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것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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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66요한계시록14:01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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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1.30 00:00
1) 어린 양과 신앙의 사람들
계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1) 기록의 흐름
① 또 내가 보니
‘또 내가 보니’라고 시작하고 있다. 계시록 전체는 다른 성경과 마찬 가지로 기록의 흐름이 모두 이어 지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이렇게 이어 지는 표시를 할 때마다 우리는 앞에서 있었던 일을 계속 살피며 이어 나가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다.
② 13장
13장에서 죄악의 바다에서 나온 맹수 같은 세상과 아주 순수해 보이는 도덕의 세상이 하나가 되어 세상에게 속하지 않고는 매매를 하지 못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짐승의 수와 하나님의 수를 비교하며 짐승의 어떤 위협도 협박에 그칠 뿐임을 알고 어린 양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바로 된 교회와 바로 된 신앙의 내면을 모아 보고 있다. 내 속에 신앙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세상과 싸울 수 있다.
(2) 시온산
① 어린 양
우선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서 있다. 하나님의 산에 우뚝 서서 천하를 굽어보고 있다. 부활하신 어린 양은 하나님 앞에 어린 양이지 세상과 사단에게는 점령군의 통치자다. 어린 양에게 속하면 세상이 힘으로 뺏아 갈 수 없다.
[어린 양: 양은 순종, 어린 양은 더욱 순진하게 순종. 아버지의 뜻이 택한 백성의 구원이니 두 말 없이 뒷 말 없이 계산 없이 바로 고난의 길에 나선 면을 ‘어린 양’이라 한다.]
[시온산: 시온산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 예루살렘을 뜻한다. 13장에서 죄악 세상과 도덕 세상 전부를 귀신이 붙들고 신앙을 몰아 친다. 그러나 그 세상을 들여다 보며 계산해 보면 땅에 것일 뿐이다. 그렇게 천하가 쓸어 가고 다른 신앙이 휩쓸릴 때 어린 양을 따라 나서면, 아버지께 순진하게 순종한 고난의 주님을 따라 13장의 세상에 속하지 않고 따르지 않고 주님을 따른 사람은 주님을 따라 시온산에 선다. 13장에서 세상에 붙들려 실패한 신앙이 있고, 어린양의 고난을 끝까지 따른 승리의 신앙. 그 요소 그 기회 그 기능만이 시온산에 설 하늘의 것이다.]
② 144,000명
▪144,000명
어린 양에게 속한 성도의 수가 144,000명이다. 누가 144,000명에 들어가는가? 역사 이후에 이 숫자를 가지고 늘 교회들이 시끄러웠다. 최근에도 또 이 숫자로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으면 144,000명에 포함 된다. 어느 목사가 작성한 명단이 아니고, 어느 정통 교파의 등록 교인에 선착순번으로 계산하는 것도 아니다.
▪12지파
구약의 12지파는 하나님의 백성의 계통을 말하고
▪12사도
신약의 12사도는 신앙의 사명의 분담을 말한다.
▪사명 전부
12 X 12 = 144가 되며 이 144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전부요 그들이 맡은 하늘나라의 사명 전부를 말한다.
▪1천
144에 1,000이 붙었으니 이 1천이라는 수는 ‘많다’라는 뜻이다. 인간이 알 수 없고 하나님만 아는 세계가 택함이다. 누가 택자인지 우리는 총수를 알 수 없다. 다만 택자라야 할 수 있는 열매를 보아 우리가 짐작은 한다. 특히 택자의 총수는 역사 이후 오늘까지의 총수인데 누가 헤아리며 알 수가 있을까?
③ 중생
확실한 것은 ‘그 이마에’ 그의 사상과 생각 속에 ‘어린 양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면 이는 부모의 혈통이나 국가의 교육이나 재벌의 돈이나 과학의 기술로 적을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택자가 중생이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144,000명에 들어갔다는 표시는 이렇게 알 수가 있다.
④ 대속
어린 양은 대속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이다. 이름은 그 주님이 하신 일이니 대속이 주님의 이름이다. 우리 생각, 우리 사상에 예수님만 구주시며 예수님이 나의 죄값 때문에 죽었고 나를 천국에 보내시기 위해 부활을 했다는 흔적이 명확하면 바로 144,000명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⑤ 그 아버지의 이름
또 하나는 ‘그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비록 아들이라도 심판을 통해 영원히 지옥에 보내 버리는데 예수님의 구원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신 분이다. 알고 보니 아버지의 사랑과 뜻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어서 성자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오셨다. 이런 사상,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무조건 144,000에 들어 있는 사람이다. 고전12:3에서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⑥ 요소적
내 속을 들여다 볼 때 천하가 배척해도 예수 없이는 살 수 없고 굶어 죽어도 괜찮다고 하는 사상이라면 이것은 144,000명에 들어 갈 숫자다. 이단이나 요설에 흔들리지 말고 택자 전부, 그 중에서도 자기 현실에서 자기 내면이 정말 주님을 따르는 요소만이 이 숫자에 들어간다. 택자라 해도 평생에 말씀과 잘못 된 언행은 하늘나라에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요소적으로는 144,000에 들지 못할 수 있다.
(2020년 5월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