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3년 9월 25일¹
성구(발신/수신) | 발신:손양원, 수신:손동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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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43.09.25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25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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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4:57
1943년 9월 25일¹
편지 원본 238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동인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 백발의 아버님이 만수무강하시기를 엎드려 빕니다. 그리고 처자와 가족이 두루 평안하기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저는 비록 철창생활이지만 기도의 은혜를 입어 만 3년이 되는 오늘까지 영과 육이 건강하여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버님! 오늘은 마침 9월 25일입니다. 지금부터 4년 전, 밤 9시에 본가를 떠나 여수유치장에 들어가니 0시 45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울(서대문) 구치소로 옮겨 갈 이감 결정서를 받아 수일 내에 광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안심하시길 빕니다.
"본가를 멀리 떠나 옥중에 들어오니(遠離本家入獄中)
깊은 밤 깊은 옥에 깊은 시름도 가득하고(夜深獄深滿愁深)
밤도 깊고 옥도 깊고 사람의 시름도 깊으나(夜深獄深人愁深)
주와 더불어 동거하니 항상 기쁨이 충만하도다(與主同居恒喜滿)
옥중 고생 4년도 많고 많은 날이나(獄苦四年經多日)
주와 더불어 즐거워하니 하루와 같구나(與主同樂如一日)
지난 4년 평안히 지켜 주신 주님(過去四年安保主)
내일도 확신하네 여전한 주님(未來確信亦然主)"
요셉,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오늘 이 아들과도 함께하시며 지키십니다. 저를 평안히 지키시는 주님이 아버님과 처자식도 지키실 것으로 믿고 서울로 향합니다.
못난 아들 양원은 무엇보다도 아버님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탄식합니다. 검은 머리에 건강하신 얼굴의 아버님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올해 1월 4일 3년 만에 만나 아버님의 흰머리를 뵈오니 이 아들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 웬일입니까. 죄악이 가득한 세상 탓입니까. 세월의 탓입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성하였습니다. 저를 가르치고 기르시며 몸의 진액이 마르셨고, 옥중에 있는 불효자를 생각하시다가 그리 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 못난 아들의 죄는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널리 용서해 주시고, 주께 염려를 맡기고 안심하시기를 엎드려 빕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빕니다.
"하나님이시여, 나의 육신의 아버지는 비록 죄악된 세상을 보는 눈은 어두워졌을지라도 하늘의 영광을 보는 눈은 더욱 밝게 하옵시고, 인간의 음성을 듣는 귀는 멀어졌을지라도 주의 음성을 듣는 귀는 밝게 하여 주십시오. 걸어 다니는 다리는 연약해졌으나 날마다 에덴에서 기뻐하게 하옵소서. 인간과의 교제 대신에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 생활을 하게 하시고 이 세상을 멀리 떠나 지상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이렇게 날마다 주님께 간구하고 있으니, 아버님께서도 남은 생활에서 만족을 누리십시오. 큰 성인 공자(孔子)는 칠십에 도덕 생활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²⁾ 그리 되시기를 엎드려 기도합니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도 보셨을 줄 믿습니다.
못난 아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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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사 참배 거부자에 대한 일제의 대대적 예비 검속 실시로 인해, 손 목사는 1940년 9월 25일 저녁 여수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 편지는 연행된 지 만 3년째 되는 날, 아버지 손종일 장로를 생각하며 자신의 술회를 담은 것이다. 자신이 연행됨으로 인해, 늙으신 아버지와 처자식이 갖은 고초를 겪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목양하던 교인들도 목자를 잃어 의지할 곳 없게 되었다. 목사로서 당연히 신앙을 지켜야 했고 그 대가를 혼자만 짊어진다면 무슨 갈등이 있었겠는가마는, 가족들이 겪게 되는 숱한 고초 앞에, 손 목사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목사로서의 책임 앞에서 영적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을 것이다. 이 편지의 한시, "깊은 밤 깊은 옥에 깊은 시름도 가득하고(夜深獄深滿愁深)"의 대목은 손 목사의 심경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손 목사는 옥중에 있는 자신이나 바깥에서 분투하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애양원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일구게 된 애양원 식구를 지난 3년간 지켜 주신 주님께 믿음과 사랑의 편지를 썼다. "지난 4년 평안히 지켜 주신 주님(過去四年安保主), 내일도 확신하네 여전한 주님(未來確信亦然主)"에서도 절절히 드러나고 있다.
