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령묵도와 국기 경배 문제

손양원 설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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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충령묵도와 국기 경배 문제

성구(발신/수신) 고전2:1-16
일시 미상
출처 이광일 손양원설교집3-29
서기 0 3
충령묵도와 국경배(國旗敬拜)문제(고전 2:1-16)

일본 제국 우상교와 싸우던 과거 대환난은 과거에 있었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날도 직면한 일대 문제요 또한 장래의 문제도 된다. 과거에 신사 참배한 것을 죄라고 깨달아 회개했다고는 하나 그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과연 무엇인가, 만약에 진정하게 참으로 회개했다면 그 잘못된 것에서 분기하여 앞으로 닥치는 문제에 크게 싸울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 우리는 진정한 애국자 열열한 애국자가 되자

참다운 애국자 참다운 애족자(者)는 그 국가 그 민족의 흥망성쇄의 길을 잘 가르쳐 주는 자가 아닐까, 건국 초두에 있어서 처음부터 주초(柱礎)가 되어서 아주 구별해 보아야 되겠는데 벌써 목사 장로 중에 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국기 경배와 충령묵도를 한 이가 있다고 하니 어찌 딱한 일이 아니겠는가.

2. 국가와 종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피차에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니 종교란 그 국가의 흥망의 길을 가르쳐 주는 자요 국가의 흥망성쇠를 따라 그 나라의 종교도 영향을 받게 되는 법이다. 따라서 국권은 종교를 보존할 책임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권 아래 종교를 둘 것도 아니고 종교가 국가정치를 간섭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는 그 국가의 내부가 되고 정치는 외부가 되어 각각 별도로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유대 국가는 세계 각국의 표준이 거울이다

하나님은 모든 국법 도덕의 표준과 종교의 근본 표준으로 유대국에 율법을 주셨다. 고로 유대국에 주신 율법 즉 국법 도덕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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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대 법 원리에 의해서 바로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와 국가의 머리시요 주장이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는 종교도 타락하고 국가도 망하게 되는 것이다. 보라 하나님께서는 국토를 주시되 한계를 정하셨고 국민을 내시되 주권자를 내시어 주장하게 하시니 (행 17:25-26)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며 나라가 흥왕하기를 바라겠는가 시편 33:12에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는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였다.

4. 죄값으로 나라 망한 과거를 살펴보자

악한 습관을 모방하지 말라, 소위 일본 문명을 배웠다는 사람들의 오늘 그 행동을 보면 일본 우상국의 일본 정신 독주(毒酒)에서 아직도 깨지 못하여, 죄인지 망할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는것 보니 답답하다. 가령 그 악행으로 해서 나라 망하던 그것을 보고도 그 흉내를 내려고 할 것이 무엇인가. 이 역시 말세의 징조인가 싶다. 문명이라고 해도 우상적 문명 본 받지 말고, 일본 정신의 악한 습관이라면 회개하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5. 국기 경배는 또 다시 모든 죄를 받아들이는 첫 걸음이 된다. 국기 경배가 작은일 같으나 이것을 하게 되면 충령묵도도 부모제사도 단군제(檀君祭)도 다 못할것 없이 된다. 이론을 부친다면 그럴듯한 이론을 부칠 수 있으나, 이것은 인의(人意)와 악마와 오묘한 유혹에 속히우는 것이다. 국가 의식(儀式)이라고 하고 나오는 모든 죄를 용납하는 시초가 된다. 그런고로 아예 처음부터 금을 그어 놓고 건국 시초부터 구별을 보일 필요가 있다. 나라 망하는 죄악의 길을 또한 가르쳐주자

기독자 여러분! 만일 우리가 성전 바깥이라고 국기에 절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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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면, 다음에는 성전 안에 또 다시 일본 악정때와 같이 강단 뒤에 붙여 놓고 예배의 대상이 되는 때는 어떻게 할까, 성전 밖에서 경배를 하면서 성전 안에서 못할 것이 있겠는가, 이렇게 되어지면 과거 신사 참배 때에 짓던 죄와 무엇이 다르며 과거를 회개했다는 뜻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되어지면 일정때에 하던 악법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러니 이러한 망동(動)은 극히 삼가야 할 일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의 화상이나 베드로의 초상을 성전 안에 걸어 놓고 경배하는 로마교 이단(異端)과 다를 것이 무엇이며, 또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와 국조에서 드리는 단군제를 무엇이라 막겠는가. 이래지면 나라는 또 망하게 되고 기독자에 대한 박해는 배전이상일 것이다.

