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말세론

주제별 정리      

제7장 말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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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8.초교, 04.03.29. 최종출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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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론







1. 말세의 개념
2. 개인의 죽음
3. 우주의 종말
4. 영생






제 7 장

말세론



1. 말세의 개념

▪ 단어의 뜻

예수님이 처음 오신 때를 초림이라고 하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재림이라고 합니다. 초림은 이 세상 자체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시면 세상 자체를 완전히 정리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 세상은 죄로 저주를 받은 것이므로 불태워 없애버리게 되고, 우리는 영계를 주무대로 삼고, 새롭게 된 이 세상은 우리의 발등상과 같은 작은 활동 무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 현 세상 상태가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이 시점을 ‘말세’라 하고 이를 공부하는 것은 ‘말세론’입니다. ‘종말론’이라고도 하고 또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므로 ‘내세론’이라고도 합니다. 말세론의 중심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중심으로 두고 앞서 일어날 일들과 재림에 뒤따라 일어날 일들을 성경으로 살펴보는 것이 말세론의 연구 범위입니다.

▪ 3가지 차원의 말세

말세와 관련하여 먼저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성경에서 사용하는 3가지 의미의 말세 개념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한 때를 말세라고 한다면, 이 말세는 재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주님과 재회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가 주님과 재회하는 재림, 성도가 말세 상황으로 주님을 접하는 것은 3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구약교회에 대하여, 신약교회는 신약 기간 전체가 말세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이 우리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 끝날까지 늘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기간이 신약기간 전체입니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신약 기간 전체를 통해 주님과 재회하며 신약교회의 구원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합니다.(벧전1:20, 요4:35)

둘째는 개인의 사망 시점은 그 개인에게는 말세입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차례대로 서게 되는데, 신약교회와 이 우주는 그대로 존재한다고 하지만 죽게 되는 그 사람은 개인적으로 말세와 꼭 같은 상황을 갖게 됩니다. 죽는 사람은 주님과 개인적으로는 재회하게 되고 또 자기가 죽는 그 시점이 마치 우주적 재림과 꼭 같은 상황으로 다가오게 됩니다.(고후5:8, 히9:27)

셋째는 주님이 이 세상을 완전히 끝내버리는 우주적 말세입니다. 이 말세는 개인과 신약교회 전체를 함께 끝내는 이 세상 최점G 종말입니다.(벧후3:7-14)

말세를 이렇게 3가지 범위로 나누어 적용하지 않으면 성경의 말세 관련 모든 해석은 최후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 외에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어 버리며 또한 성경의 말세 관련 성구를 바로 해석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개인이 죽어 주님을 만나는 개인적 종말, 신약기간 전체가 구약에 대하여 종말, 그리고 우주의 마지막 정리가 되는 종말로 나누어 말세를 살피되, 조직신학의 ‘말세론에서는 우주 최후 정리를 하게 되는 종말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우주 종말을 살펴보는 ‘말세론’의 특징은 개인 종말과 구약에 대한 신약교회의 종말성을 연구할 때 함께 살펴보고 참고할 내용이 많습니다.

▪ ‘말세론’의 대상은 개인적 종말과 우주 종말

3가지 차원의 말세론 중에서 신약 전체 시기를 말세로 보는 것은 성경신학에서 주로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조직신학에서는 주로 ‘개인적 종말’과 ‘우주의 마지막’을 살펴보게 됩니다.



2. 개인의 죽음

(1) 죽음의 의미

① 인간의 구성요소와 생사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이 하나로 연결되어 움직일 때가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일 때는 영도 살았고, 마음도 살았고, 몸도 살았으며,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된 그 사람 자체도 살았다고 표현합니다. 특히 이렇게 영이 살아 있는 상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고전15:45, 창2:7)

그러나 영이 죽고 몸과 마음이 살고 있거나, 몸이 죽고 영과 마음이 살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이나 영을 기준으로 볼 때와 안 믿는 인간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생사에 대한 표현이 달라집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죽은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이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이 몸만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골2:13)

② 아담의 범죄와 인간의 생사

아담이 범죄 하자 아담의 영은 즉각 죽었고 이후 인간은 몸과 마음 둘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를 두고 모두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또 그렇게 알고 있지 영이 죽은 불신자를 죽은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극소수 믿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성경만은 이런 상태를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물론 성경에도 몸과 마음만 살아 있는 인간을 인간 수준에서 살았다는 표현으로 상대하기도 하지만, 영을 표준으로 하여 말하면 죽은 것이니 실제로는 죽은 사람입니다.

영이 죽으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집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인간의 참 삶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고 인간이 인간인 것은 영 때문에 인간이지 몸과 마음 때문에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영의 사망은 분명히 그 사람에 대한 사망 선고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눈에 보이는 것으로 전부를 삼아 살기 때문에 성경이 무어라고 가르치든 몸만 살아 있으면 산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안 믿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위해서 영이 죽은 그들을 산 사람으로 표현하는데, 이런 표현을 자주하다 보니까 영이 죽은 그들을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상대하는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거의 모든 믿는 사람들입니다. (롬5:12)

③ 몸의 사망과 개인종말

세상을 살면서 중생된 믿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또 끝까지 믿지 않고 불신자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몸이 죽은 것입니다. 몸의 활동이 중단된 것입니다. 몸의 사망은 그 마음과 분리되는 순간입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면 사람의 몸은 즉시 죽게 됩니다.(마27:50, 눅12:20, 약2:26)

그렇다면, 불신자는 그 몸이 죽으면 그 마음과 죽은 영이 음부로 가게 됩니다. 또 믿는 사람의 몸이 그 마음과 끊어져 죽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과 영은 낙원으로 가게 됩니다. 이 두 경우에 그 가는 곳과 그 이후 영원은 완전히 다르지만, 두 경우가 꼭 같은 것은 그 몸이 죽는 순간 타락한 현재 이 세상생활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점입니다.

살아가는 인생과 죽은 이후 가는 곳과 그 이후 영원한 생활이 천지차이가 나지만, 몸이 죽는 순간은 마치 이 우주가 끝나는 세상 마지막과 같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늘과 영원을 분리시키는 사건이므로 이 순간을 개인의 종말이라고 표현하며 ‘말세론’에서 먼저 살펴보게 됩니다.(눅16:23, 23:43, 전3:21)

④ 생사의 혼동과 바른 인식

몸이 살아 있어도 그 속에 영이 죽어 있으면 하나님 없이 사는 사망 아래 있는 인간인데도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반대로 몸이 죽으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은 완전히 끝나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죽으면 그 몸만 땅 속에 매장하고 그 몸속에 있던 자신의 생각 주체였던 마음과 영은 몸과 전혀 상관없이 따로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몸만 매장할 뿐이고 그 몸속에 있던 영과 마음은 그 동안 사용하던 몸을 벗고 장소를 영계로 옮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낡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외투를 마당에 벗어 놓고, 이제 따뜻한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데, 우리는 몸이 우리의 전부로 생각되어 몸의 기능이 끝나는 것으로 인생의 실질적인 의미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몸의 사망을 인생 최악의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살전4:14-18)

이렇게 몸이 죽으면 몸만 죽은 것인데, 사람 자체를 땅에 매장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 반대로 영은 죽었지만 몸이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이 정말로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사실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살아야 할 우리 믿는 사람들까지도 안 믿는 사람들의 착각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생사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사람에게 영과 마음과 몸이 있음을 다시 한번 잘 새겨두고, 또 영만 죽고 몸과 마음만으로 사는 생활이 있는 반면에 몸만 죽고 영과 마음은 장소를 옮겨 따로 살아갈 세계를 늘 마음속에 새겨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혼동하거나 잊으면 인생의 가장 큰 실수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되고 이 땅 위에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눅12:16-21)

결론적으로, 안 믿는 사람은 그 몸이 살았으나 확실하게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살아난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한 번 중생되고 나면 그 마음과 영은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몸이 죽어도 몸만 죽지 영과 마음은 장소만 옮길 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이 먼저 죽어 있다가, 그 몸이 죽을 때 그 몸까지도 죽고, 그 마음은 이미 죽어 있는 영과 영원히 지옥입니다.


