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1년 말(추정)¹
성구(발신/수신) | 발신:손동인, 수신:손양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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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41.말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07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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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4:56
1941년 말(추정)¹
편지 원본 164쪽
발신 : 손동인
수신 : 손양원
아버지께 올림
날씨가 추워지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안녕하셨습니까? 이곳은 별일 없습니다. 어제 막내 숙부가 부산에 들러 물금(勿禁)²⁾에서 며칠 약을 드시고 지난 6일 출발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또 제 취직과 관련해 평양에서도 편지가 왔지만 저의 취직은 부산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해운대 백 장로님의 상점이 부산 범일동에 있어 거기로 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대구로 이감하시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일이 급하게 진행되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대구에 가시기 전까지 광주 집에 있을지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칠팔 일 내로 부산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보내 주시는 편지를 못 받게 되더라도 부산에 도착하는 대로 편지 드리겠습니다. 또 동신(東信), 동희(東姬)도 부산으로 공부하러 가게 됩니다. 오늘 평양에 계신 할아버지께 부산으로 오시라는 편지를 띄우려고 합니다. 부산은 대구와 멀지 않으니까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이는 만사형통하고 협력하여 유익이 된다는 성경 말씀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편지 보내실 때는 어머니가 알아보시게 한글로 보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대구 가시는 날을 알아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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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0년 9월 25일 손 목사가 검속되고 여수경찰서에서 10개월을 보내는 동안 여수 애양원에는 많은 변동이 생겼다. 윌슨(Robert M. Wilson) 원장과 원가리(J. Kelly Unger) 목사는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들을 대신하여 안도(安藤)라는 일본인이 원장으로 들어왔고, 일본인 원장은 손 목사 가족에게 목사 사택을 비우라고 독촉했다. 게다가 일본인 원장이 신사 참배를 강요했기 때문에 손 목사 가족은 사택에 머물 수 없었다. 손 목사 가족은 사택에서 나와야 할 처지이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고, 많지 않은 목사 급여도 차단되어 생계는 상당히 궁핍했다. 교회 성도들이 협력하고 싶어도 일본인 원장이 못하게 막았으니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러는 중에 손 목사가 기소되어서 광주구치소로 가게 되는 동시에 가족들도 광주로 이사하게 되었다. 손 목사를 자주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애양원교회에서 일본인 원장과 직원들 모르게 7백 원을 모아서 드렸다고 한다. 손 목사 부친 손종일 장로는 손 목사 가족이 애양원을 떠나가기 전에 평양에 있는 둘째 아들 손문준 씨에게 가셨다. 생활난으로 인해 부득이 그리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애양원교회에서 모아 준 돈은 이사 비용으로 쓰고 또 손 목사 영치금으로 차입(差入)하는 등 몇 달 뒤 거의 바닥이 났다. 벼랑 끝의 상황으로 몰리다 보니 당시 광주성경학원에 다니던 동인 군이 학교를 그만두고 직업을 구했다. 여러 곳에 연락한 결과 평양과 부산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평양은 너무 멀어 부산에 있는 백일상점으로 취직하였던 것이다. 이 편지는 동인 군이 백일상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손 목사에게 전하고 있다. 참고 도서, 손동희 엮음,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 2000).
2) 현재 경남 양산시 물금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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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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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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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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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원본 164쪽
발신 : 손동인
수신 : 손양원
아버지께 올림
날씨가 추워지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안녕하셨습니까? 이곳은 별일 없습니다. 어제 막내 숙부가 부산에 들러 물금(勿禁)²⁾에서 며칠 약을 드시고 지난 6일 출발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또 제 취직과 관련해 평양에서도 편지가 왔지만 저의 취직은 부산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해운대 백 장로님의 상점이 부산 범일동에 있어 거기로 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대구로 이감하시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일이 급하게 진행되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대구에 가시기 전까지 광주 집에 있을지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칠팔 일 내로 부산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보내 주시는 편지를 못 받게 되더라도 부산에 도착하는 대로 편지 드리겠습니다. 또 동신(東信), 동희(東姬)도 부산으로 공부하러 가게 됩니다. 오늘 평양에 계신 할아버지께 부산으로 오시라는 편지를 띄우려고 합니다. 부산은 대구와 멀지 않으니까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이는 만사형통하고 협력하여 유익이 된다는 성경 말씀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편지 보내실 때는 어머니가 알아보시게 한글로 보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대구 가시는 날을 알아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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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0년 9월 25일 손 목사가 검속되고 여수경찰서에서 10개월을 보내는 동안 여수 애양원에는 많은 변동이 생겼다. 윌슨(Robert M. Wilson) 원장과 원가리(J. Kelly Unger) 목사는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들을 대신하여 안도(安藤)라는 일본인이 원장으로 들어왔고, 일본인 원장은 손 목사 가족에게 목사 사택을 비우라고 독촉했다. 게다가 일본인 원장이 신사 참배를 강요했기 때문에 손 목사 가족은 사택에 머물 수 없었다. 손 목사 가족은 사택에서 나와야 할 처지이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고, 많지 않은 목사 급여도 차단되어 생계는 상당히 궁핍했다. 교회 성도들이 협력하고 싶어도 일본인 원장이 못하게 막았으니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러는 중에 손 목사가 기소되어서 광주구치소로 가게 되는 동시에 가족들도 광주로 이사하게 되었다. 손 목사를 자주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애양원교회에서 일본인 원장과 직원들 모르게 7백 원을 모아서 드렸다고 한다. 손 목사 부친 손종일 장로는 손 목사 가족이 애양원을 떠나가기 전에 평양에 있는 둘째 아들 손문준 씨에게 가셨다. 생활난으로 인해 부득이 그리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애양원교회에서 모아 준 돈은 이사 비용으로 쓰고 또 손 목사 영치금으로 차입(差入)하는 등 몇 달 뒤 거의 바닥이 났다. 벼랑 끝의 상황으로 몰리다 보니 당시 광주성경학원에 다니던 동인 군이 학교를 그만두고 직업을 구했다. 여러 곳에 연락한 결과 평양과 부산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평양은 너무 멀어 부산에 있는 백일상점으로 취직하였던 것이다. 이 편지는 동인 군이 백일상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손 목사에게 전하고 있다. 참고 도서, 손동희 엮음,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 2000).
2) 현재 경남 양산시 물금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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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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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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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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