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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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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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30.초교, 04.03.29. 최종 출간내용)

2. 하나님의 사역

▪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사역

신론을 크게 둘로 나누어본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그 본체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는 그 사역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앞장에서 하나님의 본체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역사의 전개 순서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구원중심의 하나님 사역

자존으로만 계시던 하나님께서 자존의 존재만으로 계시지 않으시고 그 외부로 일을 하나 하기로 작정을 했으니 이를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여러 목적을 가지고 여러 사업을 따로 추진한 것이 아니고 단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일을 시행했습니다. 단일의 하나님께서 단일의 목적을 세우시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엡1:3-6).

따라서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와 활동은 전부가 하나님의 사역이며 그 사역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만을 위한 것입니다. 시간으로 본다면 영원 전 목적을 정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무궁세계의 영원 후까지가 다 포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 자녀로 호적에만 올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치 자녀가 그 출생 때는 아버지께 생명만 받아 나오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모든 면으로 아버지를 닮게 되고 훗날에는 그 모습과 실력까지도 아버지와 같은 아들이 되는 것을 모형으로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갈4:1-7, 엡1:4-5).

물론 육의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대로 다 반영하지는 않지만 오늘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는 모든 면으로 가장 쉽고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일부러 부모와 자녀라는 제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히12:7-9).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이 모든 과정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이라는 표현은 죄에 빠져 죽은 자리에서 되살려 내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세상에 나게 하시고 또 천국에서 영원히 당신을 닮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 성취 전체를 다 포함하여 이를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체 과정 중에서 범죄 했던 우리를 되살려 내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바로 그 순간만을 따로 떼어서 또 ‘구원’이라고도 합니다(롬8:29-30).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 본체 외의 모든 것이라고 범위를 정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세운 목적과 그 목적을 성취하는 모든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목적의 내용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또 그 목적은 다른 말로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 ‘구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과정 중에서 우리를 타락하도록 한번 시켜놓고 그 다음 다시 원 위치로 올려놓는 것이 필요한데, 그 원 위치로 돌아오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일로 보이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을 살피는 이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을 중심으로 살펴 그 목적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의 사역과 자존

① 자존과 ‘사역의 순서’

알려 주셔서 아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하나님 홀로 계시다가 목적을 하나 정한 일이 있으니 이 ‘목적’이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시작입니다(엡1:4-5).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모든 존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면 ‘자존 →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로 놓을 수 있습니다.

‘자존’과 ‘목적’과 ‘예정’까지는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외부에 따로 만들어질 존재들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자존의 하나님께서 외부 존재들을 준비하시되 하나님의 그 생각에서 목적을 정하고 예정을 짜놓았으니 이렇게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진행된 하나님의 사역은 오늘 우리 인간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낱 계획단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완전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므로, 그분의 생각은 우리 인간들이 그냥 한번 생각해 본 것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은 이루어진다는 담보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공상일 뿐이고 좋게 말하면 하나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각하신 것이 어떤 착오나 차이도 없이 바로 실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의 의지세계와 현실의 실존은 따로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순서대로 살펴보는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자존에서 목적, 예정, 그다음 창조로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해 나가신 순서인데 이 순서 중에서 우리 택자들은 ‘자존’하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나타나는 첫 순서인 ‘목적’ 단계에서 존재의 출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택자들과 만물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짜놓으신 ‘예정’ 순서부터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는 순서적으로 말한다면 자존하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존재했고 또 영계와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 전체 중에서 첫째로 존재했으며, 우리라는 존재는 만물에 비하여 단순히 그 연대만 오래 된 것이 아니고 우리는 ‘목적’ 자체이며 다른 존재들은 불택자까지 포함하여 이 목적에 쓰이도록 만들어진 이용물들입니다.

물론 이 ‘목적’ ‘예정’ 단계까지는 우리 인간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우리와 모든 피조물들이 실제로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자존 바깥 외부로 하나님 외의 존재가 실존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창조’가 처음이고 ‘섭리’가 그 다음입니다(창1:1, 엡1:3-5, 롬11:36).

‘창조’는 자존하신 하나님 외부에 다른 존재들이 존재하게 된 첫 순서입니다. 모든 만물과 인간들이 이 창조 단계에서부터 이제는 외부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존재들을 접하고 또 그 속에 하나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섭리’는 그 창조된 것들의 변화이며 진행 과정입니다. 이 섭리는 곧 이 땅 위에서 재림 때까지 전개될 역사 전부이기도 합니다.

섭리를 논할 때 대개 세상 끝날까지만 섭리의 범위로 잡아 설명하고 있지만 재림 이후 영원한 세계도 섭리에 포함을 시켜야 합니다. 섭리가 영생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 예정도 영원 후까지가 미리 작정 되었다는 뜻입니다(마6:10-13, 단4:17, 6:26, 7:18, 27, 눅1:33).

② ‘자존과 사역의 관계’

하나님께서 목적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자존자로만 계실 수 있는데도 ‘일부러’ 목적을 정하여 일을 시작하셨는지, 아니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자존과 사역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업을 벌인 것은,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니고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 시작한 사업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 자기를 생각하면 하나님도 인격자이므로 다른 존재와 교제가 필요했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홀로 계신다면 얼마나 적적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독방에 감금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존재와 교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피조물의 근본 속성이지 하나님의 본질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혹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느껴지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도 그런 면이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만들어 놓으신 만물이나 인간 스스로를 살펴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짐작을 할 수 있지만 피조물에서 관찰되는 것이 창조주에게 전부 다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피조물은 ‘만들어졌고’ 또 ‘불완전’의 존재이므로 그를 만든 창조자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자존하신 완전자가 아니면 독존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고 불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독존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든 것은 자존이 독존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하거나 또는 독존을 유지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뜻을 세워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니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더욱 큰 것입니다(엡1:5).