(2) 죽음의 정의

▪ 단절

죽음이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만든 것은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고 다만 존재 형식만 변형될 뿐입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이든 연결 상태에 단절이 생기면 그 차원에서는 죽음이 됩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단절’ 곧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인간은 늙고 썩고 그 형태가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데 이것은 죽음의 결과로 일어나는 일이지 죽음 자체는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바로 그 순간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욥4:7, 사53:8)

▪ 하나님과 단절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연결이 되어야 하고, 모든 만물은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 단절되자 인간뿐 아니라 인간에게 맡겨진 물질계 전부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범죄로 인하여 인간뿐 아니라 이 세상 전체는 사망선고를 받고 사망 상태에서 오늘까지 진행되어 왔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상태가 임점L라 한다면, 그 후 6천년간 이 세상은 땅 속에 묻은 송장이 썩어가는 모습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한 사람과 이 세상의 현 상황을 설명한다면 목이 끊어진 닭의 몸통이 꿈틀거리듯, 잘려나간 나뭇가지에 달린 잎사귀가 푸른색을 잃어가듯, 생명은 잃었으나 이미 받아 둔 재료가 변형되는 순간이 조금 있는 것과 같습니다.

넓은 면으로 살펴보고 또 깊이 살펴보면 분명히 죽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눈앞에 사시사철이 계속되고, 동식물과 사람들이 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문화와 기술과학의 발달이 있으며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여러 모습을 볼 때, 그 현상 자체만 보고 타락한 오늘 상황을 살았다고 말할 사람은 살았다고 말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것은 죽은 것입니다.

이 모든 사망은 하나님과 단절이라는 기본 생명선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이후 피조물계의 모든 현상은 송장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패현상일 뿐입니다.(히3:12)


(3) 죽음의 원인

① 죄

사람이 하나님과 끊어져 죽게 된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말하는데,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삐뚤어져 끊어지게 된 것을 살펴보려면, 사람이 원래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창6:3, 롬6:23)

② 신인양성일행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던 것은 전화선이나 교량과 같은 유선 연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행하는 무선의 연결이었습니다. 곧 지식과 행동의 일치였습니다. 그 동행은 원거리에서 무선 조점;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원하는 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치 몸 속에 마음이 있어 몸과 마음이 하나이듯이, 또 마음 속에 영이 있어 마음과 영이 하나이듯이, 아담의 영 속에 하나님께서 내주하셔서 비록 신인양성일위는 아니지만 일위와 비슷한 모습과 결과를 가지고 오는 신인양성일행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 속에 창조주 하나님이면서 주권자 하나님으로 와 계시고, 아담은 자기 영 속에 자기 주인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무엇이든지 여쭤보고 지도받고 의논하고 그리고 행동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신인양성일행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모든 은혜를 다 받아가지고 있었습니다.(창2:19-20)

③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약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과 이렇게 연결시켜 신인양성일행으로 살게 하면서, 인간에게 한 가지 계약을 선포하게 됩니다. 원래 인간을 만들기로 목적을 정할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본질을 자유성으로 정하여 하나님을 닮은 인격자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과 다른 특수한 존재가 된 것이고 만물의 주인공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닮은 인격자로서 자기 자유성을 가지고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자기가 책임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완성시켜 정상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다음, 인간에게 하나님 없이 단독으로 살 수 있는 길과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동행의 두 길을 놓고 이제 자유롭게 선택하고 갈 길을 가게 했으니 이것이 에덴동산 아담에게 선포한 계약입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의미는 선과 악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말이니 곧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선과 악의 주인으로 선과 악을 결정하고 하나님께 좋으면 선, 하나님께 좋지 않으면 악으로 정의를 내립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이런 하나님의 결정을 따라 아담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악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아담 자기도 선과 악에 대한 정의를 자기 기준으로 내리든지 자유로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는 연결이 끊어지고 아담은 스스로 살아야 할 것이고, 만일 하나님과 연결을 갖고 살려면 선악에 대한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받아 살아야 하는 두 길을 내시고 선택을 맡긴 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계약입니다.(창2:15-17, 호6:7)

④ 하나님과 단절

아담이 하나님과 단절된 이유는 아담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명령이면서 계약이며 진리의 법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위치로 봐서는 ‘명령’이며, 아담의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선택의 문제였기 때문에 ‘계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참된 이치였기 때문에 ‘진리의 법’이기도 했습니다.

아담은 최점{으로 하나님과 연결을 포기하고 자기도 하나님처럼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짓는 선악의 중심자가 되기로 결정하여, 하나님께 매여 사는 신세보다는 하나님처럼 독립 독존 자유자가 되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결행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담은 자기 의사로 자기가 결정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가졌던 모든 연결을 끊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아담으로 전해질 모든 보급품은 차단이 되었으며, 하나님께 연결되지 않으면 어떤 기능도 할 수 없는 아담 속의 영은 즉시 사망 선고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 속에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을 담당하던 영을 포기한 대신 그 영 자리에 악령을 모시고 아담은 과거와 다른 구조, 즉 ‘성령을 모신 영-마음-몸’으로 된 구조 대신, ‘악령-마음-몸’의 형태로 살게 됩니다.(창6:3, 롬8:5-7)


(4) 죽음의 결과

말세론에서 개인의 죽음을 논할 때는 죄론에서 살펴본 것과는 달리 몸의 죽음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일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몸이 죽으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이며, 몸의 죽음에 관련된 현상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겠는가를 살펴봅니다.

① 몸과 마음의 분리

보통 세상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그 이면에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 몸은 마음과 연결된 상태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도록 했다는 것은 조직신학의 인론에서 이미 살폈습니다. 몸은 마음으로부터 분리되면 그 순간부터는 존재 가치와 이용 목적과 작동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음과 분리된 몸은 송장으로 남을 뿐입니다.

대개 의학이 죽음을 확정지을 때는 몸의 기능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의학은 몸이 죽은 결과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의 죽음만을 가지고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몸이 죽으면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면 몸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리되는 순간은 인간이 볼 때는 몸의 기능이 다하는 시점인데, 실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몸으로부터 마음을 불러들이는 시기를 정해놓았습니다. 따라서 몸의 기능 마비는 그 사람의 마음을 불러들일 시간이 임박했다는 표시입니다.(눅12:20, 행5:10)

② 몸의 활동 중단

마음이 몸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몸의 기능과 활동은 완전히 중단됩니다. 몸을 존재시키고 유지시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은 자기 마음과의 연결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음과 분리된 몸은 즉시 송장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기능과 활동은 전부 중단되고 몸은 그 형체까지도 분해 되어버립니다(약2:26).

죽음을 몸의 활동 정지라고 본다면, 몸이 있어야 하고 몸으로 해야 할 모든 일은 전부 종료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은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는데 몸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면 마음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고 활동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면 마음은 즉시 영과 함께 영계로 옮겨지지만 혹 마음이 이 세상에 있고 싶다고 해도 몸이 없이는 마음만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흔히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벗어두고 마음이나 영이 이 세상에 남아 따로 존재하거나 활동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종류는 오해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몸이 죽는다는 뜻이고 몸이 죽는다는 뜻은 마음이 이 세상에 더 이상 단독으로 남을 수 없어 영계로 바로 옮겼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따로 남은 부분이 있어 어느 가정을 불행하게 한다거나 몸을 가진 사람 이상의 신비한 존재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즉 죽은 사람이 귀신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아는 것은 사람의 몸을 알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고후5:1)

③ 천국 준비의 종료

이 세상 기간은 그 자체로서는 고와 슬픔뿐이므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기간은 영계 영원을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이므로 세상 기간이란 영계 영원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룻밤 나그네로 또 아침 안개의 잠깐으로 비유한 이 찰나의 기간은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을 나누는 기간이며,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어떤 모습으로 살는지를 결정하는 기간입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하찮은 것이 몸이지만, 이 몸이 활동을 종료하는 그 시점은 우리의 영원이 결정되는 순간이고, 그 이전까지만 우리에게 천국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몸이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은 천국 준비가 종료된다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눅16:24-31, 히9:27)

④ 죄악의 고통도 종료

사람의 고통과 모든 고생은 천국을 준비하는 이 세상에서만 적용됩니다. 물론 지옥 갈 불택자는 이 세상의 고통이 영원한 고통의 시작이며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영원한 고통의 견본일 뿐입니다. 그러나 택자들에게는 이 세상 고통이 이 세상으로 끝나고 죽는 그 순간 이후부터는 영원히 영생의 천국에서 기쁨과 영광으로만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도 택자에게는 알고 보면 죄값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훈련의 고통이지만, 어쨌든 그 고통도 몸의 죽음까지만 있을 뿐입니다.(계21:4)

⑤ 주님과 완전한 재회

신약성도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이 세상 사는 끝날까지 항상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주소 이전이 아니라, 모습의 이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승천’은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승진’하는 공간적 의미가 아니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다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변화’한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의 인성은 승천 이전이나 이후에 달라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의 눈에 확인이 될 수 있도록 일부러 40일을 계셨던 상태를 종료하고 다시는 사람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도록 했을 뿐이지, 부활 후 인성의 본질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마28:20에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은 정신적 동행이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육안으로 볼 수만 없도록 했을 뿐이지 실존적으로 주님은 부활 후 오늘까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실감하지 못하는 저급의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개인이 죽게 되면, 이제 이런 상황까지도 종료됩니다. 실제로 자기 평생 주님이 자기와 동행했지만, 이제 죽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과 영은 주님과 함께 한순간도 예외 없이 항상 동행하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물론 죄를 짓거나 시험에 드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항상 동행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이 지금 세상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우주적으로 재림하셔도 우리가 주님과 완전한 재회를 하겠지만, 그 이전 개별적으로 죽는 이들은 개별적으로 주님을 만나 완전하게 재회합니다.(고후5:8, 살전4:17)


(5) 죽음의 성질

① 예측 불가

한 사람이 언제 태어날지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사망 역시 언제가 될지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셨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종말인 죽음은 우주 종말과 함께 그 첫째 특성이 ‘예측 불가’입니다.

