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4년 6월 22일
성구(발신/수신) | 발신:손양원, 수신:정양순 | ||||
---|---|---|---|---|---|
일시 | 1944.06.22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49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0
2
08.28 14:57
1944년 6월 22일
편지 원본 324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정양순
어머니 기일(忌日)을 맞이한 나의 추억.
5월 6일 경애하는 어머니의 기일(忌日)을 앞두고, 어머니의 수고와 사랑을 추억해 봅니다. 나를 사랑하시던 그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애끓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렵습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며 애지중지하시던 그 사랑을 생각할수록 가슴에 슬픔뿐입니다. 어머니의 기일을 떠올릴 때 우리 집 정원에 석류꽃이 붉었던 게 생각납니다. 석류꽃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회상하게 됩니다. 석류꽃은 붉었지만 당신 옷은 순백이었고, 오월의 여름 날씨였지만 눈서리가 세차게 불었습니다. 작년에 강남 갔던 제비 떼는 올봄에 다시 왔건만, 북쪽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 기러기는 따뜻한 봄에 핀 꽃을 애석하게도 보지 못하는가 봅니다. 우리 집 정원에 피었던 석류꽃은 올봄에도 피었건만, 본향(本鄕)을 찾아 낙원에 가신 내 어머니는 다시 오실 리가 없겠지요…….
지상의 향락보다 천상의 영광이 더 좋다는 것을 확신하는 내 신념이 오늘 이 눈물을 그치게 합니다. 이날에 당신은 우리 아버지를 많이 위로해 주소서!
붓을 돌이켜, 동인(東仁), 동신(東信), 동장(東章), 동희(東姬), 동수(東洙) 우리 3남 2녀에게 글을 쓴다. 아버지는 너희가 할아버지께 효도하기를 원한다. 그에 앞서 할아버지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여쭙고, 계절에 따라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는¹⁾ 너희의 성심에 내 어찌 고맙지 않겠느냐! 옳은 일이다. 이것이 자식 된 도리이고 의무이며 사람의 본분이란다. 내 부모를 내가 받들지 않으면 누가 내 부모를 소중히 여기며 공경하겠느냐!
예부터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무슨 복을 받고자 하는 일이 아니란다. 이해타산으로 할 것이 아니라 으레 해야 할 당연한 도리일 따름이다. 삼천 가지 죄 중에서 불효가 가장 큰 죄요 하늘을 거스르는 죄가 된단다. 너희는 당연히 형제간에 우애(友愛)도 있어야 하고 또한 할아버지와 어머니께 효행하기를 배워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복이 따른다는 것이다. 선(善)과 의(義)를 심었는데 어찌 복이 나지 않겠느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란다. 사람이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나는 법이니, 이것이 인과법칙이자 자연의 이치란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응보(應報)의 이치이다. 옛날 순(舜)임금이 위대한 왕이 된 이유는 효로써 어짊(仁)의 중심을 삼은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옛 성인의 글에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²⁾라는 문구가 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해도 부모가 그때까지 살아 기다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 목숨의 기한을 알 수 없는 내가 너희에게 효행을 다하도록 간절히 권유하는 이유다. 너희를 믿지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태산같이, 육지 같이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를 대신하여, 나아가 내가 할 몫까지 더하여 팔순의 할아버지를 잘 모시기 바란다. 훗날에 오늘 효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선을 행하는 것도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할머니께 효를 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거든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할아버지께 효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너희의 성심을 믿는 바, 내가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잘 행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안심한다. 이로써 너희들은 복을 받아라!
이런 효가 임금을 향할 때 충(忠)이 되는 것이다. 효자는 충신이 되고, 충신은 효자가 되는 것이 도덕의 중심이자 근본인 것이다. 동신(東信)은 내년이면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충(忠)으로써 명령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효행에 임해라. 충과 효의 큰 도덕에 거슬림이 없도록 배우기를 힘쓰라.
불효자인 나는 스스로 탄식하고 있다. 효자를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 작은 정성에도 크게 만족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효행과 같이 쉬운 길이 천하에 없지만, 부모님께 족한 효행을 드리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 한탄하고 있다. 어머니에게 효도하지 못해 후회하면서도, 살아 계신 아버지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꼴이라니……. 아~ 나 같은 불효자가 천하에 또 어디 있을까!³⁾
5월 1일, 한동안 집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그사이 아버님은 별고 없으신지, 집안은 두루두루 평안한지요? 지난달 8일에 당신에게 보낸 편지는 받지 못한 모양이네요. 지난 3일에 의원(義源)에게 보낸 편지는 보셨는지요? 그리고 지난달 말경에 편지를 보낸 모양이나 내가 받지 못했습니다. 편지 내용에 항상 주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선이 편지를 못 본 지도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이만 맺습니다. 안녕을 빌면서…….
***
--------------------------------------
1)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저녁에는 잠자리를 챙겨드리고 이른 아침에 문안한다(冬溫夏凊昏定晨省)"는 뜻의 『예기(禮記)』·곡례(曲禮)』의 글귀를 인용.
2)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
3) 여기서부터 부인 정양순에게 전하는 내용.
