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3월 31일 (추정)¹

손양원 설교자료      
​​

[편지] 1943년 3월 31일 (추정)¹

성구(발신/수신) 발신:손동인, 수신:손양원
일시 1943.03.31
출처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17
저자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서기 0 0
1943년 3월 31일 (추정)¹
편지 원본 204쪽

발신 : 손동인
수신 : 손양원





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엽서는 3월 29일에 반갑게 받아 보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력은 여전히 좋으신지요? 이사한 뒤 자세한 사정 얘기를 한 번도 드리지 못한 것은 이삿짐이 열흘 후에 도착해 집으로 옮기고 정돈하느라 늦어졌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여섯 식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태평합니다만, 어머니가 3월 22일부터 몸살이 심해 제가 약을 두어 첩 지어서 드시도록 했습니다. 한 일주일간 누워 계시다가 3일 전부터 일어나셔서 운동도 하시고 요사이는 완쾌하신 것 같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여러 가지 말씀하신 것 가운데 1) 동신이는 3월 6일, 이사 오기 3일 전에 먼저 왔습니다. 외가도 모두 무탈합니다. 2) 이사 올 때는 광주에서 여수로 가서 다시 부산으로 왔습니다. 3월 9일 12시 5분에 출발하여 10일 4시경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경비도 적게 들고 모든 것이 편리했습니다. 3) 이사한 것을 애양원 형제들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가실 때 애양원에 들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4) 양복장과 장롱은 가져오고 옷장은 70원에 팔았습니다. 책장은 광주 지인에게 팔 수 있으면 팔아 달라고 맡겨 놓았습니다. 만약 못 팔면 아버지 출소하실 때 광주에 가서 부산으로 부치려고 합니다. 5) 부산에 기거하는 집은 박 집사님이 직공들 기숙사로 600원을 주고 사둔 곳입니다. 방은 모두 3칸인데, 방 하나는 직공이 쓰고 둘은 저희가 기거합니다. 지붕은 함석대용으로 잘 견디면 앞으로 삼사 년은 너끈할 것 같습니다. 쓰임새는 광주 집보다 안 좋고 우물도 멀어서 동신이와 제가 하루에 세 번씩 물을 길어 놓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곳에 오래 못 계시겠다고 합니다. 집세는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립니다만, 지난번 면회 갔을 때 아버지는 제 얼굴이 부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은 부은 것······
(이하 소실)


***

--------------------------------------
1) 본 서신의 마지막 장이 소실(消失)되어 작성 일자를 알 수 없다. 다만 두 가지 힌트를 토대로 작성 일자를 추정할 수 있다. 1) 내용으로 보아 광주에 있던 손 목사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한 1943년 3월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2) 서신 내용에 정양순 사모가 3월 22일부터 몸살로 앓아 누워서 일주일을 고생했고, 이 서신을 작성하기 삼일 전부터 거동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역산하면 3월 31일이다. 이 두 가지 힌트를 모두 만족하는 것은 1943년 3월 31일이다.

***





(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202
▼01 손양원 옥중서신_202

손양원 옥중서신_203
▼02 손양원 옥중서신_203

손양원 옥중서신_204
▼03 손양원 옥중서신_204

손양원 옥중서신_205
▼04 손양원 옥중서신_205

손양원 옥중서신_206
▼05 손양원 옥중서신_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