2)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나이가 칠십이 되어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의 글귀에서 인용.
***
(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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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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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원본 238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동인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 백발의 아버님이 만수무강하시기를 엎드려 빕니다. 그리고 처자와 가족이 두루 평안하기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저는 비록 철창생활이지만 기도의 은혜를 입어 만 3년이 되는 오늘까지 영과 육이 건강하여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버님! 오늘은 마침 9월 25일입니다. 지금부터 4년 전, 밤 9시에 본가를 떠나 여수유치장에 들어가니 0시 45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울(서대문) 구치소로 옮겨 갈 이감 결정서를 받아 수일 내에 광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안심하시길 빕니다.
"본가를 멀리 떠나 옥중에 들어오니(遠離本家入獄中)
깊은 밤 깊은 옥에 깊은 시름도 가득하고(夜深獄深滿愁深)
밤도 깊고 옥도 깊고 사람의 시름도 깊으나(夜深獄深人愁深)
주와 더불어 동거하니 항상 기쁨이 충만하도다(與主同居恒喜滿)
옥중 고생 4년도 많고 많은 날이나(獄苦四年經多日)
주와 더불어 즐거워하니 하루와 같구나(與主同樂如一日)
지난 4년 평안히 지켜 주신 주님(過去四年安保主)
내일도 확신하네 여전한 주님(未來確信亦然主)"
요셉,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오늘 이 아들과도 함께하시며 지키십니다. 저를 평안히 지키시는 주님이 아버님과 처자식도 지키실 것으로 믿고 서울로 향합니다.
못난 아들 양원은 무엇보다도 아버님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탄식합니다. 검은 머리에 건강하신 얼굴의 아버님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올해 1월 4일 3년 만에 만나 아버님의 흰머리를 뵈오니 이 아들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 웬일입니까. 죄악이 가득한 세상 탓입니까. 세월의 탓입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성하였습니다. 저를 가르치고 기르시며 몸의 진액이 마르셨고, 옥중에 있는 불효자를 생각하시다가 그리 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 못난 아들의 죄는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널리 용서해 주시고, 주께 염려를 맡기고 안심하시기를 엎드려 빕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빕니다.
"하나님이시여, 나의 육신의 아버지는 비록 죄악된 세상을 보는 눈은 어두워졌을지라도 하늘의 영광을 보는 눈은 더욱 밝게 하옵시고, 인간의 음성을 듣는 귀는 멀어졌을지라도 주의 음성을 듣는 귀는 밝게 하여 주십시오. 걸어 다니는 다리는 연약해졌으나 날마다 에덴에서 기뻐하게 하옵소서. 인간과의 교제 대신에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 생활을 하게 하시고 이 세상을 멀리 떠나 지상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이렇게 날마다 주님께 간구하고 있으니, 아버님께서도 남은 생활에서 만족을 누리십시오. 큰 성인 공자(孔子)는 칠십에 도덕 생활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²⁾ 그리 되시기를 엎드려 기도합니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도 보셨을 줄 믿습니다.
못난 아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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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사 참배 거부자에 대한 일제의 대대적 예비 검속 실시로 인해, 손 목사는 1940년 9월 25일 저녁 여수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 편지는 연행된 지 만 3년째 되는 날, 아버지 손종일 장로를 생각하며 자신의 술회를 담은 것이다. 자신이 연행됨으로 인해, 늙으신 아버지와 처자식이 갖은 고초를 겪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목양하던 교인들도 목자를 잃어 의지할 곳 없게 되었다. 목사로서 당연히 신앙을 지켜야 했고 그 대가를 혼자만 짊어진다면 무슨 갈등이 있었겠는가마는, 가족들이 겪게 되는 숱한 고초 앞에, 손 목사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목사로서의 책임 앞에서 영적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을 것이다. 이 편지의 한시, "깊은 밤 깊은 옥에 깊은 시름도 가득하고(夜深獄深滿愁深)"의 대목은 손 목사의 심경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손 목사는 옥중에 있는 자신이나 바깥에서 분투하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애양원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일구게 된 애양원 식구를 지난 3년간 지켜 주신 주님께 믿음과 사랑의 편지를 썼다. "지난 4년 평안히 지켜 주신 주님(過去四年安保主), 내일도 확신하네 여전한 주님(未來確信亦然主)"에서도 절절히 드러나고 있다.
2)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나이가 칠십이 되어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의 글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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