***
(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322
▼01
손양원 옥중서신_323
▼02
손양원 옥중서신_324
▼03
손양원 옥중서신_325
▼04
편지 원본 324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정양순
어머니 기일(忌日)을 맞이한 나의 추억.
5월 6일 경애하는 어머니의 기일(忌日)을 앞두고, 어머니의 수고와 사랑을 추억해 봅니다. 나를 사랑하시던 그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애끓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렵습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며 애지중지하시던 그 사랑을 생각할수록 가슴에 슬픔뿐입니다. 어머니의 기일을 떠올릴 때 우리 집 정원에 석류꽃이 붉었던 게 생각납니다. 석류꽃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회상하게 됩니다. 석류꽃은 붉었지만 당신 옷은 순백이었고, 오월의 여름 날씨였지만 눈서리가 세차게 불었습니다. 작년에 강남 갔던 제비 떼는 올봄에 다시 왔건만, 북쪽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 기러기는 따뜻한 봄에 핀 꽃을 애석하게도 보지 못하는가 봅니다. 우리 집 정원에 피었던 석류꽃은 올봄에도 피었건만, 본향(本鄕)을 찾아 낙원에 가신 내 어머니는 다시 오실 리가 없겠지요…….
지상의 향락보다 천상의 영광이 더 좋다는 것을 확신하는 내 신념이 오늘 이 눈물을 그치게 합니다. 이날에 당신은 우리 아버지를 많이 위로해 주소서!
붓을 돌이켜, 동인(東仁), 동신(東信), 동장(東章), 동희(東姬), 동수(東洙) 우리 3남 2녀에게 글을 쓴다. 아버지는 너희가 할아버지께 효도하기를 원한다. 그에 앞서 할아버지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여쭙고, 계절에 따라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는¹⁾ 너희의 성심에 내 어찌 고맙지 않겠느냐! 옳은 일이다. 이것이 자식 된 도리이고 의무이며 사람의 본분이란다. 내 부모를 내가 받들지 않으면 누가 내 부모를 소중히 여기며 공경하겠느냐!
예부터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무슨 복을 받고자 하는 일이 아니란다. 이해타산으로 할 것이 아니라 으레 해야 할 당연한 도리일 따름이다. 삼천 가지 죄 중에서 불효가 가장 큰 죄요 하늘을 거스르는 죄가 된단다. 너희는 당연히 형제간에 우애(友愛)도 있어야 하고 또한 할아버지와 어머니께 효행하기를 배워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복이 따른다는 것이다. 선(善)과 의(義)를 심었는데 어찌 복이 나지 않겠느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란다. 사람이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나는 법이니, 이것이 인과법칙이자 자연의 이치란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응보(應報)의 이치이다. 옛날 순(舜)임금이 위대한 왕이 된 이유는 효로써 어짊(仁)의 중심을 삼은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옛 성인의 글에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²⁾라는 문구가 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해도 부모가 그때까지 살아 기다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 목숨의 기한을 알 수 없는 내가 너희에게 효행을 다하도록 간절히 권유하는 이유다. 너희를 믿지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태산같이, 육지 같이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를 대신하여, 나아가 내가 할 몫까지 더하여 팔순의 할아버지를 잘 모시기 바란다. 훗날에 오늘 효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선을 행하는 것도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할머니께 효를 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거든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할아버지께 효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너희의 성심을 믿는 바, 내가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잘 행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안심한다. 이로써 너희들은 복을 받아라!
이런 효가 임금을 향할 때 충(忠)이 되는 것이다. 효자는 충신이 되고, 충신은 효자가 되는 것이 도덕의 중심이자 근본인 것이다. 동신(東信)은 내년이면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충(忠)으로써 명령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효행에 임해라. 충과 효의 큰 도덕에 거슬림이 없도록 배우기를 힘쓰라.
불효자인 나는 스스로 탄식하고 있다. 효자를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 작은 정성에도 크게 만족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효행과 같이 쉬운 길이 천하에 없지만, 부모님께 족한 효행을 드리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 한탄하고 있다. 어머니에게 효도하지 못해 후회하면서도, 살아 계신 아버지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꼴이라니……. 아~ 나 같은 불효자가 천하에 또 어디 있을까!³⁾
5월 1일, 한동안 집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그사이 아버님은 별고 없으신지, 집안은 두루두루 평안한지요? 지난달 8일에 당신에게 보낸 편지는 받지 못한 모양이네요. 지난 3일에 의원(義源)에게 보낸 편지는 보셨는지요? 그리고 지난달 말경에 편지를 보낸 모양이나 내가 받지 못했습니다. 편지 내용에 항상 주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선이 편지를 못 본 지도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이만 맺습니다. 안녕을 빌면서…….
***
--------------------------------------
1)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저녁에는 잠자리를 챙겨드리고 이른 아침에 문안한다(冬溫夏凊昏定晨省)"는 뜻의 『예기(禮記)』·곡례(曲禮)』의 글귀를 인용.
2)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
3) 여기서부터 부인 정양순에게 전하는 내용.
***
(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322
▼01

손양원 옥중서신_323
▼02

손양원 옥중서신_324
▼03

손양원 옥중서신_325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