누구든지 언제 어느 시에 어떤 형태로 어떻게 임종할지 모른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평생에 항상 따라 붙어 다니는데, 이 고삐를 쥐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며, 이 고삐는 사실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 중에 하나입니다.

혹 자살이나 살인은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일을 하려는 생각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전3:1-14)

② 공포와 소망

죽음은, 마치 인류 전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우주의 종말과 마찬가지로, 어떤 인간에게도 일생에 가장 큰 두려움으로 늘 따라 다니게 됩니다. 앞서 죽는 사람 중에서 특히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일수록 그 남은 사람들에게 주는 공포는 지극히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세상에 가려있던 것이 벗겨지고 다음에 가야 할 나라가 서서히 눈앞에 다가오게 됩니다.

인간으로는 이 공포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불택자들의 공포는 그 마지막 사망하는 순간이 가장 극심하게 되는데, 택자들은 그 반대로 자기의 마지막 순간에는 다음에 가야 할 천국이 보이게 되어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벗어나게 됩니다.(히2:15, 고후5:1, 8)

③ 영생의 시작

죽음은 그 순간부터 바로 우리의 영생이 시작되는 출발 신호입니다. 일단 우리 몸은 부활 때까지 이 땅위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영과 함께 이 세상 죄와 사망과 악령의 제한과 훼방으로부터 해방되어 영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사망의 외부 모습만을 보고 공포에 떨지만 알고 보면 사망은 죄의 결과로 부패해진 몸을 완전히 분해시켜 앞으로 다가올 재림 때 깨끗하게 되살리는 공정과정 중 하나에 불과하고, 그 대신 마음과 영은 몸의 사망과 동시에 즉시 영계로 옮겨진다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눅23:43, 고후5:1)


(6) 사망 후 중간기 상태

몸이 죽은 뒤부터 예수님 재림으로 그 몸이 부활할 때까지 기간을 중간기라고 합니다. 이 기간에는 우리가 어떤 상태로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중간기’로 살펴볼 문제입니다.

① 몸은 세상, 마음과 영은 영계

▪ 몸은 세상에서 분해

몸은 세상의 물질 재료와 동일한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인체의 구성과 성능은 다른 것에 비하여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과 분리된 상태에서 인간의 몸은 다른 동물이나 물질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순히 물질의 여러 구성 성분으로 조합된 것이므로 그 구성 물질들의 물리적 이치에 따라 분해되어 이 세상에 흩어지게 됩니다.

그 존재들이 어떤 상태로 나누어지고 또 다시 다른 존재와 결합을 계속한다 해도, 마지막 재림 때는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다시 다 불러내어 생전의 형태로 만들 것입니다. 혹 한 물질이 여러 사람의 구성 요소로 존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때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인체를 다시 재구성할 때는 물질이 오늘과 같은 형태나 성질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 요소가 여러 사람에게 사용되어 따로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창3:19, 시104:29, 146:3-4)

▪ 사망한 몸의 처리

마음이 두고 간 그 사람의 몸은 단순한 물질 구성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지만, 그 몸으로 맺어온 가족과 그 몸으로 살아온 평생이 그 몸의 이미지와 완전히 분리되어 인식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 몸 자체에 무슨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남아 있는 분들을 위해 조심스럽게 잘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장보다는 매장이 낫지만, 굳이 매장을 고집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화장이든 어떤 형태로 처리를 하든, 예수님의 재림 때는 그 모든 형태와 상관없이 부활을 시킬 것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이 그의 평생과 그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목적을 위해 묘비를 세우거나 또는 묘소를 마련하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개인 신앙 문제입니다.(마14:12, 27:59)

▪ 마음과 영은 영계

불신자의 마음과 영은 영계 중에서도 음부로 가고 택자들은 낙원으로 갑니다. 음부와 낙원은 부활 후 영원히 심판을 받기까지 임시로 대기하는 곳입니다. 음부는 앞으로 가야 할 지옥과 같고, 또 낙원은 장차 가야 할 천국과 같은 곳입니다.

몸은 분해된 상태에서 이 땅 위에 흩어져 존재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은 음부에서 영원히 받을 고통을 음부에서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과 마음은 영원한 천국에서 받을 모든 영광과 기쁨을 낙원에서부터 미리 받아 누립니다.(눅16:23-24, 23:43)

② 음부와 낙원

세상 기회가 끝나게 되면 불택자는 음부로 가고, 택자들은 낙원으로 가게 되는데, 한 번 가게 되면 두 번 다시 세상으로 돌아 나오거나 아니면 음부와 낙원을 가로질러 오가거나 그 있는 곳을 서로 교환하지 못합니다.

음부는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역사 자체가 없는 곳이라는 말이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베풀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한 불택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음부를 유지시키고 관리하고 또 형벌을 받도록만 하시지 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눅16:23-26)

반대로 낙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시고 또 우리에게 영계 영원통치를 하도록 동행하시되 실은 영원히 다시는 실패하거나 차질이 없는 신인양성일행의 존재로 함께 하십니다. 비록 몸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 나와서 역사 할 수 없지만, 몸 없이 마음과 영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기도나 기타 신령한 역사는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낙원에서는 편히 쉬기만 한다고 알고 있고 또 천국에서도 우리는 영원히 찬송만 하고 놀기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 죄 때문에 죽도록 고생하다가 마지막에는 죽어버리는 그런 처참한 수준을 기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낙원은 좋은 곳이라는 면을 표시하되 죄악으로 죽을 고통 속에 늘 힘들게 사는 인간들에게 늘 평안과 안식만 있다고 하면 그곳은 가장 좋은 곳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놀고 쉬고 살아본 이들에게는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더 큰 복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말한다면 낙원은 죄악으로 인한 고생은 없는 대신에 하나님 앞에 보람되고 건설적인 일은 충만한 곳입니다.

낙원에서 할 일은, 아직 이 세상 기간이 진행 중에 있고 많은 성도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영생을 두고 투쟁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전력을 다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돕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단순하게 호소와 기도라는 표현을 하고 있지만, 이 호소와 기도는 이 세상과 달리 마음과 영으로 존재하고 있는 낙원의 택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며 또 이 일은 오늘 세상에서처럼 말이 말로서 끝나는 말이 아니라, 말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나고, 말이 바로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계6:9-11)

③ 부활

▪ 택자의 부활

사람의 부활은 택자의 부활이 먼저 있고, 불택자의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후 천년왕국이 끝난 다음에 부활하게 됩니다.(계20:5-6)

낙원에 가 있는 택자는 예수님이 우주 종말을 맞아 재림할 때 함께 이 세상에 흩어놓았던 자기 몸을 찾아 입고 옵니다. 또한 이 우주 종말 순간까지 살아남아 있던 택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진행되는 동안 지상에서 즉시즉시 주를 위해 죽게 되고, 죽으면 그 순간에 바로 부활이 되어 재림하는 주님을 공중에서 영접하게 됩니다.(고전15:50-52, 살전4:17)

▪ 불택자의 부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세상이 끝나게 되면 즉시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그 천년이 다 지나가게 되면 그 마지막에 불택자들은 자기 몸을 찾아 입고 영원히 지옥으로 가기 위한 심판의 부활로 살아나게 됩니다.(계20:5-15)



