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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왜정
1944.
대속이 없는 인물, 일제 때 일본 성자로 사회주의이며 친일 앞잡이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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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왜정
1944.12.32
환란-신사참배 막바지의 개명과 백목사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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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왜정
1944.07.
?왜정말년 모두 삭발 시킬 때 하이칼라, 해방 후 고신투쟁 때 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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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왜정
1944.01.
?목회-장질부사로 사람이 죽어나가도 40여명 모든 교인들이 끝까지 견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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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왜정
1944.01.
목회/ - 일제 때 장질부사 돌림병 중에서도 온 교인 간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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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왜정
1943.
두 번 다시 신사참배에 대한 질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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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왜정
1943.
?환란-실패와 투옥을 반복하다 결국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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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왜정
1943.
?환란-한번 죄를 범하면 그 다음부터는 신앙의 절정에 오르지 못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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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왜정
1943.
?환란-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자 길에서 만나는 사람도 황급히 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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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왜정
1943.
?북상/ - 불없이 성경보고 나르듯 걸었던 신령했던 분이 신사참배한 후 능력이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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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왜정
1943.
환란-주님 날 버리지 않았따며 우니까 풀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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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왜정
1943.
주기철은 애국 정치성 있고,손양원은 순수 기독교 신앙으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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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왜정
1942.13.
변판원-가정, 신앙출발, 백영희 신앙지도, 특이한 신앙, 가정 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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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왜정
1942.02.15
?싱가파 함락 축하연 때 강제로 제주 먹고 신사참배 한 교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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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왜정
1942.02.15-0
?환란-싱가폴함락으로 일본은 완전히 자신감을 얻고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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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왜정
1942.01.
?환란-봉산교회 설교까지 맡았던 이홍길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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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왜정
1942.01.
?환란-고제교인 강집사님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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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왜정
1941.14.
주재소/ 논쟁/ - 가미다나라는 천조대신을 불태우면 내가 벌을 받을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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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왜정
1941.13.
환란-거창군에서 제일 심한 곳이 고제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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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왜정
1941.
? 집회하고 기도하고 인민군들에게 붙들려 가 순교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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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왜정
1940.
?개명 초기 관련 다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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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왜정
1940.
?사회주의 독서 감염,자살 시도,신사참배 옹호,고시위원장,비참한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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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왜정
1940.
?천황도 안 믿으면 멸망,사접시에 바위를 담으면 박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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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왜정
1940.
?교계 유명한 사람들은 다 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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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왜정
1940.
?신사 문제로 3개월에 항복, 출옥 후 주남선을 자기 구원만 생각한다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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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왜정
1940.08.22-4
목회-홍수가 있었으나 구역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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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왜정
1940.08.21-3
목회-비바람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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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왜정
1940.08.01-4
목회-신사환란 가운데 예배당 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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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왜정
1940.07.20-6
목회-동네 주막 앞의 분쟁을 공평히 잘 해결하고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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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왜정
1940.02.24-6
목회-토요일 금식으로 준비하고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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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왜정
1940.02.12-1
생활-음력정월 5일, 가뭄, 일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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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왜정
1940.02.05-1
심방-쾌암 김옥순 박철산 두 모친 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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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왜정
1940.02.03-6
환란-심방 묵도 중 세상 좋은 것을 주겠다는 미혹이 보였으나 말씀으로 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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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1940. 1952.
V
안 믿는 사람과 똑 같게 민첩하게 믿는 할머니가 죽을 때도 회개 안함, 장례식 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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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왜정
1939.
?평소 신앙 여하 드러내어 믿음의 사람과 쭉덩이 구분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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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왜정
1939.
?환란-실패자들은 자신들이 드러날까 해서 신사참배 거부자들 밀고하고 더 앞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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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왜정
1939.
?여행권 없이 일본 제국국회 의사당에서 신사참배 반대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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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왜정
1939.
한병영목사님 부흥회 설교 듣고 거지 구제를 즉시 단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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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왜정
1939.
출석하던 교회의 동방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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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왜정
1939.13.
정치/ - 신사참배 환란 때 감투 노려 총회장 된 사람은 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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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왜정
1939.13.
?환란-유명한 일본의 사회운동 성자 하천풍언이 한국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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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왜정
1939.13.
?신사참배는 이겨도 동방요배를 실해한 사람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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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왜정
1939.04.
학교적으로는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라고 이름 바꾸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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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왜정
1939.01.01-0
개척-개명교회를 39년 1월부터 기도소 집회 형식으로 개척. 농산교회 신사참배 문제.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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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1939.
달 한 마리가 7-80여수가 되었는데 온 신경을 쓰고 일을 착수를 하면 아무것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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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1939.
대대적으로 양봉을 가족들에게 맡겨 놓았는데 이듬해에 다 죽고 꿀을 얻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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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1939.
주기철 목사님의 모교에서 주 목사님의 절언이 쓰여진 것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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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1939.
진주 성경학교에 박영기, 최상림, 믿는 냄새 안 나는 3 무리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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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1939. 1945. 1939.
V
왜정 때는 삭발, 일본에 대항으로 왜정말년에는 삭발 안함, 고신과 돌아설 때 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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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초기
1938.
?교회 청결,노회 부담금,교회 부흥, 재건교회,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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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초기
1938.
?그는 한국이 아는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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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초기
1938.
