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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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66요한계시록22:04 |
담당J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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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09:10
4) 하나님과 어린 양의 얼굴
(1) 대면
우리가 그 나라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얼굴을 볼 것이다. 주님이 사람 되어 왔을 때도 두 눈으로 주님을 보면서 누군지 알아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나라에서는 지식으로 주님을 보고 지혜로 하나님을 직접 접할 것이다. 선으로 사랑으로 의와 거룩과 진실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자꾸 대면하게 된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죽은 그 작곡가의 뜻을 대하는 것처럼, 그림을 보며 이미 죽은 그 화가의 얼굴에 미소를 볼 수 있고 근심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무형이라 오늘 우리가 보듯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린 양도 신인양성일위지만 그 분의 부활하신 얼굴을 보는 것은 이 땅 위에서도 죄인들이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어서 그림으로 나오는 형태와 빛깔의 주님이 아니라 신인양성일위의 수고를 보는 것이 어린 양을 보는 것이고 나의 죄 때문에 당한 고난 속에 나를 사랑하신 그 걸음을 가림 없이 보는 것이 어린 양을 보는 것이다.
(2) 종들의 이마
그의 이름도 종들의 이마에 있다. 여기 ‘그의 종’이란 단수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 둘 중에 하나라야 문법에 맞다. 우리는 그렇게 읽지 않는다. 한 분으로 읽는다. 삼위일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린 양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역사한다. 그래서 우선은 어린 양이고 더 깊이 배경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종이며 우리는 어린 양의 종이다. 그런데 어린 양을 붙들어야 하나님께 나아 가기 때문에 애매하면 어린 양을 먼저 붙드는 것이 좋다. 우리의 이마는 우리의 사상과 생각을 말한다. 이 땅 위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의 생각은 오로지 주님의 대속, 그 은혜로 우리는 우리가 되었고 지금 영계에 있다. 이런 사람만 영계에 데려다 놓았다. 오늘 매 현실에서 돈만 생각하고 자기 사욕만 생각하고 자기 명예만을 채워 그 생각뿐인 사람은 그런 이마 속에 생각을 모두 버리고 와야 하니 텅 빈 이마가 된다. 주님이 구원한 성도라는 이름, 주님이 구원한 은혜 때문에 이 땅 위에서 주님의 구원만 감사하고 생각하고 살아 온 그 이마 그 사상 그 생각을 말한다.
(2020년 5월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