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아는중에 자라가라

설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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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아는중에 자라가라

성구(발신/수신) 엡3:14-19, 골1:9-11, 벧후3:18)
일시 미상
출처 이광일1-16,
서기 0 2
예수를 아는 중에서 자라가라

엡3:14~19, 골1:9~11, 벧후 3:18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4~19)

이로써 우리는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쫓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로새서 1:9~11)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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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아는 중에서 자라가라

생명을 가진자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로 기독자는 중생한채 생명으로 30배 60배 100배로 자라야합니다. 그러자면 예수를 잘 옳게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많은 기독자가 있습니다. 하나 참 예수를 옳게 아는자얼마나 되는지?

예수에 대하여 설명 하는자는 많으되 예수를 아는자 적고 예수를 몇10년 믿었다고 자랑하는 자는 많으나 예수의 생명 성장의 진보를 보이는 자는 드뭅니다. 성경책 속에 기록된 예수를 설명하는자 많으되 자기속에 계신 주와 같이 자라는 자가 희귀합니다. 예수를 두뇌(頭腦)에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것을 알아야합니다. 사탕맛을 알자면 먹어보아야합니다. [ 네가 미국에 있는 윌슨 대통령을 아느냐? 1하고 물을때 [ 네!] 하고 대답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사진으로 보아서 아는 수가 있고 신문지상에 발표된것을 보고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아는것은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안다든것은 그의 마음까지 그의 행동까지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알자면 사귀어 보지않으면 안됩니다. 사귀어야 참으로 깊이 알게되는것입니다. 친구를 사귀이면 처음에는 얼굴 다음에는 체격과 그의 언행(行)나중에는 그의 성격까지 알게되는 것입니다. 이만큼 되어야 참으로 그를 안다고 할수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누구로 알았으며 얼마나 알고있으냐하는것을 생각할때에 우리는 예수를 아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가진 기독자라면

그리스도를 아는데 성장해야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속에는 예수를 안다는 말이 4차나 있습니다.(2,3,8,12)2:20에도 있습니다.

예수를 앎으로해서 5대 소득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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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아는 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다면서 예수를 믿는다면서 근심과 걱정을 하는 자는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하고도, 나는 나대로 걱정과 근심에 잠겨있다면, 이는 안믿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맡겨놓고도 걱정 할 바에야 믿으나 마나 할 일이 아닌가. 입으로는 예수를 믿어 복 받겠다는 하면서 내심으로는 그대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는 밤낮 2중 3중의 근심고통만 하고 있는셈입니다.

사죄 받은 자리에 앉아서 죄의 고통을 하고있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앉아서, 세상의 썩은 면류관이 부러워 한탄하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마귀의 신세를 그리워하고있으며, 영원 축복을 얻은자가 잠깐 세상의것에 취하고저 하니, 이 어찌 참으로 예수를 알았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참으로 예수를 아는 자리에 들어섰다면 그러한 모순된 일은 하지않게 되고, 필연적으로 은혜와 평강을 맛보게 되는법 입니다.

예수를 알아야 예수의 것을 내게 채울 수 있습니다. (엡 3 19)

예수의 것이 내것 되게 하기위하여 예수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 1:14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한대로 예수께서는 은혜와 진리를 가지시고 세상에 오신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다 받게하고저 하심입니다. 그런데 이상한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에게 한하여서는 예수의 가진신 것을 내가 알아가는 대로 다 낱낱이 내것이 되는 일입니다. 예수의 사랑, 인간 지혜에 넘치는 예수의 사랑의 그 넓이, 길이, 높이, 깊이의 모든 충만한 것을 내게 충만하게 하십니다. 아! 위대하다. 아무리 히말리야 산봉이 높다 해도 인지(仁智)로 측량할 수있고, 태평양 같은 대양도 그 한도가 있어서 그 넓이를 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는 무한대로 영원무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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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한같은 사도도 은혜와 진리의 충만을 알았고, 바울도 삼층천 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이같이 얼마나 예수를 알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있는지! 오늘날 신지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를 정도로 지내는 이가 많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참 신자가 못되는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은 모두가 우리가 이해하고 또 믿는대로 우리것이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성결함, 선(善)함, 거룩함, 지혜, 능력 등 다 내것이 됩니다. 무엇이 있는것 같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예수의 곤고, 천대, 십자가의 죽음 같은것은 우주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되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도록 합니다.

