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3년 11월 (추정)¹
성구(발신/수신) | 발신:손양원, 수신:손동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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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43.11.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30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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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4:57
1943년 11월 (추정)¹
편지 원본 259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동인
아이들아, 결코 죄를 범하지 말아라.
대체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되어 일생을 고통으로 살게 되느니라. 나는 무엇보다도 너희가 행여 죄를 범할까 늘 염려가 된다. 물론 너희가 그렇지 않을 것을 내 의심하지 않으나, 행여라도 마귀의 유혹에 빠질까 아버지로서 어찌 마음을 쓰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이같이 수감 중에 있어도 어릴 때 몸에 밴 죄악과 아직도 싸우고 있다. 죄의 씨가 얼마나 무섭고 강한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너희는 깨끗하지만 행여나 내 죄가 너희에게 미칠까 두려워 주님께 간절히, "하나님, 예수님의 공로로 아담의 원죄를 없이 하심 같이 내 죄가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녀에게 미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성경에 "너희가 죄를 대적하되 피 흘리기까지는 힘쓰지 아니하고(히 12:4)"라고 훈계하셨는데 이는 즉,
1. "죄"란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니 죄를 범하면 (1) 몸과 마음이 괴롭고 번민하여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2) 늘 공포심이 생기고, (3) 마음에 기쁨이 없고 슬프며, (4) 하나님과 사람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되어, 부모, 형제, 친구에게까지 고통과 근심을 끼치며, 개망신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지옥보다 무서운 것이 죄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라."
2. "죄를 대적하되"라는 말은 죄를 원수같이 보고 용납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령 요즘은 돈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고 황금만능으로 보배가 되었으나, 이러한 돈으로 죄를 범하면 돈이 보배가 아니라 원수가 된다. 그래서 이를 대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여자, 얌전하고 훌륭한 여성인 줄 알고 좋아했으나, 그 여자로 말미암아 죄를 범할 경우에는 사랑하는 누이가 아니라 나를 대적하는 원수가 되니, 그런고로 돈과 여자는 지옥이 변한 것이라 여기고 전염병같이 피하고 독사같이 멀리함이 제일 좋은 방책이다.
3. "피 흘리기까지"라는 말은, 죄가 무섭고 강한 것이니 여간한 힘과 노력으로는 이러한 죄를 이겨 낼 수 없고, 피 흘려가면서까지 싸우려는 힘과 의지가 아니면 죄를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1) 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오래된 것이며, (2) 아버지의 정기(精氣)와 어머니의 피로부터 받은 죄의 씨가 있기 때문이고, (3) 세 살 습관으로 생긴 버릇이기 때문이며, (4) 마귀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고 교묘하기 때문에, 피 흘리는 인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런 죄악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사적 의지라야 된다. 결사적 인내라야 한다.
4. "힘쓰지 아니하고"라는 것은 계속 노력하라는 말이다. 한 가지 죄를 이겼다고 해서 백 가지 죄를 다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이겼다고 해서 영원히 이긴 것도 아니라 늘 완전한 성결(聖潔)에 이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된다. 인생의 3대 원수는 (1) 육체의 욕심, (2) 세상의 허영, (3) 마귀의 유혹이다. 이 세 가지 원수와 날마다 싸워 이겨야 한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데, 인내는 의지가 강해야 된다. 사람의 의지가 강하지 못하면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법이다. 죄를 범하면 현생과 내세에 무서운 고통이 될 것을 잘 알지만, 조금 참다가 나중에 다시 죄를 범하게 된다. 이는 의지가 강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고로 옛 성인을 보면 무서운 노력과 강한 의지를 지녔느니라. 피 흘리는 인내의 의지라야 죄를 이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본래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죄와 싸우기 싫어하고, 고난을 피하려는 비겁한 핑계를 댄다. 싸우지 않으면 승리가 없고 이기지 못한 사람은 면류관도 없다. 또한 힘쓰는 자는 주께서 도와 승리하게 하신다. 따라서 노력하여 정진(精進)하고, 스스로 강하게 되기를 쉬지 마라. 죄를 이기는 것은 강한 의지이니, 늘 의지를 단련하여라.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부디 아버지를 본으로 삼지 말거라. 나는 죄인 중 괴수요, 못난 자 중 가장 못난 자다. 나는 죄인이나 너희는 의로운 자가 되기를 바라고, 나는 못난 자이나 너희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잘난 자가 되기를 아버지는 소원한다. 이것이 부모가 가진 사랑의 욕심인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시국에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국민의 첫째 도리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니 모든 의무에 솔선하여 보국정신(報國精神)에 소홀하지 마라.
