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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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성경 02출애굽기27:01-08
정동진 0 57

27:1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27: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찌며
27: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찌며
27:4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27:5 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찌며
27:6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찌며
27:7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찌며
27:8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찌니라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너는 조각목으로'
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아무리 뒤져봐도 우리 속은, 못난 것 밖에 없고, 연약한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 ‘연약’하고, ‘못난 것’이라야, 강한 하나님이 붙들고, 마음껏 역사를 하기 때문에! 5분만 숨쉬지 않으면 바로 송장되는. 참 약하고, 참 무능한 우리를 만드심은, 완전자, 전지전능의 강한 우리를 만들기 위한 ‘선물’입니다.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제단’은 기본적으로 ‘단’입니다. 단이라는 것은 ‘높아야’ 단입니다. 여기 높이가 3규빗입니 더 높여도 되지만은, 전체의 ‘절제’ ‘균형’. 전체의 ‘인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딱딱 맞춰놓고 정해놓았습니다.

항상 ‘규빗’이라는 단위는, ‘한 단위’, ‘한 몫’이라고 했지요? 1층, 2층, 세 규빗, 3층으로 되어진.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삼층천으로 끌려갔더라.’ 셋째 하늘입니다. 이 땅 위에 창공의 저 하늘. 위에, 영계와 우주 사이의 ‘공중’, 주님이 오실 때에 거쳐 오실 공중. 그 위에 영계의, 1층, 2층, 3층을 표시해서, 여기 ‘높이’는 3규빗으로 나누었습니다. ‘셋째 하늘’을 표시해서. 영원한 영계의 영원한 해결!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의 해결. 주님 오실 때에 공중의 해결. 그 위의 영계의 영원한 해결. 이게 제단의 높이가, ‘삼층천’으로 그렇게 보여졌습니다.


제단은 가로세로, 넓이와 길이가 꼭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가 5규빗입니다. 5는, 10을 전제하고, 절반이 5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신’. 사람입니다 ‘인’. ‘신인양성’ 한분입니다 ‘일위’. 제단 위에 바쳐, 찢어, 피 흘려 우리를 위하여 죽는 주님은, 주님 안에 ‘신인양성 일위’의 ‘하나님’이 아니라, 주님 안에 하나님 ‘신성’은 ‘완전자’입니다. ‘무형’입니다. 못으로 박는다고, 못이 박히지를 않습니다. 찢는다고 찢어질 ‘살’도 없습니다. 매를 맞으면, 손바닥이 맞고, 몸이 맞지. 마음은 동참하며, 아픔을 느끼는 것이지. 마음은 때린다고, 맞는 존재가 아니지 않습니까? 몸보다 신비한 것이 ‘마음’. 마음보다 시공을 초월하여, 신령한 것이 인간의 ‘영’. 그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영을, 없는 가운데에서 만드신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시기 때문에, 제단 위에 제물로 올려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신인양성 일위’. 하나님이며, 사람인 그 두 분이 한 분이 되셨는데, 그 두 분이 한 분된 ‘인성’만, ‘인간’만 제단 위에 올라갑니다. 그래서, 10규빗이 아니라, 5으로 절반을 냈습니다.

그리고, 장광, 넓이와 길이가 같은 것은, 인간인 우리의 마음은, 주신 분담, 넓이보다는 인내로 끝까지 계속가는, 길이가 더 길어야 되고, 그래야 ‘실’이 되고, ‘연결’이 되고, 이어지는데. 주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죄 없는 인성을 가진 ‘완성자’이므로, 주님에게 주신 넓이와 길이는, 시공을 초월하여 꼭 같습니다. 그래서, 넓이가 5규빗. 완전자 하나님의 ‘인성’, ‘신성’. 둘 중에 절반인 ‘인성’만 바쳐지는 곳입니다. 그 다음, ‘장이 5규빗이라’ ‘광이 5규빗이라’ 인간과 달리, ‘완전자’이시시니, 변함이 없으시니 넓이와 길이가 같습니다.