이제는 이론은 그만두고 성경 말씀을 표준으로 하고 생각해보자. 과거에 범죄하고도 사람들의 구구한 이론이나 인간적 지식으로 해서 실패하였던 일본 정책으로 처음 신사 참배 우리 조선 교회에 문제가 들어왔을때 다 정신차려 반대하지 못한 까닭에 실패하였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에 과거를 거울삼아 철저하게 회개한 표로 힘써 싸워야 하겠다. 베드로 선생도 다윗 임금도 바울 선생도 회개에 철저 했던 것을 볼때에 우리들도 회개에 철저해져야 하겠고 회개에 철저해지면 앞으로 강하게 범죄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 (사형수의 이야기)

6. 참다운 애국자가 되자 (롬 1:18-32, 롬 9:1-3)

우리나라의 흥망의 길을 잘 가르쳐 주자, 흥망의 길을 잘 가르쳐 주는 종교가 참 기독교다. 특히 목사님의 책임 장로님의 책임은 지도자의 입장으로서 지중함을 자각해야 한다. 옛날의 선지자를 보라 모세도 예레미야도 바울도 다 참 애국자들이었다. 망국일본에도 진정한 기독자가 있었다면 우상을 박멸해서 저같은 참혹한 지경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선지자와 까마귀 신세이야기) 내가 당한 박해의 고생은 과거 문제가 아니라 미래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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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더 크다. 그래서 우리는 범죄 방지선(防止線)을 그어 놓자 ① 국가의식이라고 해서 다 할것 아니라 ② 지방의 도덕이라든지 풍속이라고 해서 다 따를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도덕 풍속도 국법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그 지방 풍속 그 국가의 의식이라고 해서 다 따를 바에야 무슨 까닭으로 우리가 박해를 받겠는가, 기독교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 들어갈 때마다 박해를 받은 것이 이 까닭이다. 범죄할 소질을 가지고 되어진 국법이나 풍속에 어찌 순종해야 하겠는가, 영국같은 나라에도 초대 교회 시대에는 30여년간 자녀 교육까지도 못시켰다하며, 일본에도 처음 로마교가 들어갔을 때는 40만명이 학살을 당했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교인은 건국 초에 심각한 각오를 가지고 올바른 국가가 세워지도록 힘쓰고 심지어 박해까지도 각오해야한다.

7. 지도자여 속지 말라

우리는 국가 경배 충령묵도에 유인 당하지 말자 아직도 과거 일본 우상의 술, 음녀의 독초에 취한 것이 깨이지 않은듯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다.

아직 지금도 각각 신자의 양심에 맡기자고 하는 이가 있으니 참가탄(可嘆)할 일이다. ① 양심이라고 하나 불의한 양심 미각(味覺)한 양심 혼미한 양심이 어찌 옳게 깨닫겠는가 ② 다 각기 자기 양심에 맡긴다면 지도자의 필요가 무엇이며 책임은 다 무엇인가③ 성경 지식이 부족하다고 진리 분별력이 부족한 어린 신자들에게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에 실패한 신자들이 지도자 원망하는 것 많이 보았다. ④ 과거에 조선 교회를 망친자가 누구냐 총회 노회를 지도하던 목사 장로들이 아니었더냐? 이 책임 벗을 수 없다. ⑤ 또 다시 망칠 소리 말라, 국가 흥망의 길을 잘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어찌 무책임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제2계명에 크게 주의하면서 이를 밝혀야 한다. 제2계명중에 '무

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한 말씀대로 우리는 무슨 형상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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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서는 안된다. 섬기기 위해서 또는 영리적으로나 이왕부터 있던것이나를 물론하고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 신교에서는 예수의 사진까지도 이를 섬기기 위해서 만들어서는 안된다. 또 '거기절하지 말며'했다. 예(禮)와 절은 다르다. 예의를 표시하는 것과 절 하는 것은 다르나 특히 상대가 우상일 경우에는 절이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에게만 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도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이적을 행한 다음에 그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섬기려고 할때에 옷을 찢고 반대했던 것이다. 또 '섬기지말라' 우상이면 바로 물질인데 피조물인 우상이 무슨 화복을 줄 수 있기에 섬기겠는가. 우리 기독교가 다른 점이 이것이다. 우상이 있는 우상종교가 무슨 우상을 구별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령의 전이요 예수의 생명을 가진 기독자가 어찌 세상 사람들과 같이 할 것이며, 마귀의 아들로 우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죄인들처럼 우상에게 절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기독자라는 것은 외부나 육체만 보지 않고 중생한 영적 인간이다. 그런고로 우상에게 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론은 그만두자. 마귀의 지혜는 묘해서 들으면 근사해서 속기 쉽다. 마귀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 다음가는 것이기 때문에 속기 쉽다. 아담 하와가마귀에게 속듯이 속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란 것은 대개가 이론적으로 따지다가 속아서 되어진 실패인 것이다. 국민 의식이니 국민 도덕이니 그래서 종교가 아니니하는 따위가 그렇게 만들었다. (에덴 타락후 인지(智) 신지(神) 3종으로 분리된 이야기) 우리는 다만 성경의 진리와 교회 역사상에 나타난 과거 거울과, 우상 국가가 멸망된 예를 찾아보면 명약관화(明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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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가지 죄는 여러가지 죄를 낳는다 (롬1)

