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성경 | 42누가복음1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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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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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 05:59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구약 교회는 육체의 이스라엘에게 보이는 것으로 가르쳤다. 가나안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밖은 세상이고, 가나안의 예루살렘이 신앙의 중심이고 다른 지역은 지엽이며,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었다. 이렇게 장소적으로 가르쳤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볼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는 볼 수 없는 신령한 나라다. 육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육의 사람이 알 수 없는 세계다. 봐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했으니 보통 우리 마음 안에 있다는 말로 생각한다. 마음 안에 있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정확한 그 의미는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둘러 서서 질문을 하고 배우고 있다. 주님이 그 중심에 계신다. 주님이 중심이 된 곳, 주님이 가르치는 곳, 주님을 모신 곳, 주님을 중심으로 형성 된 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그 것이 장소이든 사건이든 상황이든 마음이든 육적이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은 초월해 버린 나라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이 더 이상 이 땅 위에서 육체 때문에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40일 동안 부활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은 시공을 초월한 주님이 되었음을 알린 것이고 행1:9에서 승천하신 것은 공간적으로 상승하여 볼 수 없게 된 것인데 이를 통해 이제는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에서 신앙의 기회가 끝이 나고 죽은 뒤에 주님을 다시 뵙거나 부활 후 뵐 때까지는 이 땅 위에 어떤 성도든 육체로 주님을 직접 뵙는 기회는 없어 지고 시공을 초월한 주님으로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역사할 것을 알린 것이다. 부활 전의 주님은 완전자 주님이시지만 예루살렘에 올라 가면 갈릴리에서는 볼 수가 없고 또 세리 집에 심방을 가면 옆 집에는 그 다음 순서로 가시지 동시에 편만으로 충만으로 무소부재로 역사하지 않았다. 부활 후의 주님은 보이다가 사라질 수도 있고, 없는 중에 나타 날 수도 있다. 승천 후 주님은 이제 다시는 보이는 주님으로는 역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대신 천하 믿는 그 누구라도 그 마음이 주님을 추구할 때, 어떤 사람이 그 행동이 말씀으로 실행할 때, 어느 교인이 기도할 때 그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신 주님이 나뉘지 않고 통째로 다 들어 와서 함께 할 수 있는 주님이 되었다. 부활 전의 주님은 주님을 눈 앞에서 보는 사람이 주님의 육체는 자기 눈 속에 다 넣지 못하고 자기 마음에 다 모시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와 능력은 다 받을 수가 있지만, 부활 후 승천하신 이후의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 분의 마음뿐 아니라 그 분의 능력과 대화만 아니라 그 분의 신인양성일위에 속한 모든 요소 구성까지 다 가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천국은 하늘 나라 또는 영계라고도 한다. 오늘 세상과 비교하면 별 세계요 딴 세계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오늘과 비교할 수 없도록 좋고 높고 모든 것이 무한하기 때문에 세상을 기준으로 '하늘'이라고 표시했다. 행1:9 이하에 하늘로 올라 가셨다는 것은 이 땅 위에 계시지 않는다는 뜻이며, 더 나은 곳으로 가셨다는 뜻이며, 오늘 물질계 이 세상이 손 닿지는 않으나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무한한 더 낫고 더 높은 세계가 영계임을 알리기 위해 하늘을 만드셨고 하늘로 올라 가셨고 또 하늘로 올라 가셨다고 적어 주셨는데, 그 곳이 물질계의 공간 기준으로 비중이 적은 물질은 위로 가고 무거우면 밑으로 가라 앉는 것으로 말씀했으나 실은 시공을 초월한 신앙의 지식적으로 가치적으로 평가적으로 존재적으로 무한한 세계, 영광의 세계, 완전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계의 실존을 부인하면 여호와의증인이 되는 것이고, 여기서 주님이 가신 하늘 나라를 한국과 미국이 태평양으로 공간적 격리된 것처럼 공중 = 하늘 = 우주라는 공간으로 격리 된 그 위에 또는 하늘 어디쯤으로 고정을 시키면 신령한 영계를 물질계 운동으로 격하 시켜 교회를 기독교에서 종교로, 종교를 이 세상의 정화 운동으로 끌어 내리는 이단이 된다.
오늘의 세상은 알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지만, 영계는 이 세상과 비교할 때 이 세상 기준의 공간적 격리가 된 별 세계가 아니라 영계는 시공의 개념 자체가 없으니 마치 몸 안에 마음이 있는 것은 단정할 수 있지만 몸 안에 어디쯤 어떻게 있는지를 좌표로 찍거나 해부학적으로 한 점을 콕 찍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은 물질인데도 그 존재의 본질과 성격 때문에 이렇게 다른 세계가 되는데 몸과 마음은 물질이라 할 때 영계는 신령하면서도 창조 때부터 물질로 된 이 세상과 아예 처음부터 다른 영질 재료로 만든 세계다. 우리가 지면에 서서 하늘을 가르치며 저 먼 어디쯤의 장소가 아니라, 물질계의 어떤 기준과 표현과 방향으로도 표시조차 할 수 없는 세계다. '세계'라는 표현도 '곳'이나 '장소'나 '향방'이라는 표시도 모두 물질계의 표현이다. 이 것으로 짐작하고 느낄 뿐이지 이 표현들이 아예 해당하지도 않는 개념이다.
굳이 더 가깝게 말하자면 오늘 세상은 물질계의 시간과 공간의 칸막이에 존재하나 영계는 숲 사이와 공중과 어디라도 떠다니는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없는 곳이 없다. 막히지 않는다. 유리 벽리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 해도 대기권 안이다. 그러나 영계는 서로의 존재와 위치와 형식이 아주 다르다. 몸과 마음의 관계가 전부이거나 일부라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나 가장 쉽게 처음 배우는 비교로는 사용될 만하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다. 아버지의 손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만 그 손길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는 손바닥이 움직인 동영상만으로 알 수는 없다. 그 손이 전화를 들고 지인에게 부탁하여 아들의 평생 출세길을 열어 주었다면 농사 짓는 아버지가 잡은 농기구와 손의 관계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도움의 범위가 아버지 손길이 닿은 곳이 된다. 마음이 검다 할 때 삼원색의 배합으로 광학적 분석으로 검다 희다 표현하는 것은 우습다. 이와 같다.
* 마10:7 :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 마16:19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81122330, 24.1.14./ 25.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