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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서부
1953.
예수님의 피를 유형으로 세상화,육체화 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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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서부
1953.
십자가 한편 강도 순교 신앙 문제, 고신에서 시비했으나 한상동 지지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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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서부
1953.
고신 시절, 많은 학생들이 동정할 만큼 죽을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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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서부
1953.
성경을 대소지로 나누어 공부하는 것의 장단점 진리의 무한이 유한 범위에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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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서부
1953.
해방 전에는 교리와 신조가 어렸고, 해방 후 많은 개혁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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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서부
1953.
책상 위의 거울, 화목의 방법, 주님으로 의논하라고 교인 지도,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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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
서부
1953.
밥맛 좋아 많이 먹고 강단에 엎드리니 깜깜하게 어두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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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
서부
1953.
기도의 사람으로 소문, 고신에 다닐 때 박윤선 목사님도 종종 기도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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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서부
1953.
서부교회 부임 후 몇년 간 목사님과 교인들 밤새껏 산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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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
서부
1953.01.6
부활 관련 설교, 영광은 하나님께 라는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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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
서부
1953.09.03
봉산교회 백영익을 내수동교회 파송했으나 사욕 주장 결과 뺏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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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서부
1953.08.02
서울 종로 청진동에 중앙교회 전칠홍 파견 개척, 윤봉기에게 빼앗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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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1953. 1960.
V
교회정치 시간에 세상정치를 가르쳐 세 시간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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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1953.
송도 집회에 이병규 목사님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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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
서부
1953.
도덕가, 예수님 동정녀 탄생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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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9
서부
1952.
서부교회를 찾아오는 교인들을 보고 한명동 목사님이 양도둑이라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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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
서부
1952.
신학3년에 영감 안 뺏기면 위대한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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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서부
1952.
문제 있는 교회에 집회 보냄, 참여한 사람들은 고신으로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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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
서부
1952.
Hamilton.변증학을 배웠으나 그의 창세기 주석을 읽은 후 그가 가르친 변증학을 포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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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서부
1952.
배운 것은 별로 없고 가진 깨달음에 대한 확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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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
서부
1952.07.
위천 이동 불원, 고신 지도부 7인 연명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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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1952.
귀신이 사람을 통해 별짓을 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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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서부
1952.
은혜 있는 구역장이라도 다른 구역 심방예배는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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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서부
1952.
양복 제비 뽑는 데 포기하고 돌아서서 하나님께 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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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서부
1952.
고신 고려성경학교 집회시 기본구원 확신자 거수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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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서부
1952.
영광은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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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서부
1952.
반문을 많이 하니까 학생들이 손가락질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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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서부
1952.
신학교 입학 한 후로는 설교의 은혜와 힘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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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서부
1952.
대통령 관사에 빨래 너는 것 보고 깜짝 놀라며 걷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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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서부
1952.
육군 병원에 후송된 부상 장애 군인들을 만나 심방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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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서부
1952.13.
서부교회 전임 손이원, 교인들 생활 지원, 신앙은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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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서부
1952.13.
고신에 오니 기도 많이 하는 백집사 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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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서부
1952.13.
인간지식, 신학지식은 자연계시 폐해질 보조학으로 상대, 신학교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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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서부
1952.13.
서부교회 부임 초기 부흥,유지위해 전심전력 심방,교인 화친 이해 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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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서부
1952.12.
눈이 허벅지까지 왔는데 네 발로 기어서 새벽기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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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서부
1952.12.
성경-여호와 증인 전도하는 사람과 만나 교리를 대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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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서부
1952.11.
호화로운 선진국 버리고 2대 희생, 침뱉음 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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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1952.10.5
원고 간추린 설교로 결국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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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서부
1952.08.
서부교회 부임 환영식 요청 거절, 대신 청빙 수고 목사님들 감사 식사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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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서부
1952.07.
인재/ - 아내도 교인도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인간구원에 재미 붙이도록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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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서부
1952.07.32-7
전도할 때 사용하던 십자가 깃대를 부산 오면서 가지고 왔으나 쥐가 쪼아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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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서부
1952.07.32-7
하나님과 말씀을 높이려고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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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서부
1952.07.32-7
위천/ - 기도실 하나 마련하고 안정하려니까 이동. 이동 때마다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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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서부
1952.07.27-
김창인 조사 동일교회로 분리,사십 명 남음, 김용학 집사와 운동,일곱명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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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서부
1952.07.26-6
이사 2-3일 전 송편 색깔 변색으로 앞날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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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
서부
1952.06.29
서부교회 교인 배척으로 김창인과 74명의 교인이 동일교회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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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
1952. 1955.
V
몇몇 사람들은 하루 밤도 안자고 계속 철야, 새벽예배에도 마르기는해도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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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1952. 1954.
V
박희천 전도사님의 남교회 전도사 재임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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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1952. 1954.
V
예수님의 초상은 성경 중 인격, 형상을 가리는 마귀의 역사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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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
1952.
제직끼리 당을 짓는 사적 회합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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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1952.
구역장끼리 사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하니 못 견딤, 박정자 집사님이 마지막에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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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1952.
‘예수 믿어 구원 얻으라.’ 깃대를 들고 전국, 외국으로 나가려했으나 쥐가 쪼아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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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1952.
