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주제별 정리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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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1.01.초안, 03.05.22. 1차교정, 04.03.29. 최종출간)

서론





1. 교리의 의의
2. 교리의 형성
3. 교리의 요소
4. 교리의 발전
5. 교리의 필요
6. 교리 체계의 시각 - 구원론










1. 교리의 의의

① 정 의

교리는 대개 ‘조직신학’이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은 성경 전체에 흩어져 있는 가르침 전부를 인체의 수많은 부분이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체계화한 것입니다.

② 다른 표현들

‘교리’는 주로 거창하게 말할 때 ‘조직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좀 어렵게 표현하는 분들은 ‘교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교리라는 표현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주로 ‘성경신학’과 나란히 비교해 보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신학은 조직신학과는 조금 다른 면으로 성경을 살피고 있습니다.

우선 성경신학은 성경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분리하여 살피는 면이 강하고, 조직신학은 통합적이면서도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는 면에 집중합니다. 또한 성경신학은 성구 표현에 가깝게 연구하고, 조직신학은 성구 표현에 직접 나타나지 않고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데 주력합니다. 성경신학은 성구 제시가 필수적인데 비하여 조직신학은 성구의 기계적 제시가 어렵습니다.

참고로, 본 교리서는 일반 교리서와 달리 성구제시를 조심하고 있습니다. 일반 교리서에서 나타나는 성구 제시가 너무 성급하고 무분별하여 아쉽게 생각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직신학의 근거는 어느 한 두 성구로 해결할 수 없는 성경 전체를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성구를 제대로 제시하려면 너무 양이 많아서 독서가 어려울 정도이고, 좀더 자세하게 제시하려면 성경 전체를 다 제시해야 합니다. 따라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몇 곳 참고로 성구를 제시했습니다.



2. 교리의 형성

① 성경 근거

교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연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이치를따져보는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성경을 ‘교리’로 체계화시켜 말씀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근거는 성경이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시119:105).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교파마다 교리가 서로 다른 이유는 우선 성경을 아는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넓게 체계화를 한 사람과 그보다 좁은 범위에서만 맞추어 놓은 사람은 꼭 같은 성경을 봐도 서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행15:1-2). 이런 경우는 대개 신앙이 자라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신앙 속도에 차이가 나는 것이므로 좀더 연구하게 되면 결국 넓은 범위에서 체계화한 것으로 일원화됩니다(엡4:13).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경우인데, 교리 연구를 하는 과정에 고의나 과실로 인간의 선입관이나 주관을 삽입하는 경우입니다(벧후1:20). 5세기 전후 교회사에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경우, 또 16세기 이후 칼빈과 알미니우스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어거스퉤L나 칼빈은 인간이 억울하든지 말든지 성경이 말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교리를 요약하여 ‘전적 타락’과 예수님 대속으로 구원받는 ‘선택’ 교리의 토대를 닦고 또 발전시킨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우스는 아무리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만 차마 어떻게 사람을 무자비하게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가 하여 인간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인간 생각을 교리 연구에 개입시켰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부인하고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구원이 결정된다는 교리를 만들게 됩니다.(딤후4:3)

교리는 사람의 생각과 주관에 이해가 되고 말고를 따라 가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조직적으로 나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오직 성경만이 근거라는 입장에 철저해야 합니다(벧후1:20-21).

② 교회의 결정

일반적으로, 교리는 ‘교회라는 단체’가 연구와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를 합니다. 그러나 이는 권위를 인정하고 임무를 맡겼으면 그 결정에 따라 자진해서 성실히 따라야 한다는 서구의 전통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입니다.

교회는 재림 때까지 항상 내부적으로도 투쟁과 분리가 계속됩니다. 또 교회의 내부는 거의 대부분 속화 타락하는 측이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주체가 되어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면 교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이탈되고 인간 생각대로 조립된 이상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생각대로 편리하게 만든 교리는 지지자가 많기 마련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바로 깨닫는 사람은 그 지지자가 적기 때문에 그 교리는 교회에서 자꾸 배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왕상22:13).

교회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을 교회라고 합니다. 한번 하나님을 모셨다고 늘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었고 베드로는 그 평생 하나님을 모셨다가 떠나기를 수없이 반복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세웠다고 해서 그 교회의 발표는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성령에 붙들려 바로 발표할 때는 교리가 되고, 베드로가 악령에 붙들려 발표할 때는 물러가야 할 사탄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마16:23).

일반적으로 교리의 주체를 ‘교회’라고 할 때 교파와 같이 보이는, 교회를 염두에 두고 이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만일 보이는 교회를 두고 교리의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교리가 바로 성립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참 교회가 보이는 교회를 주도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교리의 주체가 ‘교회’라 할 때 ‘교회’는 ‘교회론’에서 말하는 참 교회, 즉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어떻게 확인해 볼 수가 있는가? 성경 진리를 바로 체계화 했다면 거기 관계된 교인들과 따르는 교인들이 바로 참 교회입니다(롬2:29).





3. 교리의 요소

교리는 성경을 보고 깨닫고 체계화한 것이지만, 만일 바르게 체계화 된 교리라고 한다면 그 교리 속에는 ①통일성 ②사회성 ③역사성 ④권위성 ⑤문화성이라는 다음 5가지 정도의 요소가 발견됩니다.

① 통일성

성경 진리를 체계화하여 가르칠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 이때 체계화라는 말은 마치 한 몸으로 연결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위치와 생긴 모습과 기능은 제각각 다 달라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입니다. 모든 교리들은 한 몸을 이루는 한 분자이면서 내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고 본질과 본성이 하나입니다. 여러 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라는 뜻을 표현할 때 체계화라 합니다.