③ 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그 사역을 위해 자신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목적을 정하기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낼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자존자 외에 피조물을 만들어 만물이 존재하게 되고 그 만물을 만든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우리들에게 보이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그 일을 맡고 나선 삼위 하나님의 역할은, 우선 성부 하나님이 최종 책임과 지휘를 맡고(요6:57), 성자 하나님은 작업 현장에 실무 책임자로 나섰습니다(요1:14).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모든 지원과 마무리를 맡았습니다(요14:26).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영원 전’ 하나님께서 구원 목적을 위해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시간도 존재하기 이전, 곧 영원 전에 이제 세 분으로 그 일을 분담하게 된 하나님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명칭 때문입니다(마28:19).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 분 하나님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 하나님 본체의 변화는 우리에게는 변화로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본체적 변화가 아니고 다만 하지 않고 있던 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 하게 되는 일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쉽게 알 수 있도록 알리는 표현이라는 점을 더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목적을 정하기 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할 수 있는 분이 목적을 정하기 전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뿐이었고, 이제 목적을 정하게 되면서부터는 그 목적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또 성령 하나님이 이를 지원하는 삼위 하나님으로 나타난 그 배경과 각각의 맡은 직책 직임을 볼 때, 이 삼위 하나님의 상호 관계는 우리를 자녀로 만들어 하나님을 닮게 하기 위해 하나님 자체적으로 하나님 내부에서 맡은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시작한 일, 즉 목적 사업 때문에 필요에 의하여 삼위일체로 존재하게 된 것이지, 그 목적 사업에 상관없이 자존자로만 계실 그때만을 생각한다면 그 이름과 그 직책은 그렇게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그 모습이 목적 사업 이전 자존 세계에서부터 원래 그렇게 계셨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하나님의 이 목적 사업 외에 별도로 추진하는 목적 사업이 있든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별개의 세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기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알려 주는 것만 알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하여 우리를 자녀로 택하신 목적 사업이 우리가 아는 전부입니다.


(2) 하나님의 사역과 목적

① 자존하신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된 표현

홀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사업을 하나 해보려고 뜻을 정하고 추진하게 된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목적 - 예정 - 창조 - 섭리’ 순서로 배열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라는 말은 우선 어떤 사업을 하려고 작정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고, 예정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이고, 창조는 예정대로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셨다는 것이며, 섭리는 만든 것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운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역의 첫 순서인 ‘목적’은 그 표현이 여러 가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예택’,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롬8:29, 엡1:4-5, 9, 11, 딤후1:9).

‘목적’이라는 말은 자존자의 사업 ‘방향’을 위주로 표현했고,
‘작정’은 이 사업을 자존자가 계획하고 ‘뜻을 정한 것’이라는 말이고,
‘선택’은 ‘택함’이라는 말이니 그 목적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말이며,
‘예택’은 존재가 있기 전 ‘미리 선택’이 결정되었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사용된 방편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설명 드린 이 표현들은 전부 하나님 사역의 첫 번째 순서에 해당된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순서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마치 고속도로에 올려놓은 자동차와 같이 한 길로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만일 첫 길을 잘못 잡고 시작하게 되면 그 고생도 말할 것 없지만 대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 길에서 끝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표현들은 설명하는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사용되는데 존재의 순서를 설명할 때는 대체로 ‘예택’이라는 표현이 가장 좋습니다(엡1:4).

② 목적의 방향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존으로부터 발원하여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 사역은, 그 사역을 출발시키고 운영하는 자존자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역 방향의 출발이며 그 사역의 종착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완전자 무한자이므로 그 만들어진 존재들은 그 하나님을 향한 무궁 무한의 걸음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마5:48, 롬8:29, 11:36, 갈2:19, 벧전3:21, 엡1:4).

③ 목적의 내용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은 어느 일면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속성은 우리가 자유성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본받아 그 속성을 가진 존재라야 합니다(갈5:1, 계3:20, 벧후1:4-8).

④ 목적의 대상

하나님의 목적 방향에 따라 그 내용을 다 갖춘 존재는 바로 택자들입니다(엡1:4, 벧후1:5-8). 오늘 우리들입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하나님 목적 달성에 필요한 그 출발에서 갖출 것을 종류대로 챙기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전진은 무궁세계 영계에 가서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 택자라고 할 때는 항상 불택자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불택자는 택자를 귀하게 만드시려고 택자와 존재적으로는 동일하나 다만 택자를 위해 존재하고 택자를 위해 영원히 이용되는 사람입니다(사43:3, 유1:4).

오늘 인간의 가치가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 가장 귀하게 평가되고 있어 이제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까지도 대부분 점령하게 되어 현재 불택자의 개념이 유지되는 교회는 몇 남지 않은 정도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성경 기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시대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곳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교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만드는 반인간적 발상을 가지느냐고 주장을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전체 피조물을 한 자리에 놓고 보면 동물을 먹는 인간이나, 식물을 먹는 동물이나, 택자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불택자나 상호 가치관계는 같습니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결정이 중심 가치이고 나머지는 이용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사45:9, 렘18:2-6, 롬9:19-21).

⑤ 목적의 성격

하나님은 그 사역을 하나님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결과가 되도록 추진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존자 완전자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목적 대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여 죽게 하고 죽은 것을 다시 되살리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최상으로 받게 됩니다. 천국만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서 처음부터 살게 하는 것보다 우리를 타락시켜 하나님 없는 세계를 체험하게 한 뒤에 다시 구원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는 사람이 됩니다.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와야 하고 대신 죽고 부활하는 순서를 거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다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타락을 시켜 구원했으니, 목적의 성격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최선과 최상의 작업입니다(계1:5-6).

⑥ 목적의 수단

하나님의 목적은 그 사랑이 최선이 되고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택한 사람을 타락시켰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상태를 경험하도록 만든 존재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령과 죄와 불택자들입니다. 이것을 우리 위해 필요하여 만들었습니다. 일반 만물들은 단순한 무대 배경이요 필요 물품입니다. 그러나 악령과 불택자는 목적 대상인 우리를 여러 차원에서 맞서거나 우리 이상의 힘을 가지고 택자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일을 하는 자유성의 존재들입니다.