기독자와 이방인이 똑같은 죄를 짓지 않았는가. 신사참배로부터 동방요배 국기 경배 부모제사까지 꼭 우상 종교인처럼 다신교인 범신론자 혹은 무신론자처럼 우상숭배 하나 빼놓지 않고 다 범했으니 무엇이 기독자라고 다른 점이 있었겠는가, 공범죄 동참죄를 예사로 지은 것이 아닌가.

따라서 도덕적인 죄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범했다. 도덕적으로도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조금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이다. 술마시기, 담배 피우기, 이방 혼인, 거짓말, 사기까지도 불신자 지지않게 하고 있지 않은가, 도저히 기독자다운 경건을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목사 장로 조사(전도사)까지도 이 모양 같은 이가 있으니 다른 보통 신자의 행실이란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 범죄로해서 기독교 전체가 더럽혀지고, 하나님을 욕되게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아닌가, 어찌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겠는가, 저들의 마지막은 패망이라고 하신대로 될 것을 어떻게 면하겠는가.

그러니까 소위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도 구실뿐이다. 우상숭배자들 보다도 더 허무한 짓들을 많이 한다. 그러니 제4계명의 안식일을 범하여 예배드리는 날도 잃어버리고, 주일 날이라고 평일과 다른 것이 없게 되고, 성전, 강단에다가 국기를 붙여 놓고 예배의 대상을 삼고, 성전에 들어오면 먼저 동방을 향하여 경배하고 나서 부스러기 찌꺼기 예배를 드리게 된것이 아닌가, 옛날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에게 화와 저주로 책망하실때에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능이 없다'고 하셨는데 오늘날의 신자에게서는 그 경건한 능이 없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그 경건한 모양까지도 없으니 가탄(可)할 일이 아닌가

예배당에 올때에는 신자같고 밖에 나가면 불신자와 동류요, 기도 할 때에는 하나님 아들 같은데 머리를 들면 마귀의 자식과 다른 것이 없다. 찬송을 부를 때는 신자같은데 찬송을 부르던 그 입에서 욕설도 나오고 거짓말도 나오고 유행가도 나오는 별의 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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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같은 입에서 나오니 어떻게 구별이 되겠는가, 한 구멍에서 달고 쓴 물이 어찌 나올수 있으며, 무화과 나무에서 엉겅퀴와 찌르는 가시가 맺겠는가, '내가 올때에 믿는 것을 보겠느냐' 하시더니 과연 그렇게 될 것 같다. 인간의 죄악은 심판 주님을 독촉하는 것 같이 사망과 음부의 냄새가 지상에 가득하니, 어찌 기독자의 도덕적 부패의 책임을 면할 수 있으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고, 선지자 노릇을 했으며,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드렸고 설교도 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것이 심판대 앞에 무슨 효과가 있으랴! 보라 과거 제1, 제2계명 범하더니 이같이 모든 죄를 산출하게 되었다.

9. 진리의 절도(節度)를 당하지 말라

옛날 예루살렘 거룩한 전이 불결하게 된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지 말라' 하셨다더니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기와 절도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일제 때에는 부득이 해서 억지로 강제로 시험을 당한 것 같더니 오늘날에도 모든 신자들이 절도를 당하고 사기를 당하는 것 같다. 남을 속이고 자기가 스스로 속아서 결국 마귀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들의 교묘한 이론에 속고 있는 것 같다. 마귀에게와 사람들에게 진리와 생명과 신앙을 절도 당하고 사기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과거에 속은 것을 알고 성경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불나비처럼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다. 이것은 분명히 과거 우상 독주에 깨지 못한 증거이다, 번연히 당해 보아서 상식적으로 능히 판단 할 수 있는 일인데 깨닫지 못한다. 들려주고 가르쳐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혼수상태야 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음녀의 악마는 참으로 교묘한 악마였던 듯 싶다. 불신 사회도 보니 그 정신 그 생각이 여전히 일본식이요 교회 내도 꼭 보니 그때 형식을 형식만 바꿔놓고 이름만 변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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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이지 똑같다. 국기 경배가 그렇고 충령묵도가 그렇다.

