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2년 11월 5일
성구(발신/수신) | 발신:손양원, 수신:손문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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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42.11.05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13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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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4:56
1942년 11월 5일
편지 원본 190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문준¹
아버님께 아뢰어 올립니다.
'한 잎사귀의 오동잎이 떨어짐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줄을 안다(一葉落知天下秋)'.²⁾ 즉 사소한 것을 미루어 큰일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옛 성인의 시구입니다만, 이미 가을도 깊어 엄동설한이 닥치기 전에, 가을걷이한 곡식을 저장하느라 매우 바쁜 나날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간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에야 하늘 아버지의 넓고 큰 은혜 가운데 아버님의 기력과 체력이 늘 평안하시기를 구구절절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막내동생 의원(義源)의 식구도 하나님의 은혜로 두루 평안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둘째 문준(文俊)이 보내온 편지에 제수씨의 병세가 많이 쾌유되었다던데, 이는 하나님께서 저의 근심을 덜어 주심이라 여겨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둘째가 내년 1월 4일에 만나러 오겠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쁜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손꼽아 기다립니다. 지나간 세월은 천 년이 하루 같지만, 기다리는 세월은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아버님, 부족한 이 아들 양원이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홀로 되신 아버님과 형제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잠자는 일과 먹는 일이 한결같습니다. 한 덩어리의 주먹밥과 한 그릇의 소금국이야말로 신선의 요리요, 천사의 꿀맛입니다.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입맛인가 봅니다. 아버님과 형제들은 저의 배고픔과 추위를 염려하시나, 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고 공중의 참새를 먹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요, 주의 일을 하는 일꾼을 굶기시겠습니까. 더구나 이 아들은 본래 먹는 양이 적은 사람이오니 이 밥으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또 키가 작은 사람이오니 입고 있는 옷과 이불이 발등을 덮으니 '총후국민(銃後國民)'³⁾으로서 자족할 만합니다.
아버님과 형제들이 자족하는 복을 깨닫기 간절히 원합니다. 이 아들의 꿈속에서 아버님과 가족의 고통이 깊어 종종 병색으로 보이기도 하니 제가 도리어 근심이 됩니다. 구름이 뭉쳐 비를 내리고, 이슬이 맺히면 서리가 되는 것처럼, 육적인 생각은 근심을 이루고 근심이 쌓이면 병이 됩니다. 영적인 생각은 스스로 만족에 이르고, 자족하는 생활은 더 큰 만족을 이루게 됩니다. 근심은 병 가운데 근원이요, 죄 가운데 대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족하는 사람보다 더 큰 부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옥고를 치르는 중에도 의복과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늘 감사합니다. 제일선에 나선 장병, 고난으로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 가지 마음고생 몸 고생으로 고난이 적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인내하고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에 "사람의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버드나무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으며, 남에게는 지더라도 자신은 이겨야 하고, 용감하고 단호한 사람의 앞길은 대적할 사람이 없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마음먹은 대로 변하고, 버드나무와 같이 모든 역경을 온유함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욕을 쳐서 이기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법입니다. 인생을 낙관이나 비관으로 극단에 치우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사계절의 모양이 각각 다르고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제각각 다른 모양인 것처럼, 인생도 기쁘고 슬플 때가 있고, 눈물과 웃음은 인생의 필연적인 진리입니다. 비구름이 있을 때는 맑은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짙은 밤중에는 찬란한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아버님,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귀하고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세상 만물 중에 고난을 겪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만이 아닙니다. 전 국민이 그러합니다. 아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고난 중이니, 그야말로 '대동지고(大同之苦)'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공중에 누각을 짓고 백일몽을 꿈꾸겠습니까? 아버님과 가족들은 부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안심하십시오. 지난 9월 막냇동생의 편지는 보았으나, 아버님의 친필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병환 때문이라 짐작하고 염려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보신 후 동인에게 속히 전해 주시옵소서. 변함없이 안녕하기를 빕니다. 이만 줄입니다.
동인아! 아주머니는 평안하냐? 순덕이 아주머니가 입원이 안 되면 동생에게 가도 좋다고 안부를 겸해 전하고, 이 편지도 같이 보도록 해라.⁴⁾ 만분의 일이라도 혹시 위안이 될는지……. 먼저 편지도 같이 보았겠지? 내가 공부하라고 일러둔 책, 한일사전은 샀느냐? 간이성경을 보면서 한문을 익히고 있겠지? 기도와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라.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한 채 이만 맺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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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편지 겉봉의 수신자는 손 목사의 둘째 동생 손문준이지만, 실제는 아버지 손종일 장로에게 띄우는 편지다. 감옥에서 편지를 띄우는 일이 쉽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편지하며 부산에 있는 아들 동인에게 전할 말도 한 번에 하고 있다. 편지 뒷부분에 동인 군에게 전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그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2) 『회남자(淮南子)』 ·설산훈(說山訓)에 나오는 글귀.
3) 총후국민(銃後國民)의 '총후(銃後)'란 직역하면, '총의 뒤편' 즉 전장의 후방이라는 뜻이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장의 후방에서 물심양면으로 전쟁을 지원할 사람과 그 처지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서신 검열을 의식한 문투로 보임.