대개 전통 신학이 불택자와 죄와 악령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맞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활동을 허용만 했고 그 죄의 계획과 집행은 그들의 자기 책임과 자유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자기 차원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잘못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죄와 악령과 불택자를 목적 달성을 위해 만들고 사용하고 있습니다(욥1:6-12, 롬8:28). 즉 쇠를 용광로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서 망치로 두드려 원하는 도구를 만들고 있는데, 그 쇠와 그 쇠를 두드리는 망치와 그 쇠를 달군 불까지 전부 대장장이가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며 사용하는 필수품들입니다.


(3) 예정

① 예정의 정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그 세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미리 정한 것입니다. 예정은 앞으로 존재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 하나 하나의 발생과 그 만물의 움직임 전부를 미리 다 정한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마10:29-30, 눅12:6-7, 엡3:11).

② 예정의 범위

시간적으로는,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 하나님 혼자 계시던 자존의 세계에서 예정을 정했으니 영원 전에 시작된 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이 세상 만물뿐 아니라 재림 후 영계의 영원 후까지를 전부 예정했습니다.

종류적으로는 택자만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불택자까지 전부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과 식물 같은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인 먼지 하나의 움직임도 전부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 활동뿐 아니라 그 생각까지도 전부 예정되어 있으며 그 인간의 의로운 행동뿐 아니라 그 인간이 하나님을 거슬려 죄를 짓는 행동까지 전부 예정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정의 범위에 ‘절대’라는 표현을 붙여야 합니다. 즉, 예정은 절대예정이 옳습니다.

혹,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하나님의 예정은 제한적 예정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택자는 예정을 했으나 불택자는 예정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전체적으로 큰 범위는 예정을 했으나 그 큰 범위 내의 작은 일들은 예정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태어나서 대학교까지 공부를 하게 되고 그 후 장사를 하다가 중년에 믿게 될 것이라는 정도는 예정이 되어 있고 그 중간 중간의 작은 사소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 자유에 맡겨놓았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정의 성질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큰 것이 예정되려면 그 큰 것의 구성 요소가 되는 모든 사소한 것 전부가 예정되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세상만사가 크고 작은 일들로 나뉘어져 발생하고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차분하게 따져보면 한국의 어느 한 아이의 출생이 미국의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 몰아치는 태풍 하나가 오늘 과학으로는 한국 인근의 기상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같아도 앞으로 세계 모든 기후 여건을 완벽하게 측정해 낼 수 있게 된다면, 이 지구상의 어떤 공기 입자 하나도 간접 또는 간간접으로라도 한국에 상륙하는 태풍과 어떤 형태로라도 연관이 있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자만 예정을 하고 불택자는 예정에서 제외되었다는 이론도 마찬가지로 배척이 되어야 합니다. 택자와 불택자가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이상, 택자와 관련된 것이 예정되었다면 택자들과 어떤 형태로라도 불택자들은 연결이 되고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불택자들의 모든 것도 예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남한의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면 북한의 모든 것은 예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남한의 6.25상황이 예정되었다면 북한의 남침에 관련된 것은 완벽하게 예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북한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북한이 6.25전쟁을 1년 뒤로 미루거나 1년 앞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한의 6.25는 예정대로 발발될 수 없고 그리 된다면 남한 내 모든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또 과거가 예정되었으면 미래도 예정되었다는 뜻이니 시간적으로 어느 한 순간이 예정되었다면 모든 시간에 관련된 것은 다 예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정은 시간적으로 범위적으로 사건적으로 관련 대상으로까지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③ 예정과 구원

모든 것이 예정이라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잘잘못이라 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동물의 이름을 짓게 했으니 아담이 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잘한 일입니다. 아담의 범죄도 하나님께서 범죄하도록 예정해서 주권능력으로 범죄하게 만들었으니 아담의 범죄라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처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과 멸망, 죄와 의, 선과 악이라는 정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반론이 있습니다.

예정의 범위가 절대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인간의 구원에 관련된 선행과 의로운 일들은 예정의 순연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멸망은 예정의 불연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기준에 순연의 예정이 구원이고 불연의 예정이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행하게 예정하고 죄짓는 예정을 했다면 그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이를 예정의 불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 사람이 잘한 것이 아니고 순연의 예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와 멸망은 그 책임자가 전적 하나님이라는 모순을 지적하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즉 상관이 부하를 명령하여 살인을 했다면 그 상관도 그 부하와 함께 살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칼을 들고 살인을 했다면 칼에게는 아무런 죄책임이 없게 됩니다. 칼은 자기 의사가 없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정이 절대예정이라고 한다면 사람에게 어떻게 죄책을 지워 지옥 형벌로 갚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반론의 요지입니다.

이 반론은 하나님의 차원과 인간의 차원을 같은 차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오해가 된 것입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한가로운 한 폭의 그림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자가 소를 뜯어먹고 있다면 징그럽게 볼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고 있다면 눈뜨고 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치와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절대예정으로 죄를 짓게 하고 그 결과 죄를 지었다 해서 그 죄값으로 지옥 형벌을 가하고 또 하나님께서 절대예정으로 의롭게 살게 하여 복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며, 우리 인간은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이런 처분을 인간들이 모여 잔인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라는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만일 인간들끼리 모여서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일방적인 하나님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우물 밖의 세상을 자기들 희망사항으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한다고 해서 우물 밖의 세상이 그렇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의 우매무지함을 나타낼 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알려 주시는 대로 그대로만 알면 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추론과 사변은 이상한 종교를 하나 만들뿐입니다(사45:9, 렘18:2-6, 롬9:19-21, 행17:16-34).


(4) 창조

① 창조의 의의

창조란 없던 것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존 재료를 사용해서 없던 종류를 처음 만들면 이를 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처음 만들었던 창세기 1장의 창조만을 두고 창조라고 합니다. 자존자요 전능자인 하나님만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우리 인간은 창조된 것을 변형하거나 활용하는 것만 허락받았습니다.

지금 인간 세계에 창조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지만, 이는 인간 수준에서 인간이 알지 못하던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지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개념은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었다는 창조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창조물을 가지고 그 창조 범위 안에서 ‘활용’한 것입니다. 인간이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장차 인간들에게 그런 활용이 가능하도록 재료를 만들어 놓았고 또 그 재료를 가지고 그런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물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범위 안에서 재료와 물리를 결합시켜 활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을 뿐입니다(전1:9-10).

