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941년 9월 11일¹
성구(발신/수신) | 발신:박동수, 수신:손양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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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41.09.11 | ||||
출처 | 손양원의 옥중서신(2015)-02 | ||||
저자 |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임희국,이치만 |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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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4:56
1941년 9월 11일¹
편지 원본 150쪽
발신 : 박동수
수신 : 손양원
애화성(愛化聖)의 사자(使者)에게 올림
경애하는 목사님의 얼굴을 뵌 지도 오래되었고, 목소리를 들은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나갑니다. 이번에 목사님께서 친히 써서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 반가운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목사님이 무탈하시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경관들이 목사님을 후하게 대해 주신다고 하니 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곳 교회는 목사님을 위하여 멈추지 않고 기도합니다. 애양원교회 교우 일동은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의 힘으로 모두 풍성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님 계실 때보다 신앙의 길에 들어가려고 더욱 노력합니다. 물론 이곳 애양원의 여러 규칙과 제도는 조금 변했지만 교회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목사님! 어디서든 주 예수님이 계신 곳이 천당 아닐는지요? 목사님은 주 예수님과 함께하실 거라 믿습니다. 진주 보화보다 예수님을 찾은 자가 진정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목사님이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 날 사랑하심은 말로 다 할 수 없네. 이 세상 많고 많은 소리 중 비할 것이 없네.
목사님 떠나신 뒤로 새로 입원(入園)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고, 퇴원(退園)하는 사람과 사망자도 많습니다.²⁾ 별지에 기록합니다.
목사님의 편지를 교회 모든 사람 앞에서 읽었습니다. 목사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고들 말합니다. 우리도 목사님을 위해서 항상 기도합니다. 새벽 5시에 타종하고 새벽 기도회를 합니다. 밤을 지새우며 예배당을 떠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는 장로님과 집사 권찰이 돌아가면서 인도합니다.
올해는 보리와 벼농사가 풍년입니다. 음료수도 풍족합니다. 땔감은 찌꺼기 땔감으로 충당합니다. 곤란함이 거의 없습니다.
주일 학교 2부서는 반장이 자습해서 가르칩니다. 교장은 신길수 박동수입니다. 애양원의 이사진은 최재선(崔在善) 이주동(李周東) 권상집(權相集) 김윤집(金允集) 박동수(朴東洙)이고, 서기는 김윤집(金允集), 회계는 박동수(朴東洙), 학교 학감은 허옥(許玉)입니다. 교회 제직(諸職)은 정치광(鄭致光) 외에 모두 여전합니다. 이곳을 위해 기도하시겠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곳 경관들의 보호 가운데 항상 평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940년 9월 25일부터 사망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최정금(崔正今), 홍대해(洪大海), 이입비(李立比), 김변례(金卞禮), 구순금(具順今), 이정옥(李正玉), 홍학범(洪學凡), 이원모(李元模), 경석숙(慶石淑), 문원기(文元基), 박을례(朴乙禮), 윤태만(尹太萬)의 처 조순례(曺順禮), 박봉조(朴奉祚), 박(李)희례, 장변만(張變萬), 정치광(鄭致光), 이산정(李山亭)
올해 퇴원자(退園者)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남주(李南柱), 김정수(金正洙), 이인심(李仁心), 윤구규(尹求奎), 김장수(金長洙), 조증환(曺曾煥), 고진효(高眞孝), 김석유(金石裕), 박순이(朴順伊), 김두화(金斗化), 김동우(金東佑), 이이석(李二石), 최구호(崔求浩), 채수여(蔡壽汝), 한효주(韓曉柱), 박봉준(朴奉準), 하두종(河斗鐘), 이지순(李智順), 장재일(張在一), 김입목(金立木), 양정남(楊正男), 김옥수(金玉守), 강막동(姜莫同), 박입비(朴立比), 김남보, 박원년(朴元年).