교리의 내용은 대개 하나님이 무엇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지에 대한 ‘계시론’, 하나님에 대한 ‘신론’, 사람에 대한 ‘인론’, 사람의 범죄에 대한 ‘죄론’, 예수님에 대한 ‘기독론’, 우리가 믿게 되고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구원론’, 교회의 본질과 운영 등에 대한 ‘교회론’, 그리고 재림과 영계 영원에 대한 ‘말세론’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교리들은 또 다시 세분하면 대단히 복잡하게 나눌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하나의 몸과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청각의 감각기관, 입과 위와 장으로 된 소화기관, 심장에서 온 몸의 세포로 향하는 순환기관, 전신의 정보통신을 맡고 있는 신경기관 등이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로 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이 교리들도 그렇습니다.

신론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교리는 인론에서 인간의 원형 문제와 직결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간의 죄를 연구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바로 알게 되고 그 죄를 대속하실 예수님은 그 죄를 대속하러 왔으니 그 죄의 모든 영향을 다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신론과 인론과 죄론과 기독론이 마치 온 몸의 각 기관과 세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론에서 설명하는 우리의 중생과 성화, 그리고 말세론에서 안내하는 심판과 우리의 영원한 나라는 심은 대로 거두는 관계입니다. 어느 한 교리도 그 교리가 전체 교리와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교리 전체와 연결되고 맞아떨어지지 않는 교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면을 가리켜 교리는 통일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통일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교리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구원론의 이단이 처음에는 구원론의 한 부분만 오해를 해서 잘못 발표를 하게 되는데, 그 잘못된 부분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점차 전체 교리를 삐뚤어지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교리가 그 구원론의 잘못된 교리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새로 깨달은 교리가 하나 소개된다면 이 통일성의 원칙에 의하여, 그 교리는 심사를 받게 됩니다. 만일 나머지 전체 교리와 바로 맞아진다면 이 교리는 바로 된 교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 교리가 나오게 되는 것은 교리가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새로 깨달아진 교리 하나는 나머지 모든 교리를 더 깊게 만들며 교리는 발전하게 됩니다.(엡4:16).

② 사회성

교리는 그 교리 내부의 모든 교리끼리 통일성을 가질 뿐 아니라 동시에 그 교리가 적용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교리는 교리 내부적으로 하나라는 뜻으로 발표할 때는 ‘교리의 통일성’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교리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할 때는 ‘교리의 사회성’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공간적으로 어디에 사는 어떤 형편의 사람에게도 하나밖에 없는 진리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교리가 이런 성경 진리를 체계화했다면 그 교리는 어느 나라 어느 교회 어느 성도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이치를 찾아 체계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사회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때 ‘사회성’이라는 의미는 세상 사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 한 사람이나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 사회’ 전체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교리에는 이 사회성이 있기 때문에 한 교리의 정확성을 따질 때 그 교리를 어느 한 강의실에서만 토론할 것이 아니고 다른 시대나 다른 환경에 있는 성도들에게 두루 적용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 보면 토론에서 밝히지 못했거나 밝힐 수 없는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그 교리의 정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교리의 사회성은, 교리는 공간을 초월하여 어떤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마28:19-20).

③ 역사성

교리는 수평으로 펼쳐놓을 때 공간을 초월하여 사회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교리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위에서 밑으로 펼쳐놓아도 변동이 없습니다. 교리는 성경 깨달음을 체계화한 것이고, 성경은 시간을 초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나의 옳은 교리는 역사 속에서 그 다음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깨달아진 옳은 교리가 있다면 앞에서 내려오던 교리에서 자연스럽게 뻗어 자라나가는 생명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바른 교리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절되거나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시대에는 옳지만 다른 시대에 적용이 될 때 모순이 된다면 이는 성경을 잘못 깨닫고 잘못 체계화했다는 뜻입니다. 교리의 ‘사회성’이 공간을 초월하여 적용된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성이란 교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적용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역사성이 중요한 것은, 혹 인간의 짐작이나 추론을 교리에 포함시켜도 그 사람이 일반인을 뛰어넘는 명석한 사람들인 경우에는 자기 시대 여러 종류의 성도들을 다 고려해서 이론을 정립시켜 사회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시대를 두루 연구하여 사회성을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앞으로 닥쳐올 다음 세대를 두고 역사적으로도 옳다는 역사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합니다. 미래에 대한 것은 단 1초의 순간도 인간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성을 억지로 맞춘 교리는 더러 있어도 역사성을 꿰맞추어 놓은 교리는 없기 때문에 어느 한 당대 교회를 석권한 교리가 있다 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그 정체는 밝혀지고 맙니다.

이런 면에서 교리의 역사성이라는 것은, 바른 교리는 생명을 가지고 역사 속에서 살아 내려온다는 면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교리들이 바른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 그 교리의 정확성을 가릴 수 있게 합니다. 이 역사성 때문에 잘못된 교리는 한 시대는 속여도 바로 밝혀지게 됩니다.(히13:8).