② 물질계와 창조

하나님의 창조물은 그 성질에 따라 물질계와 영계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물질계는 택한 사람들이 첫 생명으로 살아갈 준비의 세계이며 그 구성요소는 물질입니다. 영계는 택한 사람들이 영원히 변동 없이 살아갈 영원한 세계이며 그 구성은 영물로 되어 있습니다(고전15:50, 히11:16).

물질계는 우주라고도 하고 영계는 택자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될 천국과 불택자들이 들어갈 지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고후5:1, 마18:8-9, 25:34, 41).

▪ 물질계와 우주

물질계는 다른 말로 우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주’라고 할 때 이 우주라는 단어는 그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계가 아닌 것을 전부 우주라고 합니다. 우주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도 적기 때문에 현재 과학자들이 ‘우주’라고 말하는 ‘우주’를 가지고 물질계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살아생전 접하고 알게 되는 모든 것은 물질계의 것뿐입니다. 따라서 물질계를 우주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주를 물질계라고 정의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고전15:50, 벧후3:7-12).

▪ 창조와 재창조

창조를 살펴볼 때는 재창조라는 개념을 늘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야 창조 자체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면 창조라고 하고, 이미 존재하던 것을 활용하여 없던 종류를 만드는 것은 재창조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라는 범위를 달리 잡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재료를 우선 만드시고 그 다음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의 모든 근본 형태와 구조를 만드셨는데, 이 모든 것을 다 합하여 창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어 표현만으로 본다면 창세기 1장은 창조와 재창조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창세기 1장 전체를 창조로 말씀하신 이상, 우리는 조직신학에서 창조를 두고 표현할 때는 항상 이 면을 확고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즉, 창세기 1장에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의 존재와 구조를 확정해 둔 그 범위는 ‘창조’이고, 그 엿새 이후에 오늘까지 나타나고 있는 모든 새로운 존재들은 전부 ‘재창조’입니다(전1:9-10).‘

▪ 창조와 진화

하나님의 창조를 창조와 재창조로 구분할 수 있다면, 지금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만물이 자연 발생에 의하여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떤 면을 오해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진화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근본적으로 알지 못한 사람이 만물의 근원과 중간 과정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만물의 마지막 모습만을 보고 섣불리 단정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앞서 창조한 것을 가지고 재창조로 섭리하며 세상을 운영하시고 진행시켰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그 만물의 변화 속에 숨어 역사하신 하나님은 모르고 변화된 세상의 결과만을 가지고 연관성을 추출한 것이 진화론입니다.

우리가 진화론을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을 반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만물은 자연 발생되었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재창조 섭리역사를 부인하고 만물이 자연 진화했다는 주장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로 재창조되어 그 모습이 변화되어 왔는지는 오히려 과학을 통해 참고하면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진화론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인하는 요소만을 세밀하게 잘 제거하면, 과학의 설명과 노력을 가지고 우리가 자연계시로 활용할 것이 적지 않습니다(히11:3).

▪ 현대 과학 기술의 한계

최근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되었습니다. 이미 일반 신학계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확정한 것을 과학은 수십 년 전부터 자유롭게 드나들며 신학교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그 한계는 무한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신학은 과학이 나무나 철로 도구를 만들고 이용하는 것만 가능하고 인체를 포함한 생명체에 대한 변화나 조절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점Z를 개량해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식물과 동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제는 과학이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 하던 인간까지도 자유자재로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신학은 과학의 한계라고 그어둔 선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것이 전부 다 과학에 의하여 무너졌기 때문에 신학은 미신이 되고 과학은 진리로 증명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한계는 없는가? 신학자들이 자기들 살던 당시의 과학 상식을 기준으로 인간에게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나누고, 자기들 생각에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느낀 것은 전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단정을 했던 것이 실수의 원인입니다. 이제는 신학에서 한계라 말한 것을 과학이 너무도 쉽게 또 마음껏 자유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천국은 과학으로 미칠 수 없는 마지막 한계라는 말까지도 신학자들은 입에 담기를 두려워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았다면 과학의 한계는 일찍부터 그 선을 그어둘 수 있었습니다. 과학은 물질의 이치를 연구하고 상대하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뒤에도 물질계 세상은 인간의 활동 범위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물질계 안에서는 타락한 인간이라도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물질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고 또 개발할 수 있습니다. 즉, 과학의 한계는 물질과 물질의 이치 즉 물질계로 그 범위를 잡아야 옳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만든 태양 아래 하나님 만든 땅을 밟고 하나님 만든 만물을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물질계라는 우주 내의 존재만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밥을 짓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 먹게 했으니 이는 물질계 만물을 물질의 이치인 물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의 이치를 가지고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개발하든, 그것은 우리가 놀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로 봐야 합니다. 또 전혀 생각 못한 기술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은 물질계 이치를 인간이 또 하나 찾아냈다고 알면 되고 그 기술이 놀라운 기술이라면 그 기술을 찾아낸 인간에게 놀랄 것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물질계 안에 그런 물질의 이치를 미리 만들어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솜씨에 놀랄 일입니다. 지금 신학이 과학의 솜씨 앞에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이유는 물질의 근본개념을 잘못 알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마음이 물질이 아니고 영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 이유입니다.

물질계 안에 있는 물질은 인간이 다 접촉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물질계라는 범위에서 우리는 특별히 오늘 과학 기술의 발달을 보며 생각할 것은 인간에 관련된 것입니다. 인간의 영은 영물입니다. 이 영은 마치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영계의 존재와도 같습니다(고전2:11). 그러나 몸과 마음이라는 것은 비록 신비하기도 하고 또 그 가치는 일반 만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물질로 된 물질계의 물질들입니다(요3:6).

