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17일¹

손양원 설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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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943년 12월 17일¹

성구(발신/수신) 발신:손양원, 수신:손양선
일시 1943.12.17
출처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33
저자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서기 0 2
1943년 12월 17일¹
편지 원본 271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양선





동생 양선의 편지에 대한 답신

회신이 늦은 것 먼저 사과한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누이의 정다운 글을 두 번이나 거듭 받으니 너무도 기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형제의 온정이 맺힌 것 같구나.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다섯 식구가 평안하다는 소식은 내게 기쁜 소식이란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거늘 하물며 너희들이랴! 육체의 고통과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이를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지낸다니, 내 근심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 같구나. 산간의 농촌 생활을 국민의 의무로 알고 고난도 꿀같이 감수한다고 하니 과연 국민의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제일선에 나선 장병과 같이 아침저녁으로 노력한다니 오빠는 진실로 감격하고 있다. 기왕 하게 되는 노동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것이 도리어 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노동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분이요, 가장 큰 기쁨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는 것, 아니 노동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수고로운 일을 시키고 자기는 편안하게 있겠다는 자세도 잘못된 것이고,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억지로 고통스럽게 일하는 자세도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꺼리는 이유는 일하는 것을 괴로움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니, 나는 이런 생각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자기의 직업을 귀중히 여기고 즐겁게 일하라는 말이다. 세상의 인간에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이 있고, 각기 '천의 직업과 만의 직책(天業萬職)'이 있는데,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를 나에게 가장 적당한 일로 여겨서 기쁘고 즐겁게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음악가나 미술가와 같이 자신의 직업을 재미나게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대개 사람들이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일이 갖고 있는 의(義)와 일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을 깨닫지 못한 채, 일하는 것이 고생스럽기만 한 것이다. 부스러기도 잘 모아 두면 어딘가에는 요긴하게 쓰이는 법이다. 일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은 돈을 벌어 보겠다는 욕심을 자연히 잊게 된단다.

호의호식하고 싶으나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 것(非理)이요, 남에게 수고로운 일을 시키고 자기는 편안하게 쉬고자 하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無道)이다. 돈에 대한 욕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금전의 노예이나, 의무로 봉사하는 사람은 의(義)의 종이 된단다. 산간 농촌에서 호미로 밭 가는 일을 하는 너희는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산간 농촌 생활에는 인간의 근본 진리가 가득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지혜로운 사람(智者)과 어진 사람(仁者)은 산과 바다를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다. 톨스토이 선생은 말년에 산간 농촌에 들어가서 호미로 밭을 갈면서 "노동은 신성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은 산에서 나와 산을 찾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너희는 일상에서 더욱 즐거워해라. 자기의 직업을 기쁘고 즐겁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은혜의 안락과 가정의 행복과 국가의 융성함이 찾아온단다. 국민이 모두 노력하고 근로보국(勤勞報國)하는 지금 같은 때에 더욱 충성스럽게 애쓰기를 오빠는 권면한다.

오빠는 교도관의 보살핌과 너희의 염려 덕분에 한결같이 평안하게 지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김해 친정에 계신 어머님과 일본에 있는 동생에 대해서는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 또 편지와 면회는 누구든지 몇 번이고 할 수 있으니 자주 소식 전해주기를 바란다. 오빠는 10월 7일, 광주를 떠나기 전에 네가 진주에서 8월 15일에 보낸 편지까지 잘 받아 보았다. 그 후에도 두 번이나 편지를 잘 받았으니 안심하고 보내기 바란다. 나는 교도관이 잘 대해 주어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제는 충북 청주읍으로 이감되었으니 다음 편지는 주소 쓸 때 주의하도록 해라.²⁾

지난 11월에 만주 군부대에 근무하는 둘째 동생이 면회 와서 영치금을 넣어주고 갔다. 약소한 돈이긴 하지만 너희에게 십 원을 보낸다. 수남·주심·무연·점순이 동생들과 요긴하게 써주기 바란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연약하고 가난한 너희의 생각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구나. 병나지 않도록 부디 몸조심하기 바란다. 영치금 받은 돈을 부산 집에도 보낼 예정이니까 미안한 마음 조금도 가지지 말고 기쁘게 써주기를 바란다. 이 오빠의 마음이 즐겁도록 부담 갖지 말고 써주기를 바란다. 새해에 생선 한 마리라도 먹기를…….

이곳으로 이감해야 했기 때문에 주소가 확실하게 된 뒤에 편지를 부치려고 한 것이 이렇게 늦어졌다. 답신이 없어서 얼마나 염려하면서 편지를 기다렸겠니? 너희의 영육의 건강함을 한결같이 빌면서 그만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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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월 22일 양선의 편지에 대한 손 목사의 답신. 이 편지는 서신 검열을 의식한 문투가 여럿 보인다.
2) 손 목사는 1943년 11월 중에 서울 '경성보호교도소'(서대문형무소)에서 '청주보호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양선에게 주소 기입에 주의를 환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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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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