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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해방
1946.13.
?해방/ - 대속은 없고 승리만 있어 걱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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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해방
1946.13.
기도-봉산교회의 기도불길, 기도의 사람들, 세상 초월의 신앙들, 백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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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해방
1946.13.32-7
부흥회 참석 별로 없고 성경 읽고 아는 대로 실행하려고만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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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해방
1946.12.
해방 직후 대구에서 집회 도중 우상 제물을 금했다가 크게 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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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해방
1946.09.20
?고신 개교식(일신여학교/현. 금성중) 참석, 박인순 등을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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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해방
1946.09.20-5
?언제 순교할지 모르고 자신 따르는 많은 후배들 바른 노선과 주목사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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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해방
1946.09.20-5
?출발-46년 9월 20일, 부산일신여학교에서 고려신학교 시작, 제1회생으로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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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해방..
1946.07.01-1
활동-46년 7-8월장질부사에 이어 호열자가 계속 발병, 그 속에서 구역예배와 심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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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해방
1946.09.02-1
?활동-46년 9월 2일 농산교회 목회자 사례 의논차 예배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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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해방
1946.08.23-5
?목회-집사로 4개교회를 책임지며, 교역자회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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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해방
1946.08.11-0
8월, 청년회 인도, 웅양 개명 목회, 6개 구역 매일 한 곳 예배와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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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해방
1946.08.11-0
?8월, 청년회 인도, 웅양 개명 목회, 6개 구역 매일 한 곳 예배와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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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해방
1946.07.32
?7월 8월 6개 지역을 나누어 매일 예배 인도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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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해방
1946.07.25-4
?46년 7월 25일, 한 주간 산기도회 중, 이선이 남편 전문용의 물괭이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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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해방
1946.07.25-4
?박해/ 개명/ - 산기도처로 따라와서 전문용이 이마를 물괭이로 내리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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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해방
1946.07.01-1
활동-46년 7-8월장질부사에 이어 호열자가 계속 발병, 그 속에서 구역예배와 심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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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해방
1946.07.01-1
?활동-46년 7-8월장질부사에 이어 호열자가 계속 발병, 그 속에서 구역예배와 심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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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해방
1946.06.24-1
?출발-46년 6월 20일 심방, 21일 심방, 22일 교인 장례준비, 24일 장례식, 28일 구역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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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해방
1946.06.23-0
?46년 6월 23일부터 8월, 진주에서 신학강좌를 시작 63명 수강생 중 개명교회만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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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해방
1946.06.19-3
?출발-신학강좌 참가여부를 놓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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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해방
1946.06.18-2
?출발-신학과 관련 목회길을 생각하고 가진 재산 또 한번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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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해방
1946.06.10-1
?출발-진주 신학강좌 개설 6.10.부터 준비 6.14. 진해 보내고, 6.15.부터 위해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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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해방
1946.06.09-0
출발-전 재산을 가족 7인으로 나누고 목사님 몫은 5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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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해방
1946.06.09-0
?출발-전 재산을 가족 7인으로 나누고 목사님 몫은 5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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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해방
1946.05.26-0
?출발-도사경회 등 지역 교계의 연합활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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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해방
1946.05.26-0
?출발-고제기독교면려청년회 창설, 회장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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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해방
1946.05.20-1
출발-자녀들 주님 종이 되도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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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해방
1946.05.20-1
?출발-자녀들 주님 종이 되도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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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해방
1946.03.32
출발-도사경회, 가족과 신앙, 기도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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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해방
1946.02.30
출발-심방, 전도, 예배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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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해방
1946.01.
?늑대가 마을에 내려와서 염소를 물고 가서 속은 파먹고 껍데기만 세워 두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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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해방
1946.01.
박해-연일 계속되는 엄청난 박해, 역향의 신앙으로 순교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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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해방
1946.01.30-3
?출발-가족 집안 전도, 안 믿는 형과 논쟁, 교인 가정 방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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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해방
1946.01.12-6
?출발-신앙의 노선 분리, 황보장로님과 매사 신앙의 근본 방향 때문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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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해방
1946.01.06-1
?박해-연일 계속되는 엄청난 박해, 역항의 신앙으로 순교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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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1946. 1949.
V
개명교회에 세례문답할 때 주남선 목사님과 대화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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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해방
1945.13.
성탄절 구제, 새벽 찬양, 예배당 장식, 이후로 차차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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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1945.
신사참배 승리한 사람들과 신사참배한 사람들의 외모를 비교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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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1945.
세상적으로도 훌륭하게 될 사람이 목사가 되어 가치 있는 일을 쓰임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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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1945.
지금 이 자리를 떠나라' 계시를 받고 피한 후 소련군이 점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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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1945.
길모퉁이에 '어서 오십시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표어를 볼 때 마음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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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1945.
전칠홍목사님의 동생 목사님 교회에서 어떤 청년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깨달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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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1945.
하천풍언씨가 만주에서 설교하는데 주님과 접선된 믿음이 없다하는 동감된 말씀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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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1945.
여생을 병신과 거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충성한 분, 각설이 타령으로 전도, 한 번 만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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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1945.
대구에서 손양원 목사님이 ‘하나님을 찾읍시다’하는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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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1945.
서영수 집사님이 신사참배 거부로 부산서 제일 큰 가구점을 잃고 가족과도 헤어진 이야기를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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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1945.
신사참배 강요로 군수공장에서 나와 배급을 타기 위해 종교를 증명하는데 승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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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1945.
신사참배 강요로 군수공장에서 나와 배급을 타기 위해 종교를 증명하는데 승리한 이야기
-
306
1945.
경관, 면직원들이 솔괭이 따러 안 간다고 몽둥이로 칠 때 주일 지킨 사람이 7-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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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1945.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일본의 우상인 천조대신에 대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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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1945.
