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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서부
1959.12.32-7
본문/ - 서부교회 초기 10년은 설교 때마다 "오늘 찾아오신 주님"이라는 표현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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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
서부
1959.12.32-7
용두산/ 미사/ - 부산 용두산 성당 방문, 우상 예배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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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서부
1959.12.32-7
성화/ 형식/ 치장/ - 꿈에나 기도에나 예수님이 피흘리는 장면을 본 사람을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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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서부
1959.12.32-7
탈퇴/ - 고신에서 투쟁했던 분들이지만 은혜 기관에 대하여서는 평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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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서부
1959.12.32-7
예언/ 예측/ 도인/ 영안/ - 한 달에 한 번씩 청량리 교회 다닐 때 교인들끼리 하는 말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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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
서부
1959.01.
1년 반 정도 교회 내에서 연경과를 두고 성경공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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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
1959.09.
제명 당한 이유①유엔군 철퇴 반대는 화간이라 하는 설교 ②예배당소송문제③고려신학교 정치학을 가르치는 것을 송상석에서 한상동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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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1959.09.
이 문제로 7노회에서 마찰, 고신 총회가 재판국에 이양, 상회 불복종 죄로 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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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
서부
1959.09.31-7
제명 관련 통지서오 촬요를 보관하여 훗날 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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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
서부
1959.09.31-7
상회명령 불복종으로 다수를 가지고 쫓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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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
서부
1959.09.13-0
계속관리 중요/ - 서울 출장으로 교회를 비우면 구역장들은 살이 찌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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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1959.09.00
제명 당한 이유①유엔군 철퇴 반대는 화간이라 하는 설교 ②예배당소송문제③고려신학교 정치학을 가르치는 것을 송상석에서 한상동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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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
서부
1959.
집회 은혜 받고 변화 되는 경우. 삼일교회 교인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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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
서부
1959.
이병규목사님 창광교회 계약신학대학원 계신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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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
서부
1959.
우체국 출신 김삼암목사님이 큰 교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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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서부
1958.
잘 믿는 교인인데 대소변으로 그 가정의 신앙 판별, 후에 문선명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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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
서부
1958.
이기선은 대소지 나누기식, 한부선은 범위에 제한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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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
서부
1958.
거창 남영환, 구호물자 주일새벽 도착 때문에 3개월 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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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
서부
1958.
집회중에 강원도에 오는데 참석말라 기독교 정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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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
서부
1958.
선교사중에는 제일 진리의 신앙에 서 있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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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
서부
1958.
목사님 한 분이 설교에 소지를 붙여 설교 이치는 전혀 몰랐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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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서부
1958.
한학자로 설교할 때 한학자랑 유교자랑,꿈에 보니 입에서 머리카락 뭉텅이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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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
서부
1958.
신학동기 권성문, 세상으로 정부 최고위직할 사람이나 목사 등용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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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서부
1958.
그 자리에서 믿고 도주가 아니고 쫓겨 나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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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서부
1958.
서울 청량리교회 사창굴에 생명걸고 전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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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서부
1958.
반사 했으나 25년 넘게 믿음 잊은 대림회사 사장,책망,목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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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서부
1958.
전국 유명 안찰기도 여권사, 김천 굴다리 밑에서 기적, 서부교회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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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1958.
이병규 목사님의 말씀 중에 유력한 부흥사의 입신에 관한 내용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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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1958.
이동 문제로 투표 할 때에 교인 중에 반대는 1명도 없고 사택 식구 7명만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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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
1958.
김현봉 목사님의 가르침과 비슷하다 해서 이병규 목사님이 청해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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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
서부
1958.
삼각산,관악산,영도 교회 집회에 세 번 참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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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서부
1958.
경호실장 했음. 부부 절제의 기간을 1주일, 3개월, 3년으로 늘여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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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서부
1958.11.
고려파의 이병규목사님 중심의 경기노회가 행정보류 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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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1958.11.30
하늘나라에서 성장하는 근거 성구는 고전 1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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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1958. 1960.
V
김삼암 사찰 시절 이웃이 예배당에 똥물을 퍼붓는데 사택 도진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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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서부
1957.
집회 시 칼빈의 교리에 대한 설교를 사람의 간판으로 평가한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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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서부
1957.
이말출 댁 식사 초대, 김창인 목사님 성경부터 먼저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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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서부
1957.
나환자 봤다는 말만 들어도 찾아다녀서 모시다 대접, 양혜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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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1957.
강도사 자격증 때문에 외쳐야 할 것을 많이 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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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1957.
복음운동이 사업운동으로 변질 됨을 설교, 합격이 안됐으나 거수로 결의 인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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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1957.
이단이라 한다고 대항할 게 아니고 옳은 것만 증거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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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
서부
1957.
한부선 목사님이 미국에 가면서 맡긴 사람을 잘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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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서부
1957.
신학교 공부 다니며 공부할 시간 없어도 강도사 시취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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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서부
1957.13.
고신의 진리 증거 통로가 파수꾼 하나, 돈 든다고 폐간 시켜 서부교회서 1년 정도 유지. 교안 인쇄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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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서부
1957.13.
국제무대 사업주의로 나가는 한상동의 학위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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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
서부
1957.13.
강도사 시취 때 한상동목사님과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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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
서부
1956.
서부교회 초기 교인 최초 반대노선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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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서부
1956.05.15
고려신학교 사람들이 이승만 당선을 지지할 때 백영희는 교회의 선거 개입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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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
서부
1956.13.
저녁 예배를 볼 수 없도록 통금이 발표되어 예배 취소가 잇따랐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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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1956.07.
