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성경 | 66요한계시록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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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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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2) 둘째 인: 홍마
계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1) 진노 역사
(1) 진노
말씀은 한 편으로 복음이나 그 말씀에 맞서는 죄와 악령과 사망의 역사에 대하여 진노로 상대한다.
(2) 붉은 색
붉은 색은 계12:3, 17에서 분노로 표시 되었다.
(3) 구원 면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던 말씀을 어린 양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으로 받아 가지고 그 말씀으로 세상을 펼쳐 나가는데 이 땅의 죄악과 마귀에게 붙들린 우리를 구원하는 면으로 보면 백마 운동이지만
(4) 전투 면
우리를 거룩하게 깨끗하게 만들어가기 위해 원수를 상대하며 싸우는 모습은 진노의 붉은 운동이 된다.
(5) 양면
별도의 운동이 아니라 한 운동의 양면이다.
2) 분쟁 역사
(1) 붉은 말 탄 자
붉은 말을 탄자가 땅에서 화평을 없애 버렸다.
[붉은: 살해, 붉은 말 : 사망 운동]
(2) 분쟁
분하면 분쟁이 생기고
(3) 사망
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죽는 일도 생긴다.
(4) 붉은 색
요일3:15에서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자’라고 했다. 창4:5에 가인이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 바로 이 색깔을 말한다. 그리고 아벨을 죽였다. 왜 말씀이 가는 곳에 웃음과 축복과 평화가 깃들지 않고 그 반대가 되는가? 건강한 몸이 병균 때문에 죽을 상황인데 항생제로 병균을 죽이면 사람을 살리니 투약을 한다. 투약은 백마 운동이요 병균이 죽어 나가는 것은 홍마 운동이다. 죄가 없던 시절의 말씀은 웃음과 평화만 존재하나 죄악의 세상이 된 오늘의 웃음은 죄와 마귀와 사망의 웃음이기 때문에 어두움 속에 빛이 들어가면 어두움은 패전을 해야 하고 울어야 하는 것과 같다. 둘째 인이 말씀의 역사인데 이 역사가 지나가면 죄악은 울고 의는 웃고, 사망은 쫓겨나고 생명은 흥황되니, 좋은 면은 백마로 그 반대편에 분쟁이 나오고 죽어 나가는 것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5) 큰 칼
[큰 칼: 살해 도구, 큰 심판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둘째 생물이 큰 칼까지 탄 자에게 줬다.
▪칼
칼이 하는 일이 무엇을까? 파종일까, 육아일까, 구제일까?
▪정리
말씀의 검으로, 어떤 말씀은 소리 없이 깊은 것을 정리해야 할 때도 있고,
▪도륙
엘리야처럼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을 도륙해야 하는 왕상18:19의 경우도 있다.
▪내면
말씀이 전해지는 곳은 내 마음 속에서부터 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처음에는 화평이 없어지며 말씀이 계속 전해지면 서로 죽이는 문제가 생기고 마침내 가나안인 전체를 제거하는 일도 생긴다. 자기 내면으로도 그렇다.
3) 송아지의 희생
(1) 소
성경의 소는 주인에게 ‘말 없는 충성’을 말한다.
(2) 송아지
송아지는 충성을 더 순진하게 표시한다.
(3) 희생
양이나 소는 대속을 위해 제단 위에서 죽어야 하는 희생이다.
한 번으로 지나가는 우리 현실은 그 현실이 전부고 두 번 기회가 없는데 그 현실에서 내가 죽고 내가 피흘려 순종하여 주님과 말씀으로 살리는 운동을 하다 보면, 그냥 넘어 가도 되는 것을 단절해야 하고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희생이 따르게 된다. 죄와 의가 서로 웃고 잘 될 수는 없다. 의가 박해를 받아 죽든지 죄가 말씀의 검에 죽어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다. 말씀만 듣지 않았더라면 주변 사람들과 편하게 즐겁게 화목하며 평화롭게 살 것인데 말씀을 배웠으니 말씀으로 내 속을 살려야 하고, 이 과정에 내 속에서부터 끊고 죽이고 눌러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갈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다. 친구가 귀찮아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를 정리하지 않고는 말씀으로 살 수가 없는 상황이 되니 말씀 때문에 정리하게 된다. 그 과정에 그 친구와의 우정은 금이 가고 원망이 생기며 결국 우정이 죽는 일이 따라 온다.
(2020년 5월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