모든 사람이 성자라 추모하나 그의 책에는 하나님은 없고 신앙적으로 박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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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1945.
신사참배를 안 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두 종류가 있는 것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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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1945.
일본 사람들은 천하에 민족을 발아래로 생각하나 이스라엘 민족은 존대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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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1945.
일본의 필승을 믿던 의사에게 넉 달 후면 패할 것을 말함, 듣지 않고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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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해방
1945.
신사참배 피해서 개명 왔던 김신명씨가 부산에 갔다 박인순에게 개명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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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해방
1945.13.
?앉은뱅이,거지 전도.각설이 타령 노방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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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해방
1945.13.
?김천집회, 일제 경찰로 46명 살인한 김의근씨, 회개하고 앉은뱅이 70명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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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해방
1945.13.
?출발-신사참배로 중단한 자녀들의 학교를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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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해방
1945.13.
?출발-해방 후 사회체제 문제로 격변과 쟁투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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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해방
1945.13.
깨닫고 노디 건너다 잊어 고통. 후에 화장실에서 깨닫고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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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해방
1945.12.32
?경찰서 10개보다 한 교회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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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해방
1945.12.32
출발-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디든지 적어놓은 봉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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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해방
1945.09.00
?작고,소리 크고, 은혜 많아, 3번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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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해방
1945.09.00
?9년 걸려 신학교 졸업한 무명, 신사참배 승리 후 전국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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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해방
1945.09.00
?거부하고 자유 가진 사람, 감옥 간 사람, 도망 간 사람, 패전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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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해방
1945.09.00
감옥에 들어간 사람, 망명한 사람, 고난도 받지 않고 싸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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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1945.08.
금식 중에 산 아래에서 백도광 장로가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을 듣고 산을 날듯 내려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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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1945.08.
일본 정권의 신사참배 강요 배후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고 무신론자 같은 행동 회개, 요동치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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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해방
1945.08.21-3
?공산주의/ - 해방 후 고제면의 인민공화국 건국반대를 했다가 그들에게 주목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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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해방
1945.08.21-2
?민주 공산 세력의 분열 대결, 교회의 민주화와 좌익의 공산화를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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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해방
1945.08.21-1
?정리-6년 고통 일본 부장 용서하고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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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해방
1945.08.20-1
?정리-고제면 독립축하회, 고제초등학교, 강연요청, 성은이니 보복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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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해방
1945.08.20-1
?고제국민학교 고제면 축하식 연설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용서를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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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해방
1945.08.19-0
?정리-8.19. 기도, 큰 아들이 부르는 소리, 하산, 해방의 감격, 그러나 먼저 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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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해방
1945.08.18-6
?정리-8.18.토요일 기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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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해방
1945.08.17-5
?정리-8.17. 해방이 된 줄 모르고 여전히 산속에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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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해방
1945.08.15-3
?덕유산 단식기도 중에 해방 소식 듣고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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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해방
1945.08.15-3
정리-덕유산정 기도 중에 8.15해방을 맞으며 당시 기도제목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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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왜정
1945.07.32.7
?환란-6년 옥고를 다 이기다가 마지막 몇 달 놓고 사모님에게 충격받아 실패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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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왜정
1945.07.32.7
?환란-39일 금식하며 끝까지 감옥 밖에서 외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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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왜정
1945.07.32.7
?환란-부산 제일 가구점을 일본이 사업취소 시켰고 부인 반대로 별거했으나 끝까지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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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왜정
1945.07.32.7
?환란-부산 제일 가구점을 일본이 사업취소 시켰고 부인 반대로 별거했으나 끝까지 승리
-
272
왜정
1945.07.32.7
왜정말년-정미소를 해보라 해서 물방앗간을 했는데 쌀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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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왜정
1945.06.
?대구 제일의 여관에 가도 메밀겨 등겨로 빵 찐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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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왜정
1945.06.
?왜정말년의 경제난 속에서 신앙자유 경제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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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왜정
1945.06.
?일본부장 와서 신사참배 물으면 항상 출애굽기 20장 2계명을 갖다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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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왜정
1945.06.
?신사참배 안한 사람들 독가스로 죽일 계획 벽서에서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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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왜정
1945.06.
?예수 없는 수천 마리 소고기 보다 솔방울 만한 콩깻묵 감사
-
266
왜정
1945.06.
?함양. 굶을수록 더 힘있게, 평생에 교회를 일곱게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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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왜정
1945.06.
?이명직목사님께 설명듣고 신사참배를 한 다음 탈선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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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왜정
1945.06.
?전칠홍/ - 선천과 이북 쪽에는 신사참배 승리자가 없고, 있다면 이남에서 올라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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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왜정
1945.06.
신신학의 초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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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왜정
1945.06.
환란/ 개명/ - 6년간 감옥가지 않고 일본 부장으로 싸우며 전 교인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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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왜정
1945.04.31
?환란-45년 4월경, 해방 4개월 전쯤 해방과 남북분단과 그후 상황을 기도중 계시로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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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왜정
1945.04.31
최후-4개월이 지나면 해방이 되고 남북이 나뉘며 그 이후 상황을 기도 중에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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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왜정
1945.01.
?1.성경읽는 자세 2.장례식 3.기념관 4.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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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1945. 1949.
V
명치대학 법과 출신으로 공부에 전력하고 죽다 살기를 반복, 다섯 번째 병들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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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1945.
1949.
해방 후 신앙 반대하던 교사가 믿은 후 남을 아끼던 마음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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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왜정
1944.
?부산서 가구점, 신사참배 거부로 영업박탈 이혼, 자녀들까지 배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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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1944.
청년의 송장이 무거워서 기도하고 힘 다해서 공동묘지까지 짊어지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