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9월 9일¹

손양원 설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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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944년 9월 9일¹

성구(발신/수신) 발신:손동인, 수신:손양원
일시 1944.09.09
출처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56
저자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서기 0 2
1944년 9월 9일¹
편지 원본 347쪽

발신 : 손동인
수신 : 손양원





돌이켜 보면, 몹시 더웠던 올해 여름 부자유한 몸으로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그러나 추수할 때가 임박한 이때, 시원한 가을바람 불어올 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 기쁘시지요?

참으로 여름은 덥기도 하고 모기와 빈대, 벼룩 등 온갖 벌레가 성가시게 물지만, 이 모든 것이 지난 뒤에 즐거운 가을이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 인생이 고생스러운 여름 없이 즐겁고 상쾌한 가을의 진가를 알겠습니까? 저희 집에서도 가을을 바라는 마음과, 황군(皇軍)이 따가운 햇볕 아래서 수고하는 것을 생각하며 기쁨과 고마운 마음으로 여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께 드릴 말씀은 할아버지께서 하얼빈 둘째 숙부 댁으로 9월 8일 21시 10분발 히카리(ひかり) 열차로 떠나셨습니다. 미리 아버지께 알리지 못한 것은 어리석은 저의 잘못이나, 미처 알릴 틈도 없이 급히 가시게 되었습니다. 막내 숙부께서 일금 백 원과 함께 갑자기 할아버지를 속히 오시도록 하라는 편지를 보내서 아버지께 제때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전부터 두 분 삼촌께서 할아버지가 올라오시는 게 낫겠다는 편지를 종종 하셨고, 또 할아버지께서도 삼촌께 한번 다녀오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중에 막내 숙부께서 여비까지 보내서 속히 오시라 하시니 할아버지가 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불과 솜옷 등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또 몇 달 뒤에는 내려오시겠지요. 할아버지께서 요새 매우 건강하셔서 차 타시는데 그렇게 고단하시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차내에서 드실 밥과 찹쌀 미숫가루와 물 등을 많이 준비하였으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요새는 차에 지정석이 있고 그렇게 만원도 아닙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10일 아침 8시경 하얼빈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전보도 다 쳤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불편하십니다. 동생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 안심하시고, 아버지 건강하시기를 위해 엎드려 기도합니다. 드릴 말씀은 실로 많아서 붓을 놓지 못할 심정이지만 이만 줄입니다. 모든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인사드립니다.

1944년 9월 9일 24시 15분 전.
동인 삼가 올림.

(2쪽 뒷면)²⁾

"할아버지께서 9월 8일에 하얼빈으로 가셨습니다"라는 꿈같은 소식을 듣고 나는 심히 놀랐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를 모시는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맏아들인 나로서는 팔순을 바라보는 홀아버지가 눈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남쪽 따뜻한 곳을 떠나 수천여 리의 외국 하얼빈에 가시게 된 소식을 들으니 천지가 노랗게 보인다. 부모가 문 앞만 출입하여도 배웅을 나가야 자식의 도리인데, 수천여 리 외국을 떠나시는 아버님께, 절이라도 올리고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고사하고, 떠나는 소식조차 알지 못했으니 마음속 허탈함이 무섭게 나를 휘감는구나! 수감 중에 있는 아들이 있는 곳을 몇 번이나 바라보며 긴 한숨과 뜨거운 눈물을 어떻게 참으셨을까! 나갈 수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는 새장에 갇힌 까마귀와 같은 신세. 아! 이 모든 원통함이 마음에 켜켜이 쌓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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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서신은 손종일 장로가 80에 가까운 연세에 만주 하얼빈 둘째 아들 손문준 집에 가게 된 사연을 동인 군이 아버지 손 목사에게 전하고 있다. 손양원 목사의 장녀 손동희가 전하는 사연은 이러하다. 손 목사의 큰아들 손동인 군이 20세쯤 되던 1944년, 일제의 징집령을 피하기 위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손종일 장로는 만주 하얼빈 둘째 아들 손문준에게, 부인 정양순 여사와 당시 세 살배기 막내는 부산 기장의 어느 부잣집 식모살이로, 둘째 아들 동신은 하동군 옥종면으로, 그리고 동인은 남해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다. 결국 손종일 장로는 1945년 4월 11일 이역만리 하얼빈에서 별세한다. 참고도서, 손동희 엮음,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 2000).
2) 손양원 목사가 동인의 9월 9일 편지를 9월 18일에 받아 본 뒤, 동인이 보낸 편지 2쪽 뒷면에 썼다. 부친 손종일 장로가 하얼빈으로 가신 것에 대한 놀람을 표하며 적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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