?전도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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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초기
1938.
?세살 아들 죽으며 하는 말 듣고 회개, 일본에서 진짜 부흥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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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초기
1938.
?깊이 심겨 늦게 나온 감자줄기가 굵게 나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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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초기
1938.
?눈으로 여자에게 미혹을 받았다 해서 자기 눈을 때린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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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초기
1938.
?부애지르는 염소 슬쩍 건드렸더니 죽어 집 앞에 묘 써놓고 보면서 눈물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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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초기
1938.
?성경을 읽으려 하면 벼룩이 주의를 분산시켜 시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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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초기
1938.
?한 발자욱도 하나님과 동행, 잿만당 넘어 다니며 목회할 때 새떼들이 모여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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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초기
1938.
?짐승을 향해서 형제여 오라, 구원 때문에 생겨진 본능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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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초기
1938.
?위천 장에서 친구였던 소장수의 부탁 하나님 이목 때문에 거절하자 당장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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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초기
1938.
?금식기도 갔다가 밤이 되니까 무서웠는데 하나님의 보호를 생각하니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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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초기
1938.
?주님 한 분에게 완전히 미치게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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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초기
1938.
?화장실도 못가는데 하나님 동행을 실험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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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초기
1938.
?생전에 있는 힘 다했으나 지금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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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초기
1938.
?황보 기 장로님이 심방만 오면 가정이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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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초기
1938.
?나무로 한지를 생산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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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초기
1938.
?전기-하천풍언의 봉사를 '사선을 넘어서' '태양을 쏜다'라는 책을 통해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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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초기
1938.
?문둥이들 접촉해 보면 다 교만성을 가지고 있음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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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초기
1938.
?어려운 사람에게 무료치료, 하나님 능력으로 병원에서 못 낫우는 병도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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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초기
1938.
?콩이파리 죽 먹으면서도 성탄이면 이웃 구제에 힘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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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초기
1938.
?썩는 냄새 진동하는 구더기 버글버글한 사람 찾아가 어루만지며 기쁨을 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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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초기
1938.
아픈 사람 있으면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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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초기
1938.
?제일 은혜되고 좋은 심방은 문둥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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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초기
1938.
예수천당 하면서 돌아다녀, 예수님 초상에 대한 말 듣고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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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초기
1938.
거창 있을 때 마당에 심은 한 그루에서 쌀가마니로 네 가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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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초기
1938.
가족들 다 모아놓고 낱낱이 십일조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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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초기
1938.13.
?환란-거창읍교회 시찰장 박근형목사님의 국민복차림과 천황 사진에 절한 다음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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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초기
1938.13.
?농산/ 교역자/ - 박집사 부인이 사모님께 고구마 드리는 자세에 격분 유급 목회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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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초기
1938.10.13
신사참배 국내 상황 전개-2월 평북노회 결의, 4월 거창경찰 압박 9월 총회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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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초기
1938.10.19-3
환란-화산봉 2일간 기도 중 재림 불원하니 인내로 구원 얻으라는 음성을 듣고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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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초기
1938.10.18
환란-36년 7월에 믿기 시작하고 2년만에 대환란을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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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초기
1938.09.31
?믿은 지 일 년쯤 전도하는데 비웃던 왜경, 불택자면 지옥이란 말에 뒤로 덜컥 넘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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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초기
1938.09.31
?38년 - 재산 다 없애고 다시 부자, 처가집이 돈받고 전도하는 줄 알고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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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초기
1938.09.31
?38년 -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도록 복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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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초기
1938.09.31
?38년 - 권해서 산 논에 3개월 삼농사를 지어 논값보다 더 많은 소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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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초기
1938.09.31
?38년 - 특등급 나락이 3층으로 열고, 주일을 피해서 밤새 일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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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초기
1938.09.31
?38년 - 무엇이든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망하고 내가 할 신앙에 전념하면 저절로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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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초기
1938.09.31
?38년 - 믿은 후 기른 벌통, 크게 되다가 그곳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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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초기
1938.09.31
?38년 - 닭을 길러 크게 돈이 되는데 자꾸 쳐다보니까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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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초기
1938.09.31
?38년 - 첫해 36년도는 시시했고, 다음해 37년도 별로였으나, 38년도 감자농사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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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초기
1938.09.31
?38년 - 믿고 나서 3년 간 콩죽을 먹으며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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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초기
1938.09.31
?환란-박형룡 박윤선 다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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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초기
1938.09.31
?환란- 압박, 투옥, 박해,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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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초기
1938.09.31
?환란-총독부는 교계의 지도부만 삼키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 온다는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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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초기
1938.09.31
?환란-신사참배 문제가 대두될 때 기도형과 대책회의형으로 나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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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초기
1938.09.31
환란-총독부 지시에 따라 일본경찰은 교회를 시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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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초기
1938.09.31
38년 - 주님 밀접히 사랑했떤 시절, 훗날 목회성공을 크게 해도 이 시절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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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초기
1938.09.31
38년 - 일본어 가르치라고 동네마다 강습회가 개최되고 개명의 교사로 임명장,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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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초기
1938.09.31
38년 - 믿고 나서 모든 것 털었는데 3년 지나자 회복 개명에 교회가 들어서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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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초기
1938.09.09-5
환란-평양의 제 27회 총회가 신사참배 결의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