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계시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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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5:56
(02.01.01.초안, 03.05.22. 1차교정, 04.03.29. 최종 출간본문)
2. 계시의 종류
계시의 종류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연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이므로 일반계시라고도 합니다. 특별계시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주신 구원도리이기 때문에 조직신학의 ‘계시론’은 주로 특별계시가 그 주 내용입니다. 따라서 특별계시는 설명해야 할 분량이 많으므로, 계시론 전반을 설명하는 이 앞부분에서는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아주 간단하게 특별계시를 설명한 뒤, 뒤에 따로 한 항목을 만들어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 주시는 방편에 따라 -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① 자연계시
롬1:19-20,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 정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세상 자연에 속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계십니다. 자연을 통해 알린다고 해서 ‘자연계시’라고 하고, 이 자연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알리시는 것이라 해서 ‘일반계시’라고도 합니다.
▪ 범위
자연계시의 범위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자연만물과 인간의 심신과 그 역사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자연’이란 자연 만물의 구조, 모습, 동작 전부를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특히 인간의 심신과 역사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마음은 영물이 아니고 물질이며 이는 자연에 있는 동물의 마음과도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신의 구조와 활동 및 인간의 지난날의 모든 역사까지도 전부 자연계시에 포함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영물이라고 보는 일반 이분론에서도 마음의 활동을 자연계시에 포함을 시키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영물이라면 불신자들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연계시에 포함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연’계시의 의미는 불신자도 알 수 있는 물질계 만물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조직신학 제3장 ‘인간론’의 ‘인성 구조'에서 또 다른 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어쨌든 자연만물은 인간의 심신에 비하여 외부적으로는 그 범위가 넓고 그 종류가 많으므로 대개 자연만물을 통해 아는 것이 인간을 보고 아는 것보다 더 많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심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내신 자연계시의 거의 전부라 할 만큼 그 범위가 넓고 그 종류가 많다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역할
타락 전 에덴동산에서는 인간이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 가림 없이, 정확하게, 또한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하여 세상은 변질되었고 또 인간의 시력자체가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제는 자연계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충의 짐작 정도입니다.
따라서 타락 후에는, 구원과 관련하여 필요한 것은 오로지 특별계시로만 알 수 있고 자연계시는 특별계시를 받은 사람들에게 보조 역할만 하게 되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특별계시가 없으므로 자연계시를 통해서 무엇이든 대충 짐작만 할 뿐이고, 구원에 도움 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자연계시가 특별계시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또 모형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는 특별계시가 없으면 절대 안 되고 또 자연계시가 없어서는 많은 불편과 부족을 느끼게 됩니다.
② 특별계시
자연계시에 비하여 특별계시는 믿는 사람에게만 ‘특별’히 보여주시는 계시입니다. 특별계시는 인간 지식을 초월한 것이어서 인간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고 또 알아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특별계시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성경으로 기록하여 주신 ‘문서계시’와 신앙양심을 통해 성령이 감화와 감동으로 은밀하게 알려주시는 ‘은밀계시’ 또는 ‘영감계시’가 있습니다.
▪ 문서계시 - 성경
롬16:26-27,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문서계시는 ‘성경계시’라고도 합니다. 성경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신 계시입니다. 천하에 쌓아두어도 쌓을 곳이 없는 무한한 내용을 신구약 66권에 간추려 주셨습니다. 이 내용은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도록 조절하였으며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데 없으면 안 되는 내용들입니다(요20:30-31, 21:25).
문서계시는 일단 66권 성경에 기록된 내용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성경 기록 외에 따로 기록해 주신 문서계시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설교나 주석으로서가 아니고 만일 성경권위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이단에 속합니다. 기독교의 모습은 교파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절대로 달라서는 안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첫째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다르면 곧 바로 이단이 되거나 타종교가 되어버릴 수 있는데, 그 중에 첫째가 바로 66권 성경 이외에 다른 성경 즉 다른 문서계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 은밀계시 - 영감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은밀계시는 믿는 사람 마음속에 개별적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문서계시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행동 원칙이라고 한다면, 은밀계시는 그 원칙을 따라 각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개인 각자에게 구체적으로 따로 명령하시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주로 진리라고 표현하고, 성령의 개별 명령은 영감이라고 표현합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적용되면서 동시에 변치 않는 이치라는 면을 강조해서 표현했고, 영감은 진리에 따라 각 개인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개별적으로 알려 주신다는 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교리로 요약을 할 수 있고 영감은 그 사람 본인만 알도록 은밀하게 역사합니다.
(2) 받는 형태에 따라 - 하나님지식 인간지식
① 지식 구별의 필요성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알려 주시느냐에 따라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로 알리시든 특별계시로 알리시든 그 방법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계시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인간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자연계시로 알려주시든 심지어 성경으로 알려주시든 자기가 자기 생각으로 지식을 선별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지식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지식’이라 하고, 두 번째 경우는 ‘인간지식’이라고 합니다. 지식의 출처와 판단의 주체를 두고 분류하는 법입니다(딤전4:6-7).