어떤 교회에서 대심방 때에 기도만 하고 예배는 하지 않는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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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
1952.
남천교회에 개척에 한 달에 6천원씩 6개월 3만6천원 연보, 일곱 달째는 돌려보내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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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1952.
다다미방에서 예배 볼 때 참석, 성경은 모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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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1952.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14만4천 부활을 말할 때 성구를 따져 들어가니 도망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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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
1952.
고려 신학교, 성경학교 학생들이 서부교회로 새벽예배 오는 것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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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
1952.
공과를 가르치는데 신덕범은 표준어를 모르니 무식하다 하여 도를 받지 못하고 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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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1952.
서부교회 부임 할 때에 부산, 거창 두 번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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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1952.
어떤 사람이 영남회를 제의에 예수회 하나면 됐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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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1952.
박인순 모친이 집회를 참석하고 변화의 역사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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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전쟁
1951.
백조사 있는 데로 피난한다고 스물여덟 평 교회에 사백 명이 모여 집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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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전쟁
1951.12.
전쟁 때 불탄 예배당을 복구하기 위해 연보했고 액수가 넘은 것은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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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전쟁
1951.12.
공비 토벌 작전 때 금족령 가운데 사근 사경회 가면서 초소 74개를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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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전쟁
1951.08.08
전쟁 중 병은 다 낫음,교역자마다 간증,기적을 기록지 못 한 것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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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전쟁
1951.08.08
전쟁 후 거창 건계정 거창지방교역자 수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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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전쟁
1951.08.08
위천교회 김시원 진학일 사진, 거창지방교역자 수양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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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1951.06. 1952.04.
V
헤겔에 대한 철학에서 양심은 인적요소가 아닌 하나님의 사자라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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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전쟁
1951.01.04
1.4후퇴 때 함양서 집회한 교회, 집회은혜 악용 신신학강사 집회로 교회 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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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1951. 1954.
V
수백 명에 중에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은 열 사람 미만, 거의 의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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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
1951. 1954.
V
유다서를 가르쳤는데 강의 중 제일 은혜가 됐고 지금도 그 양식으로 산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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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1951. 1953.
V
전시 피난 시절 부산에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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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전쟁
1951.
전쟁 중 토벌작전 등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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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
전쟁
1950.07.
미군차들이 수십 대 피격 당하고 미군 전사자가 많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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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1950.
호주가 장관이고 체육하는 대학생이 있어도 조그마한 아이가 그 집에 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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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1950.
고신에 있을 때 연합 집회 새벽기도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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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1950.
박기천, 배추달, 변판원 순교자 세명, 하루 세 번 예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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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
1950.
산에서 풀을 베서 깔고 기도할 때는 향기, 떠날 때는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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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1950.
헤겔 강연 후 박사와 인사를 하는데 삭발하고 있으니 ‘구류를 살고 죄수로 나온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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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1950.
후퇴하는 인민군 전도할 때 ‘우리가 낙동강에서 녹았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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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1950.
창녕으로 6.25 피난 온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서부교회에 소개, 백 목사님을 김 목사님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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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
1950.
인민군이 암살하려고 찾아와 같이 가자고할 때 ‘하나님이 종이지 인민군의 종이 아니라’고 단절,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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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1950.
이약신 목사님이 백 목사님에게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신학생들을 보낸 것을 김영진 선교사가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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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1950.
옆 교회 설교 때에 ‘하늘나라에서 구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이단이라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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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
1950.
교역자는 이북 교역자인데 교인들은 호남 사람만 모인 이 암병을 뽑아 고칠 것을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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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
1950.
신앙으로 평안하고 담대하게 이긴 줄 알지만 전부 마귀 것으로 평안, 담대해 패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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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
1950.
프리스턴 신학교에서 개혁해서 나와서 웨스트민스트 신학교를 세운 Dr. Ma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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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1950.
나운몽 집회에 1시간 참석, 성경에 어긋난 것, 기독교는 아님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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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1950.
호주가 장관이고 체육하는 대학생이 있어도 조그마한 아이가 그 집에 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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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전쟁
1950.
사택에 이만기 집사와 자는 중 하나님의 피신 지시,공비 3일 위천면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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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전쟁
1950.13.
배를 곯려놓고 밥을 주지 않다가 소금을 많이 섞은 밥 줘서 갈증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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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전쟁
1950.13.
공비 습격을 꿈에서 듣고 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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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
전쟁
1950.13.
폐병 고비 금강산에서 성경과 실행으로 깨닫고 전쟁 겪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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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
전쟁
1950.13.
중학교 졸업하고 딸을 신학교에 데려 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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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
전쟁
1950.12.
박기천,배추달,변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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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전쟁
1950.12.
전쟁/ 피난/ - 4일간 일시 공산천하가 될 때는 피했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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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전쟁
1950.12.22-5
순교-인민군의 출몰, 수색, 체포, 고문, 고형, 극형,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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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
전쟁
1950.10.
6,25 후 길에서 만나면 부끄러워하고 둘러서 피해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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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전쟁
1950.09.
조카 무창이 오줌을 쌈,십오리를 뛰어 가서 예배 인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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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전쟁
1950.09.
천세욱 주교 부장 미리 정보 받고 창문으로 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