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성경 | 54디모데전서03:02 |
---|
서기
0
77
-0001.11.30 00:00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1-1. 두 번째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둘이 연애를 했든지 결혼한다고 뭐 중매를 했든지 서로 다 알만할 것인데 중매를 하면 알만한 가정이고 연애를 했으면 직접 알아봤을 것이고 여자 쪽에서 남자 뒷조사를 해보면 책망할 것이 없다? 그래야 남편이다? 말이 되는 말입니까?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기록해놓은 것은 네가 남자라서 남편 되는 것 아니다. 남자 근방에도 못 갔다. 그런데 아내가 도와서 아내가 기다려주고 아내가 네 밑에 백성 노릇하면서
1-2. 두 번째로, 아내를 가질 남편은 내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길 것인데 아이가 가질 여자는 “하나님 앞에 감독이 되고” 그런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 내가 나를 생각해보면 열의 열 책망할 것이고 백의 백 책망할 것 밖에 없는데 그게 양심인데, 남은 멋 모르고 나를 착하다 뭐 괜찮다 저 사람 인심이 좋다고 그러는데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보니까 흉측해서 쳐다볼 수 없어야 그게 정상입니다. 이게 자기 도취, 이게 자기 사랑 때문에 잘 그리되지 않을까봐, 겉보기에는 우리가 옷을 입고 이렇게 매꼼하게 있으니까 매꼼하게 다 사회생활 하지만은 우리 속을 뒤져보면 정화조 통을 한 통씩 다 차고 계시지요? 내게 없으면 안되는 내 주먹만한 심장 그 안은 핏덩어리입니다. 그 안에 밥 먹으면 목에서부터 저 나오는데까지가 상수도처럼 깨끗하겠습니까? 하수도겠습니까? 그것이? 겉으로는 좋은 피부로 아름답게 만들어놓고 옷까지 입혀놓았지만은 의사 선생님들은 옷으로 보지 않고 피부로 보지 않고 피부 속에 들어 있는 내장이 어떤고? 심장이 건장하고 신장이 좋고 내장이 다 건강하면 뭐 피부는 뭐 흑인이라도 괜찮고 백인이라도 좋고 좋은게 좋지만은 내장이 좋은게 좋다고 아마 의사 선생님들은 그리 생각할 겁니다. 미스 코리아 옛날에 보는 사람들은 성형을 했든지 말았든지 뭐 뭘로 발랐던지 사진 찍어 잘 나오면 이쁘다 그럴 것이고 의사 선생님은, 사진은 치우고. 심장 허파 내장 작은 창자 큰 창자 속에 들어 있는 속이 어떠냐? 이것을 볼 겁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나는 내 속이 얼마나 불편한지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더러운지. 우리는 소변 봉다리를 두개씩 다 배 안에 차고 있습니다. 또 배 가운데는 아주 그냥 대변통을 우리는 달고 있습니다. 겉은 매꼼한데 속은 이렇게 엉망이 들어 앉았습니다. 왜 인간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을까? 타락한 후 이렇게 되어졌습니다 더러운 것으로. 다른 사람은 네 속이 얼마나 더러운지 못 본다 너는 네 속의 온갖 버릴 것 나쁜 것 썩은 것을 차고 산다. 어떻게 해야 이것을 깨끗하게 온전하게 바로 잡아볼까? 네가 남자냐? 너를 바라보고 살아야 될 아내에게 너는 왕이다. 너는 머리다. 그런데, 너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되는 자세로 네가 너를 생각해보면 남이 모르는 단점 남이 모르는 많은 잘못된 것이 있지 않느냐? 이것을 줄이는 만큼 남편되고 이것을 줄이는 만큼 하나님이 볼 때에 왕 노릇 잘한다 그러실 것이고. 가정의 어른은 어른이고 가정의 남자는 남자고 심지어 사회 생활하면서 남 앞에 대표는 되었는데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고 고쳐가면 그 이름값으로 자꾸 자라가는 것이고, 이름은 있는 것이고 속으로 자기 중심으로 더 달려가고, 뭐 흠과 점이 있는 것은 내 것은 덮어버리고 남 속만 뒤지고 그리 살면 큰일난다. (2020. 03. 29. 주후)
2-1. 그리고 두 번째는 교회의 책임자는 자기가 먼저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 임금님은 엉망진창이라도 임금되면 무조건 임금입니다. 오늘 대통령은 뭐 흠이 많고 점이 많아서 어떻게합니까 대통령인데 자기 마음대로 하지. 교회도 그러면 감독이 목사가, 목사 안수 받아 자기 교회 목사 됐으니까 이제 대통령 마음대로 하듯이 나는 내 교회 마음대로 하느냐 그러냐 큰일 난다 하나님이 지켜본다. 아예 목사가 될 사람은 목사될 때부터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만 목사를 만들어라.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목사가 되고 싶거든 1번 하나님 중심의 선한 마음만 가져라. 2번 교인들이 어느 사람이 뒤져봐도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 그래야 목사가 될 수 있다 장로가 될 수 있다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 17가지 중에 1번과 2번, 특별히 2번이라는 것은 인간이 맞출 수 없는 조건을 내놓으셨습니다.