나무에게 물과 거름을 잘 조절하면 소출이 많아지고, 나무를 해치는 벌레를 잡아주면 그 생명이 연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심신도 그 영양과 필수품과 병충해를 잘 조절해 주면 그 심신이 물질이므로 물리에 잘 맞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여서 제삼의 점Z를 만드는 것이나 당나귀 수컷과 암말을 가지고 노새라는 제3의 짐승을 만든 것은 현대 과학이 그 기술을 자랑하기 전부터 과거 고대인들이 다 알고 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만들어 놓지 않은 전혀 새로운 점Z를 이렇게 인간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인간 자체 기술과 지혜와 노력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이런 일이 원래 인간이 넘어갈 수 없는 하나님만의 영역을 넘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을 했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노력해서 넘어간 것입니다. 즉, 구약 성경에도 이미 인간들이 동물 조작에 해당되는 노새를 만든 기록이 있고 또 접붙이는 방법으로 식물의 원래 생태를 변형시킨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한계를 지을 때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 바로 ‘물질’과 ‘물질계’라는 범위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물질로 되어 있음을 동시에 기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문제는 조직신학의 인론편에서 사람의 ‘구성요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은 영물과 물질로 만들어진 유일한 피조물이므로, 물질의 이치가 닿을 수 있는 곳과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선을 연구하는 데에는 특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③ 영계와 창조

▪ 영계

영계는 우리가 죽으면 영원히 살게 될 본 무대입니다. 물질로 된 우주와 달리 영물로만 이루어진 곳입니다. 영물의 세계이므로 이곳 물질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물질계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 작동 이치는 물리만 적용됩니다. 그러나 영계는 그 구성 요소가 영물로만 되어 있으므로 그 운영 이치도 물리 대신 진리입니다. 영계에는 물질계를 가로지르는 시간과 공간도 없는 곳이므로 장소라는 개념, 이동이라는 개념, .변화라는 개념이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고전15:50, 계21:5, 22-25)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여 물질계가 완전히 해체되었다가 재조성 되면 이 우주도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체제로 변하게 됩니다. 그때 물질계의 형편은 영계보다는 그 수준이 낮지만 모든 기본 성질이 영계화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물질계는 물리의 세계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물질계 형편을 기준으로 영계를 이해한다면 그런 영계는 실존의 영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이 자기 수준에서 구성해 본 하나의 공상 세계일 뿐입니다(사65:17, 계21:1-2).

영계는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차원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다 알려 줄 수도 없고 다 알려줘도 이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필요한 면만 일부 잠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이므로 순종생활을 통해서 영안이 밝아지는 만큼 볼 수 있는 세계임을 생각해서 지나친 추상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계21:10-27, 벧후3:13

▪ 영계의 종류

영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위쪽에는 천국이 있고 아래쪽에는 지옥이 있다는 물질계 공간 개념은 하나의 비유일 뿐입니다. 또한 영계의 영물들의 종류와 활동과 관계는 이 물질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한하다 할 만큼 많습니다. 우주도 인간의 시력이 밝아질 때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가 측량 못할 만큼 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질계의 세밀함과 광대함을 새로 터득할 때마다 우리는 영계와 그 안의 존재들이 얼마나 광대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 실상만큼 느끼지는 못해도 이 좁은 우주의 크기와 세밀함이 이런 정도라면 비교 못할 영계의 크기와 세밀한 것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오늘 세상에서 우리가 알지 못한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영계를 크게 둘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 것만 모아놓고 영원히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을 닮아가는 것으로만 충만하도록 그 일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그분으로만 살고 그를 향하는 곳이므로 그곳은 하나님의 은혜만 있고 그 은혜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만 있는 곳입니다(계21:27).

지옥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맞섰던 모든 것을 모아놓고 영원히 불태우는 곳입니다. 지옥불의 특별한 점은 오늘 세상처럼 불에 타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불에 타는 고통은 항상 있고 또 불에 타면 점점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 모든 세력과 힘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은 있는데, 그렇다고 그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타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 고통과 그 소멸이 진행되는 곳입니다.(막9:47-49)

영계를 두고 하나 더 생각해 둘 것은 낙원과 음부입니다. 낙원은 예수님 재림 전까지 미리 죽은 성도의 영과 마음이 미리 가 있는 곳이고, 음부는 불택자들의 영과 마음이 미리 가 있는 임시 장소입니다. 영계 안을 천국과 지옥 그리고 낙원과 음부로 4등분해서 구역을 정하는 것은 물질계의 공간개념입니다. 낙원은 천국 안에 일부 임시 머무는 곳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천국 문 앞에 임시 가설된 시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어린 신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입니다. 세상 마지막에 역사 세계가 완전히 정리가 되고 나면 모든 이 땅 위의 존재와 그 행동들을 순종과 불순점8로 나누어 영원히 변동 없는 상태로 분리를 시킬 것인데 그때가 이르지 않은 상태의 천국이 낙원이고, 그때가 이르지 않은 상태의 지옥이 음부입니다(눅16:23-24, 23:43).

④ 천사와 악령

▪ 하나님 집의 종

악령은 타락한 천사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살펴볼 때는 함께 놓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서 영계에 속한 영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세상 사람들의 추론처럼 아름답고 예쁘기 때문에 천사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죄가 없으므로 천사는 그 모습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심할 것은 천사는 물질로 된 몸이 없어 그 얼굴의 형체는 우리 인간을 기준으로 그려서는 안됩니다(마22:30, 눅24:39).

