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
최후
1988.01.07-3
이상원집사님 등 4분 장로 권사 임명 신임투표 김권사님 구역 조직적 반대운동
-
1953
최후
1987‘03.09-1
어떤 대학생에 대한 책임을 기도에서 찾아 확정 선포
-
1952
최후
1987.
떡국, 국수 만드는 것 까지 가르침
-
1951
최후
1987.
예배당 팔고 간판 바꾼 후 다시 공회로, 부산대학 의지하면 안 됨
-
1950
최후
1987.12.07
-
1949
최후
1987.11.02
-
1948
최후
1987.09.13-0
물건을 될 수 있는 데로 오래 쓰고 적게 쓰는 것
-
1947
최후
1987.06.09-2
정풍섭 등 공회 교역자 불량 불법 무례 조장에 대한 방어
-
1946
최후
1987.02.
저울이라는 것은 초절이 없는 것
-
1945
최후
1987.01.30-5
신정교회 김조사님 가조 신천교회로,신천 강목사님은 신정으로
-
1944
최후
1987.
청소보다 심방이 우선이나 심방후에라도 청소에 동참
-
1943
최후
1987.
박윤철목사님 교학실장으로 있을 때 학생들이 방자해 짐
-
1942
최후
1987.
장로끼리 권사끼리 구역장끼리는 만나지 말 것
-
1941
최후
1987.
구역식구에게 친정엄마 외동딸 대하듯 했으나 구역을 바꿔달라 함
-
1940
최후
1987.13.
지원 조건은 1-2등 충성이면 지원
-
1939
최후
1987.13.
분구한 구역은 모구역장, 집사 투표 심사와 추천에 대한 모구역장의 권한
-
1938
최후
1987.13.
모구역장의 심사에서 3분의 2, 당회에서 3분의1
-
1937
최후
1987.13.
집사선택은 한 사람이 5명까지 기록
-
1936
최후
1987.13.
공동의회 시간에 각종 보고할 준비, 2-5명의 집사 선택 할 것
-
1935
최후
1987.13.
하와이에서 설교록 1권 주문, 후에 50권 주문, 이제는 교회 개척
-
1934
최후
1987.13.
개척교회 세워 목회자 구멍가게 왕노릇 하는 것보다, 설교 전파가 중요
-
1933
최후
1987.13.
중간반 마호인반사 부임해서 열심
-
1932
최후
1987.13.
국방 치안 경제 3가지는 치적
-
1931
최후
1987.13.
중간반사를 목회자로 등용
-
1930
최후
1987.13.
서부교회 설교 3시간 지나면 테이프가 전국으로 전달
-
1929
최후
1987.13.
예배당 커텐 설치 수고에 칭찬
-
1928
최후
1987.13.
예배당 커텐 연구하러 서울로 견학다녀 옴
-
1927
최후
1987.13.
성경공부 초등과정 고등과정, 구역장 성경공부 시작할 것
-
1926
최후
1987.12.
교회 상대 선거운동 방법으로 목회자를 성지순례로 경제지원 ? *
-
1925
최후
1987.12.32
공회 개혁안 40명이 제출한 것 전교역자에게 다 나눠 연구해서 심판하도록
-
1924
최후
1987.12.32-7
국어/ 찬송/ - '영 죽은'이라는 표현의 한글문법과 영어문법 시비, 송용조 제기
-
1923
절정
1987.12.32-7
87년 대선 때 후보 3인의 경쟁이 치열했고 주변에서 결과를 묻자 미리 말함
-
1922
최후
1987.12.31-7
남구역장 주교 분구시 기본수 제도 87년 시작
-
1921
최후
1987.12.31-4
통일찬송가와 공회찬송가의 비교 분석
-
1920
최후
1987.12.24-4
성의 없는 준비를 70점 짜리로 책망
-
1919
최후
1987.12.16-3
설교록 구입 타진영 회원 숫자 1백명 넘어서며 외부의 호반응
-
1918
최후
1987.11.14-6
행정실에서 교학실로 신미애선생 직원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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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최후
1987.11.13.
주일 아침 식사는 생수로 기적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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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최후
1987.11.13-5
비디오 장비 도난방지를 위해 1층은 야간에 문단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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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최후
1987.11.13-5
무분별 기도천막 설치 관련법령 문제, 천막 정비 사용하고 공동사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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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최후
1987.11.13-0
각 층별로 부장이 예배, 기도, 심방출발 통솔할 것
-
1913
최후
1987.11.10-2
기능 구원 문제 등을 두고 양성원 교수들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데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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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최후
1987.11.09-1
1.주일학교 보고 2.권찰회 회의록 기록 건 3.신앙노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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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최후
1987.11.01-0
주교 설교할 때 기도하고 가르쳐야 간절 확신, 주둥이와 웅변은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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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최후
1987.11.01-0
주일학교에 부부장을 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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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
최후
1987.11.-0
안일주의에 빠져 예배시간을 미루거나 심방시간을 조절하면 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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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최후
1987.10.28
예배 교인 기운 떨어져 강목사님에게 예배 시작 전 30분 힘있게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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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최후
1987.10.28-3
신앙생활은 조금만 끊겨지면 헛일,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긴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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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최후
1987.10.28-3
내일 이사, 저녁 설교 부탁, 게을이 들어와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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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최후
1987.10.22-4
목회자들의 양성원 수강 중 수요일 오후 휴강을 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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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최후
1987.10.20-2
오후 5시 사택 설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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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최후
1987.10.16-5
남광교회에서 대신동 동대교회 세우기로 했다가 회개하고 총공회에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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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최후
1987.10.14-3
써머타임 실시에도 불구하고 예배시간은 원래 시간에 맞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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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
최후
1987.10.13-2
정의진목사님의 예배당 이전 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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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최후
1987.10.12-1
써머 타임 변경에 따른 예배 시간 조정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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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최후
1987.10.12-1
예배 시간 졸아 책망했으나 삐꾸지 않고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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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최후
1987.10.11-0
써머타임 변경 예배시간 조절 사전 필요. 일부러 한 주간 기다리며 결정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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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최후
1987.10.05-1
한 주간의 서부교회 목회 내용. 서부교인들 위하지 않는다는 말에 그렇지 않음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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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최후
1987.10.05-1
서부교인들이 백목사님에게 섭섭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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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최후
1987.09.