2-2. 공회 교회는 우리 교회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목사가 되는데 책망할 것이 있는 줄 알면서 왜 목사를 세우느냐 이 말씀을 두고, 왜 세우지요? 목사에게, 교회가 필요해서 목사 이름은 불러주나 목사는 너 스스로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목사이고 네 맘속에 책망 받을 부족한 것이 있거든 교회는 너를 목사로 불러주나 너는 나는 목사답다 나는 목사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라. 우리는 그렇게 읽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에게 교인들이 목사님 부를 때마다 책망이 없어야 하나님 앞에 진짜 목사인데 책망 받을 일이 많으니 교인들이 목사라고 불러줄 때마다 내 속의 잘못을 없애버려고 더 노력하라는 뜻이구나 책망 받을 일이 없도록 나를 고치고 회개하고 자꾸만 더 점점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그렇게 수고를 하라고 격려하는 말이구나. 우리는 그렇게 읽고 듣습니다. 그러면 3장 2절 말씀이 해석이 되어집니까? (2020.03.29 주전)
3.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 둘. 책망할 것을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떨칠 수가 없는데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책망할 것이 조금 더 없기를 이 말씀을 가지고 늘 노력하고, 그리고 죽을 때에 책망 받을 것은 전부 주님이 지옥으로 다 털어 분리수거합니다. 그리고 티끌만큼도 책망할 것이 없는 심신의 요소 심신의 성화된 부분만 천국으로 가지고 오게 하십니다. (2020.03.30 월새)
4. “책망할 것이 없도록” 평생을 돌아보며 내가 책망할 것이 없도록 노력하고 내가 책망 없는 사람이 되는 만큼 식구들을 그렇게 인도할 수가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세상의 직책은 남을 착취하고 남을 악용하여 자기를 위한 길이고 주님 앞에 책임자는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짐을 지는 길이기 때문에, 세상식으로 직책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또 교회의 직책은 얼른 내려놓고 도망가는 것이 그게 맞습니다. (2020.03.31 화새)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1.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한 것은 너는 여자니 하나님 때문에 남자에게 배우고 순종하거라 해놓고, 남자에게는 여자를 쥐어가도 돈 안 벌어줘도 나쁜 짓을 해도 네 여자는 성경 읽고 남편에게 정절로 기도하고 순종하라는 말이냐? 여자는 그러면 복 받는 여자입니다. 남편은 그 말을 들을 때 바늘방석이 되어야 되겠지요. 하나님에게 아내들에게 네 남편에게 저절로 일절 기도하고 순종하고 입 닫고 따라만 가거라 이렇게 아내들에게 가르치고 하나님이 여자들을 야단칠 때, 옆에 있는 남자는 옆에 있는 남편은 바늘방석이 되어 나 같은 것을 순종하라고 나 같은 것한테 배우라고 나 같은 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저렇게 야단을 치니 바늘방석이 되어야 그게 남자입니다. 그런 남자를 성경에서 남자라 남편이라 그럽니다. (2020.03.29 주전)
2.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결혼만 하면 전부 다 한 아내의 남편은 되지만은 그런 동물적인 생물적인 자연 사회적인 남편이 아니라, 여자의 머리는 남편이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과 같다 이 말씀 기준으로 아내의 남편이 되라 아내를 가르치는데 머리 되고 아내를 인도하는데 머리 되고 아내의 죄와 잘못과 책망받을 것까지 고치는데 책임지고 머리가 되고, 그 아내의 잘못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는 그 남편이 되라.
감독으로 그렇게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만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이 말씀에서 믿는 사람은 어떤 직책을 맡겨도 그 마음의 자세와 사람이 바로 될 수 밖에 없고 “책망할 것이 없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미세한 인간으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런 부분까지 자꾸 정리가 되어지고, “한 아내의 남편”이 바로 되어져보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혼자 선한 일을 사모하고 혼자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것은 유치원 단계요 어린 단계요. 실제로 한 사람의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에 말도 못하게 사람이 되어집니다.