3. 우주의 종말

(1) 말세의 의미

개인적으로 주님을 재회하게 되는 말세는 개인적 종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만물이 우주적으로 주님을 주님으로 재회하게 되는 우주의 종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세상이 우주적 종말을 맞아 어떤 순서로 사건이 전개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말세의 사건 전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면 세상과 교회 안에는 ‘말세지 말의 현상’이 먼저 발생합니다.(마24:3-37) 그다음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 재림’하시게 되고, 그 순간 땅에서는 최후까지 살아남아 있는 성도를 박해하는 ‘최종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고전15:51). 이 최종환란에 죽은 성도들은 즉시 ‘공중으로 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이제 지상으로 재림하게 되는 순간에는 남아 있던 모든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하며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살전4:17)

이미 죽었던 성도와 재림 때까지 생존했던 모든 성도들을 공중으로 불러 모으게 되면 예수님은 ‘지상으로 재림’하게 되고, 이 순간에 1차 창조에 속했던 ‘물질계 세상 전부를 완전히 불태우고’ 그 본질 자체를 해체하여 초기 창조 처음의 상태로 돌린 다음 다시는 변동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게 됩니다(벧후3:7-13).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1천년간 ‘천년왕국’이 있게 되고, 그 천년이 끝나게 되면 ‘불택자들을 부활’ 시켜 영원히 지옥으로 던지게 되는 ‘최후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불택자는 영원히 지옥으로, 그리고 택자는 영원히 천국생활이 시작됩니다.(계20:1-22:5)

② 말세의 의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할 때 영계의 천국만 만들지 않으시고 천국과 함께 지옥도 만들어 놓으셨고 또 영계와 함께 물질로 된 이 세상도 만들었던 것은, 우리 택자들에게 하나님 없는 상태와 그 고통을 겪어 볼 기회를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없는 상태를 겪고 난 다음 다시 하나님께 붙들리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되 그 은혜가 없는 상태까지를 체험하여 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자녀를 더욱 온전히 만드는 방법이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 단계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연구는 항상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기준에 첫째 중심을 두고, 그 다음은 택자인 우리 구원이 중심입니다. 그 외 불택자나 기타 다른 세상 상황을 살피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구원과 관련하여 참고할 일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이런 점에서 말세라는 사건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기간을 크게 둘로 나누어 하나는 하나님을 떠난 생활을 실제 체험하는 기간이고 두 번째 기간은 다시는 하나님을 떠난 상태 없이 영원히 하나님 은혜 안에만 거하는 기간입니다.

말세라는 것은, 이런 두 시기를 나누는 중간 전환점입니다. 하나님 없는 기간의 종료를 의미하고, 하나님과 다시는 간격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기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말세의 가장 외부 모습은 오늘 이 우주계가 완전히 불에 타서 녹아지는 대 재앙입니다. 단 한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이 우주의 해체는 우주 전체가 용광로 속에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우주적 종말, 말세라는 현상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공포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가 말세를 두고 가장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할 점은, 말세는 하나님 없는 상황을 체험하던 하나님 목적의 전반부가 끝이 나고, 하나님으로만 살게 되는 하나님 목적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기간으로 말하면 전반부의 길이는 하룻밤과 같고 후반부는 영원입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에게 말세란 시점은 모든 시점 중에서, 소망 중에 가장 큰 소망입니다. 오로지 그 하루 때문에 오늘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집중할 시점입니다(눅21:34).


(2) 말세의 순서

① 말세 징조

▪ 땅 끝까지 전해진 복음

이스라엘이라는 한 장소에서 시작된 이 복음은, 민족적으로도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졌지만, 마24:14에는 말세가 되기 전에 먼저 땅 끝까지 이 복음이 전해질 것으로 말씀했습니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진다는 말은, 첫째로 말세가 되기 전에 이 복음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민족 모든 사람 모든 지역에 전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는 기본구원적인 관점에서, 이 말씀은 믿기로 작정된 택자 전부에게 이 복음이 다 전해진 후에 우주적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이 말씀을 건설구원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복음으로 모든 택자들이 자기 이룰 구원을 다 이루고 준비할 바를 준비하게 된 후에 세상이 종료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세상이 끝나기 전에 택자들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완료될 것이니 이것이 오늘 이 죄악 세상 기간을 두신 이유이기도 하고, 또 이 목적이 이루어지면 이 죄악 세상은 더 이상 놔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없애버릴 상황입니다. 또한 이런 종료 시점을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에게는 감추시면서 우리에게 그 시점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종료 시점을 염두에 두고 항상 있는 충성을 다하도록 우리를 기르시고 있습니다. 시험 일자를 정확하게 알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과 일자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준비하는 학생을 비교한다면, 모르는 학생이 일자를 아는 학생보다 그 준비하는 양과 노력이 비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효과적인 면에서 본다면 일자를 아는 것이 좋으나 하나님께서는 효력보다는 충성을 보시고 기르시기 때문에 그 시점을 감추고 계십니다(마24:36).

어쨌든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는 외부적으로는 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나라와 민족과 사람이 없도록 하시고, 내부적으로는 이 복음으로 기본구원 받을 사람과 건설구원을 이룰 모든 사람의 구원 건설이 완료되는 상태가 있습니다.(벧후3:9)

▪ 이스라엘의 회개

롬11:25-29에서, 말세가 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물론 유대인 중에서도 믿기로 작정된 사람에게 다 구원이 전해지리라는 말씀이겠고 또 이런 면에서는 앞서 살펴본 대로 재림 전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리라는 말씀에 이스라엘도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특수성은 이 복음이 시작되었고 그들에게 이방인이었던 우리 구원을 위해 이 복음의 박해자로 이용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말세 현상을 두고 성경은 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성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단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 전부가 다 택자일지 아니면 일부는 택자가 아닐지 그 자체는 우리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택함과 불택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할 때는 구체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속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택자이기를 원하는 복된 중심을 가지되, 결과적으로는 누가 택자일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특히 이 말씀과 가장 가까운 성구이면서 이 성구 앞에 있는 마24:14에서 ‘땅 끝까지 이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해석도 택자 전부에게 전해진다는 것이고, 또 믿지 않을 사람과 세상을 향해서는 이 세상을 전체로 두고 일반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현재 60억 인구 중 단 1명에게라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없도록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6,000,000,000 인구를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전부를 다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면 하실 수 있는 일이나 우리로서는 그것을 다 확인할 필요도 시간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2000년대 오늘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이 복음은 이미 땅 끝까지 다 전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것을 두고 6,000,000,000명을 단 1명도 빠지지 않고 다 조사하고 나서 발언한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은 상대할 말이 아닙니다. 60억 인구 중에는 외부와 의사소통이 100% 차단된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 숫자도 적지 않고 또 쉼 없이 나고 죽기 때문에 그 확인 역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두고 우리에게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일반적 범위를 두고 이 말씀과 말세의 징조를 연관시켜 구원에 필요한 말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 대배교와 대환란

주님이 오실 우주적 말세가 가까워오면 지상 교회의 혼란이 극심하여 역사에 없던 미혹과 배교가 일어날 것을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했습니다. 배교는 교회내의 속화 변질을 말하고 환란은 교회 바깥에서 시작되는 탄압을 말합니다. 교회의 타락, 교회의 신앙책임자인 목회자들의 타락, 교리와 신앙노선 전체의 총체적 부패, 교회의 모습을 둘러쓰고 교회 안에서 교회를 다 삼키는 상황이 되고 세상이 교회를 교회 안팎으로 다 삼켰다고 선포를 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눅18:8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했고 마24:12에서는 참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는데, 오늘 세상은 기독교가 역사 이후로 가장 팽창하여 기독교와 기독교 국가들의 영향력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교회끼리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갈등하고 싸운 것을 화해하여 ‘사랑이 넘치고’ ‘믿음이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모든 교회들이 서로 통일 운동으로 사랑이 넘치게 하고 교회가 사회를 향해 갖은 봉사를 하며 믿음을 과시하는 것은, 이 시기가 말세지 말이 아니든지 아니면 이런 믿음과 사랑은 전부 교회 안에 들어온 사탄의 마지막 발악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계시록 13장에서는 안 믿는 세상 전부와 타락한 교회 전부가 똘똘 뭉쳐 어린 양 예수님께 진실로 붙들려 십자가의 좁은 외길을 포기하지 않는 자를 완전히 말살하는 환경이 올 것이라고 말세지 말의 형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6천여 년 기간 동안 교회를 자기 힘대로 지혜대로 침노했고 이제 마지막 시기이므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결집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택한 사람들의 최후 신앙연단과 승리를 위해 모든 필요한 훈련과정을 전부 다 겪게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역사 이래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멸망의 가증한 교리와 교권과 신앙노선들이 교회의 지도부로부터 시작하여 그 소속 교회와 교인 전부를 십자가의 원수가 가는 길로 다 데려 나가는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세상으로도 대환란이 고조되고, 신앙으로도 말세 교회 전부가 배교의 길을 걸어, 참다운 믿음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될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꼭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자는 세상 전부와 교회 전부가 이 잡듯 잡아 없애는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날 것이므로, 죽기를 두려워하거나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 신앙의 생명노선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말세가 가까워오기 전에 국지적으로 한번씩 신앙박해의 기회를 시대마다 주셔서 말세 최종 환란의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셨습니다. 말세 마지막 시기에는 역사에 나타난 모든 환란이 한꺼번에 다 동원될 것입니다.

