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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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03레위기01:10 |
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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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02:02
지금 소에 이어서, 양입니다.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면” 먼저 양과 염소를 복습을 많이 했으니까, 간단하게. 양과 염소는 비슷한데, 둘을 나란히 길러본 사람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길러본 사람은 너무 차이가 나서, 극단적으로 비교가 됩니다. ‘순종’하면, 뭐라고요? ‘양’. 그 다음 양하고 비교를 하면, ‘거역’. 그러면 ‘염소’입니다. 순종의 마음, 거역의 마음. 믿는 사람은 중생 되는 순간, 두 마음이 한 마음 속에 다 들어 앉아 있습니다. ‘내 속의 염소는 언제 활동을 하는가? 내 속의 양은 언제 들어 앉아, 그래도 순종하는가?’ 염소는, 양 떼가 모이면 가서 들이받아서 다 흩어놓습니다. ‘분쟁’. 남 잘되고, 남이 편한 꼴을 못 봅니다. ‘시기’, ‘질투’, ‘분쟁’. 옆집에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배가 아파 가서 그냥 떠 받아야 되지요? 염소니까. 양은 모여서, 눌려 죽는 줄도 모르고, 10마리, 20마리 있는대로 전부 산더미처럼 들러 붙어버립니다. ‘화목’, 염소는 ‘분쟁’, 양은 ‘화목’. 풀을 뜯어 먹어도, 양을 먹여본 사람은, 억센 양들은, 젊은 숫양들, 억센 양들은, 좀 질긴 것, 사나운 것을 뜯어먹고, 그리고 나면 새끼들은 그 밑에 여린, 가는 풀, 여린 풀을 뜯어먹고. 이렇게 다른 양을 생각하는 것이 양이고. 염소는, 자기 먹을 것 대충 먹고, 나중에는 밟아서, 남 먹을까봐서, 남이 잘될까봐, 남이 평안할까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플까봐. 사촌까지 갑니까? 형제끼리도 그런데.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실은 형제도 크면 그럴 것인데, 참 안면 때문에 그냥 사촌을 그냥 괜히 갔다댔지. 설날에 한 식구들 모였는데, 큰 형님 돈 벌어 잘 됐으면, 작은 동서 좋아서, 우리 편 잘 되었으니까 박수칠 일인데, 왜? 소화제 먹으러 다니나요? 내일 저녁에 가기로 해 놓고, 몇 마리 듣고 점심 때에 가버리나요? 양이 아니라, 우리 속에는 염소가 들어 있습니다. 염소. 어쨌든, 주인이 말하면 양은 ‘예’. ‘양순’ 합니다. 염소는 거칩니다. 억셉니다. 그 억센 것도, 주를 위하여 견딜 때는 좋은 장점입니다. 양도 양순해서 좋지만은, 이단이 데려간다고 줄줄 따라가는 양떼들을 봐보십시오. 항상, 장점, 단점을 섞어서 우리에게 주시며, 어떤 죄악 속에서도 장점을 챙기면 에덴동산 되고, 에덴동산 안에서도 단점은 찾으려 하면, 선악과를 먹게 되어집니다. 또 양과 염소는, 자기가 자기를 볼 때 염소는 잘났습니다. ‘교만’. 양은 ‘겸손’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운게 좋은 겁니다. 거친 세상을 살 때는, 잘난 척도 하시고, 돈도 벌어야 되고, 진급도 해야 되니까, 경쟁도 하고 별의 별 짓을 다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죄송하여 겸손한 것이 맞고, ‘뭐 이 정도면, 교회 중간쯤은 가지 않겠는가? 이 정도면 교회 원로 정도 되지 않겠는가?’ 미안하고 죄송하여, 고개 숙일 수 있는 겸손. 교회를 50년, 70년 다니고도 끝까지 양의 겸손으로 종신하는 목회자, 교인들도 계시고. ‘이 정도 수고했는데, 안 알아줘? 나 없이 니들이?’ 이 마음이 퍼뜩 들어오는 순간, ‘이건 염소구나!’ 잡아 죽일 자기입니다. ‘겸손’과 ‘교만’. 양은 서로 서로 ‘사랑’의 심성이 있습니다. 염소는, ‘질투’의 그런 본성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와 서양과 이스라엘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까봐, 여기 저기 자료를 좀 찾아봤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역사의 자료든, 현재든, 양과 염소는 이렇게 닮았는데, 정 반대로 만들어놓으시고 오늘 여기 10절에, 양이나 염소로 번제를 드리려러거든. 이렇게 두 개를 나란히 놔뒀으니, 내 마음 속에 양 성향, 염소와 같은 요소를 살피며, 하나씩 나갑니다.
(190806 화새-집회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