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성경 | 11열왕기상1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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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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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열왕기상13: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어디 버린 바 되니? 선지자가 외친 여로보암은 안 죽었습니다. 죄 지은 여로보암은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로보암에게 외친 선지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길에 버린 바 되었습니다. 어디에? 땅에. 세상에. 두고 갈 세상에 버려 져 기능구원은 전부 지옥으로 다 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길은 무슨 길요? 인생길입니다. 앉은뱅이란 인생길 바른 신앙의 걸음이 주저 앉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선지자가 사자에게 당하고 길에 버린 바 되니라. 땅에 버린 바 되니라. 땅이라니요? 하늘과는 상관 없는 두고 갈 세상에 버림 받고 천국 갈 때 가져갈 기능은 하나도 없게 되었더라. 지옥에 쓸려갈 멸망의 것들이 되었더라.
성경에 사자 나오면 다는 아닌데 대부분은요? 좋지 않게 나오는 사자는 사망의 세력, 사탄을 말합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 사자를 통해 선지자의 신앙을 먹여 삼킨 마귀가 그 전에 어디 있었지요? 늙은 선지자에게 있어서 거짓말을 해서 다른 사람 신앙을 주저 앉혔습니다. 그 전에 누구에게 먼저 들어갔던가요? 면밀하게 보셔야 됩니다. -- 교회는 아무리 숫자가 작아도 -- 보려면 볼 수 있습니다.
나쁜 아이가 사소한 귀신에 들어가서 안 할 짓을 하고 싸웠다, 그리고 부모가 영향 받아서 교회 휙 집어던지고 집에 쾅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까 신앙 막 출발하는 남편이 잘 됐다 하며 주저 앉습니다. 겉은 사자인데 속은 누구지요? 마귀입니다. 힘 있는 젊은 선지자 하나님에게 붙들려 하나님 손발 노릇하는 이 선지자를 길에 던져 버렸습니다. 뱀이 하와를 통해 아담을 삼킨 것처럼 젊은 선지자를 사자로 삼켰습니다. 그 전에 늙은 선지자 안에 들어가서 주저 앉혔습니다. 그 귀신이 늙은 선지자 속에 들어가서 천사 모습으로 그 죄를 짓기 -- 속에 들어가서 돌아올 때 고생했다 오늘 대단한 일 했다 역사에 없는 일 했다 여로보암 왕이 열 지파를 거느리고 -- 아도니람을 쳐 죽이는 살기 등등한 적진에 들어가서, 오늘 남한 목사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 쳐 죽일 놈아 하고 외치고 돌아오는 판입니다. 무사히 돌아올 때 이 선지자가 오늘 엄청난 일 했다 굉장한 일 했다. 이번 집회 겨자씨 비유에서 뭐가 보였지요? 자기의 한 일이 보였습니다. 자기 오늘 한 일이 보였으니 저절로 자기 마음 속에 뭐가 나오지요? 이만하면 대우 받을 만 하지요. 장합니다. 심리적으로 바로 생기기 때문에 -- 괜찮은 점 수고한 점이 눈에 보이는 순간 인간 심리는 즉시 우쭐해지고 대단해 지고 남이 이 정도 될 때는 칭찬 해야 되며 물을 가져 와야 되며 떡 가져와야 되며 이 마음이 들어가는 순간 뭐가 바로 따라 오지요? 섭섭한 마음은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이 본 나의 일과 내가 본 내 잘한 일 비교해 보면 같습니까 차이 납니까? 똑같은 일을 두고 내가 보면 더 잘해 보이고, 남들은 잘하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선지자가 당연한 거 아니야? 조금 깎아 버립니다. 이 차이만큼 분쟁 섭섭 생깁니다. 부부 갈라서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부모 자식도 세월 지나가면서 섭섭하기는 하나 부모가 짐을 대기는 하나 참고 그리그리 가는 겁니다. 그게 없을 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내 목숨 다 바치고 싶은 자녀인데. 그게 두세 살 때는 엄마 아니면 난리 나는데 세월 가면 격차는 크게 납니다. 뭐가 보이지요? 내가 보입니다. 나중에 뭐가 보입니까? 못한 나가 아니라, 커 가는 어린 아이들이 내가 어릴 때 얼마나 대변을, 소변을. 과거 내 부족하고 잘못된 게 보이면 효자 안 될 수 없고 천하 없는 효자도 학교 갈 때 1등했지 맨날 부모 모시다가 표창했지. 자기 잘한 게 보이는 순간 인간은 모든 문제는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섭섭함은 분쟁은 모든 종류의 신앙 절단은 대개 이 사람 저 사람 하는데 내가 내 속의 잘한 걸 보는 순간, 눈에 보이는 순간. 복 중의 복은 어떻게 참 미안한 거 죄송한 거 부족한 것. 자기 부족한 것 미안한 것이 보이면 앞날에 어떤 사람 되지요? 자꾸 고쳐지면서 발전 되지요. 자기 지난 날 잘한 점 보이면 노력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백해무익입니다.
그래서 원수 중에 원수는 내 속의 나인데 나 속의 나 중에서도 나의 괜찮은 점 나의 잘 된 점 이걸 보는 눈. 해결 못합니다. 천하 다 줘도 안 됩니다. 구약도 이렇게 신약을 가지고 구약을 살펴 보면 한도 없이 들어가는 겁니다.
11.08.14.연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