지금은 더구나 온 국민이 노력하고 학문에 힘써 보국(報國)하는 때이니 너희가 공장에서 일하는 중이나, 그 일을 고통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이치를 깨달아 즐겨야 한다. 대개 사람이 노동하기 싫어하는 것은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까닭이다. 이 생각이 벌써 틀린 것이다.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은 까닭이다. 미술가나 음악가와 같이 자기 직업의 묘미를 깨달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다만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일하면 괴롭지만, 자기의 직업을 천직으로 삼아 의(義)를 위한 실행으로 알고 일하면 돈은 자연히 가지게 되는 것뿐이다. 호의호식하고 싶으나 일은 하기 싫은 것도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요, 돈을 위하여 일하는 자도 돈의 종이다. 의(義)를 위한 실행으로 일하는 자는 의(義)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직무를 즐기는 자는 마음의 만족, 가정의 행복, 국가에 융성(隆盛)함을 얻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도(道)이다.
마지막으로 부탁할 것은 믿음(信)과 지식(知)을 온전히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두 방면이다. (1) 믿음의 실천에서 지식에 이르는 길, (2) 지식을 통해 믿게 되는 길이다. 로마 교황은 "무지는 신앙의 어머니"라 하고, 학자는 "지식이 신앙의 어머니"라고 했다. 앎은 믿음으로써 정확함을 증명하고, 믿음은 앎으로써 그 신성함을 깨닫게 된다. 이 둘은 서로에게 스며들어 한 진리의 두 입구이며,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힘쓰는 동지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믿음 없는 앎, 앎이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다. 철학은 앎으로써 이치에 닿는 것이고, 종교는 믿음으로써 이치를 초월하니, 유사(有史) 이래로 믿음과 지식은 한 흐름으로 내려온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우주와 진리의 빛에서 실생활로 이어지나, 앎은 창조물을 배우고 연구하여 하나님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학자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80%까지 잠재의식의 지배 아래 산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보다 신령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100% 완전한 생활을 하게 된다. 신앙이란 인간이 자유로이 취사선택할 성질의 것이 아니고, 우주를 관통할 절대 유일의 길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 앞에 태어난 바 모든 백성이 돌아가야 할 공평한 길이니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나 어두운 밤은 급하고 빠르게 오니, 급한 때에는 당연히 애써 노력해라. 신의 뜻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공자의 네 가지 근심은 너와 나의 네 가지 근심이니라.²⁾
아버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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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엽서는 작성 일자를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힌트를 통해 작성 일자를 추정해 볼 수 있다. 1) 겉봉에 '경성 서대문구 현저정 101'라는 주소가 지워지고 '충북 청주읍 금정 234번지'라고 고쳐진 점. 이를 통해 손 목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청주 보호교도소로 이감할 즈음인 1943년 11월 전후 혹은 그 이후에 이 엽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2) 봉함엽서의 요금이 '5전(錢)'이라는 점. 엽서 원본의 겉봉을 살펴보면, 4전짜리 봉함엽서에 1전으로 추정되는 우표가 붙었던 흔적이 있다. 이는 당시 1944년 6월을 전후로 봉함엽서 요금이 1전씩 인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본서에 수록된 1944년 6월 이전의 봉함엽서는 모두 '5전'이다.), 실제로 1944년 6월 22일 손 목사가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봉함엽서는 5전짜리 봉함엽서에 1전으로 보이는 우표가 붙었던 흔적이 있다. 