천사가 사람과 다른 점은, 사람은 물질과 영물로 되었고 천사는 영물로만 되었으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천사는 그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점T니다. 오늘은 우리가 배우고 훈련받는 시기여서 아버지 집에 종들에게 모든 면으로 부족하지만, 그들은 영원토록 점8로서 그 신분과 실력이 항상 그대로지만 우리는 나날이 자라갈 것이고, 이제 천국으로 옮겨지고 나면 아버지 대신 우리가 천사들을 부리는 아버지 위치에 서게 됩니다.(고전6:3, 갈4:1-2, 히1:14)

천사는 그 맡은 일이 중대한 만큼 그 실력도 탁월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온 집에 농기구 짐승 등 여러 많은 물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꾼들은 비록 점G 신분이지만 다른 물품이나 도구나 짐승들과는 그 존재 가치가 아주 다른 것과 같습니다. 특히 모든 머슴들을 총괄할 수 있는 상머슴이며 총무머슴은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점O 것입니다. 악령은 바로 이런 실력 있는 천사가 자기중심으로 돌아서서 하나님과 맞서 탈선한 존재입니다(사14:12-13, 유1:6). 이래서 악령은 그 세력이 하나님을 제외하면 어떤 존재도 이길 수가 없고 심지어 천사와의 싸움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 천사와 자유성

천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성입니다.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 목적 대상이므로 만물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천사는 인간을 제외하고 영계와 우주의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유성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인격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천사는 비록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와 모든 면에서 모자랄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천사를 특별히 하나님의 점L라 또는 부리는 일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계22:8-9).

자유성은, 천사가 하나님을 순종할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는 결정권을 말합니다. 천사에게 인간을 제외하고는 만물 중에 가장 높고 중요한 직책을 맡기고 그 일을 위해서 큰 실력을 주셨는데 바로 그 실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맞서 자기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왕국을 만들게 되었으니 이것이 천사의 타락 곧 악령의 출현입니다(벧후2:4, 유1:6). 천사는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각 천사에게 따로 맡겨 책임을 지운 것도 있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심부름을 시키기 때문에 타락하여 눈이 어두워진 우리가 볼 때는 천사를 마치 하나님으로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구원 역사를 두고 항상 하나님의 역사에는 따로 기록이 없어도 천사의 심부름이 있고, 또 천사가 나타나는 부분은 천사만 기록되어 있다 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천사의 타락과 악령

천사의 타락은 대장 천사의 타락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집단으로 타락하여 악령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름을 사탄이라 용이라 마귀라 귀신이라고도 합니다(계20:2). 악령의 수는 다수지만 이들의 활동은 내부적으로 연결되어 일사분란하게 하나로 활동하기 때문에 교리적으로는 복수의 악령이 있다고 알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악령을 하나로 보고 상대하지 않으면 속기 쉽습니다. 악령 하나가 모든 종류의 죄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계12:7-9).

악령의 모든 활동은 자기가 천사 위치에서 자기중심으로 돌아서고 하나님과 맞섰듯이 인간에게도 꼭 그렇게 죄를 짓게 합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돌아서게 하고 자기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아 하나님과 맞서게 하는데, 그렇게 되어진 인간의 숫자와 활동만큼이 바로 악령의 성공이요 악령의 사명입니다(창3:1-5, 벧전5:8). 일단 인간이 하나님중심을 버리고 자기중심으로 돌아서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모든 죄라는 죄는 다 짓게 됩니다. 어떤 죄를 어떻게 짓게 되는지를 두고는 ‘인론’에 이어 ‘죄론’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예정편에서 이미 살펴본 대로, 악령의 탈선과 이런 활동은 천사를 만들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존재가 필요하여 타락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타락한 천사 악령이 죄의 근원이라거나 죄의 창출자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원론으로 나가는 이단이 됩니다(왕상22:19-23).


(5) 섭리

① 섭리

창조한 것을 운영하시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섭리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엿새 창조 이후 6천년 역사와 우주 마지막과 천년왕국 그리고 영계의 영원까지 진행될 그 모든 운영 전부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는 섭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고, 섭리는 창조 그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단:25, 32-37, 5:18-21, 6:26-27)

② 섭리의 성격

▪ 절대 주권

하나님의 섭리는 절대 주권으로 진행됩니다. 주권이라는 말은 주인의 전적 권리라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가 아니라 고대사회 왕정국가에서 행사하던 주권은 생사를 포함해서 백성의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고대사회의 주권에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완전자입니다. 개미 한 마리나 풀 한 포기처럼 지극히 작은 것부터 태풍과 태양과 천체와 같이 지극히 큰 것도 완전 주권으로 운영합니다(마10:29-30). 또 이런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 움직임까지 그리고 택자뿐 아니라 불택자와 악령까지도 전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하여 움직입니다(욥1:6-12, 왕상22:19-23).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 역사의 범위입니다. 계획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고, 그 계획대로 실제 이루어지는 것도 절대 주권입니다. 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절대 주권은 차질이나 착오나 번복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인간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고, 또 이 섭리의 주권 역사를 깨닫는다면 그 깨닫는 것만큼 평안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절대 주권은 영원 전 목적을 정할 때부터 예정과 창조와 섭리로 이어지며 영원 후까지 절대 주권입니다(출7:3-5, 9:12, 10:1-2, 시103:19, 104:9-15, 행16:25-26).

▪ 예정 성취

섭리는 항상 예정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계획은 실제 결과와 너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계획이라는 것은 사실 참고만 하면 되는 정도입니다. 또 결과라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희망사항일 뿐입니다(잠16:1, 9).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자시며 완전자시며 영원불변의 단일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계획과 그 성취는 둘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일치됩니다. 어떤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면 이는 완전이 아니기 때문이며 영원불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지와 전능과 단일성의 속성을 가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주 만물 그 어떤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영원 전 예정하신 바로 그 예정 그대로 진행되도록 하나님께서 늘 보존 관리 운영하고 계신다는 이 섭리의 예정 성취성을 알 때라야 신앙이란 진정한 신앙이 됩니다(잠21:1, 사14:24, 26-27).

▪ 목적 달성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그 예정대로 성취되지만 그 성취는 크게 살펴볼 때 바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이라는 점에서 살펴야 섭리의 진행 방향을 빨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섭리는 사실 우리 안팎에 일어나는 일,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섭리고 그것은 앞서 예정되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현실에서 섭리를 연구하는 일은 마치 모래 위에 쌀 한 포대를 흩어놓고 하나씩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세밀한 것 자세한 것을 자꾸 살피다 보면 전체를 보는 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섭리는 하나님의 예정 성취인데, 그 예정은 바로 단 하나인 하나님의 목표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 일입니다.