현재가 그런 말세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느냐고 반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과 이 교회 전부가 다 그러한 정도이기 때문에 따로 헤아릴 것이 없고,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을 찾아보라고 권유하는 것이 더 옳을 일입니다. 오늘 말세 세계 교회에 교회다운 교회가, 목사다운 목사가, 교인다운 교인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오늘 이 말세에 평안한 세상 환경을 가진 곳이 어디 한 곳이라도 있는지를 반문한다면, 이 말세 현상은 쉽게 판명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점점 고조되어 나가다가 예수님 재림 때가 최고 절정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자기 현 상황에서 피곤을 느끼거나 혹 환란의 종료 시점을 기다리게 된다면 이 말세 최후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더 큰 환란과 배교를 기다리며, 그 속에서 주님으로 통과해 나가고 싶은 투쟁 욕심이 솟구쳐야 할 것입니다.(마24:3-22)

▪ 적그리스도의 출현

스스로 그리스도라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반대로 가게 하는 사람들이 대거 출현하여 교회를 어지럽힐 것을 마24:5과 여러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앞에서 살펴본 ‘대배교’의 한 유형이지만 따로 이 문제를 조직신학에서 논하는 이유는, 머리 하나가 길을 잘못 인도하면 그 지도를 받는 그 밑의 모든 교회와 교인 전부는 따로 살펴볼 것도 없이 모듬으로 멸망을 하기 때문에 교회 타락에 있어 지도자의 타락이나 신앙노선의 타락은 항상 제일 큰 문제 중 하나로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들은 현재까지는 교회든 세상이든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규정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향으로 탈선하는 무리들은 적지 않게 많습니다. 또 그렇게 탈선하는 숫자는 그 숫자 자체만으로는 기독교계 전체 비중에서 볼 때 소수에 지나지 않으나, 문제는 그리스도라 자칭하는 이단에 속하지 않고 일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적그리스도를 비판하고 경계하다가 그들의 잘못만을 비판하지 않고 신앙 자체를 두고 반감을 가지거나 아니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어 그들 때문에 그들에게 속하지 않은 교회의 신앙을 거의 절단내버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비록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 예수님이 아니면 앉을 수 없는 자리를 가르치거나 그런 길로 인도하는 것도 전부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다거나 아니면 예수님이 구원의 길로 내놓지 아니한 길을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부 적그리스도며 자칭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의 수양과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거나 또는 그리스도라는 것은 사회봉사나 조국 건설에 이용할 하나의 세상 세척제로 보는 것도 전부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말세는 이런 현상이 극심하여, 그런 신앙노선이 교회의 주력이 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신앙노선은 구석에 내몰려 완전히 매장될 시기입니다. (마24:5, 23-27, 요일2:18-22, 4:3, 요이1:7)

▪ 징조와 기사

한편 세상 자연 환경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현상들도 여러 조짐을 보이게 됩니다. 전쟁과 난리와 기근과 지진 등의 자연재앙 인간재앙 등이 전부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마치 개인의 임종 시점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임점L 다가온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징조는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뿐 아니라 불신자들도 임점; 앞두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지난날을 유난히 돌아본다든지 평소와 너무 다른 심리 상태를 보인다든지 아니면 육체의 불편이 예사롭지 않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적 종말도, 이 우주 자체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인체가 임점; 앞두고 여러 가지 징후가 보이듯이 그런 현상들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점은 현재 불신 세상들이 수없이 연구하여 우리에게 일반 상식이 되어 있는 바, 자연 계시라는 차원에서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자연 상식에 속할 정도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지구의 대기 환경, 우주의 불안정한 상황, 인간의 기술과 행동으로 인하여 감지되는 자연의 불안정, 인간과 인간 생활 내면의 중대한 변화 등은 말세에 대한 교리에 비추어 각자가 유심히 주목할 과제로 돌리겠습니다.(마24:3, 30)

▪ 재림의 정확한 시점과 준비

이 세상을 완전히 정리할 최종 시점은 마24:36에서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재림 이후의 역사는 그동안 제2위 성자 하나님과 제3위 성령 하나님께서 차례로 전면에서 역사하던 시기가 지나고 다시 성부 하나님께서 그 전면에 나선다는 뜻입니다.

재림의 정확한 시점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징조’들을 통해 짐작은 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짐작은 꼭 해야 하고 그 짐작을 바로 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시점은 ‘곧 닥칠’ 상황이 아니고 ‘현재’ 상황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 시점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급박하게 느끼느냐는 것도 그 사람의 신앙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재림의 시점을 두고 첫째 중요한 것이 ‘현재 닥칠 상황’이라는 인식이라면, 이 재림의 시점을 두고 둘째로 중요하게 가져야 할 자세는 비록 현재 재림을 하신다 해도 ‘현재 해야 할 자기 사명은 그대로 진행’하는 일입니다. 내일 재림이 예고된다 해도 오늘 농부라는 현실을 가진 교인은 내년을 위해 씨 뿌릴 준비를 해야 하고, 재림할 시점이 이르러 예수님이 오셨을 때 농부 현실을 자기 현실로 받은 교인은 예수님 재림을 밭에서 당해야 하고, 가정주부는 부엌에서 반찬 준비를 하다가 맞아야 합니다.

재림을 위해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를 하고, 평소에 가지 않던 산속 기도원을 찾아야 한다는 특수한 대처는, 물론 신앙어린 사람으로서는 그리할 경우도 있겠지만,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했고 또 현재도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소 모든 주어진 현실을 천국 준비의 유일한 현장으로 알고 살았어야 했고, 또 재림의 그 순간에도 평소 일하던 현실에서 그 일 하다가 만나는 것이 옳습니다.

② 공중 재림과 지상 환란

▪ 예수님 재림에 소요될 시간

예수님의 정확한 재림일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 흐름을 가지고 진행될지 모릅니다. 기술적으로 말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물질계 세상을 정리하기 위해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시간으로 잴 수 없는 짧은 찰나면 충분합니다. 시간과 공간계 자체를 완전히 해체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전능자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1차 천지창조 때 6일이 걸린 것은 6일이라는 공정 기간이 필요해서가 아니고 우리에게 알리고 가르칠 필요가 있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처럼, 재림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천국에서 지상에 도달하고 그 도중에 세상을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측정이 필요 없는 단 순간에 다 완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 있고, 또 준비할 수 있는 데 필요하여 일부러 약간의 순서가 있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마24:22, 27, 벧후3:8-9)

▪ 공중 재림

예수님의 재림은 일부러 약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이루어질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재림하는 순간, 지상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준비를 시키기 위해, 사망과 부활의 순서가 있습니다.

