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
성경 | 11열왕기상18:41-46 |
---|
서기
0
46
-0001.11.30 00:00
열왕기상 18:32-35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바알 선지 아세라 선지 모조리 잡아 죽이고, 41절. 엘리야가 아합을 또 대우하고 섬겼습니다. 이건 또 챙겨야 되겠지요. 뒤에 또 강퍅하게 될지라도 지금은 하나님의 능력을 봤고 믿는 사람이라 돌이켰으면 챙겨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기도 모습을 보십시오.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간절해지면 첫 번째는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기도해도 하나님과 대화가 기도이기 때문에 자세는 상관 없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무릎이 펴지면 지멋대로 돌아다닌다는 말입니다. 자행이라 하지요. 내 마음대로 걸어 다니는 것. 무릎을 꿇는다 말은 제멋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 뜻입니다. 무릎 꿇고 엎드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 때 고개를 펴고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자신 있게 정상적일 때는 이리 살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 앞에는 무릎 꿇어 내 멋대로 하지 않겠나이다. 자기 무릎을 - 버리고. 그리고 엎드려, 하나님은 높고 나는 그 앞에 순종할 낮은 인간입니다. 꿇어 엎드려. 기도의 원래 모습입니다. 발이 아프면 펼 수도 있고 하지만 정식은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겁니다.
꿇어 엎드려 기도하다가 간절이 더해지면 그 얼굴이 땅바닥으로 기어 내려가다 보면 자동적으로 무릎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지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또 언제 일곱 번 있었던가요? 한 번 안 되니까 두 번. 또 세 번. 하다 보면 되는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일인가요? 또 그런 적이 있었지요. 나아만 대장. 일곱 번째 강에 들어갔다 나올 때 깨끗해 졌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왜 일곱 번까지일까요? 나아만 대장 속의 불신, 우연의 일치, 설마. 하나님이 완전히 그를 붙들고 그가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릴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속에는 의심 빈 곳 도망갈 데. 별별 속에 들어 있는 요것을 하나님 앞에 완전히 다 정리할 때까지 라는 말입니다. 일곱 번.
좋기는 일곱 번 채울 게 아니라 얼른 두 손 들고 빠르게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께도 나에게도 모두가 좋은데.
또 46절.
엘리야의 달리기가 누구 정도 됐다고요? 말이 되었더라. 사람의 두 손은 날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파리처럼 양팔을 열심히 날개짓 한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발은 장소 이동 뛰기도 하는데 말은 아예 태우고 달리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만든 겁니다. 엘리야의 발이 마라톤을 했을지라도 마차 앞을 띄어가지는 못하는 인간입니다. 이런 것을 능력이라 합니다.
내 능력으로 쥐어 짜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충성이라 합니다. 내 두 손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 불신자도 할 수 있는 것은 실력이라 합니다. 여기 엘리야가 마차 앞에서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이 힘은 이 실력은 충성도 실력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걸 신앙이라 그럽니다. 믿는 것이라는 것은 요걸 믿는 것이라고 그럽니다. 엘리야의 이 시기에 하나님 아니고는 안 되는 것, 어떤 것이 있었지요? 처음부터 16장 17장 앞으로 가면. 처음에. 하늘이 비를 닫아 우로를 주지 아니하리라. 말이사 누가 못합니까? 되냐 안 되냐가 문제지. 이건 인간의 예지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뭄에 대한 예언. 또 두 번째 일은요? 3년 반을 먹어 살아 난 것. 사르밧 과부의 기름병이 다하지 않은 것도 기적입니다. 첫 번째는 예언, 그 기간에 살아남은 것. 세 번째는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 네 번째는요? 비가 오게 되어 진 것. 무릎을 꿇고 머리 박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그리고 다섯 번째는 마차 앞에 이스르엘 들어가는 데까지 달려 갈 수 있는 것. 이런 것을 신앙이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필기하고 찬송 연습하고 그런 것은 이런 신앙 - 받기 위하여 이런 생활 위하여 준비하는 겁니다. 구하는 겁니다. 몸부림치는 겁니다. 누구에게 가뭄의 예언을 맡기느냐. 누구에게 가뭄 동안에 하늘에서 먹여 살리느냐. 누구에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느냐. 누구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느냐. 누구에게 말에 앞서 달려 갈 수 있는 이런 힘을 주시느냐. 누구에게 주시느냐. 언제 어떻게 주시느냐. 성경 읽는 자에게 기도하는 자에게 주일 지키는 자에게 연보하는 자에게 전도하는 자에게. 그래서 주일을 지키라 연보를 해라 심방을 해라 성경을 읽으라 예배를 참석해라.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오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11.11.06. 연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