④ 권위성

교리는 성경 내용을 이치적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성경 성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변치 않는 것처럼 교리도 변치 않는 진리적인 내용을 가져야 하고, 이런 면을 가질 때 이것이 교리의 권위성입니다. 즉 교리는 변치 않는 진리이니 변치 않는 이 진리 면이 교리의 권위입니다. 교리가 변치 않는 것은 교회가 결정한 교리이기 때문에 변치 않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를 요약해서 설명한 것이므로, 정확하게 요약한 교리라고 한다면 교리는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치 않는 진리적인 것은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식물에게서는 식물성 기름이 나오고, 동물에게서는 동물성 기름이 나옵니다. 식물에게서 동물성 기름이 나올 수 없듯이, 변하는 인간에게서는 변치 않는 진리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변동하는 세상과 변동하는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신 진리는 변치 않으니 이렇게 변치 않는다는 점이 세상과 인간들에게 권위입니다.

교리의 권위성은 변치 않는 진리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한 교리를 대할 때 큰 교파에서 나온 교리라고 하여 권위를 인정한다든지 아니면 대학자의 학문과 논리에서 제시되었다고 하여 권위를 인정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학위의 종류와 높낮이에 따라 논문의 정확성과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 그런 외적인 면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학위나 경력을 가지고 교리의 정확성을 담보하려 하고 또 권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 교계입니다. 이런 교계의 현실은 교회의 권위가 진리의 변치 않음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오늘 교회 현실은 변치 않는 진리를 근거로 정확성과 권위성을 판단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변동 많은 인간들이 어떤 글이나 교리의 권위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리를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고 인간들이 제도적으로 만든 학위들을 공인제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들은 글을 발표하는 방법과 절차를 밟도록 만든 것인데, 그 제도가 원하는 과정만 통과하게 되면 그 사람의 발표는 정확성과 권위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피고 집중해야 할 문제는 그런 외형의 절차가 아니라 그 내용의 진리성 여부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속하여 속이고 속는 발표는 잘 할 수 있겠지만, 변치 않는 진리를 발표하는 데에는 그런 인간 제도를 사용하면 사용하는 만큼 진리에서는 더 멀어진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은 진리의 권위성이 사라진 암흑시기입니다. 교리의 권위성도 변치 않는 진리에 그 권위성이 있는데 이 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말세 교회에는 교리의 발전은 고사하고 교리의 보존도 기대할 수 없는 극단의 시대가 되었음을 참고해서 교리 연구를 하고 교리를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마28:20)

⑤ 문화성

교리는 그 내용이 비록 진리지만 그 진리를 가르치고 표현하는 것은 오늘 땅 위에 인간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면을 일반 교리서에서 ‘문화성’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회 일반적 표현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문화’라는 미명이 사용되는데 대하여 거부감은 적지 않습니다.

어쨌든 교리는 인간 사회에서 의사 표현이 가능하도록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뜻과 생각을 발표하는 데에도 불편하고 한계가 많습니다. 하물며 이것으로 진리를 담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교리라는 진리적 내용을 인간 언어에 담는 것은, 성경 기록을 참고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인간 언어를 통해 기록해주셨으니 이 면을 참고한다면 성경에서 표현된 것을 교리로 작업하는 일은 비록 언어의 한계성 때문에 불편하다 해도 못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교리를 기록할 때는 언어로 그 진리를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언어만 상대해서 안 된다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성경 기록을 대할 때 겉으로는 인간의 언어를 상대하나 속으로는 성령의 깨닫게 해 주시는 영감역사로 상대해야 하듯이, 교리로 진리를 체계화 할 때에도 겉으로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나 그 인간의 표현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비록 정확무오한 성경 기록 영감은 오늘에 재현 될 수 없으므로 교리 기록에다가 성경의 정확성과 권위성을 인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오늘도 늘 우리를 모든 면으로 인도하는 역사 성령이 있으니 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교리를 기록할 수 있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한번 사용한 교리 용어들은 확실하게 더 나은 깨달음을 가진 경우가 아니면 그대로 사용하기를 노력하는 보수성에도 극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표현에 다소 불편이 있다 하여도 언어 표현 기술로 진리를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교리가 어떤 진리 내용을 가르치는지 그 표현에 담겨 있는 진리를 직접 깨닫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번역 본문이나 찬송가 가사 그리고 교리 용어에 이르기까지 꼭 고쳐야 하는 잘못된 표현은 고칠 수 있지만, 꼭 고쳐야 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마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 업적을 표시하기 위해 용어를 혼란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삼가 유의해야 합니다. 심지어 시대 유행을 따라 장난삼아 교리 표현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폐단들을 막는 데에는 신앙노선을 보수적으로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리 표현에 보수성을 가지게 되면 위에서 설명한 여러 폐단들을 막는 데에는 아주 효과적일 것입니다(창11:9)..



4. 교리의 발전

히6:2,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교리는 성경 진리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생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제자리에 석고처럼 굳어져서 머물지 않습니다. 교리도 초대교회부터 오늘까지 한 알의 씨앗이 심기어 움이 돋고 둥치와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꾸준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도 교리가 발전되지 않고 머문 때가 있었다면 그 시대 교회는 잠든 교회였습니다. 교리는 이렇게 꾸준하게 발전을 하지만, 그 발전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안정성 : 장차 발전되는 내용에도 변치 않아야 하고
진정성 : 성경적이며 유기적이며 현실에 결과적 옳은 것이고
합리성 :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이 논리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① 안정성

교리는 성경 진리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아무리 발전을 해도 성경을 요약한 진리이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자라가기 때문에 이전과 달리 보이는 것이지,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원칙이 교리 발전에는 적용됩니다. 만일 세월에 따라 이치 자체가 변한 교리가 있다면 그 변경된 교리는 원래 교리가 될 수 없는데 사람들이 교리로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리는 발전을 하지만 그 교리는 원래 교리가 뻗어가고 자라가는 성질이므로 교리 발전에는 안정성이 있습니다.