데모하면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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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최후
1987.09.32
나는 독립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고 용사가 되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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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최후
1987.09.18-5
김태희 재독 많이 하고 실력있어 동북 거제동 달산 파송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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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
최후
1987.09.18-5
마지막에 설교록을 대조하면서 진리위한 생활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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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
최후
1987.09.16-3
백목사님 사후 생각, 서부교회 직원들 신상처리 교회 차원에서 문서로 확인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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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최후
1987.09.14-1
야만들은 데모, 양반은 언제든지 말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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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
최후
1987.09.11-5
병들었을 때 남편이 살림 다 털어 구출, 바람 피워도 은혜와 사랑을 잊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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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
최후
1987.09.11-5
처음 장사할 때 석 달 간은 유통구조 관서관계만 파악 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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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
최후
1987.09.02-5
700만원 들어온 대접비 제주도 개척 등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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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
최후
1987.08.
기상청 신문 공고와 다른 집회 기간 중의 서늘한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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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
최후
1987.08.32-7
임종까지 주님만 생각,부러움, 최기주,서영준 목사님이 부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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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최후
1987.08.32
서부교회 집회 참석자 5005명, 공회 보고 12831명, 외부 참석은 미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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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
최후
1987.08.26-3
하나님이 불러 가는가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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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최후
1987.08.23-0
서영준 신앙생애 평가, 나는 순교 원하고 살았으나 받아 주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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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
최후
1987.08.23-0
테레비 신문 안 보고 예배 다른 사람에게 안 맡기고 충성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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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최후
1987.08.21-5
창천교회 교회 이름 설명과 입당 예배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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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
최후
1987.08.21-5
김춘도 김윤수 장신석 서용호 중간반사 전도사 인허 후 4교회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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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
최후
1987.08.21-5
중간반 반사 4명(김춘도 김윤수 장신석 서용호) 목회 출발 또는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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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최후
1987.08.19-3
저녁 7:30 예배 후, 류정현선생님 전도사 인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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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
최후
1987.08.19-3
저녁으로 협박전화, 2-3일 안에 찾아서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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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
최후
1987.08.18-2
진리와 함께 인간 관계에까지 서영준 광안교회 이을 사람으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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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
최후
1987.08.17-1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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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
최후
1987.08.15-6
개척 교회 과로로 청도에 휴양 기도 중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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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
최후
1987.08.10-1
8월 집회 후 교회직원 단체 기도나 해수욕. 조심해서 움직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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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최후
1987.08.09-0
부산시내버스 파업이 있으면 각 분교에서 주일오전 예배를 드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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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최후
1987.08.09-0
사택 식구들 광안동교회 저녁 예배 참석, 예배 중 몸이 앞으로 쓰러지는 모습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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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
최후
1987.08.07-5
집회 마치고 오전 12시 출발 오늘 길에 편집실 봉고 함께 주남선 묘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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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
최후
1987.08.06-4
현목사에게 사과밭 사건에 대해 듣고 교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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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
최후
1987.08.01-6
장사 하다가 동회로 경찰계로, 지혜있고 좀 실력이 있는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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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
최후
1987.07.
일을 맡기면 어렵다는 말만 하는 사람과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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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최후
1987.07.
찬송가 재판 출간, 서부교회만 1만 2천권 주문예정, 내일부터 출간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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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
최후
1987.07.32
전화와 인터폰 불통에 박 기사 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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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
최후
1987.07.32
사찰, 기사, 반사, 연구소 직원 월급-외부보다 적지만 구원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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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
최후
1987.07.29-3
중간반사 5명 최근 목회 출발, 반사는 실천신학, 반사 성실한 사람 목회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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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
최후
1987.07.29-3
오가며 잡담 금지, 기도 갔으면 효력이 나도록 인격 기울여 주님 듣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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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
최후
1987.07.27-1
가르치는 실력,이제까지 가르친 공로,정성과 충성,간판-세상과 역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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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
최후
1987.07.27-0
수재민을 위해서 현금, 새 의복, 양식등을 성의있게 연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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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
최후
1987.07.24-5
장질부사 유행하는 것은 나라가 부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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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
최후
1987.07.24-5
하나 걸렸으면 두 사람에게 건너가지 않게 하는 것이 사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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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
최후
1987.07.24-5
장마철에 장질부사가 유행, 위생주의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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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
최후
1987.07.16-4
교회 기사를 해도 돈이 아니라 충성하는 복음에 가치를 두는 사람 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