거창읍교회 남영환 목사님이 1956.7. 부산 수정동교회 부임하고 1957.3.에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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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
1956.02. 1958.10.
V
하종택 목사님 여수교회(여수충무동교회)에서 집회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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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1956.01.06
약혼식에 참석하고 고신의 수뇌 목사님들 앞에서 유엔군 철퇴에 대해 새벽 설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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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
서부
1955.
주님의 적이 되는 것은 단단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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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
서부
1955.
교인 시기한 부산진교회 집사를 대중 앞에서 기어코 치리. 3년간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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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서부
1955.
부산진교회. 목사님 두루막 해드린 교인을 시기하여 견디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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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서부
1955.
여집사님들 4년간 금족령 내려 훈련하던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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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
서부
1955.
용호동 나환자 수용소 원장, 집회 요청,회개 후 서부교회 출석,연락 끊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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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서부
1955.
박태전 전도관 운동에 고신이 제일 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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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서부
1955.
양복점 성낙구 남천교회에 월정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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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서부
1954.
환란이란, 최고의 설교를, 천국가는 노자, 철학공부, 약간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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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
서부
1954.?
집회 시 마귀가 발동하였으나 붙들어 계속 참석 시킨 후 은혜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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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
1954.
결혼식에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칼입니다' 하는 말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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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
1954.
원어 ‘삭스(육σάρξ)’는 부패성이 아닌 마음과 고깃덩어리로 해석한 것에 대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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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1954.
‘죄도 하나님이 근본이시라.’하는 논문 서두를 읽을 때 이상근 목사님이 중단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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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
1954.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나흘 집회에 모든 교인들은 은혜, 최희보 목사는 못 알아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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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
1954.
신학, 넓은 지식을 배워 가르칠 때는 은혜가 안 되고 설교에도 힘이 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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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
1954.
정치와 교훈을 성경보다 헌법을 위주로 교회를 다스리는 문제에 관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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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서부
1954.
남교회에서 학신 설교 시 밀의 핵과 유정란을 들어 설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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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
서부
1954.13.
큰 딸 중학 졸업하고 신학교 데려 놓았는데 깨닫고 보니 성경만 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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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
1954.09.
한 목사님이 에큐메니칼에서 학위 받는 것 반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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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
서부
1954.09.
박윤선과 한상동의 ICCC 참석과 박사학위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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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서부
1954.07.32-7
시험 칠 때 총명을 주셔서 좋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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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
서부
1954.07.32-7
월에서 금까지는 일반학교 학생회 예배, 금 밤부터 월새벽까지는 교회 집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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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
서부
1954.07.32-7
성경을 다 외웠는데 집회 다니고 하면서 밖으로 다니다가 성구를 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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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서부
1954.07.32-7
고려신학교/ - 한명동 사모님이 새벽기도 마치고 제일 끝까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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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서부
1954.07.32-7
신학생들이 공부 때문에 예배나 기도생활이 소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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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서부
1954.07.31-7
원어/ 신학/ 성경/ - 싹스는 부패성이라 하는 고려신학교와 원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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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서부
1954.07.31-7
고려신학교에서 얻은 것은 혼자 성경연구한 것이 옳았다는 확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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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
서부
1954.06.
노트 귀중성 알던 고신 학생, 제일 깨달음, 남천교회 담임, 고난 중 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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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서부
1954.06.31-7
선교해 가지고 순복음교회 생김,말씀은 칼이라 강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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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
서부
1954.06.31-7
졸업논문 발표 때 일원론을 읽자 이상근목사님이 황급히 중단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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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
서부
1954.06.31-7
책읽어주고 이름과 연대 외우는 것으로 그쳤으나, 역사는 이어지는 흐름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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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
서부
1954.06.31-7
우물파기를 반복하면서 주님께 드리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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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
서부
1954.06.31-7
옳은 것만 배워서 나머지를 다 배척하고,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라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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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서부
1954.06.31-7
고려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운 것은 오종덕, 제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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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
서부
1954.03.
박윤선 사모님 교통사고 사망으로 별세하고 장례식 출상 예배 때 오종덕 목사님이 증거한 내용, 생명은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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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
서부
1953.
공회와 다른 교리노선, 제한예정, 장로성격, 중생교리, 백영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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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서부
1953.
부산대학 총장,이전 설립자,결혼식을 친지 몇명만 참석시키고 예배드린 선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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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서부
1953.
유명한 이단 신학자, 지식주의자들은 전부 바르트주의에게 끌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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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
서부
1953.
왜정 신신학, 김재준 송창근 채필근, 친일파, 박윤선과 토론을 보며 정체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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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
서부
1953.
이병규목사님이, 김현봉목사님과 한국의 두 지도자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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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서부
1953.
공부할 시간이 없어 떠드는 소리만 듣고 시험을 쳤는 데 백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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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
서부
1953.
나이가 많아지면 밀려나니 젊을 때 일해야 한다는 말이 거슬려 잊혀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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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서부
1953.
본과생,원어설교 목회 실패,집회 요청,교인들은 은혜, 자기는 못 알아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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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서부
1953.
송상석 목사님과 대립,박윤선 만류함,정치학 강사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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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서부
1953.
신학교 다니며 집회하면 은혜 받았다며 울면서 봉투를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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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서부
1953.
신학교 시험문제 선택설 논술했으나 백점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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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서부
1953.
어느 신학교에서 유명한 철학자가 여러 철학을 말하나 감옥에 갇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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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
서부
1953.
영도 제일교회 집회 때 알미니안 주의로 반대한 신사훈, 사람 보내 서부교회 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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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서부
1953.
백영희 조사님이 서부교회에 부임하자 거창 출신이 많았던 대신동교회는 이동근 서봉월 가족이 중심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