세상 것은 새로 나타난 지식이나 세력 때문에 기존 질서는 깨어지고 기존 가치관은 폐기가 되든지 몹쓸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교리는 새로운 교리가 나타나면서 발전을 하게 되면 그 교리 이전에 있던 교리는 더욱 더 튼튼해지고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묻혀 있던 가치가 외부로 드러나게 됩니다. 자녀가 정상적으로 자라고 출세를 하면 그 부모와 조상은 그 자식 때문에 더욱 빛을 보는 것으로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살후2:15).


② 진정성

교리의 발전은 성경 진리에서 시작되고 성경 진리를 향해 발전하는 것이므로 그 발전은 그 시대 교인들에게 더욱 더 성경을 밝혀주며 성경 진리에 가깝게 발전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특히 조심할 것이 교리의 발전에 성경 외에 인간의 다른 지식과 주장이 유입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경 이외의 것이 교리에 유입되면서 변질된 교리가 역사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현대 교회로 오면서 이런 현상은 가속도로 많아져서 지금은 성경을 근거해서 성경을 밝히는 교리 발전은 거의 없다 할 시대입니다. 교리 발전이라고 발표되는 것은 오히려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인간의 철학과 주관에 근거를 두고 있어 참 교리를 더욱 부패시키고 탈선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리 발전에 있어 오늘 우리 시대에 특별히 주의할 것은, 성경이 아닌 인간 지식의 유입을 차단하는 일입니다. 교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우선 교리를 대할 때 자기 사고방식이나 기본자세가 성경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신학교의 체제 자체부터 세상 학문 세계와 같은 체제와 가치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리연구까지도 그런 인본주의 체제를 초월하고 있다고 짐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순수하게 성경을 근거로 발전을 해야 하는 것이 교리이기 때문에, 교리가 성경으로 바로 발전한다면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성경으로 다가가고 있는 진정성이 증명됩니다. 교리의 요소에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교리는 성경에서 시작하여 성경으로 향할 때 그 내용이 시공을 초월하여 전체 교리 체계가 한 몸의 지체들이 한 몸을 형성하듯 완벽하게 하나가 됩니다(벧전2:2)..


③ 합리성

교리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이 논리적으로까지 다 증명되어 나가야 합니다.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나누어 이치를 따라 체계화를 시킨 것입니다. 교리는 이치적이므로 그 발전도 이치적이어야 합니다. 발전한 그 모습도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고, 또 발전은 논리선상으로 진행되어 앞길을 자꾸 개척해야 합니다.

신약교리사로 예를 든다면 예수님 승천 후 신약교회 첫 교리의 확립은 먼저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은 신앙의 기준이요 잣대이기 때문에 악령은 이것부터 막으려고 노력했고 교회는 ‘성경관’ 교리를 가장 먼저 확립하게 됩니다. 성경교리가 확립되자 그 다음에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는 문제가 나타납니다. 악령이 그렇게 막고 나섰으며 또한 교회의 교리 발전은 미리 준비한 듯이 ‘삼위일체 하나님관’을 확립하며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기독론’을 거쳐 천주교에서 개혁하던 시대에는 ‘기본구원론’ 그리고 오늘은 ‘건설구원론’으로 이어져 왔는데 이 순서는 정확히 논리적입니다.

그렇다면 건설구원론이 확립된 오늘 이후 우리가 직면하는 앞날은 어떤 방향으로 교리가 발전하겠는가 하는 것까지도 예견하려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행26:1)..



5. 교리의 필요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롬14: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1) 성경해석

① 성경 해석은 성경

성경은 비록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으나 그 언어 속에는 그 언어가 다 담을 수 없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것은 그 언어가 정확하고 그 언어가 그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을 언어 연구와 어학사전에 의존한다면 이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의 기록 자체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으며 어떤 문장으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까지는 그 사용된 언어를 연구하고 해당 언어의 사전을 참고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확인한 다음부터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문장의 언어적 확인을 한 다음, 그 후 그 성경이 의미하는 바는 반드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혹시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단계 이전 성경 기록 자체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언어적 연구와 사전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으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성경에 사용된 표현은, 일반 사람의 언어능력으로 조심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정도로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기록한 성경 기록을 만일 언어 전문가가 평범한 언어사용 이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게 되면 오히려 원래 기록한 그 기록 상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을 언어로 확인하는 1차 단계는 일반 사람의 평범한 언어능력으로 접근하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기록 자체를 확인한 다음부터는 이 성경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부터 성경은 이제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로 나타나게 됩니다. 좁은 의미의 성경 해석은 이 단계부터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만이 성경 해석법이 된다면 성경해석은 교리의 범위 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교리가 필요한 이유의 첫째를 성경해석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고전2:13, 10:4).

② 성경해석과 교리

성경해석에서 한 성구를 다른 성구와 직접 연결 지어가며 해석하면 이를 주경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성구는 전체 성경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 이 전체 면을 두고 해석을 하게 되면 교리해석이라고 합니다. 주경신학에 비하여 조직신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경신학은 성경 해석을 개별 성구 중심으로 시작한 것이고, 교리라고 하는 조직신학은 성구 해석을 성경 전체 성구를 상대로 체계화로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경신학이 조직신학의 근본이며, 조직신학이 주경신학의 완성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교리연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연구입니다.