6천년 인류 역사를 최종 마무리하는 순간, 개인적으로는 자기 개인의 종말이지만, 전체 교회를 하나의 단위로 볼 때 역사 교회의 최종 순간이기 때문에 최종 환란을 주시고 그 환란에서 역사 교회의 가장 중요한 훈련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지상으로 바로 임하지 않으시고 이 물질계 바로 위에 있는 ‘공중’에서 지상의 마지막 순간을 진행시키게 됩니다. 공간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바이나 성경이 우리에게 공간적 표현을 통해 가르치고 있으니 일단 그렇게 표현한다면, 천국에서 이 지상으로 바로 재림하지 않고 공중으로 1차 재림하게 됩니다. 이것을 ‘공중재림’이라고 하는데, 예수님 재림의 실제 실행 단계에서 제일 먼저 있는 일입니다. 다만 이때 ‘공중’을 지상에서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공중이거나 아니면 거리로 잴 수 있는 공간 개념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 살전4:14-17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앞서 죽은 택자들의 부활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할 때, 우선 말세가 오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죽었던 택자들을 부활시켜 그들과 함께 공중에 임하십니다. 이들은 말세 상황과 상관없이 이미 개인적으로 말세 상황을 전부 겪고 먼저 낙원에 대기하고 있었던 택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공중으로 오면서 지상에 묻어 두었던 자기 몸을 찾아 입고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재림 이전 평소에 죽었던 택자들과 하늘나라의 천사들이 주님을 모시고 주님 재림에 동참할 것이니, 앞서 죽었던 이들이 재림에 가장 먼저 나타날 사람들입니다.(살전4:16)

▪ 재림 순간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

한편 예수님의 재림이 우선 공중으로 임하시고 앞서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는 이 순간, 지상에서는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던 성도들을 향한 최후 박해가 일어나고 세상은 그 마지막 해체를 위해 우주 전체가 용광로 속에 던져질 상황이 됩니다. 이 순간에 살아남아 있던 성도들은 지상에서 죽는 순간 즉시 부활하여 공중으로 바로 올라가게 됩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바로 주님을 모시게 된다 하여 모두들 사망의 공포 때문에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살아남아 있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평소 우리의 죽음과 같지 않고 죽는 순간 순식간에 부활하기 때문에 마치 ‘홀연한 변화’로만 표현되는 것일 뿐입니다. 한번 죄를 지은 인간의 몸은 반드시 사망이라는 해체 과정을 통해 부활을 거쳐 재조립이 되어야만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신령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고전15:50-51)

③ 지상 세상 재편

▪ 지상의 완전 재편

재림 때까지 남아있던 지상의 모든 성도들이 완전히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공중으로 부활하여 올라가고 나면, 세상은 불택자들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물질계 전부를 완전히 창조 초기 재료 상태와 같이 되돌려버립니다. 천지를 창조할 때 우선 재료를 만드시고 그 물질 재료를 가지고 엿새 동안 물질계에 필요한 모든 형태를 만들어 나갔던 것처럼, 이제는 그 반대 순서로 해체하게 됩니다. 그 만들어졌던 만물이 인간의 범죄로 저주를 받고 하나님 없는 상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비록 인간의 심판처럼 그 행위에 대한 보응과 보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물을 현재 만물 그 상태로 영원히 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물질계 세상을 완전히 불태운다는 것은 이 자연의 방화로 불타는 것으로만 좁게 생각하지 말고, 이제 영원히 변치 않는 신령한 세계로 새로 지음을 받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물질계 형태와 본질 자체를 완전히 해체시키는 상황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불태운다’는 것은 기존에 있던 물질의 형태와 본질 상태는 완전히 없앤다는 뜻입니다.(벧후3:10-13, 계21:5)

▪ 새하늘과 새땅

영계 하늘나라는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전혀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으로 표현한 이 물질계 우주는, 이 우주를 책임 맡고 있던 주인공인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함께 저주를 받고, 우리가 천국을 준비하는 이 재세 기간 중에 우리를 연단시키기 위해 죄악 세상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이전 범죄 이전 에덴동산과 같이 되돌리되, 이전 에덴동산 시절보다 훨씬 신령하여 이제 영원히 변동하지 않을 나라로 재구성시켜, 성도들의 주무대인 하늘나라를 보조하는 발등상과 같은 공간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죄악으로 변질된 세상은 완전히 정리를 시키고, 이제 영계 하늘나라를 그대로 흉내 내어 영계와 같은 속성과 본질을 가진 세상으로 다시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벧후3:13의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이래서 영계인 천국은 우리의 무한한 주무대가 되고, 현재 이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신령하게 변화시킨 상태에서 우리의 보조무대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부활한 성도들은 영물인 영과 물질로 된 육을 함께 가진 존재로서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이 양쪽 세계 전부를 영원토록 다스리는 임무를 맡게 되는 것이 우리의 영생입니다.(벧후3:13, 계21:1)

④ 천년왕국

▪ 재림 후 1천년의 예비기간

예수님의 재림으로 오늘 세상이 완전히 끝나고 성도들이 다 부활하게 되면, 성도들을 천국으로 옮겨가기 전에 우선 1천년의 천년왕국 기간을 통해 주님을 모시고 영원한 통치를 연습하게 됩니다.

이미 부활한 후의 우리 상태는 사실 소망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오늘 이 세상 죄악의 몸과 인지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고 또 설명을 듣는다 해도 그 차원이 달라서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부활 후의 신령한 세계에 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대목은 일부러 기록하고 알리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일 교회의 최종 마무리 기간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상 교회는 각각 자기 개인적으로 또는 가정교회나 지방 교회의 범위에서 주님을 모시고 신앙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 전체 교회라는 범위에서 주님 한 분을 모시고 연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천년왕국은 부활 후에 영원한 나라를 본격적으로 출발시키기 전에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성도와 교회 전체를 하나의 몸으로 삼고 그 머리를 그리스도로 삼아, 영원한 나라의 영원 통치를 최점{으로 점검하고 훈련하는 시기입니다.(계20:4-6)

세상 정권으로 말하면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와 정당이,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부터 정권을 인수하기 전까지 차기 정부 인수팀을 가동시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악령의 활동중단

계20:1-3에서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불택자들은 전부 죽어 부활되지 않은 상태이고, 악령은 1천년간 활동 금지를 당했으므로 죄와 어떤 불법도 없는 곳이 천년왕국 기간입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악령과 죄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없습니다.

사11:6-9에서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기록하여 천년왕국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천년왕국에서는 사65:17-25에서 침노가 없고 죄로 인한 단명이 없으며 해함도 상함도 없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번식인종

천년왕국 기간 중 하나 특별하게 기억할 것은 ‘번식인종’입니다. 이들은 재림 당시 다 죽었어야 하는 불택자들인데, 그 불택자들을 다 없애지 않고 일부를 남겨 두고 천년왕국의 일반 백성으로 삼아 그들을 천년왕국 안에 번식시켜 온 지면에 널리 퍼지게 하여 성도들에게 그들을 다스리게 합니다.

이들은 특수하게 재림 이후 이 천년기간 중에 유일하게 재림 이전의 육체 상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은 하지 않았고 아직 죽지도 않았으므로 그들의 육체는 오늘 일반 우리들이 가진 육체 조건과 동일하지만,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는 악령이 붙들려 있어 그들이 비록 믿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복음을 반대하는 이들도 아닙니다. 이들은 에덴동산과 같은 상황에서 번식을 할 것이기 때문에 천년왕국 최종 시점에 이르면 그 숫자가 온 지면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계20:7-8)

▪ 천년왕국의 종료

계20:7-10에서, 천년왕국의 1천년 기간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묶어 두었던 악령을 최점{으로 한 번 더 풀어 놓으실 것이고, 악령은 온 지면에 널리 퍼져 있는 ‘곡과 마곡’으로 표현한 이 번식인종들에게 들어가서 다시 한번 성도들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도들은 부활한 상태이므로 이제 악령을 스스로 대적해서 이길 실력도 있고 더구나 주님과 전체 교회가 한 몸이 되어 1천년을 움직인 상태이므로 전투 자체가 이루어질 필요도 없이 다 이겨버립니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게 되면, 이제 그동안 죽어 있던 불택자들 전체를 살려 지옥에 보내는 공심판이 있게 되고, 성도들은 생전에 준비한 자기 실력과 기능으로 주님 모신 교회에서 자기 맡을 자리를 가지고 영원 통치자로 나타나게 됩니다.(계20:7-10)

⑤ 심판

▪ 불택자의 부활

천년왕국이 끝나게 되면, 불택자들이 전부 부활하게 됩니다. 이들이 부활 되는 것은 영원히 지옥에서 그 값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 세상의 몸을 가지고는 처벌의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양이 지극히 적고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받을 형벌을 영원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 세상의 육체 수준이 아니라 무한한 형벌을 감당할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불에 타도 고통은 당하지만 죽지는 않는 몸, 영원토록 고통을 당해도 그 고통을 다 견딜 수 있는 육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와 고통을 다 감당할 수 있도록 부활받는 것이 불택자들의 부활입니다.(요5:29, 계20:5, 12-15)

▪ 불택자에 대한 공심판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이들은 전부 지옥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세상 재판에서 죄인은 죄를 덮기 위해 노력하고 또 죄인을 심판할 사람은 그 죄를 발견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이 심판은 오직 판결의 두려움 앞에 떨고 있는 상태만 존재할 뿐이지, 지난 과거 자기들의 범죄한 것을 가루거나 축소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도 부활하여 이제는 이 세상에서처럼 아는 것이 제한적이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알게 됩니다. 스스로도 다 알고, 천군 천사와 만물이 다 알고, 하나님도 다 아시는 상태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세상에서 혹독한 임금 앞에 붙들려 간 죄인으로 비유한다면, 그 공포와 두려움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고 또 그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죄를 소추하는 것은 따로 절차와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 이 불택자들에 대한 공심판입니다.