퇴원자(退園者)
변득진(卞得珍), 최원순(崔遠順), 송명수(宋明洙), 서재원(徐在元), 이학년(李學年)(小), 김학주(金學柱), ㅁ³⁾재칠(在七), 박용갑(朴容甲), 김혁이(金赫伊), 강영현(姜永鉉), 박주임(朴舟任), 유정례(兪貞禮), 최권진(崔權珍), 이정동(李正東), 김남례(金南禮), 김재출(金在出), 최경득(崔京得), 박순화(朴順和), 이근옥(李根沃), 배오망, 김창권(金昌權), 노인석(魯仁錫), 한동권(韓東權), 정종순(鄭宗順), 박형양(朴亨陽), 이성식(李性植), 정재근(鄭在根), 안옥상(安玉尙), 정덕준(鄭德俊)(小), 수야공(水野公), 정주완(鄭柱完), 송재근(宋在根), 강래옥(姜來玉), 김원석(金元碩), 최금렬(崔今烈), 정(鄭)몽룡, 송(宋)인범, 박영춘(朴永春), 박노인(朴魯寅), 김홍룡(金洪龍), 이순남(李順南), 김원차(金元次), 최서운(崔西云), 김성녀(金姓女), 김덕만(金德萬), 박용문(朴用文), 주영희(朱永喜), 유학종(劉學鐘), 박화변(朴花變), 서고례(徐古禮), 김영규(金永奎), 이회화(李會和), 이갑영(李甲永), 김종일(金鐘日), 김상윤(金相允) 이상입니다.
새로운 입원자(入園者)는 작년 9월 24일부터 1941년 9월 11일까지 107명입니다. 현재 재원(在園) 환자는 745명입니다.
1941년 9월 11일.
제직회 대표 박동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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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편지는 교회를 대표하여 제직회 대표 박동수 장로가 손 목사에게 보낸 답장이다(20페이지 각주 참고). 손 목사가 교회를 떠난 지 1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 당회장에게 교회 현황을 보고하는 듯한 어투로 교회의 사정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이 편지만 보더라도 손 목사가 애양원 식구들에게 얼마나 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 애양원(愛養園)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입원자(入園者)', 나가는 사람을 '퇴원자(退園者)'라고 일컬었다.
3) 판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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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본,활자화)손양원 옥중서신_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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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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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옥중서신_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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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원본 150쪽
발신 : 박동수
수신 : 손양원
애화성(愛化聖)의 사자(使者)에게 올림
경애하는 목사님의 얼굴을 뵌 지도 오래되었고, 목소리를 들은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나갑니다. 이번에 목사님께서 친히 써서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 반가운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목사님이 무탈하시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경관들이 목사님을 후하게 대해 주신다고 하니 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곳 교회는 목사님을 위하여 멈추지 않고 기도합니다. 애양원교회 교우 일동은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의 힘으로 모두 풍성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님 계실 때보다 신앙의 길에 들어가려고 더욱 노력합니다. 물론 이곳 애양원의 여러 규칙과 제도는 조금 변했지만 교회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목사님! 어디서든 주 예수님이 계신 곳이 천당 아닐는지요? 목사님은 주 예수님과 함께하실 거라 믿습니다. 진주 보화보다 예수님을 찾은 자가 진정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목사님이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 날 사랑하심은 말로 다 할 수 없네. 이 세상 많고 많은 소리 중 비할 것이 없네.
목사님 떠나신 뒤로 새로 입원(入園)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고, 퇴원(退園)하는 사람과 사망자도 많습니다.²⁾ 별지에 기록합니다.
목사님의 편지를 교회 모든 사람 앞에서 읽었습니다. 목사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고들 말합니다. 우리도 목사님을 위해서 항상 기도합니다. 새벽 5시에 타종하고 새벽 기도회를 합니다. 밤을 지새우며 예배당을 떠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는 장로님과 집사 권찰이 돌아가면서 인도합니다.
올해는 보리와 벼농사가 풍년입니다. 음료수도 풍족합니다. 땔감은 찌꺼기 땔감으로 충당합니다. 곤란함이 거의 없습니다.