교리가 성경해석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개별 성구를 해석하다 보면 그 성구 해석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지도 좌표에서 X 선상의 좌표만 가지고 목표물을 찾는 것과 X Y 선의 좌표를 함께 가지고 찾는 것은 편리성과 정확성에 있어 아주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서울에서 김씨 성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것과 성씨에다 성별 주소 나이까지 다 알고 찾는 것으로 비교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리는, 한 성구를 해석할 때 그 성구가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을 전체 성경으로 제시하게 되고 또 그 성구를 해석할 때 교리는 그 성구 해석이 전체 성경에 연결을 시켜 그 성구의 해석 범위를 전 성경으로 확대시키는 체계입니다(고전10:4, 사34:16-17).

우리의 신앙은 성경 하나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어떤 신학이든지 마지막에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대하는 것인데, 특히 교리를 조직신학이라고 하여 따로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성경 해석의 전체적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한 성구 해석을 전체 성경 체계에서 접근하게 되면 난해절은 저절로 없어지게 됩니다.


(2) 교회통일

① 교회의 정체성

교회는 한 분 하나님과 말씀을 모셨다는 의미에서는 하나지만 그 성경을 어떻게 믿고 신앙생활을 어느 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서는 서로 다를 수 있으니 이를 교파라고 합니다. 오늘 많은 교파가 존재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 사람들이 교권 투쟁 과정에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해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각 교회에 주시는 은혜의 분량과 차원에 따라 성경 깨달음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파라는 것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교파를 교회라고 표현할 때, 교회는 교리로 존재하게 됩니다.

오늘 교회의 존재 형식을 교리가 아니라 교권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분열도, 또 분열된 교회의 통일도 그 폐해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교회는 그 존재 형식과 상황을 교리에서 찾아야 옳습니다. ‘성경관’ ‘삼위일체관’ ‘구주관’ ‘기본구원관’이 같다면 우리는 일단 하나님의 교회로 정의하게 됩니다(엡4:13). 이 교리를 가지면 교회고 이 교리를 가지지 않았다면 타종교로 보게 됩니다. 근본되는 이런 교리들은 같지만 어떤 교리들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달라도 되는 것이 있는데, 이런 교리들이 다르다면 이때는 교회 내의 교파로 구별할 뿐입니다. 타종교로 분류하는 경우든, 같은 교회인데 교파가 다른 정도로 분류하든, 어쨌든 교회는 교리로 존재하고 교리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리라는 것은 교회의 존재를 확인하는 열쇠가 됩니다. 교리로 교회가 존재하고, 교리가 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확인시킵니다. 따라서 교리는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② 교훈 통일

교리로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교회는 교리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니, 교리가 하나라면 교회의 교훈은 통일될 수밖에 없고 또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교리는 교회로 하여금 교훈 통일을 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지방에 위치해 있다 해도, 또 그 교회 교인의 구성이 어떠하며 그 목회자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그 목회자의 설교 내용과 강조하는 면은 각각 다를지라도 교회의 교훈은 교리로 통일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교리적으로 다르다면 교리를 기준으로 그 교훈이 같아지도록 해야 비로소 한 교회로 존재하게 됩니다. 한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롬16:17)..

교리가 다르면 교훈은 같아질 수가 없고 교훈이 다르면 그 교훈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사람도 달라지게 됩니다. 잘못 만들어진 부분은 잘못된 그만큼은 천국으로 옮겨질 수 없습니다. 교리가 교훈을 통일시키고, 교훈은 주님의 몸이 될 우리를 한 분에게 속한 인격으로 통일시킵니다. 즉 교리는 교훈 통일을 통해 어느 시대 어느 교회 어느 교인이라도 한 분 주님의 몸이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교리의 교훈 통일과 관련하여 꼭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말세 교회를 뿌리째 뒤흔드는 교회 통일 운동이 교훈의 통일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통일이 좋은 것이나 우선 교훈이 왜 틀린지를 살피고, 그 교훈의 뿌리가 되는 교리적 입장에 어떤 문제가 다른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리가 다르니 교훈이 다른데, 교회의 외형만 통일을 시키려고 하는 이 운동이 있어서 말세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시험이 되고 있습니다.


(3) 이단대항 및 그 위험성

옳은 것만 세우면 모든 종류의 잘못은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잘못을 다 정죄한 다음 옳은 것을 세우려고 한다면 인간이 가진 시간과 기회가 유한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너무도 손해가 많습니다. 검은색을 설명하기 위해서 검은색이 아닌 색을 다 동원하여 이것은 검은색이 아니라고 일일이 말하므로 마지막 남은 색을 검은색이라고 가르치는 방법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냥 검은색을 바로 내놓고 이것이 검은색이라고 설명하면 얼마나 명확하고 간단할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종교의 틀린 점을 연구하고 비판하여 기독교가 옳다고 증명해 나가는 것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극히 예외적이라야 합니다. 만일 다른 종교를 연구해서 기독교와 비교를 하고 그 장단점을 설명하여 기독교가 옳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는 우매한 일입니다. 이단은 다른 종교에 비하여 우리가 비교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너무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교 설명도 가능한 한 줄여서 최소화시킬 수 있는 데까지는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른 종교와 이단들은 기독교에 의하여 비교가 되어지면, 비록 비판을 받을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수입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그들과 비교하면 하는 것만큼 큰 위험성을 안게 됩니다. 오물통과 흰옷이 접촉을 하게 되면 흰옷은 잘해야 본전이고 오물통은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학자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은 자신들이 교회 안에서 앉아야 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가 맡을 적절한 분야가 없으면 심지어 이단만을 연구하는 직책을 평생직으로 택하게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직책은 우리 교회 전체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어도 본인에게는 손해가 많습니다. 또 그런 분들의 수고가 짧게 보면 교회 전체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으나, 길게 보고 넓게 본다면 유익보다는 손해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 면을 삼가 조심해서 살피는 이단 전문가가 있다면 그는 교회를 훔치러 넘어오는 도적을 막은 큰 공로가 있을 것입니다.(계2:2)