공심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둘로만 나누어 천국 갈 택자와 지옥 갈 불택자로만 분류한다는 의미입니다.(계20:15)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택자들에 대한 심판

택자들의 심판도 대개 천년왕국 이후 천국생활이 시작되는 직전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택자들에 대한 심판은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사활을 완성했을 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해결이 되었고, 그리고 각 택자들이 살아생전 중생되는 그 순간에 각자의 공심판은 지나갔습니다.

성경은 마치 택자와 불택자를 한 자리에 불러놓고 공간적으로 동일 장소에서, 또 시간적으로 동일 시간에 법정을 여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기록한 것이고, 실제 우리 택자들에 대한 공심판은 중생되는 순간에 완료되었습니다. 우리 영이 중생되려면, 우리가 범죄한 모든 죄값이 완전히 그리고 실질적으로 벗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생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중생된 자에게는 요11:25-26에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택자들이 세상에서 중생할 때 그 중생의 의미는 ‘새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영생’으로 살아납니다. 어떤 변동도 후퇴도 미혹의 가능성도 없는 완전 중생, 단번 중생, 영원 중생의 존재로 살아나기 때문에, 천년왕국 후의 공심판에 택자들은 면제만이 있을 뿐입니다.(요3:18)

▪ 택자들에 대한 사심판

한편, 택자들에게는 세상에서 각자 어떻게 신앙을 준비했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 모두가 각각 다 다른 실력과 충성과 의의 기능을 세상에서 준비하게 됩니다. 각자가 평생 신앙으로 건설한 것을 가지고 어떤 종류의 신앙을 준비했고, 그 실력은 어떠하며 그 충성한 경력은 어떤지를 낱낱이 조사하게 됩니다. 이를 그리스도의 사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라고 한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이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 하는 3가지 직책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 3가지 면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이 3가지 면으로 어느 정도 실력과 성과가 있었는지 개개인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심판’이라고 합니다.

흔히 공간적 시간적 도식으로 이해한다면, 천년왕국 후 심판이 있게 되면, 심판의 진행 순서는 먼저 천하 모든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택자와 불택자를 좌우로 분리하고 좌측에 있는 불택자는 지옥으로 보내고 우측에 있는 택자는 천국으로 들어가게 분류하는 것이 공심판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들어갈 자들은 천국 문 앞에서 다시 개개인의 준비에 따라 실력과 기능과 상과 영광의 정도를 평가받고 그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공의 순서적 설명은 우리에게 깨닫기 쉽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택자들은 죽는 순간, 몸을 세상에 두고, 그 마음과 중생된 영은 먼저 낙원으로 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몸이 죽는 그 순간에 택자들은 자신들의 평생 살아오며 준비한 의의 기능과 실력 전부를 주님 앞에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고, 잘못 살아온 기능과 생은 음부라는 곳에 영원히 불타도록 버려야 하고, 바로 살아온 기능과 생은 낙원이라는 영계로 옮겨 가게 됩니다.

따라서, 택자들은 중생하는 순간이 공심판을 통과하는 실질적인 단계가 되고, 몸이 죽게 되는 개인 죽음의 순간이 자기의 신앙건설을 심사받고 평생 세상에서 살아온 기능과 실력만을 가지고 낙원으로 옮겨가게 되니 이것이 택자들의 사심판, 곧 그리스도의 사심판입니다.(고후5:10, 약2:12)

▪ 택자들의 죄의 기능

택자들이 평생 가지고 살던 자기 심신의 요소 중에서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지어 자기 속에 만들어진 죄의 기능과 그 죄의 기능으로 살았던 부분들은 천국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낸 것이지 우리가 지은 죄 자체를 씻어 의로 만들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자기 평생에 지은 죄의 기능과 요소는 전부 분리시켜 지옥으로 영원히 불태우게 됩니다. 우리 자체는 천국에 가게 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죄의 실력, 죄로 만들어진 기능은 쓰레기로 처리하게 되고 그 대신 우리가 만들었던 의의 기능은 그 기능이 많은 만큼 우리 믿는 사람의 실력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 사람 자체는 꼭 같으나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의 기능과 실력은 다른 법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영원한 차이입니다.

그리고 지옥에 버려지는 택자들의 죄의 기능들은 소멸되지 않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지옥에 떨어진 택자들의 기능들은 다른 만물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나라에서는 전부 발언권을 가지게 됩니다. 돌 하나도, 풀 하나도, 어떤 만물의 찌끼 하나까지도 완전 자유의 세계가 되어진 그 나라에서는 강제와 힘에 억압받지 않고 하나님과 진리 앞에 옳고 바른 것은 증거하고 옳고 바른 것 앞에는 자원함으로 순종하고, 잘못된 억압은 존재 하지도 않겠지만, 존재 한다고 해도 불의의 억압은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눅19:40, 롬8:19-23, 약5:4)

따라서 믿는 사람의 죄의 기능은 비록 그 기능의 주인인 자체는 천국에 있다 해도, 발언권이라는 것이 오늘 세상처럼 존재하지 않고, 또 발언을 굳이 하지 않아도 서로 만 존재의 형편을 살피고 아는 세계이므로, 택자들이 세상에서 만들었던 죄의 기능은 무언의 호소를 하게 되고, 그 고통을 지옥에서 발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능을 의의 기능으로 바꿀 수 있었으나 죄의 기능으로 사용했던 그 죄의 기능의 주인은 비록 천국에 있지만, 자기가 세상에서 결정했던 행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일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후회와 안타까움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부활 후 천국의 후회나 고통이라는 것은 오늘 세상의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르지만, 성경은 천국에서 차이가 있을 것을 말씀했습니다.(마5:19, 고전3:12-15, 15:39-44)



4. 영생

(1) 지옥

① 지옥의 의미

지옥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존재들에게 영원히 하나님 없이 살게 하는 영계를 말합니다. 세상 기간동안은 비록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에게도 택자의 훈련을 위해 자연은총을 허락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나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나 별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이 끝나고 영원한 나라가 시작되면, 그때는 하나님 없이 산 사람에게는 하나님 없는 상태로 영원토록 살게 합니다.(막9:48, 눅16:24-25)

② 지옥의 모습

▪ 지옥의 그림자인 세상

부활 후에라야 가 볼 수 있는 곳이 지옥이지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가야 할 천국과 불택자들이 가게 될 지옥을 뒤섞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질계이므로 영계의 천국과 지옥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얼마든지 느끼고 유추하여 알 수 있도록 충분하게 지옥의 상태와 그곳의 고통의 상황을 알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인간들이 싫어하는 것은 전부가 지옥의 견본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이미 지옥을 맛보고 있으며, 세상을 지옥의 일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오늘 세상의 고통은 그 시작의 출발점일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모든 고통은 그날에 당할 고통의 견학 경험 차원에서 주시는 정도입니다. 영원히 갈수록 커지는 고통 속에서, 죽을 수도 없는 상태로 남을 나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을 제거한 상태입니다. 택자의 잘못된 기능이 그곳에서 불택자들과 함께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 문제는 천국 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 유황 불구렁텅이

지옥의 형편은 영원히 유황 불구렁텅이입니다. 유황이라고 표현한 것은 가장 혹독한 고통이라는 뜻이고, 불구렁텅이라는 말은 영원히 고통을 받고 쇠하고 없어져 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부활한 육체는 아무리 불에 태워도 그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고통만 영원히 받게 됩니다. 오늘 세상에서 산소와 땔감이 있으면 타는 이런 자연의 불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은 그때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표시한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이 세상 육체가 이 세상 유황불에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부활한 신령한 불택자들의 몸이 그 부활한 몸으로 느끼고 당할 수 있는 가장 혹독한 형벌이 영원 계속될 것입니다.(계19:20, 20:14-15)

▪ 은혜의 완전 차단

지옥의 가장 큰 고통은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 차단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세상은 비록 타락을 했다 해도 자연은총에 속한 것을 공급하며 아직은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형편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정없이 완전 단절시켜 버립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가, 하나님 없이는 단 한 번의 자유도 단 하나의 자유도 없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100% 차단되는 곳이 지옥입니다.