이렇게 분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지식은 무조건 필요하고 좋다는 지식제일주의가 세상에 창궐하여, 교회 내에도 하나님이 주신 계시와 인간이 만든 지식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잠19:27). 지식싸움에 이겨서 하나님지식으로 무장을 한다 해도 그 지식대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지식싸움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므로 바른 복음운동은 찾아 볼 수도 없다 할 만큼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신학입니다. 그러나 이 신학조차도 그 목표는 성경지식이지만 그 내용은 인간지식이 너무 침투하여 심지어 성경까지도 하나님지식으로 대하지 않고 인간지식으로 취급하고 인간지식으로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지식과 인간지식으로 모든 지식을 이분하여 이 두 지식의 혼동을 막는 것이 교회 보수의 첫 걸음이고 또 일반 성도의 신앙생활과 일반생활에서도 그 중요성은 너무도 크다 하겠습니다. 지식은 넘쳐나는데 바른 교훈을 찾아 갈급한 심령으로 천하가 기갈을 당한 때입니다.(암8:11)
② 인간지식
타락 전에 인간이 가진 지식은 전부 하나님지식이었습니다. 자연 만물을 만들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또 그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타락 전에 사람이 가진 지식은 전적 하나님지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연 속에 살고 있는데도, 그 자연을 보고 그 자연을 아는 지식이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대로 알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으므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은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자기 두뇌로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여 자연을 보며 자연에 대한 이런 저런 지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이 만들어 인간에게 넣어준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지식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 지식의 이름은 모든 사람이 가장 알기 쉽도록 ‘인간’지식이라고 했지만, 그 속을 파고 들어가 보면 하나님 대신 악령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 노릇을 하며 그 사람을 지배하고 그 사람에게 지식까지 넣어주고 있으니 이는 악령의 지식입니다. 악령의 이 지식은 본질적으로 다 거짓입니다.(요8:44)
선악과로 예를 든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사약으로 보였습니다. 선악과는 ‘사약’이라고 보여지고 느껴지던 그때 그 지식이 바로 하나님지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담이 오로지 이 한 가지 지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복잡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생활이 단순하고 맑고 깨끗했습니다.
그러던 아담에게 선악과는 하나님이 되는 ‘특효약’이라며 또 하나의 다른 지식을 가지고 왔으니 바로 악령이었습니다. 물론 뱀을 뒤집어쓰고 나왔지만 그 속에는 악령이 하나님지식 말고 또 다른 지식을 가지고 아담에게 들이밀었습니다. 그 지식을 거부했더라면 아담 이후 오늘까지 우리는 하나님지식 하나만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므로 죄로 인하여 발생되는 더러움도 복잡함도 어두움도 사망도 없었을 것입니다(롬5:12).
뱀이 하와에게 ‘먹어보라’고 한 것은 하나님지식이 아닌 지식도 가져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있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자 아담이 그만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지식, 곧 하나님지식 이외의 지식을 받아들여 그 지식의 눈으로 다시 한번 선악과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선악과는 그에게 ‘독약’이 아니고 보배 중에 보배고 특효약 중에 특효약으로 보였습니다. 지식이 바뀌자, 하나님이 만든 자연만물 전체는 이전과 꼭 같은데도 달리 보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변질되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접하는 자연 만물 전체를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연을 통해서 직접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은 막히게 되고 이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짐작하는 정도에서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상태로 오늘까지 생활해 오고 있습니다.(창3:6)
참고로, 인간지식을 크게 2가지로 나눈다면
인문사회지식이 하나 있고, 이공과학지식이 하나 있습니다. 인문사회지식은 그 자체도 틀렸고 그 사용도 잘못되었으며, 이공과학지식은 그 지식 자체의 이치는 맞는데 그 사용 과정이 잘못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에 것은 완전거짓말이고 뒤에 것은 반거짓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지식
하나님지식이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았을 때를 말합니다. 자연만물을 만들어놓고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그 자연계시를 관찰한 끝에 진화론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만들고 또 보여주시는 자연을 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봤다면 그 지식은 하나님지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적으시고 우리에게 넘겨주신 특별계시입니다. 그 성경을 신신학자들도 읽고 보고 그 성구들을 수도 없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성경에 대하여 가진 지식은 하나님지식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인용하는 그 단어나 표현이 성경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은 정확무오한 것이 아니고 또 성경은 예수님만 구원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들이 가진 지식은 비록 성경에 관한 지식이라도 하나님지식이 아니고 인간지식이 됩니다.