완전자 하나님을 닮은 우리를 만드시기로 목적을 정했으니 이 목적에 필요한 순서를 미리 예정한 것이고, 섭리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실제 모든 일이 진행되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힘든 일이나 쉬운 일, 슬픈 일이나 기쁜 일,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나 안 되는 일을 가릴 것 없이,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가 하나님의 목적, 즉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이 일 달성에 오로지 필요하고 유익한 일만 있습니다.(롬8:28)

단언하고, 이 일에 필요 없는 일, 이 일에 상관없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으니, 우리는 이 세상 수도 없는 일을 겪고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정을 겪게 되지만 항상 찬송하며 감사하며 기쁨으로 우리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섭리가 목적 달성의 작업 과정이기 때문입니다(약1:2-4).

③ 섭리의 진행 과정

▪ 창조

창조는 섭리에 앞서 따로 살폈지만, 섭리를 보다 넓은 눈으로 살핀다면 창조는 섭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를 논할 때도 창조를 넓은 눈으로 살피면 섭리를 재창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섭리를 창조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와 섭리를 분리시켜 살피지 말고 연관 지어 봐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잠깐 설명을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창조’를 다시 살펴본 것은 다른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라 섭리의 진행과정에 있어 그 첫 순서로 창조를 기억하자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다만, 섭리의 진행에 있어 첫 창조 때 나타난 에덴동산은 특별히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사안입니다. 에덴동산은 타락 이전 첫 창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던 상태입니다. 또한 에덴동산은 구원역사가 마무리되고 세상이 끝나게 되면 영원히 살게 될 하늘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타락의 순서를 섭리역사 과정에 포함시킨 이유는 하나님을 닮는 일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 역사 이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 없이 살기 이전의 상태는 어떠했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이 점 때문에 타락 이전 에덴동산 시기를 먼저 주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활하며 그 나라의 조직과 운영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 나라의 가치는 무엇이며 그 나라의 기쁨은 무엇인가? 믿는 사람들은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세상을 기준으로 삼아 생각하면 공상에 그치게 됩니다. 바로 에덴동산 창조의 첫 순간을 살피면 우리가 오늘 미리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창2:8-25).

▪ 타락

타락의 순서는 천사의 타락이 제일 앞서 있었고, 타락한 천사 악령이 아담을 타락시켰습니다. 이렇게 악령이 타락의 시작이지만 타락의 중심은 어디까지는 아담입니다. 만물은 아담에게 주신 아담의 것이요 아담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악령은 옆에서 아담을 타락시켜 아담을 점령하게 되면 아담을 통해 만물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아담을 정복하고 아담을 통해 만물을 정복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악령이 인간과 세상을 자유하게 됩니다.

악령은 아담을 자기가 범죄한 그 죄를 가지고 꼭 악령 자기처럼 타락을 시켰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 자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중심이 되었고 이제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에게는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자연히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되지 못하므로 아담과 연결을 끊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모습이 어떻게 될지 몰랐던 아담은 이후 재림 때까지 후손의 저주를 포함하여 이 땅 위에서 전개되는 모든 타락상을 잘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아담에게 주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아담이 결정할 수 있으나, 한번 떠나게 된 아담을 다시 불러들이느냐는 문제는 하나님의 자유이지 아담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과 완전 단절이었습니다. 인간 속에 하나님과 연결을 맡은 영은 단번에 죽었고 이 영이 죽으므로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과 모든 연결이 끊어져 뿌리와 끊어진 나무의 상태가 되었습니다(창2:17, 엡2:1).

하나님의 섭리에서 타락이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으로 만들어지고 하나님으로 살던 사람에게, 하나님 없는 상태를 알리고 체험하게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것은 지식으로만 알려서 될 일이 아니고 반드시 체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타락이라는 과정을 섭리 중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타락이라는 과정은 오늘까지 우리에게 현재 진행되는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타락을 하나님의 섭리에 포함시키는 것은, 타락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성취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을 수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타락을 시켰고, 인간이 타락하도록 미리 예정해 두었으며 절대 주권으로 타락을 진행시켰습니다. 이 타락이 외견상으로는 마치 인간의 결정이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인간의 인지 수준에서 관찰한 것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크게 사랑하기 위해 섭리순서에 포함시킨 것입니다(롬9:11-18).

▪ 대속

하나님의 섭리역사에서 가장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순서는 대속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시는 도성인신이 먼저 있었고(요1:14), 하나님과 사람이 한 분으로 역사하신 신인양성일위의 지상 삶이 있었고(눅2:51-52), 그 삶의 마지막인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었으며(고후5:15), 다시 3일 후에는 신인양성일위의 성자 예수님으로 부활을 했습니다(마28:6, 고전15:4).

죄를 지은 것은 우리들이므로 그 죄값으로 우리가 영원 지옥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타락의 체험은 주시되 타락의 상태로 계속되도록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원래 위치로 다시 회복을 시켜야 하는데 이 2가지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죄값을 치르고 우리 대신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 대신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고후5:15, 벧전1:3)

대속은 2천년 전 예수님의 도성인신과 사활 대속으로 완성했지만 이 완성은 법적으로 기본구원을 완성한 것이고, 이 구원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 실제 나누어주시는 것은 믿는 사람 하나하나를 불러 중생시키는 바로 그 시점부터입니다(요3:5).

▪ 구원

대속으로 완성한 구원은, 이제 믿는 사람이 세상에 출생한 다음 그 사람에게 예정되어 있는 중생의 순간에 성령과 진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가지고 그를 믿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구원은 그 사람이 중생하는 순간 단 한번 만에 완전하게 입혀지는 것이 있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 합니다(딛3:5). 기본구원을 받아 중생된 사람은 그 이후 죽는 순간까지 각자 전혀 다른 모습과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몸을 말씀과 성령에 붙들려 살도록 건설해가는 역사가 계속되는데 이를 건설구원이라고 합니다(고전3:12-15).