아이 없는 여자는 그냥 여자고 아이 가진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혼자 교회 다녀 혼자 은혜 받는 것과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본 사람의 차원이 다르듯이. 목회자가 신학교에 가서 신학교수를 해서 역사 최고의 신학교수가 되는 것과 10명 개척교회의 목회자가 되는 것과 자기 구원의 차원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되어 집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라” 실제 다른 사람을 하나 데려다 놓고 내가 선한 일을 사모하며 내가 책망할 것이 없도록 노력하는 이것으로 가지고 자기 아내가 하나님 중심이 되고 그 아내가 책망 받지 아니하도록 지도해주고 도와주는 이런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면, 혼자 잘 믿으려고 노력할 때와 비교 못하는 차원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남편이 되며” (2020.03.30 월새)
3. “한 아내의 남편이 되라” 호적의 남편 되기는 쉬운데 남녀라 남자가 남편 되는 것은 쉬우나 한 아내에게 남편다운 남편 흠 없는 남편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주심처럼 하나님이 하나님의 딸을 맡기며 잘 부탁한다고 이렇게 숙제를 주어 놓았는데 이것을 제대로 깨닫아보면 한 아내의 남편이 되라는 이 숙제가 얼마나 큰 숙제인지 모릅니다.
여자들에게 여기 일자리를 남이 볼 때 좋은 자리를 남자한테 하나님께서 남녀로 나눠놓고 맡겨놓고 네 남자가 그런 사람 되도록 기도할 책임 네 남자가 그런 사람 되도록 순종할 책임은 너한테 있다. 우선은 남자가 좋은 듯하고, 알고보면 더 어렵고 더 난이도가 높은 고난도의 사명을 여반에게 주어 놓았습니다. 이 면을 바로 깨닫는 사람은 멋모르는 인간들이 영광스러운 자리는 남자에게 주고 알짜배기 하나님이 하늘나라에서 정말로 더 귀한 그런 사명 그런 영광은 여자에게 주셨구나 (2020.03.31 화새)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1. 그런 나라라도 믿는 사람은 하나님게 맡겨놓고 억울해도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거라. 그런 남자라도 아내가 순종하거라. 그러고나서 나에게 아이를 주면 그 아이에게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내 속은 파면 팔수록 하나님 중심만 나오고 내 속은 파면 팔수록 조금 더 온전하게 조금 더 구비하게 조금 더 자꾸 고쳐 나가는 사람이 되라. 왕을 보면서, 남자를 보면서 왕도 제 멋대로 대통령도 제 멋대로 남자도 제 멋대로 아버지도 제 멋대로 남편들도 전부 아내를 착취하는 사람인데 그런 험악한 모순되는 더러운 세계에 종으로 아내로 여자로 치이며 살면서, 앞으로 하나님이 아이를 내게 주면 이 아이에게 이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나는, 어떻게 하라고요? 아이의 잘못된 것만 휘비 파라고요? 아이 약점 아이 단점 아이 말 안 듣는 것만 자꾸 조사해가지고 이 모양이냐? 이 꼴이냐? 그런 엄마가 되면, 네가 억울해하던 그 왕이나 네가 억울한 그 남편이나 그 아이의 엄마된 너나 똑같은 감독들이다. 하나님께 매 맞을 왕들이다. 마지막에는 다 망하는 처참한 그런 네가 된다.
왕이 네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 인내로 “애매히 고난을 받고 이유 없이 당하면서도 주의 은혜를 구하며 참아라” 남편이 영 엉망이라도 주님이 세웠으니 그것은 죽는 날까지 붙들고 가거라, 그러면서 앞 날에 아이를 내게 주시면 이 아이에게 나는 그런 나쁜 왕 나쁜 남편이 아니라 이 아이에게 엄마는 요게벳 같은 엄마가 되겠습니다. 억울한 것을 많이 당해 본 아내가 마음 먹으면 좋은 엄마 됩니다. 좋은 왕 밑에 좋은 백성하고 좋은 남자 밑에 호강하는 공주로 살다가 아이를 가지면 좋은 엄마 되기가 어렵습니다.