6. 교리 체계의 시각 - 구원론

(1) 구원론 체계의 의의

한 사람을 소개할 때, 어느 시각에서 설명하느냐에 따라 내용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됩니다. 이 모든 범주를 전부 집합시켜 설명한다면 단순히 백과사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교리는 일단, 성경 진리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전부 체계적으로 요약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백과사전과 같이 교리에 관련된 내용을 전부 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개하는 백영희교리체계는 그 교리체계 전체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며 왜 필요한지를 분명히 묻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에 필요한 이치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기록해 주신 것이 성경이므로, 교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전부 담도록 하되, 그 모든 항목과 내용들은 전부 우리 구원에 어떤 면으로 필요하며 왜 그 교리 내용이 구원의 어떤 면을 가르치는지가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또한 우리 구원 면에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원 목적과 구원에 필요한 면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교리가 연구되고 기록된다면 이 교리는 죽은 교리가 되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교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백영희 신앙노선을 고려할 때, 이 교리연구는 구원론이라는 시각을 근본으로 삼고, 그 다음 교리 체계 전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비단 교리뿐 아니라, 신학 전반에도 이 원리는 적용되는 것이고, 심지어 목회나 신앙생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분야나 부분에서도 구원 목적과 구원 필요성에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들을 것도 배울 것도 살펴볼 것도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교리서 서론에서는, 교회사에서 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지만 교리의 총괄역사를 잠깐 요약하여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현재 21세기의 교리 정리는 현 시점까지 밝혀지고 확인된 교리 전체를 체계화시켜 소개하게 되지만, 이 교리들은 어느 한 시점에 조립이 완료되어 출시된 세상의 상품들과 같지 않고 세월 속에 자라나온 것을 현 시점에서 그 단면을 보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체계를 오늘 현황에서 보지 않고 과거 교리사로 살펴본다면 오늘의 교리를 위해 어떤 교리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교리사라는 분야는 또 하나의 과목으로 따로 살펴보아야 하겠으나 그것은 사실 특수한 사명을 가진 몇 사람에게나 해당된 일이고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여 상식적으로 몇 가지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리 요약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 교리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잠깐 살펴본다면, 교리는 그냥 항목별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고 우리를 길러 가시는 구원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인도해온 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교리의 역사적인 형성 과정, 즉 오늘 우리 시대의 교리는 특히 구원론적 시각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소개합니다(요5:39)..


(2) 구원론적 시각에서 본 교리체계의 발전 단계

① 제1시기 : ‘성경관’ 확립

우리 기독교인의 모든 신앙생활은 성경에 근거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대속도 모든 행위도 성경이 말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성경을 보고 알고 행하여 신앙을 길러갑니다. 예수님 대속 후 신약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확정 지워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악령은 성경자체를 없애거나 혼동시키는 일에 제일 먼저 전력을 다합니다.

신앙에 유일한 법칙, 신구약 66권 성경 자체를 혼동 혼잡 시킴으로 초대교회의 신앙을 그 뿌리부터 끊어보려고 악령은 200여 년간 노력했지만 초대교회는 이러한 악령의 시험을 이기고 오히려 66권만이 정경임을 깨닫게 되어 ‘정경 교리’를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관 교리사로 본다면 신약교회 역사의 제1시기입니다. 교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 시기는 393년에 개최 된 공회라고 기록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실질적으로 확정된 것은 주후 200년 이전입니다.

② 제2시기 : ‘삼위일체 하나님관’ 확립

성경관에 이어 악령이 교회를 혼동 시키려고 주력한 또 하나의 미혹은 하나님 관입니다. 66권 성경을 아무리 굳게 붙든 성도라도 믿고 따라가야 하는 하나님을 잘못 파악하면 헛일입니다. 부처나 알라신을 하나님으로 아는 저급의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부르는 이름이 비록 ‘하나님’이라도 만일 성경이 말하는 대로의 그 하나님으로 알고 또 그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성경관이 잘못되면 출발도 하지 못하게 되고, 신관이 잘못되면 종교가 달라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단순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던 교회가, 악령이 먼저 시험을 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알아갑니다. 그 최종 설명이,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이어서 유한한 인간으로는 다 알 수 없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영원히 알아가는 것이 성도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배워 가는 첫길에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다른 종교로 가게 됩니다.

초대교회를 향한 악령의 미혹은 하나님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교회보다 더욱 더 강하게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해 놓고는 엉뚱하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제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성령이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급격히 성장하는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관’이라는 교리 문제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온 나라의 평안과 질서에 방해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주후 325년에 모든 교회 대표들을 니케아라는 도시로 불러 논쟁을 하게 하고 이단과 정통을 구분합니다. 물론 아다나시우스가 정통으로 인정받은 것은 다행이지만 교리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황제의 마음이 바뀌면 또 다른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삼위일체 교리는 니케아공회의 결정으로 일단 정통 교리로 확정짓게 됩니다.

