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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
공회
1960.13.
1.금정산 성경해석 2.박윤선 주석 출간 3.파수꾼 출간 4.노선 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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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
공회
1960.13.
처음에는 중생한 사람 속에 범죄하지 않는 부분이 조금 있다 하다가 나중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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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
공회
1960.13.
대한신학교 강의를 다니다가 이병규목사님과 나뉜 다음부터는 두문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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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
공회
1960.13.
경기노회에서 함께 나왔다가 뒤에 서울과 부산으로 활동을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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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공회
1960.13.
ICCC 문제로 이병규목사님의 문의가 있어 정치주의라며 금지하고 둘이 노선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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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
공회
1960.13.
맥킨타이어 ICCC는 반공이 제일이고, 보수가 제이인데, 정치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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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공회
1960.13.
고신에서 나온 뒤 안수 때문에 경기노회 가입했다 ICCC 때문에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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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
공회
1960.13.
영주동 터널 위에 백도진이 대학을 다니며 1960년대 초반 젖양으로 서부교회 양유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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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
공회
1960.12.
성탄장식 새벽종 전도지 새벽찬양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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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
공회
1960.12.32-7
고신에서 나온 뒤 경기노회 가입했다 ICCC 때문에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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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
공회
1960.12.32-7
공평성 때문에 자녀들 법학시킴. 정계 진출은 금지. 장면 정권 때 법무차관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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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공회
1960.12.32-7
이기선목사님의 당부하던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 대화, 납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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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
1960.11.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 한 것에 시비가 나서 고려신학교가 발칵 뒤집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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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
공회
1960.11.29.
교회 내 장로 특별석이 있는데 그 자세가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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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1960.11.29-7
V
애양원 집회 가면서 손양원 순교시 손가락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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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1960. 1965.
V
교리와 신조 때문이 아닌 아무도 해주지 않는 책망의 말을 듣기 위해서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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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
1960. 1965.
V
물질 개악설은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면서 도를 전하는데 제재 될 것을 염려하여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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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
공회
1960.
책 내용은 남은 때를 어떻게 살고 갈까 하는 그런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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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
공회
1960.
59년 고신에서 제명 된 후 공회는 김현봉 목사님과 공의회 형태를 1965년까지 형성한 과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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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공회
1960.
영락 대구제일 신정 부산삼일 초량교회 삼사백 아현교회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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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
서부
1959.
1959년 가조교회 집회 때 남영환목사님이 교리 설교를 하면 교인 은혜 받지 못한다고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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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
서부
1959.
초기는 성탄장식과 새벽 종치기 열심. 관서와 신문에서 문제. 그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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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서부
1959.
딸을 고신 입학, 타락한 인간은 배출하지 못하면 발동. 독신보다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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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서부
1959.
십의 이조, 동양서 제일 큰 교회 짓는다고 대구 서현교회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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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서부
1959.
예배당에 똥물 붓는다고 오면 김삼암 사찰 수위 때 숨어 피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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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
서부
1959.
호남회 영남회 가족회를 용납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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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
서부
1959.
우리는 밑에서 집회하고, 위에서는 막 두드리면서 찬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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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서부
1959.
설립, 역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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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서부
1959.
병 낫기 위해 변계단 식사를 힘들여 담당,마지막에는 그 병으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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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서부
1959.
칼빈 주석은 안 봤고 박윤선 주석은 몇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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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
1959.
백 목사님에게 은혜를 받아 따랐으나 고신과 나뉠 때 단절과 이민 후 연락,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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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1959.
‘시대에 앞서지도 말고 뒤서지도 말고 중간을 가는 게 좋습니다.’라는 교훈에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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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1959.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온전히 기뻐하라’ 하는 성구로 일주일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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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1959.
한상동 목사님이 백 조사는 한국의 엘리야 자청한다 하며 안하무인 독선주의, 교만쟁이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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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1959.
한부선 목사님께 메켄타이어 운동에 대해 질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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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
1959.
메킨타이어 운동에 참가를 해야 하는지 하는 편지에 기독교 정치운동이니 참가해서 안 된다고 편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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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1959.
오은해 집사 집에 초대를 받아서 석원태 목사님과 원어에 대한 논쟁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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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
1959.
양심시대 사람은 양심을 쓰면 구원, 예수님 없어도 된다는 총회 공과를 이인재 목사님이 듣고 바꾼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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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1959.
공자도 지옥 갔다는 발표에 대구시내 장로들이 총공격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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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1959.
원남교회 양도천 집회에 1시간 참석, 성령이 없고 하나님 중심이 아님을 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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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서부
1959.
고려신학교 공부 때 기적은 잡탱이 신앙이라 학자들이 가르쳐 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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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서부
1959.
천사당 빵집,복음 위해 바친 사업,고신교파 경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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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서부
1959.
30분 들어보고 거짓을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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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서부
1959.
기도 중 십자가 못 박혀 피흘리는 예수님과 대화한 경험은 불건전한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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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서부
1959.
예수님 초상 그리는 것은 마귀 역사라고 30년 전 고신에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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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서부
1959.
1년 5-6백 페이지 책 3권 저서는 낼 정도라야 목회자가 버림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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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
서부
1959.
가치 있는 일에 죽는 날까지 버리지 마시고 쓰달라고 울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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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서부
1959.
서울 집회 은혜받고 3일간 정신 잃을 정도, 후에 신학교 가서 완전 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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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
서부
1959.