예수를 알면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마 11:29)

신자의 큰 복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방법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옳게 아는데 있는것 입니다. 오늘날 신자중에는 기독교 졸업한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어떤 직분이나 맡으면 어지간히 된줄압니다. 그래서는 예수에 대해서 더 알아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신앙의 장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죽어서 천당에 가고저 하는 소망 정도로 만족합니다. 예수의 길이 넓이 높이 깊이를 알아 나도 겸손 충만한 알곡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참으로 아는자가 겸손해 지는 것이 마치 잘 익은 알곡이 고개를 숙임 같은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중에 고기 많이 잡게 되고 나서는 나는 죄인이로소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했습니다. (푸랜시쓰의 기도이야기 어거스틴의 최후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야기) 바울도 나는 죄인중에 괴수로다」하지 않았는가 일본에 유명한 아오기(淸水)선생도 「나는 벌레이지 인간이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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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수를 알아갈수록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것을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점점 작아져 가는 나요, 천한나요, 약한나요, 껍데기뿐인 나요, 공허한 나인것을 알게됩니다. 신자중에 아는체 하는자, 강한체 하는자, 된체 하는지는 아직도 예수를 옳게 몰라서 그런것입니다. 차라리 모르거든 가만히 눈 감고 있기 바랍니다. 시험중에 제일 큰 시험은 자기에게 자기가 당하는 시험인것입니다.

인간들이 자기를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것입니다 죄인됨을 알고, 부족을 알고, 무능력함을 알고, 인간 자체를 깨닫는 것은 예수를 알아가는 자만이 취할수있는 태도인것입니다. 예수를 알아가는 겸손한 자에게는 예수의 충만이 그의 충만이 되는것입니다. 나는 어지간하다」하고 자족을 느낄때가 오히려 위험천만한 때입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취해진 태도와 나는 죽을 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를 비교해보라.

예수를 앎으로 죄악과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를 잘 알게 될때에 세상을 알고, 인간도 알고, 악마도 알고, 죄도, 의도, 선도, 악도, 구별해서 알게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범죄케하는 모든 사물이 있는것을 알게 될 때에, 나도 싸울 계책(策)이 나오게 되고 힘도 나게됩니다. 오늘날 세상보고 인심을 보니 어찌나 악한지 모르겠습니다. 천만가지계교로 우리를 범죄하게 하는것입니다. 밖으로는 대적(敵)이 안으로 원수가 대 활동을 하는 지금 세상입니다. 세상은 말세로서 가을바람에 나무 잎 떨어지듯이 요란합니다. 그러나 이 바람에도 안 떨어지는 자는 주님을 잘 아는 자인것입니다.

왜 아직도 죄악을 못 버릴까, 왜 독초를 즐길까, 세상 육욕에 취할까, 그것은 아직도 주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옥수수 대를 빠는 아이들 같이 세상허영 육적인 향락에 취하지 말라, 왜 아직도 담배를 피울까, 그것은 아직도 담배 맛을 예수 맛보다 더 잘 아는 까닭입니다.

빌립보 3장 4~8보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얻기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성 푸랜씨스도 「돈 전대를 말똥 위에 던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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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어거스틴 선생도 옛날 좋다던것이 오늘에는 눈물로 변합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를 참으로 알게되면 반드시 이러한 체험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죄악과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이길자도 오직 예수를 아는자 뿐입니다. 무엇보다 더좋은 예수를 알게 될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아직도 죄를 짓고 시기와 원망과 불행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것은 아직도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데서 그럴것입니다.

예수를 참으로 아는 자라야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 666~69)

오늘날 여러분이여! 예수의 참맛, 참 예수를 알기전에는 섰다고 생각하지 말라! 3년이나 따르던 가롯 유다가 오늘의 우리들보다 예수를 몰라서 팔았겠으며 세상을 사랑하던 데마는 우리보다 예수를 몰라서 세상 영광에 취하였겠는가 과거에 믿다가 낙심한 모든 성도가 우리보다 성령을 몰라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오늘날 조선에 목사 장로가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렇게 되는줄 아는가, 예수를 알아가자, 오늘날 우리들도 참 예수를 아는일에 일로 매진합시다. (폴라갑 이야기, 요 6:66~69 이야기) 예수를 따르던 가롯유다도 떨어지고 말았다 돈 몇푼에 주인을 팔고 월급 몇푼에 성적을 파니 예수를 어찌 안다고 할것인가.

알곡만 남으라. 욥 같이 하나님을 잘 알라. 요한이나 바울이나 베드로 같이 알아야합니다.

[결론]

그러자면 예수를 아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① 기도로 ② 성경으로③ 체험으로 ④ 명상으로 ⑤ 만물, 만사 만행중에서 ⑥ 평범한 생활중에서도 예수와 사귀이면 예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려면 일생을 산곡이나 암혈에서 지낸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나를 배우라고 하셨으니 더 말할것이 무엇이냐! 예수를 알면 예수의 것이 아는 사람의 것이 되는것이니 이 어찌 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