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성경 | 06여호수아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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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13:16
(질문) 성경에 라합이 두 정탐꾼을 숨겨두고서는 오기는 왔으나 가버렸다고 말하여 두 정탐꾼을 살려주었다. 거짓말을 우리가 배우기를 자타의 구원에 해가 되는 말이라 배웠다. 그렀다면 이 라합의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이 되는 것인지? 쉽게 설명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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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성경은 성경으로 불수밖에. 우리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1. 히11:31에서 라합의 행동을 '믿음으로' 잘 한 행동임을 분명히 말했다.
있는 것을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할 때 거짓말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성경의 정의는 그렇지 않다. 구원에 유익된 말은 '참말'이고 구원에 방해되는 말은 '거짓말'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거짓말과 참말의 정의는 그 기준과 적용이 우리 상식과는 아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셔야 한다.
히11:31에서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들어오는 이스라엘의 구원역사에 반대한 행동과 말은 전부가 거짓말이며 그 구원역사를 돕고 협조한 모든 행동과 말은 전부 참말이었다. 이방인이었던 여리고 성민들 기준으로는 라합의 행동이 우선 반민족적 배신행위였을 것이고, 또 그 말도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과 구원역사는 라합의 행동과 말을 어떻게 보셨느냐는 것이다. 라합은 믿음으로 행동했고 순종치 않고 하나님과 구원역사를 대적한 여리고 성민들과는 달랐다고 했다.
2. 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구원을 위해서는 세상이 말하는 거짓말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을까?
만일 하나님이 그 말을 하라 한다면 해야겠지만 라합처럼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대개 주신 자연과 사회 환경을 자연은혜로 삼아 누리고 이용하도록 하시고 라합처럼 이렇게 맞설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은 꼭 필요한 경우 특별하게 한번씩 명령하시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또 우리가 세상 사람이 말하는 정직으로 살아도 모든 생활이 다 되도록 우리 현실을 운영하고 계신다.
그렇지만 미리 단정하고 있을 것은, 참말과 거짓말의 정의는 세상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거짓말을 라합처럼 하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개는 우리가 성경을 잘못 오해하여 지나친 도덕주의가 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제가 거짓말하고 도둑질을 해놓고는 공연히 성경을 팔아먹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이 욕을 먹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보충답변)
1. 일반 상식이나 우리 생각과 너무 다르게 기록된 성구들이 적지 않습.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국어사전이나 우리 상식이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주의 깊게 조심하지 않으면 현재 내가 생각하는 바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성경을 과학이 해석한다면 참 우습겠다. 아마 신화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유교가 유교 도덕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면 아주 몹쓸 불량서적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점을 먼저 잘 인식해 주셨으면 한다.
2. 라합의 행동을 히11:31에서 요약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믿음이라 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심을 딛1:2이 말씀했고, 거짓이 없으신 이 하나님이 영감으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것도 딤후3:16에서 미리 말씀해놓았다. 이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중 히11:31은 구약에 나왔던 라합의 행동을 총평하고 있다.
라합이 정탐군을 두고 행동한 것은 '믿음'이었다. 믿음의 정의는 굳이 따로 살펴보지 않아도 '순종'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해당 본문은 이 점까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하여 우리에게 '믿음은 순종'임을 가르치고 또한 라합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또 라합 외에 정탐군의 행적을 보고하며 그 수상한 바를 일일이 보고 했던 다른 사람들은 순종치 아니하여 멸망받은 사람으로 단정해 주고 있다.
3. 따라서 거짓말에 대한 우리들의 일반 인식과는 아주 다른 성경임을 알아야겠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성경이 금하고 있으며 사회법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자연 상태의 인간 심리로도 당연히 엄금할 일이다. 그러나 살인 이상의 행동을 만일 하나님이 명령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이 정도로 말씀드리게 되면 광신 또는 사이비 교주들이 휘하에 전사들을 교육시키는 장면을 떠올릴 것입니다만, 그 이상이라도 만일 참으로 주의 뜻이면 순종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거짓말과 살인을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을 감히 팔아서 거짓과 도적과 살인을 하고 있는 사이비들이 문제이고 또 우리들도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일을 그렇게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만일, 하나님께서 참으로 요구하시면, 그것만이 성경이요 순종만이 의요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만일 '말'에 대하여 원하시는 것이 있을 때, 그렇게 순종하는 것은 '참말'이 되고, 참말을 하지 않는 말은 전부가 '거짓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구원에 유익된 것만 요구한다. 그 요구에 따라 순종하는 모든 '발언'은 참말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단정하고 있지만, 초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경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우리의 사회 분위기에서 섣불리 말했다가는 맞아죽기 좋은 사안일 것이다.
국어사전, 유교의 도덕률에 의하면 성경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서적이다. 과학자가 보면 미신일 것이고, 공산주의자가 보면 아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 잡다한 기준에 성경을 다 맞추어 줄 수는 없겠다.
성경 유일주의, 이것을 가르쳐 신앙주의라고 하니, 신앙주의에 엄격하게 자신을 세우고 자기 뇌를 그곳에다 씻고 다시 보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렇게 쉽게 이해될 것 같다.
4. 세상이 크게 오해할 대목이라 할 수 없이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
위에 설명 드린 것이, 아무리 과격하고 그 위험성과 선동성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진리는 진리이며 사실은 사실이다. 성경을 참으로 믿는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쉽고 이 말이 틀렸다고 반론하기는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십자군전쟁과 같은 종교전쟁이 발생하게 되고, 오늘 교계들이 서로 죽이기를 마지않고 고소 고발 폭력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근거다. 심지어 목회자가 자기 입이 연보통이라면서 교회 회계를 마음 놓고 들어먹는 것도 이런 이론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 양심에 가책이라도 느끼는데, 교회 싸움과 목회자 탈선에는 양심에 가책은커녕 라합처럼 복 받을 행동이라고 설치게 된다. 오늘 교계 타락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모든 해석이 참으로 성경을 안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듯이, 또한 참으로 양심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라합처럼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점령군의 침투로를 열어주는 배신행위를 요구하시는 희귀하다. 하나님의 명령은 거의가 다 현재 그 성도가 살고 있는 자기 사회 자기 가족 자기 친구들이 볼 때에도 덕이 되고 아름답게 보임으로 전부들 좋아서 따라 오고 싶을 그런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불신자들이 전부 존경하고 따를 만한 그런 명령을 순종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가 앞서 희생해야 하기 때문에 요나처럼 못들은 체 해버리고, 그 대신 남을 희생시켜 자기가 득을 볼 일이 생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해치워버리고는 '성경에서 말하는 거짓말의 정의'를 들이대는 바람에 하나님과 교회와 우리 전부가 함께 세상에게 매장을 당하고 있다. 천주교만도 못하고 불교만도 못하다는 말을 들어도 사실 우리 내부가 그러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그렇게 성경을 자기 유익 위해 임기응변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시온의 반석과 맞붙는 사람이니 깨어지고 박살날 뒷날이 곧 임하게 되어 있다. 거저 안타깝게 쳐다볼 수밖에 없고, 그보다는 사실 나 자신도 급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성경은 세상 상식이나 우리 기본 개념과는 너무 다른 것이 많다. 성경 진리로부터 우리가 탈선해 나왔으므로 우리 기준에서 성경을 적당하게 해석하게 된다면 이 시대에 잘 맞는 도덕책이 되겠다. 현재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기준에 어떻게 보이고 오해될지라도 성경은 성경이라는 주장에서 살고 있다.
(/pkist.net/쉬운문답/ 518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