백목사님이 표준어 무식하다고 시험들고 떠난 신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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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
서부
1959.
문둥이를 좋아하고 문둥이 교회마다 안 간 교회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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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
서부
1959.
서부교회 와서 3년동안 대님 끌러보지 않고 요 위에 누워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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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서부
1959.
마산 결핵요양소 제일 심한 결핵환자와 함께하며 기쁨을 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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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
서부
1959.
배척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배척당해서 막는다고 급한 것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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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
서부
1959.13.
용문산,한국에 재림,구국기도원,기독교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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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서부
1959.13.
포도주도 깨달은 다음부터 금지, 담배 맥주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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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서부
1959.13.
이정권 말기에 이병규목사님을 통해 정부에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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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서부
1959.13.
건설구원 교리를 듣고 회개한 김천 집회의 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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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
서부
1959.13.
한명동목사님이 고려신학교를 대학으로 키워가다 실패한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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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
서부
1959.13.
모든 집을 하나씩 방문하던 대심방을 1-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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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서부
1959.13.
고려신학교 학생 중 평양 부자집 아들의 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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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서부
1959.13.
고신으로 교회를 데려온 것이 박영기조사님이 제일 많고 그다음이 백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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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
서부
1959.13.
신윤필 집 심방, 김재순은 사람 보기에 더러우나 하나님 앞에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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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
서부
1959.13.
장열, 서영호, 박장관 등이 회장했고 부산에서 학생회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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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서부
1959.13.
세상이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실은 세상이 너무 잘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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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
서부
1959.13.
죽는 것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또 새옷을 갈아입기 위해 헌옷 벗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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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
서부
1959.13.
내수동 개척 초기 이재순목사님 가정 식사 때 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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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
서부
1959.13.
전화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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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서부
1959.13.
이병규목사님의 소개로 김현봉목사님과 교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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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
서부
1959.13.
고신의 유엔군 철수 반대 운동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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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
서부
1959.13.
고신 안에서 따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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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
서부
1959.13.
장관이 기도하다 병이 낫게 되자 그때부터 광고를 해서 떠들고 마지막에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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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서부
1959.13.
서부교회 문제 해결을 두고 서울로 이동을 명령해서 시무투표 결과에 맡겨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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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
서부
1959.13.32-7
흠이 없어도 교육 사회성 때문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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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
서부
1959.13.32-7
백태영 군입대 국기배례 받들어총 환란 승리 성경3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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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
서부
1959.12.32-7
전도사 치리 문제였지만 7개 노회와 마찰이 있었고 마지막 상회 불순종으로 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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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
서부
1959.12.32-7
예배당 소송에서 송상석 황철도와 대립, 한상동 오종덕 이인재 박윤선과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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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
서부
1959.12.32-7
장년반이 당시 약 300명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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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서부
1959.12.32-7
교만 안하무인 엘리야 유아독존 배타자 등으로 이름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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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
서부
1959.12.32-7
제일의 여성 신앙인이며 백목사님을 고신의 눈으로 불렀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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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서부
1959.12.32-7
기적 행하는 유명한 정장로님이 아무에게나 기도하는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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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
서부
1959.12.32-7
제일 친한 두 친구가 함께 잤는데 새벽에 죽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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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
서부
1959.12.32-7
학생신앙운동의 운영주도는 한부선, 은혜는 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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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서부
1959.12.32-7
민족과 나라의 죄를 안고 회개하는 이들에게 자기 속 숨은 죄를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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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
서부
1959.12.32-7
학신 새벽기도 때 다니엘서 설교, 마귀 먼저 승리 후 성도들 승리하되 완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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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서부
1959.12.32-7
고신 수뇌부의 사모들 때문에 고신이 절단나고 박윤선 백영희 등도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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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
서부
1959.12.32-7
신학교가 대학 종합대학 의대로 확장하면서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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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
서부
1959.12.32-7
고신에서 서울로 이동하라는 중재안에 대하여 서부교회의 시무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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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서부
1959.12.32-7
고신 안에서는 깨달음을 자유롭게 발표하지 못했으나 제명으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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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
서부
1959.12.32-7
장관부인이 교회를 옮기려 하자 울면서 따라 다닌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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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
서부
1959.12.32-7
양심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심부름 존재로 보는 것은 잘못. 양심은 인적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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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
서부
1959.12.32-7
김주호목사님 00교회에서 포도나무 가지 비유하자 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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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서부
1959.12.32-7
칼빈은 그 시대를 감당했고 오늘을 감당할 수 없는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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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
서부
1959.12.32-7
신마산교회 집회 때 총회 공과가 나왔고 양심시대 구원은 공자도 해당 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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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
서부
1959.12.32-7
1.신학접촉에서 얻은 것 ... 2.고신에서 구원 성장은 신적요소 인적요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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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서부
1959.12.32-7
손양원/ 주남선/ - 추도식을 반대해서 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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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
서부
1959.12.32-7
개척, 이명제 파송, 양도천 강단세움, 건축연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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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서부
1959.12.32-7
고신의 눈으로 백목사님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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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서부
1959.12.32-7
삼일교회 부목으로 설교를 시켰는데 성경은 하라는 것과 말라는 것 둘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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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
서부
1959.12.32-7
변영태/ - 장관부인 5-6명으로 서울 초빙,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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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서부
1959.12.32-7
서부교회/ - 교훈교류 제의가 많은데 그렇게 하자 하면 모두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