지식을 하나님지식과 인간지식 두 가지로 나누는 이유는, 첫째 그 지식 자체의 권위와 가치와 정확성을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어느 지식을 주인으로 삼고 어느 지식을 점8로 삼아 대하느냐는 문제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평생은 신앙건설을 위해 존재합니다. 신앙건설은 행위에서 나오고, 행위는 지식을 따라 갑니다. 하나님지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지식으로 행동하여 하나님을 향할 것이고, 인간지식을 가진 사람은 인간지식으로 행동하여 결국 멸망할 인간을 만들 것입니다. 하나는 생명이요 하나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따라서 지식을 먼저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호4:6)
④ 두 지식
▪ 두 지식의 필요성
타락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지식만 필요했고 그것만 가지면 아무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오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지식과 함께 인간지식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땅을 파서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어먹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에게 기본으로 더해 주신 지식들입니다.
이런 지식을 인간지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에덴동산에서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 타락한 후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들이 발명하고 발견한 지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는 새로운 것을 하나 알고 가져도 하나님께서 먼저 알리시고 넣어주셔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뒤에는 하나님께서는 한발 뒤로 물러나시고 그 대신 인간이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노력하고 움직여서 이런 저런 지식을 주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타락 후 세상에 나온 지식들은 전부 인간지식이라고 일단 분류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그 인간지식도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노력해서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지 타락한 후 존재하도록 세상에 배정해 두셨기 때문에 인간들이 가지게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은 것을 인간이 만들어 가진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된다는 말은 성경의 폐기를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타락한 우리에게 인간지식이라는 것은 필요하다는 점을 먼저 확실히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 지식을 어떻게 상대하고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마4:4, 딤전4:4).
▪ 두 지식의 위치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지식만 있었기 때문에 아무 복잡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인간지식을 가져야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세상환경이 바뀌었으므로 하나님지식과 인간지식 이 둘을 어떻게 상대하고 사용하느냐는 것이 인간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첫 조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지식은 주인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지식은 점G 자리에 서야 합니다(눅16:13). 최종 판단을 하고 명령을 하는 것은 하나님지식이 하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심부름을 하는 것은 인간지식이 해야 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이후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가질 두 지식의 위치입니다. 만일 이 위치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지식 때문에 반드시 그 뒤의 행동은 볼 필요도 없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가 중심에 서고 도덕이 점G 위치에 선다면, 그 나라는 돈벌이 되는 것을 위해서는 무조건 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도덕이 주인자리에 서고 경제가 점G 위치에 선다면, 돈벌이가 된다고 무조건 버는 것이 아니고 벌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사용하는 것도 경제논리에 따르지 않고 사용할 곳이면 있는 대로 다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경제가 중심에 서면 도덕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고, 도덕이 중심에 서면 경제가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지식이 중심에 서면, 듣지도 말아야 할 인간지식도 있고, 듣는 것으로 그쳐야 하는 인간지식도 있고,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인간지식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지식이 중심에 서면 예수님만 믿어야 천국 간다는 성구는 번역을 새로 해야 할 것이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구는 한도 없이 사용될 것입니다. 인간지식이 중심에 서면, 하나님지식은 완전히 해체를 당하고 그 중에 몇 대목은 징발되고 나머지는 폐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말은 성경의 폐기를 의미합니다.
▪ 두 지식의 가치
하나님지식은 우리를 성화시켜 하나님을 닮게 만드는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인간지식은 세상 살아가는 기간에만 일부 이용될 뿐입니다. 인간지식은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렸고, 여기서는 맞고 저기서는 오류가 되고, 그 자체는 맞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단계에서 전부 우상이 되거나 하나님과 맞섬으로 자멸하게 되는 지식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지식은 진리요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인간지식은 거짓이요 멸망이요 지옥입니다. 인간지식에 가치성이 있다면 하나님지식에 점L 되어 붙들려서 이용당할 때, 그 이용가치로서만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채소의 가치는 그것이 사람에게 먹혀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될 때 가치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꼭 같은 채소가 소에게 들어가면 소가 될 뿐입니다. 따라서 채소 자체의 가치는 따로 계산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지식이 그렇습니다. 인간지식은 타락한 세상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냥 두면 그렇게 굴러가다가 마지막에 다 불태워 쓰레기처리가 될 것이지만, 만일 세상이 계속되는 기간에 하나님지식에 붙들려 종노릇을 하게 되면 그때는 사람에게 먹힌 채소와 같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실력이 되거나 활동이 됩니다.(고후5:4)
▪ 두 지식의 사용기간
하나님지식은 개인이 죽든 세상이 끝나든 상관없이 영원히 계속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지식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인간지식은 오늘 이 땅 위에서만 존재하다가 세상 마지막이 되면 아담의 타락 이후 변화된 모든 환경과 함께 영원히 제거됩니다(고전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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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딤전4:6-7 ‘...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
잠19: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암8:11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딤전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고후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전13:8 ‘지식도 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