성에게 먹이고 이제 내 생애는 이제 내 육은 내 육의 생활까지도 전부 백성의 구원만을 위하여 살겠나이다. 장차 오실 주님이 이리 사실 것인데 구약의 엘리사가 먼저 예표로 구원 운동에 나서는 사람의 모범을 보인 겁니다. 요거 때문에 일부러 엘리사는 작별과 소 한 마리로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출발하는 순서를 더해 주신 겁니다.
11.10.02. 연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