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
성경 | 66요한계시록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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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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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네가'
믿는 우리 전체를 두고 말씀하지 않고 각자 한 사람을 두고 말씀을 할 때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몸으로 함께 겪을 일도 있다. 한몸이지만 각자 자기 사명으로 받아야 할 일도 있다.
'장차'
앞날 미래라는 말씀이다. 계시록은 말세에 대한 말씀이다. 따라서 역사 최종의 우주적 고난을 두고 미리 말씀하고 계신다. 동시에 한 사람의 죽음은 그에게 세상 마지막 환란이다. 일제 말 신사참배나 6.25 점령처럼 한 시대의 신앙을 전부 시험하는 시대적 환란도 포함한다. 그러나 매일의 기회도 매 순간의 현실도 모두 포함한다. 크고 작은 환란, 크고 작은 기회, 크고 작은 단위의 기간을 모두 포함한다.
'고난'
게을러 당하는 어려움이나 죄를 짓다가 당하는 고통은 여기에서 빠진다. 모든 시험 고난 환란을 두고 성경은 우리에게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 당하고 준비하지 않고 방심하다가 겪는 어려움을 신앙의 어려움, 믿는 사람이 겪는 성경의 환란으로 생각하여 주의 도우심을 믿고 담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믿는 사람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살려고 할 때 겪는 어려움을 말한다.
'두려워 말라'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시험과 환란과 고난은 절대 주권 완전자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처럼 만들어 가시기 위해 은혜로, 사랑으로, 소망으로, 복되게 미리 정해 놓은 양육과 훈련과 승격의 과정이다. 요셉이 돌아 보니 30세까지 겪은 모든 고난은 총리의 영광을 향하여 일점일획도 가감없는 은혜의 기회였다. 비교하고 계산하고 알고 나서 오는 평안이 참 평안이다. 두려운데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지 라고 반복해서 자기를 달래고 인식을 고치려는 것은 어린 신앙의 안타까운 단계이다.
'마귀가'
강압으로 권세 있게 우리를 죄짓도록 할 때는 '사단'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를 죄 짓게 할 때는 마귀라고 한다.
'몇 사람을'
신사참배에 주기철 목사님이 한국 교회의 대표였다. 이름도 실력도 또 교회 안에 모두가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총독부는 하나를 꺾어 전부가 알아서 굴복하도록 했다. 원래 일본의 전쟁 성격이 상대편의 우두머리를 잡는 것으로 끝을 내지만 이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의 흐름이다. 또 하나님께서도 하나를 통해 나머지를 살려 가고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는 따라서 죽게 되는 '대표성'의 원리를 아담의 원죄와 예수님의 구속 원리에도 적용했다. 그 교회 그 시대 그 주변에서 한둘 또는 두세 명의 대표적 승리와 실패는 나머지 전부에게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도 한 사람의 내면은 여러 요소로 복잡하다. 사람마다 환란에 따라 그 형편과 사정에 따라 대표적으로 시험에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중요한 시기에 공부를 집중해야 하는데 신앙의 중요한 일정과 겹쳐 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학습욕 때문에 죄를 짓게 되면 그 시간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다른 내면 다른 요소 다른 분야는 미리 한꺼번에 신앙으로 다 패전하며 꺾이게 된다.
'옥에 던져'
신앙 자유의 제한, 양심 자유의 한계를 통해
'시험'
학생은 시험을 쳐 보면 묻혀 있던 실력이 드러 난다. 운동 선수의 경주도 그렇다. 자기 내면의 신앙 준비와 성장과 실체도 그 면으로 죄를 짓게 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아 보면 드러 난다. 욥기 1장에 사단이 욥이 잘 먹고 잘 사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먹고 사는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에 하나님을 저주하리라고 했다. 사단은 흔들어 봐야 자기 세력이 많아 지니 당연히 이의를 하고 흔들 기회를 받으려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단을 통해 욥에게 욥의 신앙을 점검 시킨다.
'십일 동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 최고, 전부의 범위를 10일이라고 한다. 신사참배는 6년의 세월 계속 되었다. 그 6년이 그 면의 시험으로는 전부였다. 해방이 되고 출옥하거나 미리 순교한 이들은 10일의 환란을 통해 준비한 만큼 승리와 성화의 복을 받았고 실패한 이들은 그들의 실체를 스스로 알게 했다.
'죽도록'
죽도록 다했는데 죽으면 순교다. 죽도록 다했는데 해방이 된 이들은 그 시험, 그 환란, 그 종류의 시험에 관한한 승리의 면류관을 받았다. 순교로 끝난 이들은 그 시험으로 그 승리를 했고 그 승리를 통해 이 땅 위에 모든 신앙의 과제를 전부 승리로 인정받는다. 그 대신 순교로 끝나지 않고 해방으로 끝난 이들은 해당 건만 승리가 된다. 그리고 생존이 이어지면서 또 다른 건이 다시 신앙으로 준비하고 이후에 또 시험을 받으며 우리는 이 땅 위에 평생을 살아 가게 된다.
'충성'
마음 다하고 정성 다하고 뜻 다하는 것이 충성이다. 충성이라는 말씀은 자주 나오지만 충성의 내용이나 기준은 계2:10에서 '죽도록'이라고 말씀했고 죽도록이라는 그 말씀을 다시 분석하면 구약에는 신6:5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 하셨고 신약에는 마22:37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고 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 은혜, 환경, 그 수준에서 다하면 그 것이 충성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과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표시해 주셨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는 결과적 차이가 나지만 원래 주신 기본수를 기준으로 하면 같다. 또 눅16:10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것에도 충성하도록 점점 길러 가시는 면을 말씀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충성은 자기 수준에서 충성이며 하나님이 보실 때 100점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64:6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 보기에 의롭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럽다. 보잘 것은 없어도 우리가 충성을 하면 우리의 충성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충성, 하나님이 보실 때 하늘의 것으로 영생으로 합당하도록 변화를 시켜 주신다. 요3:6에서 성령이 만들어 놓은 것은 인간 속에 이루어 지는 영의 중생이며 영의 중생 이후 이어 지는 심신의 성화 과정이 된다. 우리가 우리로서 우리의 더러움 중에 우리의 정결을 구별해서 성화를 시켜 놓으면, 인간 수준의 성화 하나님이 보실 때는 여전히 더러운 옷과 같은 우리의 그 노력 그 성화 그 떼어 놓은 깨끗을 하나님이 직접 천국의 것이 되도록 영화를 시킨다.
그래서 인간의 오늘은 천차만별이고 믿는 사람은 어려울 때 신앙에 나서기 때문에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인간적으로 못난 자기를 보면서 우리 스스로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못났다는 면만 보게 되면 겸손이 아니라 좌절 낙망 절망의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이런 소망의 길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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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난
-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
- 장차 받을 고난
-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 받게
- 10일 동안 환난
5) 권면
- 두려워 말라
- 충성하면
-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6) 이기면
-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
7) 죽도록 충성
-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학교 공부하듯 하면 된다.
- 실제 자기를 바꾸어지는 것이 문제다.
- 이 과정에 필요한 것이 시험이다. 시련이다.
- 완전히 바뀌는데 10일이 걸린다.
- 기한을 채워 주님과 하나 된 지식이 실제 인격과 언행에 하나가 되는 것이 신앙의 단계다.
(2020년 5월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