③ 제3시기 : 예수님의 ‘인성관’ 확립

제2시기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교리가 밝혀지자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교리가 확정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지 하나님일 수 없다고 하던 이단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교리가 확정되자 이번에는 말을 정반대로 바꿉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오실 때 예수님의 영을 빼버리고 그 영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님이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면 결국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의 내면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바로 확립해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어진 도로가 개통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내면을 샅샅이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 것이 아폴로나리스였고 그의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 같은 완전한 인간이라는 교리가 확립된 것은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④ 제4시기 : 예수님의 ‘일위관’ 확립

이제 예수님 안에는 참 하나님인 신성과 참 사람 인성이 있다는 사실은 확정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 안에서 이 신성과 인성이 어떤 관계로 하나 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신성 하나님과 인성 사람이 각각 완전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앞서 제2시기와 제3시기에서 각각 확정하다 보니까, 두 존재가 한 분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계신다는 면을 무시하게 됩니다. 한 지붕에 두 세대가 사는 것처럼 집만 하나지 내부적으로는 세대가 둘로 나누어지는 정도로 예수님을 소개하는 이단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4시기에서는 예수님은 한 분 안에 신성 하나님과 인성 사람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분임을 강조하고 이 교리를 확립하게 됩니다. 두 존재가 둘이 아니고 한 분이라는 것을 ‘일위’라는 표현으로 요약하게 됩니다. 주후 431년 에베소공회의 일입니다.



⑤ 제5시기 : 예수님의 ‘양성일위관’ 확립

예수님은 하나님이며 사람인데, 예수님 안에서 이 두 존재는 한 분이 되었다는 ‘일위관’에 대하여 또 지나치게 나가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두 분이 한 분이 되었으니까 이 둘은 뒤섞여 제 3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성 하나님과 인성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한 분이 되었으나 이 둘이 뒤섞여 변성된 것도 아니요 이 둘이 따로 떨어져 별개로 지내는 것도 아니라고 최점8로 정리하게 됩니다. 주후 451년 칼세돈 공회였습니다. 오랫동안 끌어오던 삼위일체관과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관을어거스퉤L 최종 정리하게 됩니다. 간단히 소개드린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신성’ 확정), 참사람이시며(‘인성’ 확정), 이 신인 양성이 분할 분리되지 않고(‘일위’ 확정), 혼합, 변질되지 않고 일위(‘양성일위’ 확정)로 계신다고 요약하게 되면서, 이제 교리체계에서는 성경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줄 예수님을 찾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⑥ 제6시기 : ‘기본구원관’ 확립

‘66권 성경’ 교리와 ‘삼위일체’ 교리와 ‘신인양성일위’ 교리를 확립하며 보낸 세월이 주후 5세기까지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받아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로 교리 발전은 자연스럽게 진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리를 구원해 놓았으니 이 구원을 우리가 얻어 가지게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가? 천주교 1천년 동안의 혼동이 구원론 교리체계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한 가지 문제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성경과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 교리에 이어진 이 기본구원교리 논쟁에서는 천주교라는 모습의 이단이 근 1천년간 주도를 하게 됩니다. 천주교의 구원관도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인간도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는 길에 인간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전적 은혜로 받는 구원’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은 이후에 힘써야 할 것을 많이 가르쳤는데, 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을 전부 기본구원으로 해석하여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천국을 가지 못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 노력들을 하지 않으면 천국 자체를 가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을 해버리게 되자 중세 1천년 교회는 천국을 가기 위해 평생 노력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지옥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떨며 살게 됩니다. 모두들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가는가 라는 문제로 떨게 되자, 신앙을 지도하는 성직자들은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여러 법을 만들게 됩니다. 그 법은 교회가 천하의 돈과 권세를 거머쥐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불신자들이 볼 때도 비난을 할 만큼 도덕적으로 부패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잘못은 ‘기본구원’ 교리를 혼동한 것인데, 이것은 깊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그 대신 불신자들도 비판할 그런 도덕적인 탈선만이 천주교의 주요 죄목이 된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길 때, 교회는 그 초기에 바로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전 다른 교리들을 확립할 때와 달리 이 기본구원 교리를 바로 잡는 데에는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되고 마침내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기본구원 교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구원은 전적 은혜로만 받는 것이라는 이 한 마디가 1천여 년 세월 속에서 확정적으로 발표됩니다. 루터의 뒤를 이어 칼빈이 기본구원에 관련된 교리를 요약하여 발표하게 되고, 당시 막 발명되어 보급된 인쇄술에 의하여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가게 되자, 중세기 1천년을 종료시키고 교회가 새로 출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이들이 당시 자신들의 깨달음을 ‘기본구원론’이라고 발표한 적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구원론이 단순히 ‘구원론’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오늘 ‘건설구원론’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초기 구원론은 ‘기본구원론’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루터와 칼빈의 구원론과 그 구원론이 당시 세계 교회를 구원하게 된 면을 두고 어느 역사가가 다음과 같이 평가한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인쇄술의 보급이 없었더라면 북방 르네상스는 그와 같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활판 인쇄술은 15세기 중기(1447년경) 독일에서 인쇄소를 가진 구텐베르그에 의해 활용되었다. 그는 주조된 활자를 써서 기술적 혁신을 하였다. 그는 이 방식으로 1454년 성경을 인쇄하여 출판하였다(구텐베르그성경). 이 새 활판 인쇄술은 유럽 다른 지역에 곧 전파되어 1500년경에는(종교개혁직전) 1000여개 이상의 인쇄소가 유럽의 주요국에 설치되었으며 3만 종류의 판본들이 있어 서적을 염가로 (기존 책값의 1/20정도) 대량 출판하게 하였다.’