'네모 반듯하게 하며'
제단의 모양은, 네모가 ‘반 듯’합니다. 장광이. 만사 옳고, 바르게. 이리봐도 옳고, 저리봐도 옳고. 이리봐도 변함없고, 저리봐도 변함없는. 주님은 ‘네모반듯하게’ 어느 면으로 봐도, 옳고 바르게. 완전하신 주님의 ‘인성’을 가르칩니다.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단에는 뿔을 만듭니다. 소, 사슴, 염소, 동물의 ‘뿔’이라는 것은, 힘을 말합니다. 힘! ‘대속의 능력’ 뿔을 만들어라. 주님이 피 흘려 돌아가실, 주님의 희생의 제단. 그 제단 4편, 동서남북 전부,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어라! 주님의 대속은, 대속으로 끝나지 않고, 대속의 능력이다! 반드시 죄인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다! 실상이다! ‘제단에는 뿔을 만들어라.’ 대속은, 말로 대속이 아니라, 대속의 실상의 능력이다!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제단은, 만들기는 조각목으로 만드나, 싸는 것은 전부 ‘놋’입니다. 뿔도 ‘놋’입니다. 복음 운동에, 힘이 들어가도, 피를 흘려야 되고, 세상을 맞서야 되는 곳에는, 늘 ‘놋’이 상대를 합니다.
주님 이땅에 오셔서 33년 걸어가신 그 걸은 걸음이, 천국이 아니고, 교회 안에 대제사장으로만 살지를 않으시고, 죄악 세상 빌라도와 헤롯과, 별의별 원수들 사이를 해 집고 다니셨기 때문에, 그 걸음걸음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 그 주석이, 풀무의 단련한 빛난 주석의 그 주석이, 바로 ‘놋’과 같은 뜻입니다. ‘놋으로 쌀찌며’

'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제단이 있으면, ‘중간에 그물을, 절반에 놓아라.’ 불고기 집의 ‘석쇠’를 생각하면 됩니다. 고기를 작게 구울 때에는, 이만한 통에 안에 숯불을 놓고, 그 위에 ‘망’, ‘그물망’을 놓고, 그 다음 고기를 올려놓으면, 잘 타지요? 양이 적을 때에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막의 제단은, 제단 위에 소를 잡아 올려야 되고, 양이나 염소를 잡아다가 올려야 됩니다. 통째로 올려야 되는 수도 있습니다. 양이 많고 부피가 많으니까, 통 제일 위에 ‘망’이 올라가면, 이거 떨어지고 큰일 나겠지요?

그래서, 3규빗 높이의 ‘놋’으로 된, 안에는 ‘조각목’, 밖에는 다 ‘놋’으로 안팎을 쌌는데, 이 불통의 중간에다 대고 ‘석쇠’. 그물! 그물은 ‘석쇠’를 말합니다. 석쇠를 단 안에, ‘중간 쯤’ ‘절반 위치에 놓아라’ 그러면, 밑에는 불이 타고, 위에는 올려놓은 제물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위에서 불에 휩싸여, 타게 되어집니다.

‘제단 절반에 대고, 그물을 두라.’ 헌신, 희생. 주의 대속, ‘효과적으로’, ‘쓸모 있게’, 효과적으로. 왜? 주님이, 아담이 범죄한 바로 직전에 오지 않으셨던가? 왜? 주님이 6천년 지나가는 말세, 오늘 내게 오셔서, 제단 위에 주님이 십자가에 우리 위해 죽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영광이며,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하겠습니까? 역사 6천년에 주님은 언제 오셨지요? 구약 4천년이 끝나고, 신약 2천년 시작하는 때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시간적으로 보면, 제단의 2/3 높이에, 그물이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구약, 신약으로 짤라버리면, 제단에 정확하게 ‘절반’에 걸려, 주님은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살 찢고 피 흘리신, 그 대속의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제단의 높이 절반의 놋으로 그물을 만들어, 밑에는 불, 위에는 대속의 짐승을 올려놓거라.’ 이게 주님의 ‘대속’을 효과적으로, ‘헌신’을 효과적으로. ‘앞서가신 주님을 따라,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희생하며? 어떻게 복음을 위하여 각오할까?’ 그냥 은혜 받고 울컥하면, 벌컥 해버리는 경우. 나중에 돌아보면 ‘주관’이 많습니다. 잘 배우고 잘 계산하고, 양심으로 비교하고 평가하여, ‘어느 위치에 제물을 놓는 것을,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까?’ .