그래서 1944년 6월경의 봉함엽서 요금은 '6전'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본 서신의 요금은 '5전'이므로, 1944년 6월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 위 두 가지 힌트를 고려해 볼 때, 여기서는 본 서신의 작성 일자를 1943년 11월로 추정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선행 문헌에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45년 8월설'이다. 애양원의 성산교회 담임목사였던 이광일은, 안용준의 "써 놓으시고 부칠 사이도 없이 8.15 해방이 되었는가 싶다"(안용준 편, 『손양원목사 설교집 (하): 체형조서, 옥중서신』(신망애사), 1969(재판), 251) 기록을 근거로 '1945년 8월 일자 미상'으로 추정하고 있다.(이광일 엮음, 『옥중서신: 손양원목사 설교집4』(손양원목사 순교기념사업회), 2001(3쇄), 41). 2) 다른 하나는 '1943년 8월설'이다. 손 목사의 맏딸 손동희는 이 편지를 '1943년 8월' 것으로 보고 있다.(손동희 엮음,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 2002, 29). 특히 이 편지는 손 목사가 자녀에게 훈계하는 어조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서> 12장 4절에 대한 주해의 성격을 띠고 있어 내용이 흥미롭다.
2) 『논어(論語)』 술이(述而) 3장에 나오는 글귀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니라." 즉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덕을 닦지 못함과[덕지불수(德之不脩)], 학문을 익히지 못함과[학지불강(學之不講)], 의(義)를 듣고도 실행하지 못함과[문의불능사(聞義不能徙)], 선하지 못한 것을 고치지 못함이[불선불능개(不善不能改)] 나의 걱정거리다[시오우야(是吾憂也)].
요청하신 책의 내용들을 순서에 맞게 조정하고, 정해진 구조에 따라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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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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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원본 259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동인
아이들아, 결코 죄를 범하지 말아라.
대체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되어 일생을 고통으로 살게 되느니라. 나는 무엇보다도 너희가 행여 죄를 범할까 늘 염려가 된다. 물론 너희가 그렇지 않을 것을 내 의심하지 않으나, 행여라도 마귀의 유혹에 빠질까 아버지로서 어찌 마음을 쓰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이같이 수감 중에 있어도 어릴 때 몸에 밴 죄악과 아직도 싸우고 있다. 죄의 씨가 얼마나 무섭고 강한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너희는 깨끗하지만 행여나 내 죄가 너희에게 미칠까 두려워 주님께 간절히, "하나님, 예수님의 공로로 아담의 원죄를 없이 하심 같이 내 죄가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녀에게 미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성경에 "너희가 죄를 대적하되 피 흘리기까지는 힘쓰지 아니하고(히 12:4)"라고 훈계하셨는데 이는 즉,
1. "죄"란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니 죄를 범하면 (1) 몸과 마음이 괴롭고 번민하여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2) 늘 공포심이 생기고, (3) 마음에 기쁨이 없고 슬프며, (4) 하나님과 사람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되어, 부모, 형제, 친구에게까지 고통과 근심을 끼치며, 개망신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지옥보다 무서운 것이 죄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라."
2. "죄를 대적하되"라는 말은 죄를 원수같이 보고 용납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령 요즘은 돈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고 황금만능으로 보배가 되었으나, 이러한 돈으로 죄를 범하면 돈이 보배가 아니라 원수가 된다. 그래서 이를 대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여자, 얌전하고 훌륭한 여성인 줄 알고 좋아했으나, 그 여자로 말미암아 죄를 범할 경우에는 사랑하는 누이가 아니라 나를 대적하는 원수가 되니, 그런고로 돈과 여자는 지옥이 변한 것이라 여기고 전염병같이 피하고 독사같이 멀리함이 제일 좋은 방책이다.
