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4년 5월 3일
성구(발신/수신) | 발신:손종일, 수신:손양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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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44.05.03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44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0
2
08.28 14:57
1944년 5월 3일
편지 원본 307쪽
발신 : 손종일
수신 : 손양원
"봄풀은 해마다 푸르고 왕손은 핍박받지 않는다"라는 말이 너에게 맞겠구나. 4년이나 그곳에서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 내 마음이 초조해지는구나. 그저 그곳 생활을 잘 견디기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며늘아기가 연약한 몸으로 산 위의 집까지 물을 길어 나르고 있으니, 눈 뜨고 못 볼 일이다. 동인·동신·동희·동장·동수는 여전히 착하게 지내고 있다. 너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일전에 보낸 물품 백과사전은 도착하였다. 하리바 비누 반 개, 비누 한 갑, 솜이불 하나, 솜 양말 한 켤레이다. 원래는 두 갑이었는데, 동희 눈 때문에 그리 되었다. 편지를 먼저 하고 물품을 나중에 부치니까 조금 다를 수 있으니 잘 이해해라. 수양(綏陽)에 있는 문준이는 여전히 무소식이고 의원이도 소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양선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우리 집은 고아원 뒤쪽 산 위 서향(西向)인데 대단히 춥다. 바람 불지 않는 날이 없고, 감기 없는 날이 없다. 양로원 맞은편에 있다. 박 씨와 서 씨 집에는 안부 전하였다.
너의 숙부 최권능 씨는 4월 19일에 운명하였다. 그리고 네 형 주기는 4월 21일 오후 9시에 운명하였다.¹⁾ 어머니가 여든둘이시고, 미성년 자녀가 넷이라고 한다.
또 비누 반 개는 나중에 편지하면 보내도록 하겠다. 너의 친구에게 편지 오는 대로 문안 전보하겠다. 네가 영양이 부족하고 마음 아픈 일로 애절한 상황이니, 우리는 네가 보약을 먹을 수 있도록 예정하였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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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사 참배에 반대하여 수감된 사람들은 사상범에 준하는 엄격한 서신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소식을 서신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런 소식이 담긴 서신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 목사와 가족들은 서신을 교환할 때 자기들만 알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숙부 최권능'이라고 한 사람은 신사 참배에 반대하여 구속 수감된 최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를 일컫는 표현이다. 손종일 장로는 최권능 목사가 1944년 4월 19일에 순교하였다는 비보(悲報)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네 형 주기'는 다름 아닌 주기철 목사를 표현한 것이다. 즉 4월 21일에 주기철 목사도 뒤이어 순교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편지 겉면에 손종일 장로가 '비야사(飛也似)' 즉 '나는 듯이 빨리' 라고 기입한 것은 손 목사에게 이 비통한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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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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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307
▼02
손양원 옥중서신_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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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원본 307쪽
발신 : 손종일
수신 : 손양원
"봄풀은 해마다 푸르고 왕손은 핍박받지 않는다"라는 말이 너에게 맞겠구나. 4년이나 그곳에서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 내 마음이 초조해지는구나. 그저 그곳 생활을 잘 견디기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며늘아기가 연약한 몸으로 산 위의 집까지 물을 길어 나르고 있으니, 눈 뜨고 못 볼 일이다. 동인·동신·동희·동장·동수는 여전히 착하게 지내고 있다. 너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일전에 보낸 물품 백과사전은 도착하였다. 하리바 비누 반 개, 비누 한 갑, 솜이불 하나, 솜 양말 한 켤레이다. 원래는 두 갑이었는데, 동희 눈 때문에 그리 되었다. 편지를 먼저 하고 물품을 나중에 부치니까 조금 다를 수 있으니 잘 이해해라. 수양(綏陽)에 있는 문준이는 여전히 무소식이고 의원이도 소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양선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우리 집은 고아원 뒤쪽 산 위 서향(西向)인데 대단히 춥다. 바람 불지 않는 날이 없고, 감기 없는 날이 없다. 양로원 맞은편에 있다. 박 씨와 서 씨 집에는 안부 전하였다.
너의 숙부 최권능 씨는 4월 19일에 운명하였다. 그리고 네 형 주기는 4월 21일 오후 9시에 운명하였다.¹⁾ 어머니가 여든둘이시고, 미성년 자녀가 넷이라고 한다.
또 비누 반 개는 나중에 편지하면 보내도록 하겠다. 너의 친구에게 편지 오는 대로 문안 전보하겠다. 네가 영양이 부족하고 마음 아픈 일로 애절한 상황이니, 우리는 네가 보약을 먹을 수 있도록 예정하였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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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사 참배에 반대하여 수감된 사람들은 사상범에 준하는 엄격한 서신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소식을 서신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런 소식이 담긴 서신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 목사와 가족들은 서신을 교환할 때 자기들만 알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숙부 최권능'이라고 한 사람은 신사 참배에 반대하여 구속 수감된 최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를 일컫는 표현이다. 손종일 장로는 최권능 목사가 1944년 4월 19일에 순교하였다는 비보(悲報)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네 형 주기'는 다름 아닌 주기철 목사를 표현한 것이다. 즉 4월 21일에 주기철 목사도 뒤이어 순교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편지 겉면에 손종일 장로가 '비야사(飛也似)' 즉 '나는 듯이 빨리' 라고 기입한 것은 손 목사에게 이 비통한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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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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