탄압받고 착취받는 백성으로 살다가 남편마다 내 인생을 말아먹은 못된 뭐 같은 남자를 만나 인생의 손해 본 여자가, 아이에게는 나 같은 불행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아이에게는 참 좋은 엄마가 되어 보겠다. 왕한테 치여봤고 남자한테 인생을 당해봤으니까, 내 아이에게 나는 엄마에게 당했다라는 소리 당하지 않도록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중심의 엄마가 되고 하나님이 볼 때에 책망할 것이 많은 나인데, 그 책망할 것이 많은데 줄이고 줄이고 자꾸 줄여서 아이 때문이라도 줄여서 엄마는 부족하지만은 부족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엄마는 죄가 많은데 죄를 회개하려고 노력했고 어머니는 원래 신앙이 없었는데 나 때문에 기도하는 엄마가 되어졌고, 어머니는 옛날에 제 멋대로 살던 아가씨인데 아이 때문에 나 때문에 나를 위하여 주님 앞에 절제하고, 아담하고, 어떻게요? 나그네를 대접하고
"절제하며"
1. “절제하며” 좋으면 넘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좋아도 좋을만큼 좋고 그 이상 넘치는 즐거움은 딱 줄여놓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억울하면 억울한 것이 인간인데 억울한 것은 하나이나 열이나 억울한 것처럼 이렇게 입에 거품을 물으면 자기한테 건강에 좋지를 않습니다. 하나 억울하면 하나 억울한 것만큼 딱 가서 중단하고 계산하여 다음에는 더 낫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데, 하나 좋은 것은 열이나 좋은 것처럼 잔치하고 뭐 억울한 것은 아무리 들어봐도 하나 정도 억울한데 하나 억울한 것을 천년을 우려먹고 천 배 만배 억울하다고 뛰고 날뛰면 꼴깝이라는 말을 듣기가 딱 좋습니다. 이 이야기 멀리 있는 사람들한테 하는 이야기 아닙니다. 우리한테 하는 이야기이지. 억울하냐? 잘 계산해서 이게 잘못되고 내 판단이 잘못되고 저 사람의 능력이 그러니 그렇구나. 이 정도 진리의 말씀으로 계산한 다음 이것을 가지고 그 다음 돌아서야 발전이 있지. 하나 억울한데 열이나 억울한 것처럼 하나 억울한데 백이나 억울한 것처럼 불을 떼고 그냥 성냥불을 떼고 불 쏘시개를 넣고 해서 천하를 불태우면 자기가 타 죽습니다. 남을 태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분노에 내가 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절제입니다. (2020.03.29 주전)
2. “절제”라는 것은 조절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겸손은 낮추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절제는 줄이는 것을 말합니다. 왜 겸손이 낮추는 것이냐? 전부 높아지려고 하니까 낮아지는 것이 겸손이다 그러는데 겸손의 정확한 단어는 높아진 것은 낮아져야 되고 낮아진 것은 높아져야 그게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자리가 겸손입니다. 그 자리 이상으로 올라가려는 것이 백의 백이기 때문에,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 이렇게까지 되어져 버렸데 지나친 겸손은 고등교만이 되어진다는 것도 기억해야 됩니다. 절제라는 것은 돈을 써도 화를 내도 뭐든지 넘쳐서 탈이라 줄여라 그러는데, 하기 싫은 것은 할 만큼 해야 그게 절제가 되어집니다. 학생으로 말을 하면 백의 백 명이 공부를 덜해서 탈이니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만은 아주 가끔 어떤 사람들은 책을 너무 좋아하고 공부를 너무 좋아하고 너무 책만 들여다보고 있어서 대단히 문제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공부하라는 말은 독입니다. 농담 삼아서라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는 학생을 보며 공부하라 하지만은 너무해서 탈이 나는 사람에게는 좀 쉬라. 이리 말도 하는 겁니다. 그것을 조절이라 그럽니다. “절제하며” (2020.03.30 월새)
"근신하며"
“근신하며” 근신은 그냥 쉽게 조심입니다. 어째든지 조심 또 조심, 조심이라는 것은 천번이고 만 번이고 좋은 겁니다. (2020.03.30 월새)
"아담하며"
“아담해라” 갖출 것을 있을 것을 질서에 따라 바른 위치에 정리를 해 두거라. “아담하며” 있어야 할 때에 있는 것이 아담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여인들로 하여금 아담하며” “자기를 꾸미지 말고 아담하며” 갖출 것 있어야 될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담하며 (2020.03.30 월새)
