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성경 | 40마태복음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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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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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눅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라는 말씀은 마6:7의 중언부언과 중복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중언부언'은 인격이 무인격을 상대로 대화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인격을 가진 인간이 듣지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돌을 상대로 했던 말을 반복하는 주문식 기도도 중언부언이지만 인격의 존재가 무인격의 돌을 상대로 무슨 말을 다르게 해도 크게 보면 자기 혼자 주관만 반복하게 되므로 이는 중언부언입니다. 그러나 눅18:7에서 한 가지 소원을 위해 밤낮 같은 말로 부르짖는다 해도 인격을 가진 우리가 신격의 하나님을 상대로 우리의 소원을 말씀 드리고 그 신격의 하나님이 그 뜻을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소원을 반복하게 되면 겉으로는 같은 말만 오고 가는 중언부언처럼 들려도 그 내용은 깊이를 더해가고 차원을 더해가며 실감이나 여러 면을 담고 대화하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중언부언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성프란시스가 1개월간 주님은 누구며 나는 누구냐는 말만 반복했으나 그 기도는 중언부언이라 하지 않습니다. 외부 표현은 같은 말의 연속이지만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신격과 인격의 깊은 대화였고 그 대화는 오갈 때마다 대속을 아는 방향과 깊이가 달랐고 그렇게 따라오는 프란시스를 인도하며 대속의 세계를 알려주는 주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무인격을 상대하면 무조건 중언부언이 되고
인격이 신격을 상대하게 되면 그 내용이 중언부언이냐는 것이 문제이지 외부 부르짖는 말이 반복된다 해서 무조건 중언부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