오늘 이 세대가 감당하고 증거해야 할 복음은 인터넷으로 요약되는 통신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상으로 급속하게 전해야 할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때와 비교도 못할 탁월한 기술을 이 말세에 대기시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⑦ 제7시기 : ‘건설구원관’ 확립

사람이 구원을 얻고 천국을 가는 것은 사람의 어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라고 제6시기에서 확정해 놓고 나니까, 즉시 또 하나의 문제가 다가옵니다. 그러면 이제 중생된 사람은 남은 평생 왜 신앙생활에 힘을 써야 하는가? 왜 성경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야 하는 구원을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됩니다. 천주교 1천년의 폐해가 너무 크다보니까 기본구원 교리를 확립한 우리 교회들은 오랜 세월 그 교리만 보배인 줄 알고 그 교리만을 붙들고 제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안주하게 됩니다.

은혜로, 공짜로, 무조건 천국을 가게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염려하던 모든 일은 전부 해결이 된 것 아닙니까? 천주교 1천년 시절에는 천국을 가지 못할까봐서 교황청 시키는 대로 평생에 얼마나 육체로 고생하고 마음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지옥 같은 교리감옥에서 해방 받고 이제 은혜 교리의 품안에 안기게 되었으니 교회는 너무 좋고 평안해서 그 동안의 피곤을 풀고 곤히 잠들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잠이 너무 깊어져 400여년을 넘기고 500여년을 바라보게 되는 시점이 오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그 당시 형성되던 건설구원 교리는 1960년을 전후하며 지금까지 교리사가 잊어버린 성도 속의 영을 되찾고 성도가 중생된 것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 속에 있는 영이며, 마음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물질이라는 것을 밝히게 됩니다. 이 교리가 일단 한국교계에 소개되자 지금까지 듣지 못한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강한 반발을 받게 됩니다. 비록 세계를 다 다녀보지 못했으나, 한국교회는 유별나게 세계 교회들과 연결되어 있어 한국의 신학교는 세계 신학의 집합소가 되어 있는데, 세계 신학계의 축소판이 되는 한국교회가 일제히 이 교리를 거부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이 교리는 세계를 다 뒤져 볼 것도 없이 세계 교리사의 제7시기로 규정할 차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건설구원’ 교리가 확정되는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라는 것이 예고되고 있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중생을 받아 천국을 가는 것은 전적 은혜이며 이는 모든 성도에게 기본적으로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니 이를 기본구원이라 하고, 믿은 성도가 이후 힘써야 하는 부분은 기본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성도들이 자기 신앙에 따라 믿은 이후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각자 신앙건설의 양에 따라 다릅니다. 다르므로 천국에서는 그 차이가 영원토록 있게 됩니다. 이를 건설구원이라는 교리로 발표하여, 그 이전까지 세계교회의 교리역사를 제6시기까지로 구분 짓고, 이제부터 제7시기 교리시대로 나갈 수 있게 한 이가 바로 ‘백영희’라는 인물입니다. 그 백영희 신앙노선이 교회 운동으로 나타난 것은 ‘총공회’라는 개교회주의입니다.


(3) 이 시대의 교리 방향

이제까지 간단하게 구원론시각에서 교리의 발전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단들의 미혹을 막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였고 교회의 혼동을 막기 위해 성경이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살피다가 형성된 것이 교리들입니다. 어느 학자가 남이 모르는 것을 발견해 내려고 자기 학설을 연구하여 발표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하나님 주시는 현실을 자기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서 성경이 어찌 가르치는지를 살펴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교리 발전의 진행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교리 발전의 진행을 보면서, 오늘 이후 시대는 하나님께서 어떤 면으로 역사하고 이 시대를 인도하실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리사와 교리체계를 안다면 늘 이런 질문은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성도들이 신대륙을 발견하듯 큰 건을 하나 터뜨려 이름을 남기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주신 현실 속에 주신 말씀으로 따라가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새삼 마음속에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미혹이 무엇이며, 오늘 이 시대 천하 교회를 삼키는 가장 무서운 이단 교리가 무엇인지, 어떤 논리가 오늘 성도의 구원을 마구 절단 내는지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앞서 세워주신 교리를 가지고 그 교리에 이어지는 어떤 교리로 우리 시대를 감당하라고 하시는지 그 방향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선 급한 것은, 지금까지 이런 7시기로 교리를 발전시켜 우리 손에 쥐어준 교리체계를 정리 요약하는 일입니다. 요약이 완성되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 인도의 방향은 우리 전체에게 아주 공통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시기가 급박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수백 년의 세월이 헛돌지는 않을 듯 합니다. 또 근본교리체계가 전부 확정이 된 상태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어렵게 완성되었지만 그 후 3시기부터 5시기의 예수님관 교리체계는 수십 년의 시간을 간격으로 하여 빨리 진행된 면을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구원 교리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일에 5백여 년이 걸렸다면, 이제 큰 고비를 넘겼으므로 나머지 거쳐 가야 할 단계는 그리 오래 걸리거나 어려울 것 같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역사 세계 전체적으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세상 모든 일에 충성하고 바빠야 하겠으나, 이 복음을 받고 이 신앙노선에 눈을 열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 일에 매진하라는 명령이 함께 전달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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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행15:1-2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벧후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딤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벧후1:20-21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왕상22:13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창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살후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벧전2:2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행26:1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34:16-17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계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요5:39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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