"나그네를 대접하며"
1.“나그네를 대접하라” 이런 말씀 모르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천국을 잊어버린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천국을 아는 사람은 천국의 백성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해라 자기 본 나라가 어딘지 모르고 천국을 가는 우리는 나그네인데 세상만 살 줄 알고 천국을 잊어버린 사람이 불쌍한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를 붙들어 밥도 주고 잠도 재우지만은 나그네가 잃어버린 천국을 가르쳐 주거라. (2020.03.29 주전)
2. “나그네를 대접하며” 천국이 제 고향인데 세상은 남의 나라로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세상이 자기 나라인줄 알고 천국을 잊어버린 사람, 이런 사람을 모셔다가 세상은 하룻밤이다. 우리가 가야 될 나라는 우리의 모국 우리의 조국은 천국이다. 이 일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때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겁니다. (2020.03.30 월새)
"가르치기를 잘하며"
1. “가르치기를 잘하며”. 가르치는 것은 목사만 그러지 왜 여자가 가르치기를 잘하라 그러나요? 아이가 생기면 아이에게는 엄마는 머리니까 왕이니까 목사니까. 교회 목사 잘 가르치면 온 교인들은 다 은혜 받고 됐지 뭔 교인들이 설교 연습할 것이냐? 자기 젖 먹는 아이를 목회자가 가르쳐 은혜 주는 것보다 아버지가 가르쳐 사람 되는 것보다 유아 교사 잘 만나서 아이 되는 것보다 대통령 잘 만나 그 아이가 아이되는 것보다 엄마 하나 잘 만나면 아이는 인물 나옵니다.
모세가 좋은 기독교 보육원 다녔습니까? 모세 아버지가 모세를 가르친 기록이 성경에 나옵니까? 모세가 살던 애굽 땅에 바로 왕이 유대인입니까? 다윗왕이었습니까? 모세 못 죽여서 난리가 난 왕인데. 모세는 역사적으로 가정적으로 가장 나쁘고 안 좋은 것만 다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어머니는, 디모데전서 3장 1절 이하에 모세에게는 좋은 감독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바로를 저주했겠습니까? 막 기회만 오면 바로를 암살할란다 그런 암살단원이었겠습니까? 바로가 유대인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다 죽여도 그것은 잘못됐으나 그것은 하나님게 맡기고 그 바로 왕궁에서 자기를 유모로 부를 때에 이 모세를 키우면 앞으로 바로 왕이 자기 신하를 삼고 자기 후계자를 삼아 자기 민족을 도륙낼 것이나 그것은 훗날이고, 유모로 가서 그 다음 모세를 바르게 길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40살 때까지 커 나온 것을 보니까 바로 왕에게 충신 바로 왕에게 인재, 애굽 백성들에게 존경받고. 애굽 백성에게 존경 받으면 그러면 자기 민족 유대인 착취하는데에는 그러면 채찍을 드는 줄 알았더니만은 목숨 걸고 또 구한다고 나섰습니다. 참 어떻게 어머니 하나가 이렇게까지 아이 하나를 길러 놓았는가 (2020. 03. 29. 주후)
2. “가르치기를 잘하며” 말로 가르치는 것이 제일 낮은 수준,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조금 더 나은 교사, 인격으로 가르치는 것이 제일 위에 있는 교사. 주남선 목사님의 말로 배운 것, 행동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그 분 자체로 배운 겁니다. 그 분을 생각해보면 대처 자세가 나옵니다. 아 당연히 이렇게 하셨겠다. 그 분의 말로 배우는 것은 설교록을 검색해보면 나옵니다. 그 분의 기도생활 그 분의 경건생활 그 분의 한 생명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붓던 그런 생활, 그 행동을 보면 오늘의 나를 챙깁니다. 제일 어려운 마지막 순간, 이렇게 되었을 때에 이런 경우는 어떻게 했겠는가? 행동의 설교, 목회자의 얼굴을 볼 때에 목회자의 행위를 볼 때 목회자의 살아온 인생을 살펴볼 때 참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 이게 말 없이 행동으로 설교하는 겁니다. 말도 해야 되고 말 속에 행위를 담아 행위가 담기는 만큼 말은 10개 했는데 행위를 2개 담으면 두 마디만 건너간 것이고 100마디를 했는데 가르치는 사람의 실행이 하나 따라갔으면 한 마디만 건너간 것이고 백 마디 했는데 행위가 천 개가 나가면 백 마디 속에 천 개의 교훈이 들어가는 것. 적어도 이것은 기억해야 됩니다. (2020.03.30 월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