이 구원 역사는 오직 택자에게만 해당되고 불택자에게는 타락만 있고 이후 심판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평생은 택자들을 위해서 이용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만물과 다른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만물이 택자들에게 이용당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의 행위 뒤에 심판이 따라가게 됩니다. 만물의 경우는, 택자를 위해 사용되면서 택자의 신앙을 반대하는 일에 사용된 것이 있다 해도 그들은 그 행동에 대한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불택자들처럼 자유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반대하여 당하는 고통은 없습니다. 행동을 자기가 결정하고 움직이는 불택자들과 악령은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고통스럽게 영원토록 받게 됩니다(계14:10-11, 20:10).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구원하시고 세상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가는 이 섭리 역사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타락도 있고 또 구원의 방해 역사도 있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그 값이 단순하게 계산해서 산출될 정도가 아닙니다. 택자와 꼭 같이 만들어지고 꼭 같은 형편으로 살아가는 불택자 전부가 우리 택자의 구원에 소모품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의 대속이 투자되었고, 또한 이 구원을 실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역사에는 성령과 진리가 전적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진리는 그 하나가 천지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낸 창조의 시공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통해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주 만물 전부이며 그 전부의 움직임입니다(사45:9, 롬11:33).‘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구원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움직이고 합하고 쪼개고 변동시키고 충돌시키고 수습하고 있습니다.

▪ 심판

세상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심판이라는 단어는 죄인을 지옥 보내는 것으로만 전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살펴야 합니다. 하나는 불택자를 정죄해서 지옥에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택자를 심사해서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부분은 분리수거하여 지옥에 버림과 동시에 그가 말씀대로 바로 살았던 것은 영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판은 지옥으로 보내는 최종 결정의 정죄 처리하는 것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성도들의 영생을 확정하는 심사로 나누어야 합니다. 앞에 것을 공심판이라 하고, 뒤에 것을 사심판이라고 합니다. 공심판은 택자와 불택자로만 나누어 불택자를 지옥에 보내는 심판이고, 사심판은 택자 각자에게 천국의 영원한 모습을 결정짓는 심판이니 이 사심판은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고 그 결과가 전부 다 다르게 나올 것입니다. 공심판은 정죄 징벌을 결정하고 사심판은 성화의 정도와 의의 기능과 그 실력 그리고 영원한 소유와 상급을 결정하는 심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비단 이 세상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세상 마지막의 심판도 당연히 섭리의 진행 과정 중 하나로 파악해서 세상 살아생전 생활이 최후 심판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또 영원한 자기 모습으로 어떻게 고정이 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계20:11-12, 고후5:10).

▪ 영원

대개 천국은 영원히 쉬고 노래하고 사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찌든 사람에게는 쉴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므로 인간이 알아듣도록 천국생활은 영원히 쉬는 것이라고 가르쳤지만, 이때 쉰다는 의미는 세상에 하기 싫은 일 고통스러웠던 짐을 벗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세상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일, 해서는 안 될 노고, 죄와 그 값으로 무겁게 짐 지던 그런 일들이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활동과 일 자체가 없는 곳이 아니며, 또한 세상식 휴일과 나태함을 영원히 가지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가 라는 문제를 두고는 에덴동산을 잠깐 참고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아무 일이 없었는가? 편히 쉬고 노래만 하고 살았던가? 역시 그렇게만 알고 있는 것이 믿는 분들의 상식입니다만 실은 에덴동산의 일은 오늘 인생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로 충만했습니다. 만물을 지키고 다스리는 일이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입니다(창2:15, 19-20).

우주와 만물을 움직이는 곳이 그곳이었고 아담은 그 중심에 서서 그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격무로 너무 바빴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죄와 마귀와 사망이 없는 곳이므로 반란도 없고 항의 데모도 없으며 통치자 몰래 놀고먹는 존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운영하는 방법은 하나님중심이 되어 하나님 명령대로만 했습니다. 아담이 자라감에 따라 만물은 아담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우리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마지막 불심판이 끝나고 새하늘과 새땅이 되고 나면 과거 에덴동산처럼 그런 세상이 되겠지만 영계는 이 우주 물질계에 있었던 에덴동산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세계로 전개될 신령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존재는 그 종류도 그 존재 형식도 그 모든 생활 방식도 이곳과는 너무 차원이 높아서 이곳 세상에서는 측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도가 자기 실력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순종한 연습을 통해 가지게 된 기능과 실력이 그 나라에 알지 못할 존재들을 다스리고 지도하며 하나님 노릇을 넉넉히 감당하게 할 것입니다(계22:5).

천국에서 하나님 대신 하나님으로 등장할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 나라에는 다시 미혹이 없고 타락 탈선이 없는 상태로 영원히 계속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땅 위의 섭리 역사는 영계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계속될 그 섭리 역사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우리가 지난날과 현재 형편을 보며 대충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점입니다(사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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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1:3-6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갈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 네가 이 후로는 점L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히12:7-9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

롬8:29-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롬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마6:10-1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엡1:4-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

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계3:20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벧후1:4-8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사43:3 ‘...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에{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사45:9 ‘... 진흙이 토지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르켜 ...’

렘18:2-6 ‘...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19-21 ‘...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행17:21-22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계1:5-6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욥1:6-12 ‘...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

롬8: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눅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

엡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사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지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렘18:2-6 ‘...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19-21 ‘...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행17:21-22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전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고전15:50 ‘...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히11:16 ‘...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마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마25:34 ‘...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벧후3:7-12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전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전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고전15:50 ‘...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벧후3:13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계21:1-2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막9:47-49 ‘...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눅16:23-24 ‘...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눅24:39 ‘...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고전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갈4:1-2 ‘...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사14:12-1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계22:8-9 ‘...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점L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계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창3:1-5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왕상22:19-23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단4:25-37 ‘...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단5:18-21 ‘...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단6:26-27 ‘...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욥1:6-12 ‘...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

왕상22:19-23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출1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시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시104:9-15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행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잠16:1-9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사14:24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사14:26-27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롬8: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롬9:11-18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눅2:51-52 ‘예수께서 ...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

고전15: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요3:5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고전3:12-15 ‘...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계14:10-11 ‘...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사45:9 ‘... 진흙이 토지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르켜 ...’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계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고후5:10 ‘...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

계22:5 ‘...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사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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