10. 성도는 성별된 생활을 하자

(요 15:18-21, 17:14-16)

자 끝으로 부탁하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는 문제이다. 이제 부터는 진정으로 회개하고(대세를 따르는 것 말고)정신을 차려서 깨어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처럼 참 기독자로 살아보자, 왜 그렇게 불신자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가. 왜 이방 나라의 유전을 받고 싶어하는가, 불신자의 구미를 못 맞추어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신앙으로 해서 조롱을 받고 핍박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개인에게서 핍박, 가정의 핍박, 가문적으로도 핍박, 국가적으로도 박해를 당하는 것은, 의례히 옛날부터 있었던 것으로, 오늘 날도 변함이 없는 일이다.

자! 이제는 옛 성도들의 반열에 같이 서서 선을 그어놓고 살아보자 말에도 행실에도, 의식에도, 도덕에도, 국법에도 태도를 선명히 하자. 옛 성도들은 믿고 난 후에는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1) 이름도 고쳤다. 게바가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2) 윤기(氣)도 변했다. 육체나 혈통을 찾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형제 찾기를 좋아했다.

(3) 직업도 변했다. 어부가 그 직업을 고쳐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고, 학자가 장막 짓는 이가 되었다.

(4) 고향도 달라졌다 벧세다가 고향이더니 천국이 고향이 되고, 길리기아 다소가 고향이더니 하늘 나라가 고향이 되었다.

(5) 개심(心)했다. 우뢰(雨)의 아들이 사랑의 아들이 되고, 돈을 사랑하던이가 돈을 버리게 되고, 포악하던 박해자가 온유하고 겸손한 핍박 당하는 자가 되었다.

(6) 개종(改宗)했다. 유대교의 철저한 율법주의자가 예수의 제자로, 세례 요한의 제자가 예수의 제자로 옮겼다.

그런데 우리들은 무엇무엇이 얼마나 변하고 달라졌는가.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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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되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별로 변함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중생된 후에는 참으로 변화가 있어서 성별된 생활을 해야된다. 우리 기독자는 땅위에 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늘에 올라갈 인자(人子)이다. 성령의 역사로 신자가 된 우리는 성령의 감동이 기록된 성경과 부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과 짝하지 말고 성별된 생활을 하자면 때로는 고독을 느낄 때 있을 것이나 기독교는 원래 고독의 종교이다. 기도도 은밀한 중에서, 구제도 은밀한 중에서, 선행도 은밀한 중에서 행하여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면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이 알것이 무엇인가. 또 생각해보자. 동네 방네마다 풍속이 다르다. 나라 나라마다 국법이 다르다. 하물며 세법(世法)과 천법(法)이 같겠으며 인법(法)과 신법(神)이 같겠는가! 이제부터는 인의(人意)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세법과의 충돌을 겁내지 말자. 요한 15:18-20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에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터이라'하셨다. 과연 기름이 물과 합쳐지고 빛과 어두움이 한데 있을 수 있으랴.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합해 지겠는가. 이처럼 기독자는 세상과 타협 할 수 없는 것이다. 생활을 말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두 나라에 살 수 없

이중듯이 이중생활이 하나님 앞에 통과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핍박에는 두가지가 있다.

① 범죄하고 악을 행함으로 오는 핍박이 있는데 이는 나와 남과 나라와 교회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② 주 위해서 의를 위해서 받는 핍박이 있는데 이것은 신자에게 당연히 있을 일이 아닌가. 이것은 교회 왕성의 비료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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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가 된다'는 것은 유명한 말이다. 자! 기독자들아 참 애국자가 되는 길은 참 기독자가 되는데 있는 줄 알고, 진리 위해서 불의와 싸우고 주를 위하여 세상과 싸워주 앞에 죄를 다 쏟아 바치기까지 하자!

그래서 과거에 취했던 모든 음탕한 독주에서 깨어나 성령충만에 취해서 우상숭배를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