3. "피 흘리기까지"라는 말은, 죄가 무섭고 강한 것이니 여간한 힘과 노력으로는 이러한 죄를 이겨 낼 수 없고, 피 흘려가면서까지 싸우려는 힘과 의지가 아니면 죄를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1) 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오래된 것이며, (2) 아버지의 정기(精氣)와 어머니의 피로부터 받은 죄의 씨가 있기 때문이고, (3) 세 살 습관으로 생긴 버릇이기 때문이며, (4) 마귀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고 교묘하기 때문에, 피 흘리는 인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런 죄악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사적 의지라야 된다. 결사적 인내라야 한다.
4. "힘쓰지 아니하고"라는 것은 계속 노력하라는 말이다. 한 가지 죄를 이겼다고 해서 백 가지 죄를 다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이겼다고 해서 영원히 이긴 것도 아니라 늘 완전한 성결(聖潔)에 이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된다. 인생의 3대 원수는 (1) 육체의 욕심, (2) 세상의 허영, (3) 마귀의 유혹이다. 이 세 가지 원수와 날마다 싸워 이겨야 한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데, 인내는 의지가 강해야 된다. 사람의 의지가 강하지 못하면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법이다. 죄를 범하면 현생과 내세에 무서운 고통이 될 것을 잘 알지만, 조금 참다가 나중에 다시 죄를 범하게 된다. 이는 의지가 강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고로 옛 성인을 보면 무서운 노력과 강한 의지를 지녔느니라. 피 흘리는 인내의 의지라야 죄를 이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본래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죄와 싸우기 싫어하고, 고난을 피하려는 비겁한 핑계를 댄다. 싸우지 않으면 승리가 없고 이기지 못한 사람은 면류관도 없다. 또한 힘쓰는 자는 주께서 도와 승리하게 하신다. 따라서 노력하여 정진(精進)하고, 스스로 강하게 되기를 쉬지 마라. 죄를 이기는 것은 강한 의지이니, 늘 의지를 단련하여라.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부디 아버지를 본으로 삼지 말거라. 나는 죄인 중 괴수요, 못난 자 중 가장 못난 자다. 나는 죄인이나 너희는 의로운 자가 되기를 바라고, 나는 못난 자이나 너희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잘난 자가 되기를 아버지는 소원한다. 이것이 부모가 가진 사랑의 욕심인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시국에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국민의 첫째 도리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니 모든 의무에 솔선하여 보국정신(報國精神)에 소홀하지 마라.
지금은 더구나 온 국민이 노력하고 학문에 힘써 보국(報國)하는 때이니 너희가 공장에서 일하는 중이나, 그 일을 고통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이치를 깨달아 즐겨야 한다. 대개 사람이 노동하기 싫어하는 것은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까닭이다. 이 생각이 벌써 틀린 것이다.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은 까닭이다. 미술가나 음악가와 같이 자기 직업의 묘미를 깨달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다만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일하면 괴롭지만, 자기의 직업을 천직으로 삼아 의(義)를 위한 실행으로 알고 일하면 돈은 자연히 가지게 되는 것뿐이다. 호의호식하고 싶으나 일은 하기 싫은 것도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요, 돈을 위하여 일하는 자도 돈의 종이다. 의(義)를 위한 실행으로 일하는 자는 의(義)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직무를 즐기는 자는 마음의 만족, 가정의 행복, 국가에 융성(隆盛)함을 얻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도(道)이다.