오늘 형편으로 말한다면 물 한 방울도 주어지지 않고 한 줄기 빛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성경은 그 정도만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 차단된 상태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면 어떤 불편이 있겠는가 하는 면은 누구든지 조금만 양심을 쓴다면 충분히 실감할 것입니다.(눅16:24, 유1:6)

▪ 자기중심의 집합소

지옥에 온 모든 존재는 악령으로부터 불택자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자기중심입니다. 다른 모든 존재를 다 동원하여 자기를 위하게 만들어야 행복을 누리는 것이 그곳에 온 존재들의 공통적인 속성입니다. 이를 자기중심의 ‘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온 모든 존재가 꼭 같이 자기를 중심으로 남을 이용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위에서 던져주는 것은 없는 상태이니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오직 한 가지 생애법만을 가진 상태가 되면 바로 모든 형태의 지옥 고통이 다 발생하게 됩니다.

자기가 남에게 이용되는 것은 한없이 고통스럽고 남을 자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한없이 즐기는 자기중심의 존재들만 모아놓은 곳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투쟁과 고통이 영원히 계속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곳이 비록 지옥이지만 강제로 남을 억누르고 제압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살고 싶은 존재가 전혀 자기중심으로 움직여 주지 않는 곳에서, 그리고 자연은총에 속한 것까지도 전혀 없는 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눅16:24-26)


(2) 천국

① 천국의 의미

천국은 택자들이 세상에서 잠깐의 훈련을 끝내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이니, 택자들의 영원한 활동 무대입니다. 물질이 아니라 영계의 영물로만 이루어지고 영물들만 있는 곳인데, 오직 택자들만은 물질로 된 육과 영물로 된 영을 다 함께 가진 존재로 천국의 주인인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를 닮아가는 곳으로 영계를 사용하게 됩니다.

② 천국의 모습

▪ ‘교회’로 활동할 택자들

택자들의 천국은 세상에서 마련한 하나님 동행의 실력과 준비된 모든 기능으로 영원히 만물을 통치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을 머리로 삼고 모든 택자 전부가 준비한 실력과 장점과 기능은 전부 한 몸속에 구성 성분이 되어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형태입니다. 이 단체를 달리 표현하면 ‘교회’요 주님의 ‘몸’입니다.(엡1:23, 4:15-16)

▪ 광대한 활동 무대

세상 물질계도 그 종류와 상황이 끝이 없으며, 만일 우주 전체를 우리 범위로 넓힌다면 현재 지구를 중심으로 살아온 6천년의 범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대한 세계입니다. 그러나 영계는 이 우주 전체를 하나의 점 정도로 계산할 만큼 그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영계의 범위와 그곳에서 살아갈 우리의 모습과 그곳에 있는 존재들과 생활에 대하여는 우리의 지식이 마치 돌 지난 아이와 같아서 그 아이에게 유엔을 설명하고 유전자의 이치를 가르치고 우주선의 정교함을 설명하는 것은 필요가 없듯이, 영계를 오늘 이 땅 위에 사는 우리에게는 다 알릴 수가 없어 극히 일부분만 조금 엿볼 수 있게 했습니다.(계21:1-22:15

▪ 각자의 분담과 각자의 차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하다 할 만한 그곳에서 우리들은 많은 종류와 존재들과 복잡한 조직과 질서 속에서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기 싫은 일만 많이 했던 노예출신들은 천국을 그냥 쉬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만, 천국은 이 세상에서 보람된 일을 맡아 참으로 바쁘게 세월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 본 사람들의 일에 대한 즐거움으로 추론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곳은 그런 성질의 일로 가득 차고 무한하게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죄와 악령과 어떤 종류의 방해자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과 진리에 자유 하되 만물이 돕고 환영하는 중에서 맡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롬8:21-22)

▪ 각자의 차이는 불만 대신 감사할 이유

천국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차이는 약육강식이어서 그 차이 자체가 지옥이지만, 하늘나라의 차이는 강자가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곳이므로 약한 자가 강한 자의 수고를 감사하는 곳입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제 주제와 위치와 실력을 알지 못하고 올라만 가면 좋다 하고도, 그 사람이 올라감으로 다른 사람은 자기가 가질 기회가 박탈되어 시기를 하거나 아니면 투쟁을 하게 됩니다. 천국은 눈이 완전하게 열리게 되어 실력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실력 없는 사람의 소원입니다.

위로 예수님부터 아래로 우리 택자 중 아무리 적은 자라 해도, 자기가 세상에서 수고한 만큼, 실력을 갖춘 만큼 정확하게 그 자리를 맡게 될 것이고,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책임을 맡게 됨으로 나를 포함한 만존재가 혜택을 입게 되어 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런 실력 차이는 이 세상의 고통과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천국도 세상처럼 차이 때문에 천국이 천국 되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를 세상식으로 오해하여 천국도 차이가 있으면 불공평으로 인해 원망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이 교리를 사정없이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으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런 감정을 가졌던 것이 자기중심이라는 악성이었고, 욕심이라는 옛사람의 요소였고, 또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는 짐승 같은 수준의 미련 때문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부 지옥에 버려질 것이므로(계21:8), 천국에서는 그 차이 때문에 불평과 갈등이 있지 않고 오히려 영광이 있고 감탄이 있고 환호를 받게 됩니다. 그 차이 때문에 오늘 세상과 같은 질투와 고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엡1:23, 4:16)

▪ 차이로 인한 감사는, 천국 차원의 후회

천국의 이런 차이를 만일 오늘 세상에 있는 우리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고 가르쳐서 이 세상에서 천국 준비를 시키되, 마치 세상에서 뒤떨어지고 못난 사람이 서러움을 받는다는 인식으로 가르친 것이 바로 천국에도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죄의 기능을 만든 것만큼 천국에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후회는 오늘 세상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는 달리 천국에서 자기가 마련하지 못한 실력을 마련하고 천국에 온 성도에게 감사와 감탄과 환호를 보내면서 자기가 준비하지 못한 것을 그들이 대신 보충해 줄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데, 이 감사와 감탄과 환호를 오늘 세상 식으로 표현한다면, 죄로 만들어진 기능이 있는 만큼 우리는 천국에서 후회하고 그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타며 호소하는 소리를 들을 때 오늘 이 땅 위의 감정과 느낌의 기준으로 표현한다면, 천국에서도 그 죄의 기능의 호소 때문에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실은 자기가 감당하고 준비했어야 할 것을 하지 못했음을 천국에서는 다 파악하고 그 못남에 대한 책임을 지되 그 책임까지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감당했으므로 오늘 세상식의 고통은 없어도 천국수준에서 느끼는 죄송함은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가르친 것이 홍포 입은 부자의 지옥 호소입니다.

불택자는 자기 자체가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 가운데 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은 뒤에는 시공의 제한을 벗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택자가 만든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면, 그 기능을 만든 장본인인 우리는 예수님 대속으로 천국에 있을 것인데, 비록 예수님 대속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오늘 세상에서 죄의 기능을 만들지 않아야 할 절박한 심정과 그런 자세를 갖는 것은 바로 홍포 입은 부자의 일로 우
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눅15:21, 계1:17)

▪ 영원한 성장

우리의 천국은 택자 전체가 주님 모신 한 몸이면서 그 한 몸 속에 우리 각자는 자기가 세상에서 준비한 각자의 분담과 실력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한번 세상에서 결정된 이 분화와 실력은 영원히 고착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라가게 됩니다.

단, 세상에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천국에서 새로 마련하는 일은 불가하고, 세상에서 차이 난 것이 천국에서 자라가면서 그 순서나 실력이 뒤바뀌는 변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차이는 영원토록 점점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준비하는 것은 마치 천국에서 영원히 길러갈 하나님 닮은 요소와 자기 실력에 대한 ‘점Z’ 마련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수량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실력과도 같습니다.

몇 가지나 준비했고 얼마나 많은 양을 준비했느냐는 것으로 한 번 천국으로 들어가면서 확정되고 나면, 모두들 영원히 자라가기는 하지만 이미 준비한 것만으로 자라간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 세상은 매 순간을 세상에서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알고 전력해야 할 것입니다.(고전13:13)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영원한 성장은 그 방향이 하나님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자라가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다 닮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한번씩 제기 됩니다. 성경에 단정하지 않았으므로 좌우간에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하나님을 닮을 점Z 전부를 다 마련해서 천국에 서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한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닮지 전면적으로 다 닮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향해 닮아가야 하는 것이 천국에서 우리의 목표이면서 우리 할 일이며, 또한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고, 이 면 때문에 천국에서도 늘 새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 면을 두고 가르친 것이 고전 13:13입니다. 자라갈 ‘소망’이 우리에게는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라갈 수 있는 방법은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믿음’이라는 순점8로 자라갑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영원히 자라도록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는 면을 가르쳐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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