4) <1942년 8월 18일 발신 손동인, 수신 손양원> 편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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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187
▼01
손양원 옥중서신_188
▼02
손양원 옥중서신_189
▼03
손양원 옥중서신_190
▼04
손양원 옥중서신_191
▼05
편지 원본 190쪽
발신 : 손양원
수신 : 손문준¹
아버님께 아뢰어 올립니다.
'한 잎사귀의 오동잎이 떨어짐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줄을 안다(一葉落知天下秋)'.²⁾ 즉 사소한 것을 미루어 큰일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옛 성인의 시구입니다만, 이미 가을도 깊어 엄동설한이 닥치기 전에, 가을걷이한 곡식을 저장하느라 매우 바쁜 나날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간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에야 하늘 아버지의 넓고 큰 은혜 가운데 아버님의 기력과 체력이 늘 평안하시기를 구구절절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막내동생 의원(義源)의 식구도 하나님의 은혜로 두루 평안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둘째 문준(文俊)이 보내온 편지에 제수씨의 병세가 많이 쾌유되었다던데, 이는 하나님께서 저의 근심을 덜어 주심이라 여겨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둘째가 내년 1월 4일에 만나러 오겠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쁜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손꼽아 기다립니다. 지나간 세월은 천 년이 하루 같지만, 기다리는 세월은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아버님, 부족한 이 아들 양원이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홀로 되신 아버님과 형제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잠자는 일과 먹는 일이 한결같습니다. 한 덩어리의 주먹밥과 한 그릇의 소금국이야말로 신선의 요리요, 천사의 꿀맛입니다.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입맛인가 봅니다. 아버님과 형제들은 저의 배고픔과 추위를 염려하시나, 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고 공중의 참새를 먹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요, 주의 일을 하는 일꾼을 굶기시겠습니까. 더구나 이 아들은 본래 먹는 양이 적은 사람이오니 이 밥으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또 키가 작은 사람이오니 입고 있는 옷과 이불이 발등을 덮으니 '총후국민(銃後國民)'³⁾으로서 자족할 만합니다.
아버님과 형제들이 자족하는 복을 깨닫기 간절히 원합니다. 이 아들의 꿈속에서 아버님과 가족의 고통이 깊어 종종 병색으로 보이기도 하니 제가 도리어 근심이 됩니다. 구름이 뭉쳐 비를 내리고, 이슬이 맺히면 서리가 되는 것처럼, 육적인 생각은 근심을 이루고 근심이 쌓이면 병이 됩니다. 영적인 생각은 스스로 만족에 이르고, 자족하는 생활은 더 큰 만족을 이루게 됩니다. 근심은 병 가운데 근원이요, 죄 가운데 대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족하는 사람보다 더 큰 부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옥고를 치르는 중에도 의복과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늘 감사합니다. 제일선에 나선 장병, 고난으로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 가지 마음고생 몸 고생으로 고난이 적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인내하고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에 "사람의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버드나무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으며, 남에게는 지더라도 자신은 이겨야 하고, 용감하고 단호한 사람의 앞길은 대적할 사람이 없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마음먹은 대로 변하고, 버드나무와 같이 모든 역경을 온유함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욕을 쳐서 이기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법입니다. 인생을 낙관이나 비관으로 극단에 치우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사계절의 모양이 각각 다르고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제각각 다른 모양인 것처럼, 인생도 기쁘고 슬플 때가 있고, 눈물과 웃음은 인생의 필연적인 진리입니다. 비구름이 있을 때는 맑은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짙은 밤중에는 찬란한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아버님,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귀하고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세상 만물 중에 고난을 겪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만이 아닙니다. 전 국민이 그러합니다. 아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고난 중이니, 그야말로 '대동지고(大同之苦)'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공중에 누각을 짓고 백일몽을 꿈꾸겠습니까? 아버님과 가족들은 부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안심하십시오. 지난 9월 막냇동생의 편지는 보았으나, 아버님의 친필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병환 때문이라 짐작하고 염려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보신 후 동인에게 속히 전해 주시옵소서. 변함없이 안녕하기를 빕니다. 이만 줄입니다.
동인아! 아주머니는 평안하냐? 순덕이 아주머니가 입원이 안 되면 동생에게 가도 좋다고 안부를 겸해 전하고, 이 편지도 같이 보도록 해라.⁴⁾ 만분의 일이라도 혹시 위안이 될는지……. 먼저 편지도 같이 보았겠지? 내가 공부하라고 일러둔 책, 한일사전은 샀느냐? 간이성경을 보면서 한문을 익히고 있겠지? 기도와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라.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한 채 이만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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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편지 겉봉의 수신자는 손 목사의 둘째 동생 손문준이지만, 실제는 아버지 손종일 장로에게 띄우는 편지다. 감옥에서 편지를 띄우는 일이 쉽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편지하며 부산에 있는 아들 동인에게 전할 말도 한 번에 하고 있다. 편지 뒷부분에 동인 군에게 전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그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2) 『회남자(淮南子)』 ·설산훈(說山訓)에 나오는 글귀.
3) 총후국민(銃後國民)의 '총후(銃後)'란 직역하면, '총의 뒤편' 즉 전장의 후방이라는 뜻이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장의 후방에서 물심양면으로 전쟁을 지원할 사람과 그 처지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서신 검열을 의식한 문투로 보임.
4) <1942년 8월 18일 발신 손동인, 수신 손양원> 편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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