마지막으로 부탁할 것은 믿음(信)과 지식(知)을 온전히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두 방면이다. (1) 믿음의 실천에서 지식에 이르는 길, (2) 지식을 통해 믿게 되는 길이다. 로마 교황은 "무지는 신앙의 어머니"라 하고, 학자는 "지식이 신앙의 어머니"라고 했다. 앎은 믿음으로써 정확함을 증명하고, 믿음은 앎으로써 그 신성함을 깨닫게 된다. 이 둘은 서로에게 스며들어 한 진리의 두 입구이며,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힘쓰는 동지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믿음 없는 앎, 앎이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다. 철학은 앎으로써 이치에 닿는 것이고, 종교는 믿음으로써 이치를 초월하니, 유사(有史) 이래로 믿음과 지식은 한 흐름으로 내려온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우주와 진리의 빛에서 실생활로 이어지나, 앎은 창조물을 배우고 연구하여 하나님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학자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80%까지 잠재의식의 지배 아래 산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보다 신령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100% 완전한 생활을 하게 된다. 신앙이란 인간이 자유로이 취사선택할 성질의 것이 아니고, 우주를 관통할 절대 유일의 길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 앞에 태어난 바 모든 백성이 돌아가야 할 공평한 길이니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나 어두운 밤은 급하고 빠르게 오니, 급한 때에는 당연히 애써 노력해라. 신의 뜻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공자의 네 가지 근심은 너와 나의 네 가지 근심이니라.²⁾
아버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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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엽서는 작성 일자를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힌트를 통해 작성 일자를 추정해 볼 수 있다. 1) 겉봉에 '경성 서대문구 현저정 101'라는 주소가 지워지고 '충북 청주읍 금정 234번지'라고 고쳐진 점. 이를 통해 손 목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청주 보호교도소로 이감할 즈음인 1943년 11월 전후 혹은 그 이후에 이 엽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2) 봉함엽서의 요금이 '5전(錢)'이라는 점. 엽서 원본의 겉봉을 살펴보면, 4전짜리 봉함엽서에 1전으로 추정되는 우표가 붙었던 흔적이 있다. 이는 당시 1944년 6월을 전후로 봉함엽서 요금이 1전씩 인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본서에 수록된 1944년 6월 이전의 봉함엽서는 모두 '5전'이다.), 실제로 1944년 6월 22일 손 목사가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봉함엽서는 5전짜리 봉함엽서에 1전으로 보이는 우표가 붙었던 흔적이 있다. 그래서 1944년 6월경의 봉함엽서 요금은 '6전'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본 서신의 요금은 '5전'이므로, 1944년 6월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 위 두 가지 힌트를 고려해 볼 때, 여기서는 본 서신의 작성 일자를 1943년 11월로 추정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선행 문헌에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45년 8월설'이다. 애양원의 성산교회 담임목사였던 이광일은, 안용준의 "써 놓으시고 부칠 사이도 없이 8.15 해방이 되었는가 싶다"(안용준 편, 『손양원목사 설교집 (하): 체형조서, 옥중서신』(신망애사), 1969(재판), 251) 기록을 근거로 '1945년 8월 일자 미상'으로 추정하고 있다.(이광일 엮음, 『옥중서신: 손양원목사 설교집4』(손양원목사 순교기념사업회), 2001(3쇄), 41). 2) 다른 하나는 '1943년 8월설'이다. 손 목사의 맏딸 손동희는 이 편지를 '1943년 8월' 것으로 보고 있다.(손동희 엮음,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 2002, 29). 특히 이 편지는 손 목사가 자녀에게 훈계하는 어조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서> 12장 4절에 대한 주해의 성격을 띠고 있어 내용이 흥미롭다.
2) 『논어(論語)』 술이(述而) 3장에 나오는 글귀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니라." 즉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덕을 닦지 못함과[덕지불수(德之不脩)], 학문을 익히지 못함과[학지불강(學之不講)], 의(義)를 듣고도 실행하지 못함과[문의불능사(聞義不能徙)], 선하지 못한 것을 고치지 못함이[불선불능개(不善不能改)] 나의 걱정거리다[시오우야(是吾憂也)].
요청하신 책의 내용들을 순서에 맞게 조정하고, 정해진 구조에 따라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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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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