주일 학교 2부서는 반장이 자습해서 가르칩니다. 교장은 신길수 박동수입니다. 애양원의 이사진은 최재선(崔在善) 이주동(李周東) 권상집(權相集) 김윤집(金允集) 박동수(朴東洙)이고, 서기는 김윤집(金允集), 회계는 박동수(朴東洙), 학교 학감은 허옥(許玉)입니다. 교회 제직(諸職)은 정치광(鄭致光) 외에 모두 여전합니다. 이곳을 위해 기도하시겠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곳 경관들의 보호 가운데 항상 평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940년 9월 25일부터 사망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최정금(崔正今), 홍대해(洪大海), 이입비(李立比), 김변례(金卞禮), 구순금(具順今), 이정옥(李正玉), 홍학범(洪學凡), 이원모(李元模), 경석숙(慶石淑), 문원기(文元基), 박을례(朴乙禮), 윤태만(尹太萬)의 처 조순례(曺順禮), 박봉조(朴奉祚), 박(李)희례, 장변만(張變萬), 정치광(鄭致光), 이산정(李山亭)
올해 퇴원자(退園者)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남주(李南柱), 김정수(金正洙), 이인심(李仁心), 윤구규(尹求奎), 김장수(金長洙), 조증환(曺曾煥), 고진효(高眞孝), 김석유(金石裕), 박순이(朴順伊), 김두화(金斗化), 김동우(金東佑), 이이석(李二石), 최구호(崔求浩), 채수여(蔡壽汝), 한효주(韓曉柱), 박봉준(朴奉準), 하두종(河斗鐘), 이지순(李智順), 장재일(張在一), 김입목(金立木), 양정남(楊正男), 김옥수(金玉守), 강막동(姜莫同), 박입비(朴立比), 김남보, 박원년(朴元年).
퇴원자(退園者)
변득진(卞得珍), 최원순(崔遠順), 송명수(宋明洙), 서재원(徐在元), 이학년(李學年)(小), 김학주(金學柱), ㅁ³⁾재칠(在七), 박용갑(朴容甲), 김혁이(金赫伊), 강영현(姜永鉉), 박주임(朴舟任), 유정례(兪貞禮), 최권진(崔權珍), 이정동(李正東), 김남례(金南禮), 김재출(金在出), 최경득(崔京得), 박순화(朴順和), 이근옥(李根沃), 배오망, 김창권(金昌權), 노인석(魯仁錫), 한동권(韓東權), 정종순(鄭宗順), 박형양(朴亨陽), 이성식(李性植), 정재근(鄭在根), 안옥상(安玉尙), 정덕준(鄭德俊)(小), 수야공(水野公), 정주완(鄭柱完), 송재근(宋在根), 강래옥(姜來玉), 김원석(金元碩), 최금렬(崔今烈), 정(鄭)몽룡, 송(宋)인범, 박영춘(朴永春), 박노인(朴魯寅), 김홍룡(金洪龍), 이순남(李順南), 김원차(金元次), 최서운(崔西云), 김성녀(金姓女), 김덕만(金德萬), 박용문(朴用文), 주영희(朱永喜), 유학종(劉學鐘), 박화변(朴花變), 서고례(徐古禮), 김영규(金永奎), 이회화(李會和), 이갑영(李甲永), 김종일(金鐘日), 김상윤(金相允) 이상입니다.
새로운 입원자(入園者)는 작년 9월 24일부터 1941년 9월 11일까지 107명입니다. 현재 재원(在園) 환자는 745명입니다.
1941년 9월 11일.
제직회 대표 박동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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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편지는 교회를 대표하여 제직회 대표 박동수 장로가 손 목사에게 보낸 답장이다(20페이지 각주 참고). 손 목사가 교회를 떠난 지 1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 당회장에게 교회 현황을 보고하는 듯한 어투로 교회의 사정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이 편지만 보더라도 손 목사가 애양원 식구들에게 얼마나 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 애양원(愛養園)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입원자(入園者)', 나가는 사람을 '퇴원자(退園者)'라고 일컬었다.
3) 판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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