충성, 봉사, 희생이 제단의 기본이지만은, 하나님의 주신 형편, 입장이 ‘앉아서 얻어먹고, 또 차려주는 밥만 먹으라’고 할 때에는, 그럴 때도 있는 겁니다. 여기 제단의 ‘그물’은 ‘중간’에 갔다놨습니다. ‘헌신을 효과적으로.’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지며'

제단도 ‘네 귀퉁이’에 ‘고리’를 달았습니다. 옮길 때에, ‘막대기’를 넣어, 어깨에 지고 갈 수 있도록 ‘채’를 넣는 ‘고리’입니다. 그래서, 이 고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동’을 말합니다. 주를 위한 헌신, 주를 위한 희생, 주를 위한 대속의 수고. 어디로든지,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라.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짐승을 잡아 태우는, 번제를 드리는 제단이니까. 이 제단에 필요한 기구들이 있습니다. 따라가는 기구들. ‘단의 그릇을 모두 놋으로 만들어라.’

'재를 담는 통'
재통은 ‘헌신의 뒷처림’. 제단에는, 대속의 희생, 구원의 수고를 하고 나면, ‘재’가 남는 법입니다. 제단 위에, 짐승을 잡아 불 태우는 이 ‘번제’, 살 찢고, 피 흘리는 이 대속이,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버리는데! 제단 위에 나를 대신, 나의 죄 때문에, 한 생명이 찢고, 죽고, 피 흘리고, 불에 타고 나면! ‘재’가 남게 되어 있습니다. ‘뭔 재가 그리 많게?’ 어린 양보다, 황소 한 마리를 불태우고 나면 재가 10배나 더 많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많은 대속, 많은 희생, 많은 구원, 많은 주의 은혜를 받고 나면, 별의별 것이, 다 나오는 법입니다. 재를 담는 통. 잘 담아, 잘 옮겨, 잘 처리하면 되는 겁니다.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구원 운동에 떨어지고, 구원 운동에 뒤에 남는 일 처리들이 있는겁니다.
제단 위에 올라가는 대속의 제물은 영광스럽게 보이고, 그 뒤에 남은 ‘재 처리’가 보이지 않으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재 담는 통도 있고, 부삽도 있고. ‘재 통’은 뭐라고요? ‘헌신의 뒤처리’입니다. 헌신의 뒤처리. 부삽은요? ‘재의 이동’. 그 재를 ‘옮기는’, 잘 옮기는, ‘재를 옮기는’ 이게 ‘부삽’입니다. 다 필요합니다.

'대야'
재단 위에 올릴 제물을 잡으면, 토막 토막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또, 배를 갈라, 그 안에 ‘간 꺼풀’, ‘콩팥’ 다 해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씻고, 그 다음 올려놓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씻고 옮기는데, ‘대야’가 필요한 겁니다.

‘헌신을 돕는’ 이게 대야입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의 일선을 ‘지원하는’. 굉장히 필요합니다,

'고기 갈고리와'
제물을 토막 내서 그 다음 순서를 기다릴 때까지, 고기 갈고리로 ‘걸어’놓습니다. 고기 갈고리. ‘헌신을 기다리는’, 아직 순서가 되지 않으니까.
(180807 화밤-집회6)

번호성경성구 (1989년 이전-백영희, 1990년 이후-연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